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학운동이 시작된 지 150주년 되는 해입니다. 1864년은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참수를 당하고, 도통을 이어받은 해월 최시형이 동학을 펼쳐나간 해입니다. 그로부터 1년 전, 수운 최제우는 이른 새벽에 해월을 불러 독대하고 ‘수심정기 守心正氣’ 네 글자를 내립니다. 그리고 참수당하기 전날 밤엔 마지막으로 해월에게 한마디를 전합니다. ‘고비원주 高飛遠走’. 스승의 유언과 같은 ‘수심정기 고비원주 守心正氣 高飛遠走’ 여덟 글자를 해월은 늘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 뜻을 풀자면 이러합니다. “해월, 나는 내일 아침 먼저 가야 할 듯하네. 동학을 그대에게 맡기네. 부디 첫 마음을 굳게 지키고 어떤 고난 속에서도 몸과 기운을 바르게 유지하게. 더 높이 날아오르고 더 멀리 달려가 주기 바라네.” 수심정기 고비원주! 수운의 목이 잘려 땅바닥에 떨어지고 해월이 어두운 여명의 길을 달려나가는 순간, 혁명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해월 최시형은 수배자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맨몸으로 누비며 이 땅의 주체적 이념인 동학을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인내천 人乃天, 사람이 하늘이다. 신분과 빈부와 남녀노소를 떠나 그대도 하늘이고 나도 하늘이다. 서로의 하늘을 모시고 사람을 하늘처럼 존중하자. 기존의 이념과 체제가 파국으로 치달리고 있음을 직시한 동학은 일상에서 우애의 공동체를 이루며 해방의 원체험을 넓혀 나갑니다. 30년에 걸친 그 고독한 좋은 삶의 공동체 운동은 마침내 사회정치 혁명으로 역사 속에 분출됩니다. 청장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항쟁에 나선 초유의 혁명 사건. 외세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동시에 낡고 타락한 나라로부터 사람과 삶을 지키려는 민초들의 저항, 흰옷을 피로 물들이며 죽어간 장엄한 실패의 혁명.
그러나 그 피 묻은 씨앗은 우리 겨레의 가슴 깊이 묻혀 싹터 올랐습니다. 의병항쟁, 항일독립운동, 4.19, 80년 광주, 87년 6월 항쟁까지 동학혁명의 정신은 가슴과 가슴으로 오늘도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모두 혁명의 아이들이고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의 공기는 동학혁명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 땅을 지키고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선령들과 혁명가들 앞에 나는 빚진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동학혁명과 그 정신은 가물거리고 세월호의 아이들과 영웅의 귀환과 자연의 열풍은 파도처럼 지나간 지금, 일상은 무력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수심정기 고비원주’.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 않고, 힘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지켜 더 높이 그리고 멀리, 새해를 열어가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