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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실 우리말 스크랩 [낭송시] [김용택] 그 여자네 집 - 낭송 이계진
흐르는 물 추천 2 조회 1,616 12.09.07 09:2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 낭송 이계진

 

  

 

 

     그 여자네 집

 

     김용택  (낭송 : 이계진)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에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는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려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치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 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그 여자네 집』.창작과비평사. 1998)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4편 수록 중 1편. 2007)

     (사진 : 다음 낭송시에서 가져 옴)

 

    -----------------------------------------------------------------

     아내, 그리고 `그 여자네 집`

 

     언젠가 아내가 학교에 왔다. 아내는 내가 맡은 2층 2학년 교실에 오더니, 창문 밖으로 펼쳐진 앞마

     을, 앞 강, 그리고 앞산을 보고는 감탄을 했다. 참 좋은 곳이다. 당신은 참 좋겠다. 사계절이 나날이

     변하는 아름다운 병풍 안에서 사니 얼마나 좋을까. 당신은 복 받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내만 그러는 게 아니다. 날이면 날다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내 아내와 똑같은 말을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교실 창문들 중 제일 오른쪽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오른쪽을 보면, 작은 시냇물 하나 건너 작은

     들이 있다. 그 작은 들이 시작되는 곳에 여자들 젖무덤 같은 산이 하나 평지에 돌출되어 있는데, 그

     산은 들 끝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마을을 절반쯤 가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산이 가릴 듯 말 듯한 까만

     기와집 한 채가 있다. 그 집이 내 시에 등장하는 ‘그 여자네 집’이다.

     ‘그 여자네 집’이란 시는, 내 나이 스무 살 무렵 이웃 동네에 사는 처녀와 나의 사랑 이야기를 쓴 시

     다. 시 속에는 그 여자네 집과 그 부근의 풍경이 그려져 있고, 연애시절 그 여자와 나의 일화들이 담

     겨 있다.

     아내가 학교 교실에 처음 와서 교실 밖 풍경에 반해 좋아할 때, 나는 ‘그 여자네 집’을 보며 “여보,

     저기 ‘그 여자네 집’이 보이네.” 하며 ‘그 여자 네 집’을 가리켰다.

     ‘그 여자’가 아닌 이 딴 여자는 한참 “어디? 어디?” 하다가는 “참내, 이놈의 유리창에다가 선팅을 해

     부러야 것구만!” 하며 나를 보고 웃었다. 이처럼 나는 우리 교실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꼭 ‘그 여자네

     집’을 보여주곤 한다.

     ‘그 여자네 집’과 내 아내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다. 학교에서만 ‘그 여자네 집’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을 가려면 ‘그 여자네 집’ 앞을 지나지 않고는 다른 길이 없다. 어느 봄날, 나는 아내

     와 함께 ‘그 여자네 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 여자네 집’에는 살구꽃이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보며 “하따, 여보 ‘그 여자네 집’

    에 살구꽃이 겁나게 피어부럿그마잉~ 진짜 좋다!”하며 아내를 바라보았더니, 아내는 한참을 생각하

    다가 “저 놈의 살구나무를 베어부러야지.”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그 여자네 집’에 있는 은

    행나무, 감나무로 아내를 놀렸다. 그럴 때마다 은행나무, 감나무는 아내 입으로 베어져야 했다.

    어느 가을날 나는 아내 없이 아들과 함께 시골에서 전주로 가고 있었다. 우리 마을을 막 벗어났는데,

    전화가 왔다. 민세가 전화를 받더니, “엄마, 여기 ‘그 여자네’ 감나무 있는 데야.” 하며 곧 전화를 끊

    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빠, 엄마가 나 전주 오면 죽인데.”였다. “왜?” 하자, “엄마가 우리 어디

    오냐고 해서 내가 ‘그 여자네’ 감나무 있는 데라고 했거든.” 우린 크게 웃었다.

    어느 날은 ‘그 여자네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여자네’ 어머니가 굽은 허리로 우리 앞을 지나가셨다. 내

    가 아내더러 “여보 ‘그 여자네’ 어머님이 지나가시네. 내려서 인사라도 허고 가야지.” 그랬더니 아내는

    눈을 흘기고 내 어깨를 꼬집었다. ‘그 여자’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 여자’도 어떻게 해코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를 몇 번, 어느 날은 또 그 어머니가 지나가시길래 아내를 놀렸더니 “참내, 그런데 저

    어머니는 ‘그 여자’를 왜 낳았데.”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아무래도 그 말이 옹색한지 혼자 머리를 젖

    히고 크게 웃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 둘은 늘 ‘그 여자네 집’ 앞을 지나다녀야 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나는 또 ‘그

    여자네 집’을 보며 아내를 놀릴 것이다. ‘그 여자네 집’에 눈이 오고, 살구꽃이 피고, 은행나무의 은행

    잎이 노랗게 물드는 한 말이다.

    아내의 질투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네 집’ 살구나무도, 감나무도, 은행나무도 모두 지금까지 무사하

    다. 어느 날은 이 놈의 길을 저 뒷산 너머로 내야 한다고까지 했지만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글을 쓰다가 유리창 너머로 ‘그 여자네 집’을 바라본다. 학교 운동장 가 나뭇잎들이 무성해서 ‘그 여

    자네 집’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안심될까.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 님은 섬진강 강변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시

   인입니다. 그의 시는 한 편의 정갈한 풍경화를 보듯 따뜻하고 편안하며 애틋한 정이 흐르기로 유명합

   다.  시집으로 「섬진강」 「그 여자네 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그리

   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사랑시를 쓰게 한 시인의 추억이 알알이

   밴 산문집 「정님이」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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