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우호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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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이승만이 전국 700여 곳에서 자행한 양민학살 터 *****
믿어지지 않거든 여러 분의 고향이나 알고 있는 전국의 어떤 군(郡) 이름 뒤에 '양민학살'이라고 쓰고 엔터를 쳐 보시면 됩니다.
경기도부터 제주도까지 어떤 군 이름을 쓰고 그 다음에 한 칸을 띄우고 "양민학살"이라고 쓰고 구글에서 검색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1개 군에서 양민학살의 현장이 4곳 혹은 5곳 정도가 검색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코리안 킬링필드였습니다.
맨 먼저 시작된 곳 :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 일시: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수차례 진행
• 내용: 전쟁이 터진 지 사흘 만인 6월 28일, 이승만 정부가 대전으로 후퇴한 시점과 맞물려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들과 대전·충남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 규모: 최소 1,800명에서 최대 7,000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군·경과 특무대(CIC)에 의해 살해되어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약 1km에 달하는 구덩이)으로 불리는 이곳에 매장되었습니다.
대전형무소에 감금되어 있었던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정치적인 범죄 즉 양심수들이었는데 그들을 죽이기 위하여 아예 대전형무소에 감금되어 있었던 거의 모든 수인들을 다 학살해서 골령골이란 곳이 매장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거의 전국적으로 동시에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런 자를 위하여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합니다. 학살기념관을 짓는 꼴이 될 것인데 역사를 모르는 자들은 그를 국부라고 한답니다.
당시 남한 일대에는 133개 군이 있었습니다. 1개 군에서 대략 5곳이나 6곳으로 나누어 학살을 했던 것 같습니다. 700여 곳의 학살장소에서 학살된 국민의 수는 최소 200,000면 내지 많게는 300,000명 이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초기 즉 1950년 6월 28일부터 자행된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은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을 집단으로 학살하는 사건으로 시작하여 대한민국 정부 및 군경의 퇴각 경로와 낙동강 방어선 형성 과정에 따라 남하하면서 집행되었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및 관련 사료 조사에 따르면, 보도연맹원 및 예비검속자에 대한 학살이 가장 나중(마지막)까지 지속되어 집행된 곳은 낙동강 방어선 안쪽에 위치하여 최후까지 임시 수도 역할을 했던 부산 지역입니다.
주요 집행 시기 및 최후 집행지 현황부산 지역 (가장 늦게까지 집행된 지역)
집행 시기: 1950년 7월부터 시작되어 인천상륙작전 직전인 1950년 9월 초·중순까지 집행이 계속되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등 자료에 따르면 CIC 및 경남경찰국·부산지구 헌병대에 의해 9월 7일~9월 중순경까지 연행자 처형이 이뤄짐)
대표적 집행 장소:부산 동매산 기슭 및 구평동 골짜기오륜동, 동래 및 금정산 일대부산 앞바다 (오륙도 인근 해상 수중 매장/수장)구 부산형무소 제주 지역 (예비검속자 집행) 보도연맹원 및 예비검속자에 대한 집행이 1950년 8월 19일~20일경(섯알오름, 제주 정뜨르 비행장 등)까지 대대적으로 진행된 후, 9월 들어 집행이 중단되고 남은 인원이 석방되었습니다.
기타 경남 남해안 지역 마산, 진주, 통영, 거제, 사천 등 경남 서부 및 남해안 지역에서는 1950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 낙동강 전선이 형성되고 인민군이 바짝 육박해 오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학살이 집행되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전선이 밀림에 따라 6월 말(경기·강원) → 7월(충청·전라·경북) → 7~8월(경남) 순으로 학살이 이어졌으며, 임시 수도이자 방어선의 최후 후방이었던 부산 지역에서 1950년 9월 중순까지 가장 나중까지 학살이 집행된 것으로 조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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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이 아픔이다 당시엔 주인모를 해골이 작난질 도구 였습니다
학살자 글쎄 죽은자 신분도 알수없습니다 백만명은 넘지않을까요
당시엔 해골에 감각이 없엇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