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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ud Mary
CCR
프라우드 메리
엄상익변호사
작열하는 태양의 하얀빛이 쏟아지는 칠월 초순이다. 바닷가가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색소폰의 버스킹 연주가 바다 위의 공기를 원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 쉼터에서 혼자 앉아있는 육십대쯤의 남자를 만났다. 그의 옆에 국악기인 대금이 놓여 있었다.
“연습을 하시는 데 방해가 되는 게 아닙니까?”
내가 양해를 구했다.
“아, 아닙니다”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습하는 노년의 인생들을 자주 만난다. 황혼이 되면 커다란 스피커와 마이크를 카트에 싣고 사람이 뜸한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노인을 봤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데도 그는 항상 혼자 즐거운 것 같다. 또 다른 노인도 봤다. 승용차의 뒷 트렁크에 기타와 색소폰 그리고 전자 음향기기를 싣고 인적없는 바닷가로 와서 혼자 연주를 하는 노인도 봤다. 내가 호기심에 물어 보았다.
“대금을 부신지 얼마나 됐습니까?”
“삼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취미로 시작했는데 선생도 없고 학원도 없어서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게 까다로운 악기 같아요. 날씨가 나쁘면 소리가 나오지 않기도 하구요. 저는 여기 동해로 와서 자그마한 사무실을 빌려 혼자 지압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작은 주공아파트에서 혼자 밥을 해먹으며 살고 있구요. 평생 살던 도시를 벗어나 노년에 해변 산책을 하고 음악을 하는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동해 바닷가로 오니까 의외로 자유롭게 사는 영혼들을 많이 만난다. 천천히 느리게 살면서 한가와 여유를 즐긴다고 할까. 그들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 같지도 않다. 그래도 자연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마음들이 부자다.
지난 두 달 동안 가끔 동해바다 근처에 있는 드럼학원에 나갔었다. 서울처럼 체계적이고 매끈하지 않다. 적당히 먼지가 쌓이고 촌스럽다고 할까 투박하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다. 몇 번을 가면서 친해지니까 육십대 중반의 드럼 선생이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주면서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평생을 통신 기사로 살아왔어요. 그러면서 노래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했죠. 틈틈이 피아노도 배우고 첼로도 배우고 드럼도 배웠어요. 배우는 건 뭐든지 좋아했어요. 주민센터가서 재봉틀 사용해서 옷을 만드는 것도 배웠죠.
나이가 들어서 통신기사 일을 그만두고는 동해 바닷가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어요. 씨디를 만들어 팔았는데 의외로 재미가 짭짤했어요. 하루에 씨디 이백장을 판 날도 있다니까요. 취미로 배운 드럼 덕에 지금은 이 바닷가 도시에서 학원을 하면서 살죠. 다가구 주택에서 혼자 밥을 해먹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독특한 인생 같았다. 쉬는 날이면 그는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노년에도 청춘 같은 인생이라고 할까.
드럼학원에서 만난 육십대 말쯤의 한 여성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노년에 즐겁고 싶어서 드럼을 배워요. 지금 나이에 내가 무대에 서고 싶겠어요? 아니면 프로가 되고 싶겠어요? 그냥 내가 좋아서 두들기면서 배우는 거죠. 어려운 거 배우려는 욕심에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정도 까지만 배우고 즐기면 되지 않겠어요? 참 드럼치는 게 치매 예방에도 좋을 것 같아요. 길다란 나무젓가락으로 콩을 짚는 연습을 하느니 드럼 스틱을 만지는 게 훨씬 낫죠.”
그 여성이 툭 내뱉는 말 속에 지혜가 들어있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자기 주제를 알고 그에 맞는 즐거움을 찾으면서 사는 것이다.
한 달 전 어려서부터의 동네 친구로부터 전자드럼을 선물받았다. 간 이식수술을 받고 나니까 내게 뭔가를 선물하고 싶더라는 것이다. 감사히 그 선물을 받았다.
나는 요즈음 매일 드럼 연습을 한다. 열다섯살 무렵 종암동 시장 구석의 낡은 건물 옥상에 있는 무허가 드럼학원에 갔을 때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캬바레의 밤무대에서 연주하는 삼류 악사가 선생이었다. 그는 드럼을 가르치면서 연탄불이 피어 있는 무쇠 난로 위에 양은 냄비를 올려놓고 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누가 찬밥 한 덩어리나 김치도 가져다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실력이 늘어나자 그는 내게 막걸리 홀에서 드럼을 치도록 소개해 주겠다고 했었다. 오십년 훨씬 전의 일이다. 요즈음 나는 밤이면 혼자서 뚝딱거리며 ‘프라우드 메리’를 치고 있다. 옆의 거울 속에는 머리가 하얗고 배가 나온 노인이 앉아있다. 소년 시절의 실력을 반만 따라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https://youtu.be/hWmSgoHeQng?si=I-1dHopEOQ64pz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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