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지 이십 여년이 흘렀다.
거침 없이 옮겨온 삶자락이 그다지 불편할 일이 별로 없었으므로
기꺼이 도시와 산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사회생활도 잘 버텨냈다.
거주지에서 서울로 왕복 동선을 움직이면 도시에서는 기관지에 훅 하고 들어오는 공기
일명 미세먼지가 장난이 아니어서 견디다 못해 기침이 나오기 일쑤였지만
벌써 오산을 지나 평택권을 거쳐 안성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산공기가 폐부 깊숙히 들어와
그때부터 온몸이 신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산좋고 물좋고를 경험하며 자연의 순리에 맞춰 그럭저럭 잘 살아낸 보람 같은 것이
안성 자락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온 몸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물론 사람살이도 그러하다 라는 보장은 없다.
관계라는 것은 자연의 이치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중요하지만
그다지 왕래가 필요한 사람들을 엮어 다시금 관계라는 것에 얽히기 싫어서
찾아드는 발길에 한해 사람살이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말이지 도시에서나 산골에서나 사람이라는 끈에 얽매이는 것은 심신이 피로할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만나는 일이 제 할 일 인지라 부담 없이 사람 이음 관계를 부정하지 않고 있지만
그런 모든 관계의 피로도를 녹여주는 일 또한 산골살이 덕분이기도 하다.
하여 이곳으로 내려온 삶에 만족도가 최상이기는 하여도
더러 장마, 폭설, 정전 같은 피치 못할 상황이 생기면 그 또한 최악이기는 하다.
거주지를 옮긴 이후에 온갖 태풍과 장마가 부르는 번개 따위에 가전제품이 수도 없이 망가지고
특히나 쥔장이 없을 때 찾아온 낙뢰로 컴퓨터가 손상되었을 때는 망연 자실.
그래도 물 좋고 공기 좋고 산세 좋은 이곳을 포기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중에
더러 정전이라는 돌방상황이 생기면 그야말로 죽음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공포감이 온다.
산속에서는 전기가 필수다.
물을 사용하려해도 전기가 들어와야 하며 온갖 가전제품과 가스 사용하기, 가로등까지
그리고 먹고 마시고 씻고 기본적인 의식주의 체계는 웬만하면 전기가 주인공이다.
그 전기가 오늘 새벽녘에 갑자기 힘을 잃고 스르륵 아웃이 되어버렸다.
5시 반부터 8시 반까지...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었으나 초를 찾아 불을 켜고 벽난로를 피우고
핸드폰을 할용하여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물론 냉장고 역시 제 역할로 부터 분리되어 그저 채워진 음식물을 담고만 있을 뿐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상태가 되어버리니 한동안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던 딸과 외손주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살면서 이런 정전의 경우를 겪어보지 못한 딸은 당황하여 "이게 뭔 일이래...."
긴 해외 생활 끝에 겨우 돌아와 결혼 2년차라 이런 산골살이를 미처 경험하지 못한 까닭이다.
해서 놀란 나머지 어머 뭔 이런 일이...만 연발하고 경악스러워 하며
외손주, 그러니까 딸내미 아들에게 먹어야 할 분유는 어찌 해야 하나 고민중이었다.
다행이 서방이 혹시나 싶어 여유있게 사다놓은 삼다수 덕분에 물은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이층에 올라가 찾아온 이동용 가스렌지 가스불을 켜서 분유 탈 물을 만들어냈다.
마침 초 몇자루 역시 남겨져 있어 어둠 속에 헤매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요
거실을 책임지던 전기가 아웃인 상태라 바닥은 차가워도 훈기는 벽난로 만으로 훈훈함을 이겨낼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에 서둘러 서방이 마을로 내려가 보았다.
마을 전체가 전기가 사라진 어둠의 상태.....
간신히 KT전화기를 가진 이웃의 전화를 빌려 담당에게 전화를 하니
금광면 어디에선가 사고가 나서 지금은 현장에 출동중 이란다.
빠른 시간 안에 곧 회복 될 것이라 알려주었다며 걱정하지 말라 한다.
돌아와 한참을 지나 여덟시 반이 되니 전기가 들어오고 새삼 전기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해 봤다.
하긴 어른들이야 어찌저찌 전기가 없어도 견딜 수 있을 일이나
아이가 있는 집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역시 무엇이든 경험치가 필요한 것 같다.
어쨋거나 그렇게 전기가 새삼스러울 인가 싶었던 오늘 아침.
늘 생각하지만 꼭 서방이 출장을 가려고 하면 뭔 일이 생겨도 생기는 것 같다가 트라우마로 남을 듯.
매번 개님이 풀려 난리굿이거나 물이 안나오거나 가로등이 망가지거나 ...뭐 기타 등등
수도 없이 서방의 자리비움은 늘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그저 그 즈음에 벌어질 일이었겠지만서도 말이다.
어쨋든 아수라장 같은 아침의 난리블루스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간 전기 덕분에 핸드폰, 컴퓨터를 못하고 온갖 것에 제재를 받는다는 것,
가끔씩 벌어진 전기 불통의 사건은 그러려니로 지나갔지만 역시 손주가 있음으로 인해
전기의 위대성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는 아침이 되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시작된 오늘은
각자의 역할로 제 본분을 다할 일이겠다.
첫댓글 녜,,, 저도 가끔 아시는 분이 평택 서탄에 살고 계셔서, 가끔 가는데.. 공기도 좋고 하는데 병원이 늘 문제인 것 같더라고요,, 그분 부인 권사님이 루게릭 병이 걸리샤사 투병 생활을 하시는데 이제는 병이 심하셔서 서울이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그 분은 주유소를 하시는데,, 이런 저런 고민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오늘은 모처럼 제방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가을 옷도 정리를 하고 세탁도 하고요,,
그렇군요.
하긴 시골살이는 늘 병원이 문제.
이십여년 살면서 병원 갈 일이 없어
괜히 보험을 들었나 했지만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병원 찾을 일도 생긴다는.
안 아프고 보험료 돌려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다행이라 여겼지만...이젠 그렇지 못하다요.
그래도 시골살이, 산골살이는
도시의 삶자락 보다 훨씬 좋기만 하더라는
벌써 나도 도시생활 4년째접어 들고보니 나도 모르게 몸에 익숙한 도시생활에 벌써 적응하게 되고 그 편리함이 바로 적응되더이다. 참 사람은 적응력이 갑인듯해요.
도시와 농촌 양쪽 다 장단점이 있지요~! 애기 있는집 전기문제는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음이네요~!
전기 돌아오니
6일엔 수도가 아웃
7일에 가족모임이 있는지라 비상사태.
간신히 서방이 임시방편으로 고쳐놓고
봄이 되어야 완벽하게 고친다고 함.
암튼 임시 수선이라도 토욜 모임은 잘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