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춘추
91세 ‘청년’ 선배님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43호(2023.06.15)
강경희
외교84-88
조선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대한민국 1호 경제수석이었던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조선공학과 50학번으로 1932년생, 올해 91세이시다.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고 공학도가 됐고, 전쟁통에 부산항에 입항한 미국 군함을 보면서 배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진로를 정했으며, 1950년대에 해외에 문 두드려 당대 최고의 조선소 일자리를 뚫었고 세계 양대 선급협회 국제검사관까지 된 국내 조선업계 선구자다. 196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 엘리트 엔지니어를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했고, 3년 뒤 신설된 경제2수석에 기용했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의 최빈국에서 대통령 최측근 테크노크라트로 특채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경제를 ‘그랜드 디자인’한 비화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이 지금도 국가의 멋진 미래를 꿈꾸며 지적 호기심도, 국내외 활동도 왕성한 ‘91세 청년’의 사고방식과 일상이다. 양철 한 조각 못 만드는 나라에서 세계 최대 조선소 기획안을 짰던 그의 담대한 꿈은 반세기도 안 돼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성취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초대형 선박을 설계하고 감리하는 일을 해온 덕분인지 시선은 좁은 국토에 갇혀 있지 않고 늘 5대양 6대주를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선박 배기가스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탄소 포집 기술을 찾아내 은퇴 나이에 창업을 했고, 부산항을 차세대 메탄올 선박의 세계 해상 주유 거점으로 만드는 놀라운 구상을 설파하며, 지구적 관심사인 해양 쓰레기 문제 처리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니 세계 조선해양업계 거물들이 지금도 그를 찾는다. 세상에 없는 것에 먼저 도전하는 ‘퍼스트 펭귄’의 삶이 그를 나이 먹어도 늙지 않는 청년으로 만드는 듯싶었다.
정신만 청춘인 게 아니라 외모조차 구순 나이란 게 믿기지 않아 20대들 사이에 ‘이길여 누님’이라 불리는 가천대학교 이길여 총장의 빛나고 유쾌한 행보는 또 어떤가. 사무엘 울만(1840~1924)은 78세에 ‘청춘’이라는 시를 썼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단지 나이를 먹는다고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다/…/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히면 비록 스무살이라도 늙은 것이며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다면 여든이라도 영원한 청춘이다.”
명문대 졸업장이 인생의 최정점인 ‘20, 30대 노인’이 있는가 하면, 드넓은 세상을 교과서 삼아 평생 도전하고 열정이 식지 않는 ‘80, 90대 청년’도 있다. 길어진 삶,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멋진 인생 선배들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