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에휴"
남이 듣기에도 무거운 한숨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참을 현관 문만 쳐다보다, 이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엄마를 무슨 낯짝으로 보나-
지수는 고개를 숙이며 방 문을 열었다. 다행히 엄마는 집 안에 없는 모양이었다.
"성적표가 왔나?"
방 문 사이로 어지럽혀진 방이 눈에 보인다. 아침까지만 해도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었던 방이건만,
지금의 방 모습은 더럽기 그지 없다.
도둑이 든 건가? 하지만, 지수의 방 외의 방은 모두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침대와 바닥, 책상에 어지럽혀진 찢어진 종이 조각. 이게 뭐지, 그 중 제일 큰 조각을 집은 지수는 그 조각을 자세히 쳐다본다.
조각조각 나 뭐라고 적혀져 있는지 자세히 알 순 없지만,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자기의 꿈을 향한 발걸음, 자기가 오랫동안 그려 오던, 만화의 일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이번 시험의 성적표라는 것도.
* *
"이번 겨울방학에 뭐할거니?"
"음…"
"나, 미술학원 다니면서 배우고 싶은데"
"그런 거 말고, 공부! 영어나 수학, 또 뭐 배워야 하는 거 있니?"
* *
상담가 앞에 앉아있는 지수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한 눈치였다.
"꿈이 뭔가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는 상담가에게 지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만…화가요"
* *
"엄마, 나 뭐가 될까?"
"응? 엄마는 네가 원하는 거. 네가 원하는 거 했으면 좋겠다."
"나, 만화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봤는데, 만화가 외에 그다지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흥미 있는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고"
엄마가 지수를 바라본다. 음… 기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화난 표정도 아니었다.
"아직 중3이잖니? 벌써 그렇게 꿈을 정해버리는 건….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좀 더 많이 알고 정하는 게 어때? 그리고…"
"…"
"만화가는 너무 힘든 직업이잖아. 돈도 얼마 못 받고, 밤낮 바꾸면서 살아야 하고, 원고 제출기간만 되면 엄청 힘들잖아?
엄마 친구 중에 만화가가 있어서 아는 거야. 그 친구도 엄청 열심히 일하는데, 돈도 얼마 못 받고. 다시 생각해 봐, 지수야"
엄마는 무조건 돈이었다.
* *
오늘도 집은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게 아닌데, 조용할 뿐이다. 각자 자신의 일만 하고서, 다른 사람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
삭막한 가정, 그 단어로 우리 집을 다 표현할 수 있다.
동생은 방에만 틀여 박혀 있다, 학원 갈 시간이 되면 나올 것이다. 아빠? 아빠는 회사일 때문에 휴일에만 올 거고,
엄마는 늦은 시간 집에 들어와 씻고, 조금 일을 더 한 후에 잠에 들 것이다.
그리고 나? 방에 틀여 박혀 노래를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공부를 하거나.
"에휴-"
오늘의 방은 어제와 달리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다. 어제 저녁 내내 눈물을 머금고 청소를 한 결과이다.
"왜 사니, 난."
어제부터 오늘까지 엄마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별로 할 말 조차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노래를 켰다. 소리를 최대한으로 키고서, 아무 생각 없이 연필을 움직였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도 엄마가 빨리 들어왔다. 죽을 맛이었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렸지만, 아무 것도 못 들었다는 척 음악소리를 킬 뿐이었다. 엄마와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
"문 열어봐, 한지수!"
아무 것도 못 들었어,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면서 계속 연필을 그려나갔다. 사람의 형체가 점점 드러난다.
"지금 시위하는 거야? 엄마가 그거 찢었다고? 문 안 열어? 개나소나 하는 만화가 되서 뭐하겠다는 거야!
단칸방에서 빌빌대면서 살거니? 지하방에서 덜덜 떨면서 살거니?"
"…"
"너 그렇게 공부는 안 해서, 커서는 뭐가 될 거니?"
말했잖아요, 만화가. 엄마가 그렇게 싫어하고, 돈 못 벌고, 힘든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요.
방 문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친 모양이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난 정말 커서 뭐가 될까, 내가 가진 재주는 아무 것도 없는 걸까, 내 머리는 좋지 않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미술이 좋다.
- 제 상상과 경험을 토대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첫댓글 경험...... 힘내시기 바래여!!~`
요냔..올렸네? 그냥 보기만해도 내 얘기같고 슬픈데 너랑 내 상황을 빗대서 보면 더 슬푸다 짜증나게..ㅋ 너는 그런 재주라도 있어서 고민이라도 할 수 있지 나는 뭐..에혀.. 암튼 님 홧팅 지금 셤보고 있지 잘보고 ★.★사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