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사는 법
*
무려 3년. 철없을 적 교복에 떡볶이 소스를 묻혀가며 히죽거리며 웃고 다니던 때 그때부터 21살 봄, 내가 여자가 되었을 때 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남의 이야기라고 착각하며 살아갔다.
달콤하고, 짜릿한, 향긋하고, 아찔한, 숨넘어갈 듯 그렇게 지켜온 3년은.
너무나도 쉽게, 허무하게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희안아, 나 여자 생겼어.”
자주 가던 cafe가 아닌 생소한 cafe에서 보자고 연락이 오더니 하는 말이 고작,
‘여자가 생겼다.’는 믿어지지도 않을 말을 내뱉었다.
3년 동안 함께 한 추억, 우선 그것들이 머리에 짧고 강하게 스쳤다.
‘어쩜 이럴 수 있어.’
울컥,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참았다. 저 말은 틀림없이 거짓일 테니까.
아니, 설령 여자가 생겼다 해도 다시 돌아올 너니까.
“희안아, 미안해. 고민 많이 했어. 하지만 결국 우리가 헤어지는 게 맞나 봐.”
그의 말은 날 절망으로 몰아붙였다. 묻고 싶었다.
누구냐고, 언제부터였고, 어디가 좋고, 얼마나 잘났고, 대체 왜 날 버릴 만큼 그 여자를 사랑해버렸냐고.
그렇지만, 머리와 달리 가슴이 따라주지 않던 사정으로 나는 한 마디 질문 없이 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본 채 멍 하게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멍청한 표정으로 미안하다 인사하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물이라도 뿌려버릴걸, 성질이라도 내볼걸, 화라도 내볼걸, 무릎 꿇고 싹싹 빌게 만들어 볼걸, 그는 뒤돌아서 갔는데 나는 아직 그 자리다.
아니, 내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릴걸, 그의 옷깃이라도 붙잡고 가지 못하게 막아버릴 걸. 짧은 시간이 이렇게 후회를 키워버렸다.
*
짧은 시간 안으로 잊을 사랑이라면 잊을 수 있었다.
첫사랑이자 아직까지는 나의 마지막 사랑이니까, 나는 방법이 없다.
그에게 눈물보이면 질리는 여자라고 할까봐 나는 아직까지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혹여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에 울음이 터질까봐서.
주고받던 편지, 사진, 저장된 전화번호, 문자 메시지, 사랑으로 채워버린 mini homepage까지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정리할지 까마득하다.
문득, 그의 새로운 여자가 궁금했다.
*
그의 mini homepage는 이미 나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난 미련한 마음에, 차마 삭제 못하고 혼자서 보도록 꽁꽁 숨겨놨는데 아예 그에게는 나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모르는 사람인 마냥.
새로운 그녀의 얼굴, 예뻤다.
새하얀 피부, 긴 생머리, 특히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질투가 났다. 그리고 더 불안해졌다.
이정도의 여자면 나에게 무조건 돌아온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
그가 떠나고 벗이 되어준 것은 술.
몇 일째 술로 나를 달래고, 마음을 달래고, 잠이 오도록 나를 망가뜨렸다.
결국 나중에는 위에 탈이나, 밥도 쉽게 먹지 못하는 바보 같은 인간이 되어버렸지만
술을 마시는 동안에 우리의 추억과 사랑, 또 그리움이 보태져 몽롱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울 때,
메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또 흐르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당부로 인해 내가 사는 법을 찾기로 했다.
*
더 이상 내가 아프지 않도록, 그의 흔적을 뒤쫓지 않을 것이다.
그와 연관된 소식들 눈을 감고 귀를 막아서라도 보지도 듣지도 않을 심보다.
그의 새로운 연인과 행복을 빌어주진 못하겠지만, 나 스스로 단념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잊혀 질 사랑이 세상의 전부라면, 분명 세상은 사랑에 중요한 의미를 두지 않을 테니까 그 어려운 ‘잊는다.’는 개념을 나는 천천히 실행해 볼 생각이다.
눈을 뜨면,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고 아침 뉴스를 보고 글을 쓰고 일기도 쓰며 저녁 뉴스를 보고 또 눈을 감고.
심심하면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우울하면 가끔씩 마티니 한 잔 마셔버리고, 기쁠 땐.
그래 기쁠 땐…… 그냥 집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미친 듯이 춤을 춰야겠다.
그래 내가 사는 법. 잊기 위해 조금은 노력하는 자세,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을 믿는 자세. 결국,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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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소닷단편소설
[단편]
[인드리밍] 그 여자가 사는 법
인드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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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10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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