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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숲길'이 산림청의 후원을 받아 지리산 둘레 300㎞를
잇는 지리산 도보 트레킹 코스 만들었다.
'지리산길'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길은 지리산을 감싸고 있는
3개도, 5개시 100여 개 마을을 이어 걷도록 한 장거리 도보 코스다.
길 전체는 2011년 완성될 예정이며, 현재 탐방 가능한 구간은 전체 300㎞ 중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에서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까지 이어지는 22㎞의 '시범 구간'이다.
이 구간중 본인은 용유담- 휴천면 송전리 송대에서 시작하여 이미
정비를 해 놓은 지리산길을 따라 - 마적사지- 세진대-세동(휴천면 송전리)
-문정-가리점 아래 길- 운서리- 구시락재- 동강의 길을 가다가
찍은 사진들 모음이다.
지리산길중 그 다음 코스로 추측되어지는 이 코스는 방곡- 상사폭포
- 쌍재- 밤머리재로 지리산길은 계속 이어지리라.
--------------------------- 자료조사및 사진 : 김용규
(지리산길 시범구간중 제2구간의 종점인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 전경)
( 마을 아래쪽 큰 건물이 2007년 전국 최우수 산촌생태마을로 선정된 송전생태마을
팬션의 모습이다)
(거대한 협곡을 이루고 있는 엄천골짜기, 저 아래의 강이 엄천강이다)
********** 용 유 담(龍 遊 潭)
所 在 地 :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함양의 지리산 북쪽 명승지로서 엄천강(嚴川江)의 상류에 있다.
용유담을 깃점으로 해서 상류를 임천이라 한다.
강 동편에는 최근에 새로 가설해 놓은 용유교가 우람하게 있으며,
하늘이 만든 방과 같은 수많은 바위와 괴석은
기이하고 반석은 요철 모양으로 절묘하여 장관이다.
용유담에는 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돌이 있고,
마적(馬蹟) 도사와 아홉 마리 용에 얽힌 전설이 있다.
도로변에는 구룡정이 있는데 아홉 마리의 용을 기리기 위하여 구룡정을 세웠다.
바위에 용유담, 용담입문(龍潭入門) 용담형승(龍潭形勝)등의 각자가 있다.
용유담의 조금 아래 지방 도로에서 강 건너편에는 김종직, 남명 조식 선생에 관한 각자가 새겨져 있어서
남명 조식 선생도 용유담을 다녀간 흔적이라 할 수도 있다.
1489년 김일손의 <속두류록>, 1586년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1643년 박장원의 <지리산기>,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 1
790년 이동항의 <방장유록>에서 용유담의 기기묘묘함과 아름다운
절경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를 해 두고 있다.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과 엄천골 참조
(용이 머물었다는 용유담, 현장 가까이 가서 보면 기이한 바위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용유교에서 본 용유담 아래의 모습)
(용유교에서 모전 마을 가기전 개울의 모습,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송전리 송대마을)
(송전리 송대마을)
(송전리 송대마을, 접시꽃이 국군과 경찰, 빨치산들의 설움의 혼이던가!
송대마을은 6.25때 치열한 격전의 장이기도 했다)
(송전리 송대마을, 송대마을은 지리산 바로 아래의 마을이기에 1962년까지 빨치산들의 출몰이 잦았고
3km 상단부의 선녀굴에서 마지막 빨치산 3인방 이은조, 정순덕, 이홍이 중 이은조가 사살당했고 정순덕,
이홍이는 다음해 산청에서 경찰에 의해 이홍이 사살, 정순덕은 대퇴부 총상을 입고 생포하게 된다)
*지리산 선녀굴과 마지막빨치산 정순덕 의 이야기 참조
(빨치산의 모형물)
(송전리 송대마을)
(지리산 상내봉의 모습, 부처바위라 하며 와불의 모습이 신비하다)
송대마을 바로 이웃을 흘러 내리는 개울 폭포)
(송대마을에서 지리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뒷쪽의 지리산 산쪽을 보면
부처 형상의 산봉우리가 뚜렷하다)
(지리산길과 상내봉)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가파른 신길을 오르면 평평하고
주변 조망이 끝내주는 지리산길이 펼쳐진다)
(멀리 보이는 산이 지리산 정상 부근이다)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상당히 높은 고도를
유지하는 지리산 길은 신비감을 쉽게 연출해 주는 길이다)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길 아래를 내려다 보먄 아슬한 분위기이다)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저 아래 용유담과 용유교가
내려다 보인다. 이 지리산길의 고도를 짐작케 한다)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마치 하늘로 오르는 길처럼 느껴진다)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불과 몇년전까지도 비 포장이었으나
마을 주민들을 위해 시멘트 포장이 부분부분 되어 있다.)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숲과 산꽃의 향기, 신선한
산바람과 함께 교감이 되는 지리산 길이다)
(송대마을과 마적사지 사이의 지리산 길)
(마적사가 있었던 곳)
********** 마적사지(馬跡寺址)
種 類 : 寺 址
時 代 : 新羅時代 代
所 在 地 :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송전
沿 革
신라 무열왕 기미년(659년)에 마적도사가 마적에 기거하면서 창건하였던 사찰로서 용유담과
더불어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곳이나 창건년대 및 없어진 시기등이 불분명하다.
다만 전해 내려오는바에 의하면 송전의 단군을 모신 천진전 부근으로 추정되며
그 인근에 사찰의 흔적이 있었던 유물이 보인다.
(송대- 마적사지- 세동 마을 간의 지리산 길)
(송대- 마적사지- 세동 마을 간의 지리산 길)
(마적도사의 전설이 깃든 세진대, 이 소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송대- 마적사지- 세동 마을 간의 지리산 길)
산과 계곡이 이 같이도 좋아서
천천한 걸음으로 나 다시 찾아왔네
은은하게 피어난 꽃 아름다운 빛
망망한 하늘에는 새 그림자 돌아오네
높은 벼랑은 영지 못에 떨어지고
맑은 낮 바람 소리 높이 우누나
놀란 용들아, 낮잠에서 깨어라
그대 불러 한 바탕 웃어 보리라.
뇌계 유호인 선생이 용유담에 대해서 읊은 시이다. 뇌계는 이 용유담을 비롯하여 군내 명승지를 찾아
두루 다니며 발길 닫는 곳마다 시정이 넘치는 좋은 글을 많이 남겼다.
엄천강의 상류에 있는 용유담은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송전리라는 마을에 속해 있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계곡들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이 곳에서 합류된다.
깨끗한 물이 용유담에 이르러서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대낮에 우뢰 소리 같은 폭포의 쏟아지는
소리를 비롯하여 장방형의 평평한 호수를 이루게 된다.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인 험준한 봉우리는 용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하겠다.
이 용유담은 신선이 노니는 별유천지로서 여름이 되면 각처의 피서객들이 휴식처를 찾아 모여들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서편의 벼랑으로는 절경을 이루는 풍치와 청아한 물 빛, 거울 같은 물에 비친
산 그림자, 푸른 못의 반석에 펼쳐진 모래는 가히 도원경의 경지에 이르는 듯 황홀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이 도취되게 하곤 한다.
강 동편으로 직강 가설교와 고기 잡는 어부의 작은 배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 하겠다. 여울에
놓은 통발 앞에서 파닥이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경치와 풍광, 뱃놀이에 도취되어 다시 돌아갈 줄 모르게 하는 경승지이다.
또한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방과 같이 패어진 수많은 바위들과 기암괴석들의 오목하고 볼록한 반석들은
절묘하여 일대 장관의 극을 이루고 있으며, 그 언덕위에는 구룡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이 용유담 가에는
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 마적도사가 종이에 쇠도장을 찍어서 나귀에게 부쳐 보내면 그 나귀가 어디로인지 가서(엄천사로
갔으리라고 짐작이 된다) 식료품과 생활 필수품을 등에 싣고 오게 된다.
그 나귀가 용유담 가에 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아 나귀가 용유담을 건너오곤 하였다.
하루는 마적도사가 나귀를 보내놓고 장기를 두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용유담에서 용 아홉 마리가 놀다가
싸움을 시작하였다. 용이 싸우는 소리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장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장기에 정신을 빼앗기고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와 자연에 도취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를 법도 하다.
나귀가 와서 울었는데도 마적도사는 용의 싸우는 소리,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에 나귀의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장기만 두고 있었다.
나귀는 강변에 짐을 싣고 서서 힘을 다해 울부짖었으나 반응이 없어 그대로 지쳐서 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귀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가 곧 나귀바위이다.
마적도사는 장기에 몰두하다 나귀가 죽는 줄도 몰랐다고 화를 내며 장기판을 부수어 버렸다. 그 장기판
부서진 조각이라는 돌들이 지금도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용유담 맑은 물에는 등에 무늬가 있는 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 무늬가 마치 스님의 가사와 같다 하여
'가사어'라고 불리었다 한다. 이는 지리산 계곡에서만 사는 물고기이다.
또 이 지방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리산 서북쪽에 달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 곁에
저연이라는 못이 있었다고 한다.
이 못에서 그 가사어가 태어나서 가을이 되면 물을 따라 내려와 용유담에 이르러 놀다가 봄이 되면
달궁으로 돌아가는 까닭에 용유담 아래에서는 이 고기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용유담은 근래에 와서는 강변에 울창하던 숲이 적어지고 옛날만큼 풍치가 아름답지 못하나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나 피서객들의 휴식처가 되어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또 청소년들의 캠핑장이 되기도 하여
시회나 천렵을 즐기는 사람들의 하루의 놀이터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고 있다
(자료 : 함양군청 홈페이지)
(마적도사의 전설이 깃든 소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소나무 아래는 아주 넓으면서 큰 바위가 있는데 주변 조망도 아주 좋다. 장정 50여명이 앉아 쉴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다. 마적도사가 장기를 두었던 전설이 있기도 하다)
(세진대에서 내려다 본 용유담의 모습)
(엄천골짜기의 협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진대의 넓은 바위)
(세진대 - 세동 사이의 지리산 길)
(세진대 - 세동 사이의 지리산 길에서 본 높은지(고정)마을의 모습)
(세진대 - 세동 사이의 지리산 길)
(세진대 - 세동 사이의 지리산 길)
(세진대 - 세동 사이의 지리산 길, 세동 마을에서 송대쪽으로 조금만 가다 보면
여름철 피서지로 끝내주는 곳이다)
(세진대 - 세동 사이의 지리산 길)
(지리산길 제2 시범구간 종점인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 마을의 모습)
(전형적인 산골 오지마을이었는데 요즘은 귀농을 한 분들의 집이 점점 늘어간다.)
(송전리에서 문정까지의 지리산길 예정구간)
(송전리에서 문정까지의 지리산길 예정구간)
(송전리에서 문정까지의 지리산길 예정구간)
(송전리에서 문정까지의 지리산길 예정구간, 볼록볼록한 것은 토종벌집의 모습이다)
(세력이 왕성한 토종벌들, 양봉과 다르게 1년에 한번만 꿀을 수확한다. 주변에 양봉이
들어오면 난리가 난다. 양봉이 토종벌들을 물어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송전리에서 문정까지의 지리산길 예정구간)
(송전리에서 문정까지의 지리산길 예정구간, 왼쪽의 강은 엄천강이며
여름철엔 래프팅으로 사람들이 엄청 붐비고 꺾지 낚시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왼쪽은 문정가는길, 직진하면 운서가는 길)
(지리산길 제 3구간으로 예상되는 문정에서 운서가는 길)
(문정에서 세동가는 길이며 길 위로 예쁜 별장이 보인다)
와룡대와 유적비(臥龍臺와 遺蹟碑)
所 在 地 :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지리산 북쪽 법화산(法華山) 남쪽에 큰 바위가 있어 모양이 용이 서린 것같고 바위틈에는
반송이 있으며, 바위 위는 평평하여 수백명이 앉을 수 있다.
고종 광무 10년(1906)에 무산(戊山) 강신영(姜愼永 1840∼?)이 와룡대라고 명명하고 친구 7인과 해마다
계모임을 가졌다. 원래 이 일대는 일두 정여창과 탁영 김일손이 지리산을 유람할 때 이곳을 지나며 살만한
곳(可居)이라고 하여 가거동(可居洞)으로 불리었다.
석대(石臺)위에는 1985년에 8인의 한 후손인 산청향교 전교 김희소(金熙韶)가 세운 팔공지와룡대수계장구유적비
(八公之臥龍臺修契杖龜遺蹟碑)가 서 있고, 그 아래 바위면에는 1906년 4월에 새긴 8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정의 와룡대, 바위위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기이하다)
(옛날엔 저곳이 소풍장소로 인기가 있었던 곳이다.)
(와룡대 위의 엄천강 모습, 물살이 엄청 센곳이다.)
(와룡대와 빈 다리, 문정마을 바로 앞에 있다)
(문정 마을)
(문정 마을 아래의 엄천강)
(문정 마을 전경, 저 마을 위쪽 오른편엔 이조년선생과 황금을 강에
던져 버린 일화로 유명한 이억년선생의 묘소가 있다)
*투금탄 전설의 주인공 이억년 선생 묘소 정비관련 사진 참조
(문정과 운서리 사이의 새로 건립중이 콘도의 모습, 찜질방, 콘도 등
다양한 레져 타운이 될 예정인 곳이다)
(지리산길 예정지에서 본 엄천강, 저 아래 벼량 아래는 곰소인데 내가
알기로 저 곰소에서 익사사고가 아주 많이 발생한 곳이다)
(곰소에서 출발하는 래프팅 객들의 모습)
(엄천강에서는 물이 알맞을 때 그 스릴은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물이 적을 때면 조금 문제가 있지만~)
(지리산 예정 구간에서 본 건너편의 모습, 강의 오른쪽은 세종대왕의 12째 왕자
한남군이 귀양을 왔던 새우섬이다. 현재 마을 이름도 한남 마을이다)
(문정에서 운서 사이의 오붓하고 솔잎 향기가 가득한 산길)
(문정에서 운서 사이의 오붓하고 솔잎 향기가 가득한 산길)
(문정에서 운서 사이의 오붓하고 솔잎 향기가 가득한 산길, 주변엔 귀하다는
적송 집단 서식지이다 )
(문정에서 운서 사이의 오붓하고 솔잎 향기가 가득한 산길, 위로 가면 가리점이다)
(문정에서 운서 사이의 오붓하고 솔잎 향기가 가득한 산길, 혼자 걸어가면
금세 귀신이 나올것 같은 한적한 길이다.)
(문정에서 운서 사이의 오붓하고 솔잎 향기가 가득한 산길, 요소요소마다
저런 개울물이 실낙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문정과 운서리 사이의 시골 길)
(문정과 운서리 사이의 시골 길)
(문정과 운서리 사이의 시골 길에서 본 엄천강 보, 운서와 원기 마을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여름철에 가족 단위의 물놀이 장소로 아주 멋진 곳이며,
수심도 알맞아 안전한 장소여서 피서객들로 넘실거리는 곳이다.)
(운서리의모습)
(운서리의 산짓골님네 집의 예쁜 꽃)
(일류학부 출신으로서, 지리산과는 아무 연고가 없지만 지리산을 동경한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리고 귀농을 하신 산짓골님네 집의 모습, 이날도 민박 손님들로 가득했다.)
(운서 앞 들)
(운서 마을의 맨 위에 있는 산짓골님네 집의 석류 꽃)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전형적인 산촌의 길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원시적인 냄새로 가득해진다)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서정적인 산촌의 분위기가 가득한 길이다.)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야생 도라지)
(운서리에서 동강 사이의 구시락재로 가는 길, 500년전 김종직 선생과 성종 임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조선시대의 3대 문장가 유호인 선생이 걸었던 유 두류록 길이다)
( 500년전 김종직 선생이 쓴 유두류록에 언급된 지리산 길)
(구시락재는 유 두류록 길이기도 하다)
(구시락 재에서 본 운서가는 길)
( 운서에서 구시락재 오르는 길, 빨치산의 길이기도 했으며 엄천골 사람들이 숯을 지고 날랐던 길이었고,
한쟁이골로 고사리 등 산채를 채취하러 갔던 참 사연 많은 산길이다)
(운서리에서 구시락재 가는 길의 구시락재 정상을 오르기 전)
(구시락재 정상에서 본 엄천골의 풍경, 함양군 휴천면 동호, 원기, 동강마을과
산청근 금서면 자혜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 산촌 마을의 모습이 아름답게 절정을 이루는 곳이 구시락재이다)
(멀리 오른편에 보이는 산이 산청군 왕산이다)
(구시락재에서 동강 가는길, 오른편은 꽃봉산이다.)
(구시락재에서 동강 가는길, 마을 뒷쪽에 오목한 나무가 있는 곳이 500년전 김종직
선생이 쓴 유두류록에 기록되어 있는 화암이며, 동강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며, 오
랫동안 당산제를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과 화암
(구시락재에서 본 강 건너의 남호리 전경)
( 동강 마을에 있는 당산나무)
500년전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지리산 기행문인 유두류록에 등장하는 쉼터 화암인
그 장소에 지리산길의 주요 쉼터가 될 예정이다.
사단법인 숲길에서 정비를 한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멋진 평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앉을 자리도 느티나무 아래에 새로 담을 쌓아 올려서 그곳을 지점으로 하여
아주 넓게 평상을 만들었으며 그 모양도 주변과 잘 어우러지게 제작되어 인기있는 쉼터로
각광을 받으리라 여겨진다.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 옛 당산터인 이곳은 1970년대 말까지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냈던
곳이며, 소를 먹이러 가던 아이들의 숨터였고 나뭇꾼들의 쉼터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하지만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탐구팀(jiri99, 대표 류정자)에 의해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산행 코스가 거의 완벽하게 밝혀진 이후부터 지리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사단법인 숲길에서 개척중인 지리산길의
주요 쉼터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으며 2009년 봄을 기다리고 있다. 사단법인 숲길에서
약 1주일 동안 동강 마을 당산터를 정비하여 아주 멋지게 평상까지 만들어 마을 사람들은 물론
지리산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고 아름다운 쉼터로서의 그 역할이 기대된어진다.
이 당산터중 유독 주목을 받는 팽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곧 경남도에서의 보호수로
지정될 예정이기도 하다.
(강 건너의 마을은 휴천면 윈기 마을이다)
(멀리 보이는 곳이 한남 마을이다.)
(동강 마을 뒷 들에서 찰칵!)
*광산일가님 안녕하십니까? 제 가 태어나고 자랐던 지리산 아래 고향으로 지리산길이 날 것 같군요.
그 부근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아직 미개통 지역이지만 곧 정비를 하여 개통이 될것 같군요.
일가님께 미리 지리산길 일부 구간을 소개해 드립니다.
원본자료 : http://kr.blog.yahoo.com/yk8968 (지리산 엄천골)
첫댓글 감상을 잘 하였습니다 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