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중 패권전쟁은 불확실성의 안개에 빠지게 됐다. 당장 미중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콩의 밍바오는 사설을 통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양안관계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면서 "이번 위기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우려했다.
TSMC. 출처=갈무리
전투는 시작됐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을 방문하며 TSMC 류더인 회장 등을 만나 양국의 반도체 협력도 논의했다고 로이터 등이 3일 보도했다. 그의 이번 방문이 국제정치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포석이 깔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미국은 팬데믹을 거치며 글로벌반도체 공급망 교란의 악몽에 시달린 바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물론 대만 TSMC 등 외국 반도체 기업의 공장을 자국에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20년 TSMC가 미 애리조나에 메가펩을 구축한 배경이다. 나아가 미 의회는 반도체 생산·연구개발(R&D)에 총 520억달러를 투입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키며 측면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가 대중국 반도체 포위까지 시도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 참여를 독려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칩4 동맹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일본, 대만에 이어 한국을 포함한 칩4 동맹을 중심으로 중국 반도체 굴기를 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런 가운데 펠로시 의장이 TSMC 류 회장을 만나 협력을 다짐하고, 현장에서 차이잉원총통이 "글로벌 공급망 시대에서 대만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 언급한 대목은 심상치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다. 글로벌 1위 전기차 배터리 회사인 CATL의 북미 투자 계획이 잠정 보류됐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의 상반기 기준 공급량은 70.9기가와트시(GWh)에 이르며 점유율은 34.8%다. 2위 LG에너지솔루션의 공급량은 29.2GWh며 점유율은 14.4%다.
이런 가운데 최근 CATL은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드라이브를 걸며 북미 공장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블룸버그에 따르면 CATL은북미 공장 설립 발표를 앞두고 있었으나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도착한 3일 모든 계획이 정지됐다. 관련 계획이 폐기될 가능성은 낮지만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중국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대만 타이페이 시가지. 출처=갈무리
뜨거운 섬, 대만
미중 패권전쟁이 벌어지며 대만의 전략적 위상은 크게 높아진 상태다.
특히 미국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의 활동반경을 아시아 태평양까지 넓히고 있다. 동시에 완전한 대중국 포위전선을 구축하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지척에 있는 대만은 그 자체로 전략적 요충지 이상이라는 평가다.
대만의 반도체 인프라도 매력적이다. 글로벌 시장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존재하는 대만은 이 역시 미국에 있어 반도체 전략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는 평가다.
대만의 경제 상황도 좋아지고 있다. 대만은 2001년 IT 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 후 성장률 둔화로 늙어 가는 호랑이로 전락했지만 차이잉원 총통을 중심으로 강소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 정책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해외 기업 유치도 끌어내는 중이다.
2019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약 390억원를 투입해 설립한 대만 AI연구개발센터의 확장계획을 발표했으며 구글은 2020년 9월 대만중부 윈린현에 약 8,000억원를 투입하여 대만 내 세 번째 데이터센터 설치를 확정한 바 있다. 나아가 인재 육성에 속도를 내며 탄탄한 기업지원에 나서는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3만4,990달러를 기록하는 반면 대만의 GDP는 3만6,000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전년 대비 190달러 증가했으나 대만은 무려 2,200달러나 급상승한 수치다. 한강의 기적에 이어 ICT 대혁명으로 2003년 한국이 대만의 GDP를 추월한 지 19년 만에 서로 자리를 바꿔 재차 골든 크로스가 벌어진 순간이다.
이러한 매력은 중국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중 패권전쟁이 벌어지며 대만의 지정학적 위치는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인데다 대만의 강력한 반도체 인프라와 눈부신 경제 상황은 중국에게도 탐스러운 먹이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대만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대만군을 방문한 차이잉원 총통. 출처=연합뉴스
튀르키예의 경우 포스포루스 해협 요충지를 움켜쥔 상태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며 나토의 일원으로활동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며 실익을 챙기고 있다.
사우디라아비아도 페트로 달러 체제를 지키면서도 미국과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몸값을 올리고 있으며 인도도 서방의 러시아 제재 균열을 파고들어 역시 자국의 이익을 알뜰하게 챙기는 중이다.
팽팽한 힘의 대결에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만은 일찍부터 미국의 손을 잡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의 위협에는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으로 안보위협에 있어 한 시름 놓는 분위기지만, 한편에서는 미중 패권전쟁의 충돌속에서 대만의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법 나오고 있다.
실제로 펠로시 의장이 방문할 당시 공항에는 많은 환영인파가 몰렸으나 인근 하얏트 호텔 일대에서는 중국의 군사적 도발을 걱정하는 시위대들이 모여 "양키고홈"을 외치는 일도 벌어졌다.
21세기 신냉전, 치열한 미중 패권전쟁의 무대로 부상한 매력적인 섬 대만의 복잡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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