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마지막의 보충 설명을 하겠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장유화상이 불교를
가야국에 전파했다고 하지만
장유화상이 서기 42년에 가야국을
세운 김수로왕의 허황후 왕비의
오빠였다면 그 당시는 아직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장유화상이 불교를 가야국에
전파하고 장유사와 은하사를 창건했다는
말은 후대에 지어진 설화입니다.
자료등을 참고해서 말씀을 드리면
장유화상의 본명은 허보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15년 허식이 지은 '가락국사
장유화상 기록비'에는 장유화상이
허황후에 오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 부귀를 뜬 구름같이 보고
티끌세상을 초연하여 불모산(영상에서
제가 가르킨 산)으로 들어가 장유(은거)
하여 나오지 않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장유화상이라 칭했다.(은하사 취운루
중수기)
'만년에 가락국의 왕자 7명과 더불어
방장산(지리산)에 들어가 성불(사라짐,
하늘로 올라감)했으니 지금 하동의
칠불사가 그 장소다. (칠불암의 설화)'
이와 관련하여 이분야의 전문가이신
이용봉 목사님은 사도도마가 최근에
제가 선교갔었던 하동의 섬진강에서
배를 타고 인도로 떠날때 7왕자도 인도로 데려갔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칠불암 유사에 보면
보옥선사(장유화상)이 김수로왕과
허황후를 중매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었지요.
사도 도마가 히브리인으로 추정하는
김수로왕과 같은 히브리인으로
추정하는 허황후를 중매를 했었다고요.
아무튼 사도 도마가 7왕자를 데리고
가야국에서 배를 타고 인도로 떠났다는게
사실이라면 이것은 마치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연상케 합니다.
창세기 7장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노아 1
아내, 셈, 함, 야벳, 세 며느리 7
총 8명
배(방주)로 구원을 받음.
사도 도마 1
7왕자
총 8명
배를 타고 사라짐.
대환난전 휴거
(그런데 일각에서는 최근에 전도갔었던
군위군에서 일연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
'가락국'에서는 허황후에 오빠
장유화상이 나오지가 않고
'이야기 가야사'(청아출판사)를
쓴 역사학자 이희근씨는 장유화상에
대한 자료는 기껏해야 조선 후기나
구한말의 기록이라며 그의 이름은
1708년 명월사 승려 증원이 찬술한
'명월사 사적비'에 처음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야의 전문가이신
이용봉 목사님은 이로보건대
장유화상은 1915년 허식이
지어낸 이야기이거나 전해온
이야기를 불교화 시킨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불교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장유화상이 실제 인물이라면 그의
행한 일들을 보면 그는 도마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