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을 결의했다. 영화 〈암살자(들)〉이 그날을 스크린 위에 되살렸다. 당시 현장 사진을 공개한다.
영화 〈암살자(들)〉에 등장하는 〈동성일보〉 기자들.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조명하는 동시에, 당시 억압받던 언론계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비중 있게 다룬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동성일보〉 김재환 사회부장(박해일 분)이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낭독한다. 한영일 기자(이민호 분) 등 〈동성일보〉 기자들이 주도한 자유언론실천 운동 역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에 맞서며 ‘자유언론실천’을 결의했다. 〈동아일보〉에서 쏘아 올린 이 선언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다른 언론사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기자들의 투쟁이 확산되자, 박정희 정권은 광고주를 압박해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를 해약하게 했다. 〈동아일보〉 광고면에는 백지 광고가 등장했다. 이에 시민들이 기자들을 응원하는 지지 광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사는 1975년 3월17일 기자 등 113명을 강제 해직했다.
당시 강제 해직된 언론인들은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동아투위·자유언론 수호를 외치다 해직된 언론인 모임)’를 결성하고 언론탄압에 항거했다.
영화 속 자유언론실천 선언문 낭독 순간을 재연할 수 있었던 것은 〈동아일보〉 소속 사진 기자의 사진 덕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사진부 김순경 기자는 역사적인 선언문 낭독 현장을 카메라 렌즈에 고스란히 담았다.
〈동아일보〉 사진부 김순경 기자는 역사적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순경 선생은 당시 사진을 〈시사IN〉에 위탁했다. 이숙이 〈시사IN〉 대표이사, 김순경 선생, 김동현 동아투위 부위원장(왼쪽부터).
그리고 2022년 김순경 선생과 동아투위는 이 소중한 현장 사진들을 〈시사IN〉에 위탁했다. 김순경 선생은 “동아투위가 추구했던 자유언론의 가치를 오늘날 가장 잘 지키고 있는 언론사가 바로 〈시사IN〉이라고 판단해 위탁했다”라고 말했다.
영화 〈암살자(들)〉을 통해 다시 조명받는 1974년 그날, 펜으로 독재에 맞섰던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 현장 사진과 선언문 전문을 공개한다.
1974년 10월24일 시작된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 운동 현장 사진.
1974년 10월24일 시작된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 운동 현장 사진.
1975년 1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철야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 운동을 취재하고 있다.
〈동아일보〉 김상만 사장(맨 오른쪽)이 기자들의 농성 현장을 찾았다. 〈동아일보〉사는 1975년 3월17일 기자 등 113명을 강제 해직했다.
자유언론실천선언문
우리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기능인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교회와 대학 등 언론계 밖에서 언론의 자유회복이 주장되고 언론인의 각성이 촉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뼈아픈 부끄러움을 느낀다.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받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사회 존립의 기본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며 우리의 뜨거운 심장을 모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1.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1.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체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사 기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