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문화
사막에서 월급 받습니다.
어선에서 짐 나르는 세이렌이고요.
서요나
시나 소설을 쓰는 일이 예술이라는 카테고리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앞서 그것을 막연하게 하나의 직업이라는 종류로 생각하던 시간은 고등학교를 재학하던 시절까지였다.
성인이 되기 직전 무렵 작은 문학 동호회에 가입하여 어울리기 시작하고,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학부 생활을 하면서부터 주변에 포진하게 된 글쓰기의 동료들과 동문들이 문학을, 시를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때로는 벅차오르듯 예술, 두 글자로 부르는 환경에 진입했고 그 공기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내게는 예술이라는 함의보다 앞서 말했듯 직업, 좀 더 정확하게는 전문성이라는 단어가 남모르게 중요히 여겨졌던 것 같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기 약 두 학기 전쯤, 그 두 개의 단어를 사석의 어느 동문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언급하게 된 상황이 있었다.
‘문학을 직업 삼겠다는 사람들이 글에 관한 전문성을 갖추려는 노력은 회피하려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
어렴풋한 기억을 되짚자면, 아마 그 자리의 나는 출판시장으로부터 지정되는,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의 도서들, 특히 개중에서도 문학 장르의 책들이 품고 있는 내용에 대한 비관이나 공허함 등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대화를 더 탄력 있게 이어 나갈 수 있었다면 결정적으로 짚어내고 싶은 말은 ‘베스트셀러는 외부로부터 어떻게 기획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전혀 귀결되어 나가지 못했다.
그 동문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빠른 말로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갖추기 이전에 그걸로 돈을 벌면 이미 직업이지’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발화되는 동문서답이라고 여겼던, 또는 무시했던 그 말이 전생과 이생 사이쯤 일이었던 것처럼 기억 속에서 바래질 때쯤 시인으로서 첫 책을 출간했다.
첫 시집의 출간 이전과 이후는 확실히 다르다고 일찍 느꼈다.
그때부터 내 글에 대한 수요는 본격적으로 적든 많든 정확한 숫자의 금액으로 환산되었다.
내 책이 라이센스가 되어 돌아오는 걸 목격하는 듯했다.
특히 작은 자리에 사례비가 걸린 글쓰기 관련 특강을 초청받거나, 어쩌다 한 번은 특정 문학관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듣는 것(사실 문학관의 존재는 내게 다소 추상적인 대상이라 그곳에 소속되어 일을 한다는 개념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 유보를 하기도 했다) 혹은 백일장이나 특정 대학 내, 지역기관 등에서 하는 소소한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맡을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겨나는 것을 겪으며 문득 처음 느꼈던 지점이 있었다.
작가 일을 하면서, 예술 노동을 하면서 수입을 얻는 방식이 보기보다 인디적이지 않다는 것,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묘한 구조였다. 소위 신인 작가가 등단을 했을 때 그 어떤 공식적인 서류나 물성을 갖춘 증證은 일체 부여되지 않으면서도 작가라는 이름은 분명하게 어떤 사회적 라이센스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 역할이 모두 급여로까지 마무리되면서.
물론 이것이 일반 공·사기업에 소속되어 근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벌이처럼 고정적이고 순환적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구태여 표현하자면 그 시스템보다는 조직적이지 않고 덜 안정 돼 있으면서도 동시에 완전하게 독립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아직 모호한 경제 활동의 형태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문학 지원사업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도 데뷔 후 초기였다.
책에 대한 출간지원, 문학 나눔 도서 중쇄, 지면 발표 지원, 지역도서관 상주작가 프로그램, 그 외 창작촌 입주에 관한 지원사업 공모 등 개인이 집필활동을 하는 데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기여가 되는 다양한 지원사업들이 각종 재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대부분의 사업은 등단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여 본인의 작품 원고 혹은 지원서 접수를 통해 심사나 서류 검토를 거쳐 선발되는 형식이었다.
경쟁률은 두말할 것 없이 치열했다. 난생처음 창작촌 입주자 모집 공모에 지원서를 넣어보기 전부터 어차피 그럴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 이미 들었다. 나 또한 그렇게 몇 차례 접수를 하고 수혜 받기를 시도 해봤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선정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첫 시집이 나오기도 훨씬 전, 사석 술자리에서 또래이자 선배 시인들이 그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눴고 나는 옆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은 이번에 또 떨어졌다. 누구는 지난번에 이어서 또 됐다더라, 이러이러한 식으로 지원서를 작성하는 게 선정 노하우라더라, 그거 사실은 다 순번이 있다, 내 차례가 오면 다 되게 돼 있다, 그러니까 선정이 몇 번 안 됐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누구는 출간지원은 받아놓고도 출간을 못 하고 있어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더라, 지원 조건으로 주어진 기간 내에 단행본을 못 내면 어떻게 되는 건가, 한 번에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있었다.
그랬다. 정보. 정보가 있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직업으로 작가에 대한 인지는 은연중에 내 안에서 변해가고 있었다.
정보의 반대말이 있었다면 혹 무엇일까,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사유라는 단어였을까? 스스로 대답해 보았다.
분명히 습작기 시절에는 절대적으로 사유만을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사유하여 어떻게 더 질 좋은 글을 쓸 것인가.
어떻게 내 의식 안에서 좋은 것들을 바깥으로 밀어낼 것인가.
데뷔를 하고 업이 되면서 방향은 반대로 뒤집혔다.
아니 단지 하나의 방향이 더 증가했다고 봐야 옳았다.
어떻게 하면 바깥의 정보들을 나한테 최대한 많이 유입시킬 수 있는가. 어떤 정보들을 어떻게 얻어야 하나. 어떤 일거리, 어떤 지면, 어떤 출판사, 어떤 지원사업, 어떤 소속.
이쯤 되니 문득 농담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습작기가 길면 길수록, 그 밀려드는 외부 정보의 폭포들을 거슬러 내 안의 집필자로서의 사유가 매몰되지 않고 밖으로 무사히 스며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데뷔 이전의 모든 시간이 그러한 몸을 구성하기 위한 훈련의 시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간접적으로 듣고 보게 되는 타 작가들의 생활은 신기했다. 물론 막상 나 또한 가까스로나마 다르지 않게 그 생활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생계 보존과 정보 습득은 그것대로, 창작자로서의 사유는 또한 변함없이 그것대로, 마치 두 개의 행위가 전혀 다른 시공간의 움직임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동시에 두 갈래로 그들은, 우리는 직진해 나갔다.
개중에 심지어 9 to 6의 타임으로 출판사에 출퇴근하며, 또는 대학이나 예술고등학교에 주기적으로 강의를 나가면서 거기에 집필 작업까지 동등한 밀도로 이어 나가는 동료들에 관해선 감히 어떠한 감탄조차 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쌓일수록 그 이중의 노동은 더더욱 익숙해져만 갈 것이었다.
두 개의 평행선을 전진하여 나가는 생활.
하나는 말 그대로의 전진, 또 하나는 겉으로는 전진처럼 보이나 실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세상.
잊을 뻔했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입이 있었지.
노래하는 입, 먹는 입.
나는 무심코 바다 한가운데에서 홀로 노래하는 세이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렸을 적에는 세이렌 같은 고독한 신화의 괴물들에 관해 의문을 가졌었다.
저들은 저렇게 영원히 한 곳에 붙박여 홀로 있으면서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고 있는 건지.
마치 먹을 필요도 마실 필요도, 그것을 위한 자본과 화폐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우리는 쓰고 노래하다가 한 번만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귀를 막았다 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종족이 되곤 했다.
무조건 먹어야만 하고, 불가피하게 마셔야만 하고, 먹기 위해, 마시기 위해, 잠잘 곳을 지키기 위해 벌지 않으면 무너지는 종.
우리는 누구였을까. 누구로 살아가는 것일까.
실은 예술가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의 세이렌이 아니었지. 하지만 세이렌의 노래에 홀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귀를 틀어막는 어선 위의 땀 흘리는 어부들도 아니었지.
세이렌의 노래를 부르는 어부로 살아갈까, 어선에서 짐을 나르고 뼈가 빠지게 노를 젓는 세이렌으로 살아갈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관료들은 그냥 세이렌에게도 봉급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세이렌도 굳이 거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농담으로 급하게 결말을 맺는 신화 이야기처럼 생계사회는 빠르게 정립됐다.
예술가의 신체 속을 차지하고 있는 혼자의 세계와, 공동체의 세계.
저택의 실내와 발코니처럼.
실내가 너무 튼튼하고 미로와 미궁처럼 복잡하며 캄캄해서 나머지 반쪽이, 맨발로 걸어 나와 마주했던 실외의 바람이 너무 거칠고 추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바람도 폭풍도 미처 들이닥칠 수 없는 우리들의 실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때 그 동문은 내게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었다. 전문성 이전에 돈을 벌면 ‘이미’ 직업이 된 거라고. 글쎄, 이미라는 부사가 그 자리에 배치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다 가진 모국어 활자 하나로 유독 일생에 걸쳐 나를 표현하는 이 일조차 평생 내가 작품 속에 들이는 문자들의 양에 비례할 만큼 커다란 생계 네트워크를 등질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이 업종도 엄밀히 ‘남’의 돈’ 버는 일이라는 사실을, 외부의 바람으로 움직이는 커다랗고 무거운 배라는 사실을 그때 그 동문은 지금쯤 알게 됐을까.
내가 작가로서 이미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계로 인해 좌절하거나 멈추지 않을 수 있게끔 지탱시켜 주는 소위 사회 안전망이 ‘이미’ 형성돼 있는 것이고 나는, 또 너는 누구보다는 늦게, 누구보다는 일찍 거기에 소속될 수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것을 ‘내가 순전히 나의 문학으로 버는 돈’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조심스럽게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 사람에게는 두 쌍의 눈이 있었더랬다.
눈물을 흘려보내는 눈과 외부 세계를 보며 들여보내는 눈.
그러나 외부 차원의 모든 것을 흡수하면서도 타자의 눈물은 한 방울도 빨아들일 수는 없는 그런 눈.
살수처럼 숨어 오직 소리 없이 몰래 포착만 하고 목격만 하는 차가운 눈. 그 서늘한 눈 속에서 너무 따뜻한 눈물을 흘리는 당신의 얼굴.
당신은 이생을 마치고 나면 어떤 체온의 눈을 남기고 싶었나요?
이러한 이중의 세계 이전에, 이중의 신체를 끌고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끝으로 그러나 그중 한 쪽의 힘만을 여전히 믿고, 남기며 붙잡고픈 나의 개인적인 기원에 관해 주절거리고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예술은 문명이라는 거대한 몸체의 유해라고 생각합니다.
소멸해 간 원시와 고대의 유적들은, 단서들은 더 이상 당대에 재화와 문화를 공급하고자 작동하는 기능으로서가 아닌 오직 형태와 형상으로 우리에게 계승되어 역사의 기류와 이후 세대를 리좀의 방식으로 조우시킵니다.
기능으로의 개입이 탈락한 채 오직 형상의 위상으로만 우리를 이끌고 움직이는 존재, 알 수 없는 먼 미래에 이 행성의 내륙들이 모두 물에 잠기거나 화염에 타 재가 되었을 때 너와 나 육신의 유해보다 더 끈질기게 퇴적 위로 솟아나 노출되고 마는 것이 예술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노동이, 현재를 살아갈 인간들의 땅을 일구는 동안 예술은 지금도 인류가 종말하여 살지 않을 이후의 종에게 토템을 바쳐 창공을 물려주는 중이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