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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목적성] ( [合目的性, , 영 purposiveness, 프 finalite])
목적에 적합하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사상(事象)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사상(事象)에도 적용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어떠한 사상(事象)이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것과 수단이 목적에 적합하다는 것을 뜻하는 경우,
2) 부분이 전체에, 전체의 각 부분이 서로 적합하다는 것을 뜻하는 경우이다.
인간과 의복의 관계처럼 목적과 수단이 외적인 관계일 때 외적 합목적성이라 말하고 생물체나 공예품처럼 전체가 목적이고 각 부분이 수단의 의미를 가질 때 내적 합목적성이라 말한다.
인간의 사상(事象)에 있어서도 반드시 계획적이며 의식적인 목적 활동이 이와 같은 합목적성의 전제가 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합목적이라고 말하는 모든 사상(事象)에 의인적(擬人的)인 의식적 계획성(예컨대 신의 계획성)을 상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은 의식적 목적 활동의 경우 이외에는 이러한 사태가 어떻게 하여 발생하였는가를 설명하는 원리는 될 수 없다.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물질의 보다 높은 차원의 운동 형태에 의해서 명확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되며,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인과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판단력
http://www.laborsbook.org/dic/view.php?dic_part=dic05&idx=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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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판단력 비판
책 밑줄긋기/책 2013年 2013.07.02 11:11
합목적성 Zweckmäßigkeit
하인텔 E.Heitel에 따르면 합목적성의 개념은 크게 주관적 합목적성과 객관적 합목적성으로 구분되고, 객관적 합목적성은 다시 기하학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형식적 합목적성과 실질적 합목적성으로 구분된다.
실질적 합목적성은 외적 합목적성과 내적 합목적성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다시 인간에 대한 유용성과 유기체에 대한 유익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에 있어서 자연미는 대상의 주관적,형식적 합목적성을 판정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반해 외적 합목적성에 대한 판정은 자연에 대한 여러 가지 개별적 법칙들을 통합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고, 나아가 전 자연을 목적론의 체계로 간주해 인간을 그 목적론적 질서에 있어서의 궁극 목적이자 최종 목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유용성과 관련하여 우리는 또한 이를 완전성 Vollkommenheit과 구분해야만 한다. 하인텔의 구분에서는 빠졌지만, 칸트는 완전성을 내적,객관적 합목적성으로 규정한다.
완전성은 다시 질적 완전성과 양적 완전성으로 구분되는데, 한 사물의 다양이 그 사물의 개념과 합치되는 경우를 질적 완전성이라고 하고, 각각의 사물이 그 종류에 따라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경우에는 양적 완전성, 즉 완비성이라고 한다.
물론 순수한 감성적 판단은 대상의 객관적 합목적성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대상의 객관적 합목적성에 대한 판단은 반성적 판단력의 논리적 사용과 관련되고 그런 한에서 목적론적 판단이 된다.
그에 반해 반성적 판단력의 감성적 사용은 주관적 합목적성과 관련된다.
따라서 합목적성 개념과 관련된 칸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미를 형식적인(단지 주관적인) 합목적성 개념의 현시라고 볼 수가 있으며, 자연목적을 실질적인 (객관적인) 합목적성 개념의 현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자를 우리는 취미에 의하여(감성적으로, 쾌의 감정을 매개로 하여) 판정하며, 후자를 지성과 이성에 의하여(논리적으로, 개념들에 따라) 판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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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주의
위키백과
목적론
칸트는 자연이 합목적을 가지고 존재하며 인간은 자연의 최종적 목적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을 포함한 유기체의 존재에는 의도가 있으며, 거꾸로 인간의 행동은 자연의 합목적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당위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철학
신칸트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칸트는 별도의 정치철학 저서를 쓰지 않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 현대 정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칸트는 개인의 자율성과 자연의 합목적성에 입각하여 보편적 인권을 주장하였고, 이를 위해 공화제를 지지하였다. 칸트가 말하는 합목적적 자율성을 지닌 개인은 후일 "인격"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여, 인권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가 되었다. 또한 칸트는 국가보다 개개인의 인권이 우선한다고 보아 보편적 인권을 갖는 개개인은 국가적 경계와 상관없이 어디든 머물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칸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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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위키백과
미학(美學, Aesthetics)은 철학의 하위 분야로서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완성도가 높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일이 주된 관심사가 된다. 예술철학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느림의 미학'이나 '쇼핑의 미학'이라는 말처럼 일상 생활에서는 '아름다움'이나 '예술론' 등과 혼용되기도 한다.
아름다움의 갈래에는 숭고미, 지성미, 비장미, 골계미, 우아미 등이 있다. '숭고미'는 신의 경지를 추구하는 미의식이다. '지성미'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public mind) 속에 합리적 사고를 구현하는 미의식이다. '비장미'는 삶의 모순에 반기를 들고 그 모순을 타파하는 길을 가는 미의식이다. '골계미'는 관념의 억압을 거부하고 삶의 발랄함을 추구하는 미의식이다. '우아미'는 일상성을 긍정하며 조화롭고 균형을 잘 갖춘 대상을 선호하는 미의식이다.
근대 미학을 체계화한 이마누엘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form of finality without an end)'을 '미'라고 규정했다. 튤립 꽃봉오리는 그 형태의 완성도가 인간을 매혹시키는 것이지, 그것에 대한 식물학적 지식이 인간의 미감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의 형식에 대해서이지 그것의 내용에 대해서가 아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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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목적성
목적
이란 아직
현실성을 지니지 않는 표상 내지 개념
이다. 그러한 목적 개념에 적합한 존재방식을
현실의 무언가(행위 등)가 취하게 되면
그것은
합목적성
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태는 관점을 달리 하면 개념이 현실의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사태라고도 생각되기 때문에 합목적성을
개념이 현실에 대해 지니는 원인성
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성』 등도 고려하면 합목적성은 칸트의 초기부터 관심사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공간된 저작에 시야를 한정하고자 한다. 학술원판 전집 제1-9권에서 합목적성이 두드러지게 논의되는 것은 『판단력비판』이며, 합목적성 및 합목적적이라는 말의 사용횟수 가운데 70% 정도를 차지한다. 그 밖에 눈길을 끄는 것은 『순수이성비판』 및 역사철학에 관한 저작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주로 이성의 규제적 사용을 논의하는 부분에서 자연의 합목적성이 말해진다.
이성
의 기본적 성격
은
전체성 · 통일성을 욕구하는 것
인데, 이것은 이론적 분야에서는 자연 전체가 보편적인 (특수적인 것도 포함한) 연관체라는 이념, 즉 자연의 체계적 통일의 이념을 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이념에 적합한 존재방식을 자연이 갖추고 있다는 것은 객관적 타당성을 지니는 인식판단으로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의 합목적성
은
자연인식을 규제적으로 이끄는 형식적 원리
인 데 그친다.
『판단력비판』은 전체로서 『순수이성비판』에서의 형식적 원리의 내용을 채우는 합목적성에 관계한다. 다양한 합목적성 개념의 명료한 구별과 정리는 독립된 연구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제1부에서는 주관적(경험 주체의 마음의 능력에 관계하는) 합목적성이, 제2부에서는 객관적(주체의 감성과 기대와는 독립적인) 합목적성이 다루어진다. 주관적 합목적성은 형식적인 것과 실질적인 것으로 구분되는데, 논구되는 것은 미 및 숭고에 관계하는 전자이다. 미 및 숭고의 경험은 이론적 인식과는 다른 방식에서 인식 주체의 마음의 능력들의 전체적 통일을 가져오는 존재방식을 현실의 사물이 보여주는 경험이지만, 다만 현실의 사물의 실재에 관해서(실질적으로)가 아니라 그 표상에 관해서 형식적으로 합목적성이 경험되는 것이다.
이 경우 마음의 능력의 조화와 통일을 넘어서는 어떠한 목적도 없으며, 사물 측에도 그 표상의 합목적성을 넘어서는 어떠한 의도나 목적도 없다. 그리하여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는 언뜻 보아 모순된 특징 부여가 이루어진다. 제2부의 객관적 합목적성도 형식적인 것(기하학적 도형에서 보인다)과 실질적인 것으로 구분되지만, 논구되는 것은 유기체 및 자연 전체에 관계하는 후자이다. 칸트는 이것을 목적론적이라고 형용하고, 나아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구별한다. 유기체는 그의 모든 부분이 전체와의 관계에서만, 즉 마치 전체가 부분을 결정하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며, 또한 모든 부분이 그 밖의 부분을 산출하는 것과 같은 전체이다. 이것이 내적이라고 형용된다.
다음으로 자연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서 모두가 목적과 수단의 연관에서 다 드러나게 된다면 객관적 · 실질적 · 외적인 합목적성이지만, 칸트는 이에 더하여 외적 합목적성을 완성하는 것으로서 자연 전체가 그것에로 향하는 최종목적인 문화를 생각한다. 나아가 이러한 자연목적론을 보완하는 도덕적 목적론에 기초하여 창조의 궁극목적으로서의 도덕을 생각한다. 역사철학에 관한 저작에서는 주로
문화
및
도덕
과의 관계에서 합목적성이 논의된다.
-다케야마 시게미츠(竹山重光)
[네이버 지식백과] 합목적성 [合目的性, Zweckmäßigkeit] (칸트사전, 2009.10.1, 도서출판 b)
자연미
_
주관적인 합목적성 개념의 현시
_취미에 의하여(
감성
,
미감
과
쾌의 감정
을 매개로) 판정
자연목적_객관적 합목적성 개념의 현시_지겅과 이성에 의하여(논리적으로, 개념들에 따라) 판정
목적 + 현실의 무엇(행위 등)
초월적 원리
_대상이 인식일반의 객체가 될수 있도록 하는
선험적 조건을 표시하는 원리
본래 넘어서 있는 것, 요컨대 경험 또는
경험의 가능성을 넘어서 있는 것
을 의미한다. 칸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개념이 경험 및 그 가능성(가능적 경험)을 넘어서서 사용되면 모순에로 이끌리는바, 그것은 잘못된 사용이 된다. 그리하여 개념이 가능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지의 여부가 개념의 사용에 있어 중요하게 된다. 그 사용이 가능적 경험을 넘어서 있을 때에는 '초월적'이라고 말하며, 그 한계 내에 있을 때에는 올바른 사용으로서 '내재적(immanent)'(때로는 '토착적(einheimisch)')이라고 말한다.
번역어에 있어 이것과 유사한 말로 '초월론적(transzendental)'이 있다. '초월론적'과 '초월적'은 기본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칸트에 따르면 통상적인 경험을 분석해가면 예를 들어 경험에서 유래하는 우리들의 지식에는 사실상 경험에 없는 선험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칸트의 인식론은 경험의 분석을 통해 지식 내부에 있는 선험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월론적이란 실제로는 다소 다의적으로 칸트가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경험이 성립하는 조건으로서 그와 같은 선험성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본래 가능적 경험 내에서의 사용을 지향하는 순수 지성 개념(범주)은 선험적인 원리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경험적이고 내재적이다. 그러나
순수 이성 개념에는 경험을 넘어설 뿐 아니라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갈 것을 명령하는 원칙들이 존재
한다. 이것이 초월적이다. 그러면 모든 이성 개념은 초월적인 것인가? 그렇지는 않아서 이성 개념들 가운데서도 규제적 원리는 이념의 내재적 사용으로서 그 정당성이 승인된다. 그것이 내재적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을 근거로 하여 그 연장선상에서 예를 들면 가상적인 것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 상정에 의해 경험이 좀더 잘 설명되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규제적 원리는 인정된다.
그러나 칸트 철학 전체에서 보면, 특히 『실천이성비판』을 시야에 넣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론적 의도에서 '초월적'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실천적 의도에서는 '내재적'이라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제1비판에서 예를 들면 '신'과 '불사'의 이념들이 '초월적'이라고 하여 배제되었던 것이 여기서는 '내재적'이자 '구성적'이라고까지 말해지기 때문이다[KpV, Ⅴ 244]. 이러한 사정을 칸트 자신은 사변적 이성을 제한하는 비판은 그런 한에서 소극적이지만, 순수 이성의 실천적 사용을 확신하자마자 곧 적극적인 것으로 된다고 말하고, 또한 "신앙에 자리를 주기 위하여 지식을 폐기해야만 했다"고 말한다[B ⅩⅩⅩ].
-호소야 아키오(細谷章夫)
[네이버 지식백과] 초월적 [超越的, transzendent] (칸트사전, 2009.10.1, 도서출판 b)
반성적 판단력_
대상을
우리의 대상(인식일반의 객체)
으로 만드는 원리
대상들의 합목적적인 통일
통일--
동종성---->
특수화---->
연속성---->
유사성
다양성
동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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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사변적 관심에 따라 최고의 완전성 중 하나를 택해 체계적 통일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념들은 지성처럼 대상을 객관적으로 규정하거나 구성하지 못하며, 단지 주관적 원리인
준칙
에 불과하다
이념으로서의 합목적성
초월적 원리로서의 합목적성
이성 이념__전 자연의 합목적적 통일
보편을 찾아가는 능력__
반성적 판단력
미 규정성
객관적
지성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음
지성이 모르는 길
주어진 규정이 없는 상황
체계의 통일을 위해 이성이 가언적으로 사용될 때 요구되는 판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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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
합목적성
의 원리와
쾌
의
감
정
의 구분-----
과 욕구의 관계
과 지성의 관계
과 이념이 관계
감성적 쾌감_반성적 판단력의 감성적 표상과 연관_미의 영역_
지성적 쾌감_반성적 판단력의 논리적 표상과 연관_목적론의 영역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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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의한것
현시할 수 있는 개념들
이념
|______|
감관
에 의한것
이념
쾌락
취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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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도의 달성은 쾌의 감정과 결합되어 있다.
__
__
현시할 수 있는 개념에 의한 쾌,
체계의 통일을 노리는 이성의 관심이 반성적 판단력의 합목적성의 원리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을 때의 쾌감
자연 질서의 발견 + 체계의 통일
자연의 합목적적 질서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쾌감,
--
이념의 실현이 개인에게 있어서 항상 일관되게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합목적성의 원리가 쾌감의 유발에 결정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이념을 실현 또는 충족시켰을 때 느끼는 만족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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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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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목적성의 원리와 쾌감의 결합에 따른 두 체계

첫댓글 순수이성비판은 칸트를 왜 천재라고 하는지 알수있는 책이기는 한데..
저 같은경우는 목적하는바가 달라서인지 진짜 재밌게 읽기는 했는데
별로 도움은 안된책이라 기억에 남는 책이네요.
책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진짜 좋은 책이고 책 가격이 백만원이라해도 아깝지 않은 책이죠.
주변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책인데, 다만 제가 가는 길과 좀 다르다고 할까나.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고 천재적인 발상에 감탄하기는 하지만 거기까지인책.
모양주의 는 되고자하는것을 싫어합니다.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한자를 안쓰면 이해도가 떨어질겁니다. 저는 원래 한글전용론자였는데,
공부하다보니 한자가 없으면 이해력이 너무 떨어지더군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전용으로 학술서적을 쓰면 오독하기 쉽습니다.
@꼬마야 그리고 순수이성비판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칸트가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관련서적 번역이 많이 되고, 사람들이 쉽게 접할수있게됬는데,
읽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읽어서 이해하기 어려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늦게 읽었는데 한 30살쯤?? 그냥 술술 읽히던데요.
지금도 천재성이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내용은 별로 기억도 안나네요.
나한테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내용이라서..
진짜 어렵고도 어려운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학논고겠죠..
거기에 비하면 순수이성비판은 그냥 껌이죠.
@주월 한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철학공부라는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지식쌓기 수준뿐이 안되거든요.
철학의 분류나 방법론, 철학자들의 주장등을 안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이 지식이 아닌 통찰이나 지혜가되는건 손에 꼽을 정도뿐이 안됩니다.
제가 철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위함입니다.
순수이성비판을 쉽게 읽었던 이유는 그 만큼 고민을 많이 했던 문제라서 쉽게 읽은것이죠
칸트를 천재라고 하는 이유는 제가 논리적 틈이 없다고 확신하는 문제에서 틈새를 쫙쫙 벌리고
논리를 확장해나가는것을 보고 감탄한것뿐인데,
그렇다고해서 나한테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게할 정도는 아니었죠.
@꼬마야 패러다임쉬프트라는게 수많은 지식들이 쌓이고 그것들간의 모순이나 확장을 통해서 새로운 통찰을 얻는것인데
제 입장에서는 비트겐슈타인만한 사람을 못봤습니다.
칸트가 선배정도라고 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저한테는 스승이죠.
제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으니까요.
철학에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철학을 공부한다고해서 내 삶이 가치관이 변하는가? 저는 별거없다고 봅니다.
철학이 됬던 과학이 됬던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평생을 공부하고 고민하는게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위해서 살던 돈을 위해 살던 어짜피 죽거든요.
순수이성비판 쉽지 않지요. 원문을 제대로 한국인이 이해되는 용어로 해설해 놓은 책이라도 어려울듯 싶네요. 운좋게 마이클샌델 교수가 쓴 한국에 나온 "왜 도덕인가"라는 책으로 낸 것에 DVD 강의한 동영상이 있는데 비교적 쉽게 해석을 해서 강의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