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의 의미와 유래
10월 3일 개천절은 한국 최초로 민족국가가 건국된 것을 기리기 위한 국가 기념일이다.
개천절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기원전 2457년 10월 3일,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천신인 환인의 뜻을 받아 처음 하늘 문을 열고 백두산 신단주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대업을 시작한 날이라는 것이고, 다른 설은 이보다 124년 후인 고조선의 건국일(기원전 2333년 음력 12월 3일)을 기리기 위한 날이라는 것이다. 전자가 학계에서는 지배적 의견이다.
현재의 개천절과 같은 행사는 역사상 이미 오래전부터 거족적인 제천의식의 형태로 그 맥을 이어 왔다. 멀리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에서부터 고구려의 동맹,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1909년 나철이 대종교를 창시하면서 우리 역사상 개천절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중에도 임시정부는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지정하고 중국으로 망명한 대종교와 합동으로 매년 경축 행사를 치렀다.
정부 수립 후 10월 3일은 공식적인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비록 양력을 택함으로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음력 10월 3일은 아니지만 그 날의 뜻은 그대로 간직하고자 했다. 우리 역사를 보면 10월은 상달(上月)로, 그리고 숫자 3은 길수로 귀하게 여겨지면서 음력 10월 3일은 길일로 생각되어져 왔다.
개천절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재야사서인 ‘단군세기'에 나오는데 ‘개천 1565년 상월 3일에 신인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의 터에 자리 잡았다'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은 단순히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 주류 학계의 입장이라 한동안 개천절은 종교 행사의 일종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현재 단군을 기리고 있는 유적지는 태백산의 천제단과 마니산의 참성단 등 여러 곳이 보존되고 있다.
■ 천제단
천제단(天祭壇)은 신라시대부터 왕이 직접 제사를 드리던 곳으로 강원도 태백시 태백산 1,561m 정상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중요 민속자료 228호로 지정되어있다.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즉위 원년에 사자를 보내 이곳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군이 기원제를 지내기도 하는 등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제를 지낸 성스러운 곳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참성단
참성단(塹星壇)은 가장 오래된 단군 유적으로 강화도 마니산 해발 467m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돌로 쌓은 3m 높이의 제단으로서 현재 사적 1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성단이란 명칭은 성을 파서 제단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으며. ‘환단고기'에는 단기 51년인 기원전 2283년 단군이 참성단 축성을 명하고 3년 뒤에 이곳에서 직접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참성단의 아래가 둥글고 위가 네모난 천원지방(天圓之方)의 형상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하나 되는 선조들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단군릉
평상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이 단군릉으로 주장하고 있는 곳이다. 북한은 1993년 ‘단군릉 발굴보고'를 통해 단군릉 발굴 사실과 단군의 실존인물임을 발표했다. 북한에서는 발굴된 유골의 연대 측정 결과 5,011년 전의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사실관계를 따져 보았을 때 단군릉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서, 무덤 양식과 유골로 볼 때 고구려 귀족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단군릉에는 부부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다.
■ 정족산성
강화 마니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군의 세 아들 부소, 부우, 부여가 성을 쌓았다는 전설로 삼랑성(三郞城)이라고도 불린다. 사적 13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종3년 1866년의 병인양요 때 160여명의 프랑스군을 격퇴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 백악전
국내 최초의 단군성전으로 서울 사직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1973년 서울시 교육청에서 청소년 역사 체험장으로 지정한 바 있으며, 10월 3일 제천절과 단군의 기일인 3월 15일 어천절에 제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