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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 이 시집
떨림과 머뭇거림, 그리고 쉼 사이의 경계
- 김보일 두 번째 시집 『겨자씨의 문장』(2025) 소론
이규배
1. 김보일 시의 떨림과 유협의 ‘은수’
1960년생 김보일이 2017년 겨울, 『문학과행동』 통권 9호에 「용승湧昇」, 「퉁사리 영감」 등 6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나왔다. 심사위원장이었던 하동 천승세 선생님은, “모름지기 시가 지니어야 할 창의가 익숙한 고전과 평범한 일상어 속에 빛이 나는 한편 인생행로의 간난신고를 성찰하며 멋을 부리려 하지 않는 미덕, 부조리를 겨누는 예지의 서슬을 세우고서도 그것을 ‘시적으로’ 숨길 줄 아는 겸양을 두루 갖추었다.”라고 평했다. 한마디로 노숙하면서 독창적이라는 말씀이다. 노숙하다는 것은, 시의 골력[, 뼛심]이 센 데다가 말에 군살이 붙지 않고 그 격格과 체體가 입체적 균형을 갖췄다는 뜻이다. 그가 2018년에 첫 시집 『살구나무 빵집』(문학과행동사)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의 문학적 도반道伴들은 그의 시가 앞선 세대의 형식적 전통, 그 체와 격을 능숙하게 이어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뼛심 센 시적 성취를 이루어 냈다고 입을 모았다. 가령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절정 장면을 모티브로 “목동이 별에 관한 지식을 늘어놓자, 스테파네트는 그래, 어쩜, 하면서 맞장구를 쳐 준다. 목동은 신이 나서 별에 관한 모든 지식을 꺼내 놓을 태세다.”라고 한 연을 제시한 뒤, 그다음부터는 한 줄을 한 연씩 독립시켜 가며 “소녀에게는// 소년의 몸에서// 우주를 꺼낼 만한 힘이// 있다”( 「별」, 17쪽)로 끝맺는 이 시를 두고는 다투어 찬사를 보내곤 한 기억이 있다. 시단에 늦게 나왔지만, 그의 도반들에게 그는 시인으로서 이름이 이미 알려져 있던 것.
첫 시집의 표제 시 「살구나무 빵집」 전문을 읽어보자.
저녁 산책길 철길공원 한쪽에
간판 하나가 등을 달고 서 있다
살구나무 베이커리
살굿빛 식빵을 떠올리며
빵냄새가 새어나오는 안쪽을 들여다보니
앞치마를 두른 젊은 부부가 차를 마시고 있다
어떤 살구나무가 저들에게 이름을 떨구고 갔을까
살구나무도 보이지 않는데
삼월의 저녁이
초파일처럼 환했다
- 「살구나무 빵집」 전문(11쪽)
상당히 과거로 거슬러 가서,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 유협이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창작론의 하나로 제시한 은수隱秀의 개념을 「살구나무 빵집」에 적용해 보자. 은 ‘숨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유협이 말한 은 현대시 용어 함축미含蓄美와 흡사한 개념이다. 은 시어나 시구의 말은 다중多重과 심연深淵으로 그 의미와 정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언표 밖에 숨어서 여려 겹의 뜻과 감정으로, 그리고 표층, 중층, 심층 등 세 개 층보다도 복잡한 깊이감의 감정과 뜻을 온축하고 있다는, 또는 그렇게 해 내야 한다는 시학 용어이다. 요새 용어로 하자면 다중적·다층적 심연의 함축미라는 개념이라고 할까. 다른 용어로는 은유, 나아가 상징주의 이론의 상징 개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의 개념과 딱 부합한다고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최근 시의 난해한 은유나 다의적 상징은 언표 밖에 숨겨진 그 의미가 캄캄하게 꽉 막힌 듯해 심오해 보일지라도 유협의 시각에서는 이라고 할 수 없다.
혹 (시구가) 밝았던 게 캄캄하게 꽉 막혀 깊어지게 돼 심오해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 아니다.
- 『문심조룡』·「은수」 부분
수컷과 암컷, 밝음과 어둠이 짝이 돼 서로가 결합할 때 생명·생기가 생성 순환되는바, 은 와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시학의 심미 개념으로 생동한다. 는 빼어나고 아름답다는, 즉 우수하다는 뜻이지만, 『문심조룡』·「은수」에서 제시한 는 그런 의미만은 아니다. 유협은 시행과 시구를 쪼아내고 깎아내 교묘함으로 나아간 것은 아름답다고는 할 수 있어도 가 아니라고 했다.
(시구를) 쪼고 깎아내 공교함을 취해 아름다워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가 아니다.
- 『문심조룡』·「은수」 부분
는 선명하고 나아가 투명하며 생동하는 감정과 뜻을 풍기는 형상으로 완결된 시작품의 심미 특질을 함의하는 용어이다. 시를 읽을 때 눈에서 형상이 넘쳐흐르듯 선명하고 생동해서 뇌 또는 이성적 분석을 통하지 않고 몸 또는 감수성만으로 넘칠 듯한 형상에 실린 감정과 뜻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예술 형상이 이다. 이 가운데 이 있고, 가운데 가 있다. 은이 있는 곳隱處이 수가 있는 곳秀處이고, 수가 있는 곳이 은이 있는 곳이다. (이건창 역, 예랑葉朗 저, 『중국미학사대강』, 백선문화사, 2000, 239~243쪽, ‘유협이 논한 은수’ 참조)
이 ‘은수’에 부합하는 시를 들어보라 한다면, 김종삼의 「묵화墨畫」나 김종길의 「성탄제聖誕祭」가 퍼뜩 떠오르는데, 「묵화墨畫」나 「성탄제聖誕祭」는, 하늘의 높이와 넓이, 지표와 수/해면의 넓이와 그 깊이, 첩첩 겹겹 솟았다 꺼졌다 높았다 낮았다 울퉁불퉁 뾰족뾰족 흐르며 순환하는 시간과 계절과 공간의 천지자연 거기에 그만큼의 서사와 마음 깊이를 지닌 사람의 살아짐 그 통째를, 정情은 경景 속에 있고, 경景은 정情 속에 있는 것의 한 단면으로,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처럼 한 폭 그림과 같은 형상이 눈앞에 넘치는 시이기 때문이다.
형상形狀이 눈앞에 넘쳐흐르면 라고 한다.
- 『문심조룡』·「은수」 부분
김보일의 표제 시 「살구나무 빵집」의, “저녁 산책길 철길공원 한쪽에” “등을 달고 서 있는” “살구나무 베이커리” 상호의 “간판 하나”는, 이면에 숨겨진 시인의 혈맥과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숲과 땅의 기운과 함께 흐르고 통하며, 철길공원 한쪽에 어둠을 밝히며 서 있는 살구나무 빵집, 그 전경에 생명의 기운을 흐르게 한다. 전기가 흐르며 켜진 등불의 간판 그 인공적 물질 덩어리에 생기가 돌고 피가 흐르면서 “살구나무 베이커리” “간판”은 숨을 마시고 내뿜는다. 경재정중景在情中, 화중유시畵中有詩의 도입 부분. 이윽고 살구나무 베이커리라는 상호 간판을 세운 그 빵집 안에서 “살굿빛 식빵”의 냄새 입자가 물결무늬처럼 퍼져 나와 시인의 몸을 울리고, 한 층 깊숙이 들어간 시선의 으늑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는 “앞치마를 두른 젊은 부부”의 생의 아름다운 진동은 더욱 큰 떨림으로 시인의 몸으로 온다. 시인 몸의 깊숙한 곳에서 진동이 다시 시작되면서 혈맥의 흐름과 더불어 나오는 말의 숨결에 실려 가는 그 떨림의 파동은 독자의 몸에 전해져 마음을 울린다,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면서.
이때 던져지는 말 한마디, “어떤 살구나무가 저들에게 이름을 떨구고 갔을까”, 이 지점은 천지인이 통째로 땅속과 지표, 하늘과 하늘 끝, 인공적 물질 덩어리 빵집, 젊은 부부, 이 지상의 수많은 살구나무와 함께 넘쳐흐르는 정감情感 속 경상景狀을 그려내며, 무확정 깊이감의 의미가 생산되는 절정 부분이다, 절로 절로. 김종삼의 「묵화墨畫」나 김종길의 「성탄제聖誕祭」의 시 문학사적 전통을 이어받으며, 김보일 시인만의 뼛심 있는 ‘은수’의 절정. 종소리는 끝났는데, 여운은 끝나지 않고 지속하는, “살구나무도 보이지 않는데/ 삼월의 저녁이/ 초파일처럼 환했다”는 마지막 연으로 이어지면서.
2. 김보일 시의 율동미와 떨림
그러나 김보일은 두 번째 시집 『겨자씨의 문장』(북인, 2025)을 내면서,
잉크가 물에 풀려나가는 형상, 호수의 구석구석까지 둥그렇게 퍼져가는 물의 파동, 바로 그 떨림이, 물질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 시집 『살구나무 빵집』이 역동적인 상상력의 비약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저울추의 흔들림 같은 것, 새가 떠난 나뭇가지의 가녀린 흔들림, 가까스로 겨울 하늘에 도착한 별의 입김같이 희미한 것에 주목했다.
「시간의 얼룩」, 「화살」, 「구름주유소」 같은 시는 도약 대신 관성, 폭발 대신 떨림을 택했다. 행과 행 사이를 넓혀 숨이 길게 이어지게 했고, 문장부호는 꼭 필요할 때에만 두었다. 쉬고, 끊고, 다시 이어가기를 독자의 뜻에 맡겼다.
- ‘나의 시를 말한다’, 『겨자씨의 문장』 131쪽
라고 말했다. “저울추의 흔들림 같은 것”, “새가 떠난 나뭇가지의 가녀린 흔들림”, “가까스로 겨울 하늘에 도착한 별의 입김같이 희미한 것”의 ‘흔들림’이나 ‘희미한 것’이 의미하는 게 무얼까. 김보일은 왜 첫 시집 『살구나무 빵집』이 역동적인 상상력의 비약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을까. 그것은 또 무얼 뜻하는 걸까.
『겨자씨의 문장』에 실려 있는 「새벽에 울다」 전부를 찬찬히, 기왕이면 소리를 내 낭송하면서 실마리를 풀어 보자.
바닥이 운다
삼류 건달
강재가 운다
파이란
파이란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
끼룩끼룩
새벽의 술병이 운다
- 「새벽에 울다」 전문(17쪽)
이 시는 2001년에 개봉했던 송해성 감독의 영화 「파이란」을 모티브로 창작한 작품이다. 세 개 연으로 구성된 작품이지만 여덟 줄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시에 ‘운다’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온다. 2연의 ‘사랑이었구나’ 외에 나머지 문장 서술어 전부가 ‘운다’로 끝난다. 삼류 건달 강재가 “파이란/ 파이란/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라고 울 때 그 울음은 무얼까. 반복과 변주를 통한 생동감 있는 운율 형성을 위해서 ‘운다’, ‘운다’, ‘사랑이었구나’, ‘운다’로 구성해 써 내려간 것일까. 그뿐일까. ‘운다’의 정체는 그 이상이다.
김보일은 두 번째 시집 후기, ‘나의 시를 말한다’에서 “떨림”은 “물질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라고 했는데. 밑바닥 삼류 건달 강재가 ‘파이란’[, 백란]의 사랑을 깨닫고 순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방식이 “떨림”일까.
화면에서 울고 있는 강재는, 영화로 편집되기 전에는, 카메라와 감독과 스태프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 최민식이다. 인천 항구의 삼류 깡패 강재와 서류상으로 혼인한 중국 여자 파이란 역시 홍콩 배우 장백지이다. 배우들의 떨림은 시나리오에서 왔을 것이고, 시나리오의 떨림은 아사다지로浅田次郎의 원작 소설 「러브레터」에서 왔을 것이다. 그리고 「러브레터」의 떨림은 일본 국적을 얻어서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을 부양하려는 중국인 여성, 그리고 야쿠자 말단 건달의 위장 결혼이라는 실제 현실의 어떤 사건에서 왔을 것이다. 이것이 2001년 한국을 배경으로 변환한 가운데, 강재는 아무 관심도 없고 얼굴 한번 봐 주지 않지만, 파이란은 강재 몰래 그를 찾아가 멀리서 훔쳐보면서 진짜 남편처럼 생각한다. 그녀는 죽음에 이르러 강재에게 “강재 씨,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 내가 죽으면 만나러 와 주시겠습니까? 만약 오신다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저를 당신의 무덤에 같이 묻어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으시겠습니까?”라는 순정 어린 편지를 남기고, 편지를 읽은 강재는 바다가 보이는 방파제 옆에서 그녀의 유골함과 함께 펑펑 운다. 이 모든 모티브가 한 덩어리로 연동해 엉겨 붙어 흐르는 가운데 “파이란/ 파이란/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 끼룩끼룩/ 새벽의 술병이 운다”는 ‘말’은 이러한 ‘떨림들’의 다중적이고 다층적인 곳에서 울려 나오는 게 아닐까.
김보일은 국어 선생님 출신으로 국문학뿐만 아니라 국어학 재능이 발군인 시인이다. 그는 세계와 연동된 몸의 떨림에 민감한 시인으로,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의 미세한 울림과 어울림, 그와 연동되는 정감의 기운을 말에 흐르게 해 문자(/활자)를 생동시키는 데 능숙하다. 위 시의 2연, “파이란/ 파이란/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는 구성상 절정이자 전환 부분이다. “파이란”, 이 삼 음절은 첫째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터져 나오는 ‘ㅍ’ 소리와 경쾌하고 밝은 양성모음 ‘ㅏ’로 구성된 ‘파’ 음절, 둘째 발음기관에서 장애 없이 발성되는 중성모음만으로 구성된 ‘이’ 음절, 셋째 혀끝이 윗잇몸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면서 혀 양쪽으로 흐르며 울려 나오는 ‘ㄹ’과 결합하는 경쾌하고 밝은 양성모음 ‘ㅏ’ , 그리고 역시 혀끝이 윗잇몸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면서 콧속이 울리며 나오는 ‘ㄴ’과 결합한 ‘란’ 음절이 연속된 말이다. ‘파이란’의 세 모음은 ‘양성모음+중성모음+양성모음’으로 구성된 말인데, 세 개의 양성모음 ‘아, 아, 아’가 아닌 ‘아, 이, 아’의 변환 섞인 반복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절묘하다. 또 세 음절의 자음은 ‘ㅍ, ㄹ, ㄴ’ 세 개인데 ‘무성음+유성음+유성음’으로 구성됐고, ‘ㄹ, ㄴ’은 ‘란’의 초성과 종성이다. 자음과 모음의 음운상 어울림이 조성하는 심미적 효과를 ‘운조韻調’라고 할 때, ‘파이란’은 생기발랄한 음감의 아름다운 운조로 이루어진 말이다.
중국어 [바이란, bái lán]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면서 ‘바이란’이나 ‘빠이란’이라고 하지 않고 ‘파이란’이라고 살짝 바꾼 거 같은데,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는 뜻을 연상시키거나 생기발랄한 음감의 효과를 더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그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은 한자 뜻풀이로는 흰 난초꽃인데 백란화白蘭花 또는 백옥란白玉蘭이라고도 한다. 이 꽃은 난초꽃과 비슷하지만 목련과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백목련과는 달라 보인다. 그래서 이라고 한 걸까. 논의를 좀 더 깊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보다 백란白蘭의 꽃말이 순결, 우아, 청순한 마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강재에게 순정의 참뜻을 알게 한 중국인 여성 파이란은 ‘순결, 우아, 청순한 마음’의 꽃말 그대로 고결하고 청초한 여자다. 순결, 우아, 청순한 마음의 의미가 한국어식 발음 파이란이라는 삼 음절로 울린다. 이 삼 음절에는 그녀의 순정과 그걸 너무나도 늦게서야 안 강재가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빠져서 오열하는 비극이 함축돼 있다. 그러나 파이란, 이 삼 음절의 연속된 음상은 강재의 비극과 반대로 경쾌하고 맑게 울리는 운조로 짜여 있다. 둔탁하고 어둡고 무거운 슬픔에 빠진 강재와 오묘한 긴장을 조성하는 경쾌한 음상의 아이러니. 김보일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섬세하게 포착해 시행을 능숙하게 배치하고 구성했다. 그가 ‘파이란’을 한 행으로 독립시켜서 두 행으로 반복해 배치한 것은 강재의 비루한 삶과 파이란의 우아, 청순한 삶, 죽음의 대치를 아이러니의 미학으로 고양하고자 했던 의도의 결과로 읽힌다. “파이란 파이란/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나 “파이란/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와 “파이란/ 파이란/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는 다르다. 더욱이 시상을 매듭짓는 마지막 3연의 “끼룩끼룩/ 새벽의 술병이 운다”에서 “파이란/파이란”과 3연의 “끼룩끼룩”의 병치 대립을 고려할 때 “파이란/ 파이란/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는 치밀한 의도로 구성된 결과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끼룩끼룩”은 무겁고 어두운 음감의 음성상징어이고, 받침 ‘ㄱ’은 둔중한 소리가 급하게 닫히고 소리가 끊어져 버림으로써 꽉 막히는 답답한 느낌을 준다. 음상의 운조로 볼 때 2연과 3연의 이런 병치 대립은 의미상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구나”와 “새벽의 술병이 운다” 시상 대조, ‘사랑의 깨달음(숭고)/어리석은 참회(비극)의 울음’, ‘나/술병’이라는 의미를 미학적으로 고양한다. 다음 김보일의 말을 들어보고 이 부분을 더 생각해 보자.
3. 경계의 미학과 흐릿함
이성복의 시 「분지일기」 중 한 구절이다.
“슬픔은 가슴보다 크고/ 흘러가는 것은/ 연필심보다 가는 납빛 십자가.”
똑 부러지게 “이것은 이런 의미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려한 리듬에 실린 울림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의미는 흐릿하다. 작가는 의미의 결정자가 아니다. 작품은 대화의 공간이지 주장의 공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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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가 딛고 있는 토대는 현실과 꿈의 경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 언어와 침묵의 경계, 새벽과 아침의 경계, 떨리는 것과 떨리지 않는 것의 경계였다.
- ‘나의 시를 말한다’, 『겨자씨의 문장』 , 131쪽, 135쪽.
시집 뒤에 문학 도반의 발문이나 해설을 싣는 통념을 깨고, 김보일이 ‘나의 시를 말한다’라고 하고, 「떨림과 머뭇거림의 경계」라는 제목 아래 시론을 내세우고, 몇 편의 시를 본인이 직접 설명했다. (『겨자씨의 문장』, 130~139쪽) 그의 의도를 존중해 그의 말을 귀를 기울여 들어보자. “이것은 이런 의미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보다 “의미가 흐릿한 것” 그리고 “유려한 리듬에 실린 울림”의 구절이 미학적으로 우수한 것이라는 게 김보일 시인의 시론이다.
논리적 판단은 이것과 저것이 분명하게 나뉜다. 분명하게 나뉘는 것은 경계가 명확한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강조해 온 ‘경境’의 미학은 이와 다르다. 의 미학을 시적 형상으로 잘 제시한 「수묵화」 전문을 읽어보기로 한다.
색이 번질 때
색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빛깔이 생겨난다
내가 너로 번질 때도 그랬다
너에게 있는 것이 내게로 오고
나에게 있는 것이 너에게로 갔다
- 「수묵화」 전문(27쪽.)
“색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빛깔이 생겨난다”라는 구절의 “빛깔”이 바로 의 미학. ‘상 바깥의 새로운 상’[] 또는 ‘경 바깥의 새로운 경’[]을 제시함이 境의 미학이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은 “경계가 흐릿해지는 곳”이고, “흐릿함”은 형상이 흐릿하다는 의미가 아니며, “뭐라 말할 수 없는 빛깔”의 형상이 눈앞에 생동함을 뜻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내가 너로 번질 때도 그랬다// 너에게 있는 것이 내게로 오고/ 나에게 있는 것이 너에게로 갔다”와 같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에서 생겨나는 아름다운 “빛깔”, 그것은 어디서 오는 걸까.
창백한 달이 새벽창에서
반쪽이 된 얼굴을 보여준다
피곤은 너에게 보여주려고 남겨둔 내 얼굴이고
침묵은 너에게 들키려고 열어둔 유리창이다
- 「새벽달」 전문(52쪽.)
“창백한 달”, “새벽창”, “반쪽이 된 얼굴”, “피곤”, “남겨둔 내 얼굴”, “침묵”, “열어둔 유리창” 이것들은 구분되는 사물이지만, 이것들 사이의 경계는 흐릿하다. 시인의 정과 새벽이라는 시간과 반달, 유리창이라는 물질의 경계에서 시인의 가슴에서 진동하는 기운이 시간, 공간의 외적 물질들의 기운과 교차하며 하나의 생동하는 어떤 기운으로 엉겨 붙는다. “새벽창”에서 “열어둔 유리창”으로 경계를 허무는 마음 경지, 즉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에 이르러 “뭐라 말할 수 없는 빛깔”로 생겨난 게 “피곤은 너에게 보여주려고 남겨둔 내 얼굴”, “침묵은 너에게 들키려고 열어둔 유리창”이다. 김보일은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빛깔”로 생겨난 다중성과 깊이를 “흐릿함”이라고 한 것이지 시적 형상의 모호함을 “흐릿함”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김보일이 2017년 『문학과행동』에 시인으로 나왔을 때, 심사위원장이 그의 시가 노숙하면서 독창적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 그의 시가 이런 경지를 내비쳐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등단작 「보길도의 밤」 후반부, “가난은 때로 얼마나 으늑하고 깊은 포옹인가 가난할수록 더운 호흡 하나가 덜컹거리는 장지문 사이로 빠져나오면 자갈돌들은 억년의 외로움으로 자갈자갈거렸을 것이고 파도는 괜찮다, 괜찮다 하며 천지 여인숙에 깃든 객실의 손님들, 자갈돌들의 이마를 쓰다듬었을 것이다. 한 사내의 폐부를 빠져나왔을 깊은 숨소리가 담뱃진에 얼룩져 있는 여인숙의 바람벽, 말이 없는 달빛의 위로로 깊어지는 보길도의 밤”과 같은 경지.
한편 『겨자씨의 문장』 표제 시를 읽어보면 그가 참으로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이며, 얼마나 치열하게 시적 고투를 수행해 온 시인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밤하늘은 판정의 법정이 아니라 발화의 공터다. 빛이 세기를 겨루지 않듯, 이야기는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각각의 별은 자기가 가진 고유한 떨림으로 저마다의 궤도를 완성할 뿐이다.”(‘나의 시를 말한다’, 137쪽)에서 보이는 열린 인품, “일곱 번을 지우고도 파지가 되어버린 새벽의 문장”(「밤하늘」 부분, 18쪽)에서 보이는 시 수련의 치열성 등. 다음 「겨자씨의 문장」에서 이들을 통합적으로 읽어보자.
겨자나무가 뱉어낸 겨자씨가 배신의 겨울을 낳고, 겨울이 창가의 성에와 입김을 낳고, 입김이 간지러운 귓바퀴를 낳고, 귓바퀴는 목젖과 목장을 낳고, 목장은 종다리의 하늘과 하품하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낳고, 고양이는 하얀 수염을 낳고, 하얀 수염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나라를 낳고, 이삭은 일요일의 식탁과 아침의 창문을 낳고, 창문은 흘러가는 구름과 아름답고 쓸모없는 물고기를 낳았도다 겨자씨의 미미한 시작詩作이여 시작과 끝을 모르는 시간이여 제 꼬리를 잡으려고 뱅뱅 돌다 웃음을 토하며 쓰러지던 무구한 말들이여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말뚝의 줄을 비웃으며 울타리를 뛰어넘던 말씀의 후렛자식들이여
- 「겨자씨의 문장」 전문(39쪽)
시인은 자신의 시 창작을 “겨자씨의 미미한 시작詩作이여”라고 낮추고 있다. 그 겨자씨는 “배신의 겨울”을 낳고, 그 겨울은 “창가의 성에와 입김”을 낳으며, “겨자씨의 시작詩作”은 “시작과 끝을 모르는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대개 “제 꼬리를 잡으려고 뱅뱅 돌다 웃음을 토하며 쓰러지던 무구한 말들이여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라며 “말뚝의 줄을 비웃으며” 종래는 “울타리를 뛰어넘던 말씀의 후렛자식들이여”라고 한바탕 욕을 퍼붓는다.
4. 도덕적 판단과 숨, 그리고 정동의 시학
그러나 김보일은 타인을 재단하거나 타인에게 함부로 욕하지 않는다.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 소설의 부도덕이 아니라 바로 소설의 도덕이라는 쿤데라의 말에 주저 없이 동의한다. 당신이 옳고 내가 그를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옳음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의 그름이 언제나 주눅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
나는 문학이야말로 ‘옳음’과 ‘그름’의 명패를 잠시 내려놓고, 서로 다른 호흡과 다른 온도의 체험을 평평한 어둠 위에 놓아두는 장소라 믿는다.
- ‘나의 시를 말한다’, 『겨자씨의 문장』 , 135쪽, 137쪽.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소설의 도덕”이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는 것”인 바와 같이, 김보일의 윤리는 ‘‘옳음’과 ‘그름’의 명패를 내려놓고, 서로 다른 호흡과 다른 온도의 체험을 평평한 어둠 위에 놓아두는 장소”와 같은 것이다. ‘금을 긋는 법을 배운다는 것’, 그래서 ‘금을 긋는다는 것’은 얼마나 반지구적이며 반생명적인 무차별 폭력일 수 있는가. 그러나 그의 시의 토대가 “떨림과 머뭇거림, 그리고 쉼 사이의 경계”에 있다고 한 것은 무엇보다 미학적인 이유 때문이고, 시인에게는 이 점이 일차적으로 중대하지 않을 수 없다. 「수묵화」에서 그가 “색이 번질 때/ 색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빛깔이 생겨난다”라고 한 “빛깔”은 떨어져 나누어진 사이를 잇는 우주의 기운, 그 생명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빛깔이라고 본다. 시와 예술은 바로 경계를 잇는, 또는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그 사이에서 뿜어나오는 “빛깔”을 포착하는 미학적 구조물이 아닐까.
김보일의 「새벽 편지」는 잉크의 빛깔과 유리컵 물에 섞여 “사라져가는 푸른 빛”, 그 “창백한 빛을 건져” 새벽에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라는 놀라운 발상의 빛 나는 시이다.
펜을 잉크에 찍는다는 게 그만
무심코 유리컵 속에 찍었다
물 속으로 사라져 가는 푸른 빛
저 창백한 빛을 건져
펜촉을 눌러 남은 편지를 쓴다면
물 속으로 나른하게 번지던 문장
그 끝을 당신은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낼 것이다
- 「새벽 편지」 전문
사물과 사물의 경계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빛깔”을 포착해 미학적 구조물로 언어화하는 능력은 “일곱 번을 지우고도 파지가 되어버린 새벽의 문장”에서 보이는 치열한 시적 수련 덕일 것이다. 그러나 시적 수련 외에 “저울추의 흔들림 같은 것”, “새가 떠난 나뭇가지의 가녀린 흔들림”, “가까스로 겨울 하늘에 도착한 별의 입김같이 희미한 것”을 포착해 내는 타고난 감응력, 남다른 민감성의 덕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그의 시 「외통수」는 타고난 감응력이 얼마나 남다르게 민감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아버지 집이 흔들려요
멀쩡한 집이 왜 흔들려
장기나 두렴
(…)
차가운 기차선로에 귀를 댔을 때처럼
어떤 떨림이 나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흑백TV의 속보 때문이었다
-홍성 지방에서 일어난 가벼운 지진으로
잠시 방송 상태가 고르지 못했던 점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
왼쪽 다리가 조용히 떨렸다
누구일까
내 몸의 현鉉을 건드려보고 가는
저 새털구름 같은 손가락의 주인은
(…)
너는 내 몸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속으로 흘러들어온 아버지가
불쑥
외통수를 던지고 간다
- 「외통수」 부분(80~81쪽)
“홍성 지방에서 일어난 가벼운 지진”을 서울에서 아버지와 장기를 두다가 몸의 떨림으로 알아챈 소년은 “왼쪽 다리가 조용히 떨렸다/ 누구일까/ 내 몸의 현鉉을 건드려보고 가는/ 저 새털구름 같은 손가락의 주인은”이라고 말하는 시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나의 왼손」이라는 시에서 “나는 떨리는 나의 왼손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몸이 아픈지도 모른다. 시집 후기를 읽으면 확실히 아픈 거 같다.
나는 떨리는 나의 왼손이 좋다
꽁꽁 닫힌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런 수줍음이 좋다
오른손이 모르는 비밀을
너에게 살짝 들키고 싶다
- 「나의 왼손」 전문(59쪽)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하늘과 땅과 우주와 통하며 시간과 공간을 함께 흐른다. 자는 구상체로서 심장 기관을, 또 감정과 뜻을 수수하는 추상체로서 마음을 뜻한다. 이 심의 작용을 이라고 해 왔다. 정동은 우주의 기운에 감응하여 심장과 마음, 몸 전체가 떨림을 의미한다. 밤하늘이 떨고, 별이 떨고, 달이 떨고, 아파트 유리창의 불빛이 떨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과 사계절 흐르는 꽃과 새와 짐승과 시냇물과 강과 산과 바다가 아스팔트와 자동차와 비행기도 떤다. 이 떨림에 감응하여 마음, 몸 전체가 떨리는 작용이 정동이다. 우주와 사람의 정동 그 원리와 철학을 담은 말소리가 한국어이고, 김보일은 “국어학 재능이 발군인 시인”으로 우리말의 “미세한 울림과 어울림”으로 우주의 천지자연과 정동을 연동시켜 미학적 구조물로 언어화하는 능숙한 시인이라고 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겨자씨의 문장』의 시적 고투, 그 성취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축하를 보내며, 「곡우 무렵」 전문을 읽으며 글을 마치기로 한다.
병을 걱정해주면서도
벗은 자꾸 잔을 채워준다
봄비도 낙화를 걱정해주면서
종일 꽃나무를 적시는지
- 「곡우 무렵」 전문(9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