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9iaLagY3CSs
* 찬송 320장
<베드로전서 5:2-4>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1절 말씀에서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라는 말씀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지요.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이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다시 만나신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 물으신 적이 있지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는 답변했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명령 겸 부탁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또는 ‘내 양을 치라.’ 여기서 ‘내 양’ 누구일까요?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은 ‘내 양’ 즉 예수님의 양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장로들, 즉 교회 지도자들을 권면하면서 성도들을 2절 첫 부분에서처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제가 이 교회에 담임목사입니다. 목사라는 칭호는 양을 치는 목자와 같은 개념이지요. 여러 성도님들은 양들인 셈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가 목자고 여러 성도님들은 양이니까 여러분들은 저의 양입니까? 세상 목자들 중에는 자기 양을 직접 기르는 목자들도 많겠지만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자, 즉 목사는 자기 양이 없습니다. 오로지 본문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양 무리들일 뿐이지요. 여러분들은 저의 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양들이지요. 저는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아 선한 청지기 같이 목자로서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풀을 먹이고, 참된 신앙의 길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지도자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를 지배하는 권세를 부려서도 안되고, 하나님의 양 무리들을 제맘대로 이끌어서도 안되지요. 저는 그냥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뜻을 받들어 여러 성도님들을 목사로 섬길 뿐입니다.
목사가 그렇다면 장로는 성도들을 내 양으로 여겨야 하겠습니까? 안수집사나 권사는 이 교회가 내 소유의 교회인 것처럼 행세해야 하겠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성도들도 교회지도자의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 무리들이지요. 그러기에 교회 지도자들은 지배하고 주관하고 통치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주님의 종들이고, 종으로서 이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직책일 뿐입니다. 여전히 항존직을 자기 명예나 교회 안에서의 자기의 권세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심한 경우에는 직분자로서 섬기는 모습은 없고, 단지 정치적인 요령으로 말만 앞세우면서 자기 주장을 고집하고, 그래서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경우들도 있지요. 많은 교회들이 분열과 다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주범들이 평신도들이겠습니까? 아닙니다. 99% 항존직분자들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의 양무리를 친다는 의식보다는 이 교회가 내 것이고, 그러니까 내 의견과 내 생각대로 따라야 한다는 교만함을 드러내는 자들일 뿐입니다.
2절을 다시 보면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억지로 한다는 말은 사실 말이 되지 않지요. 하나님의 충성스런 일군이 되겠다고 서약하고서 직분자가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는데 억지로 하게 된다면 직분자로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종이 주인에게 내 입맛과 취향에 맞는 일만 맡겨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까? 무슨 명령을 내리든 종들은 불평없이 진실하게 순종해야 하는 겁니다. 억지로 한다는 것은 주인이신 하나님과 소통이 안되거나 뜻이 맞지 않거나, 내가 주인 노릇을 하려는 교만함 때문이지요. 그래서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자원함으로 하라는 말씀에도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지요.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원함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원하는 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지는 거죠. 내가 자원해서 하니까 내 맘대로 내 의지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자원해서 하니까 열심을 내고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자기열심을 앞세우면서 자기생각대로 하려고 하는 거죠. 이런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사도베드로는 자원함으로 하려는 것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반드시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
지도자, 직분자로서 염두에 두어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 다음 2절 후반부에 보면 ‘더러운 이득을 위하려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절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이득에 더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요. 교회생활에서 금전적 이득이든 명예와 자존심과 남들에게 인정받는 쾌감과 내 뜻대로 무언가를 밀고 나가는 자기권세를 과시하는 이득이든 모든 이득은 더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지요. 예수님의 그 희생과 헌신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무슨 이득을 생각하고 기대합니까? 일반 초신자라면 모르겠으되 교회를 섬기겠다고 서약하면서 직분자 된 자들이 그런 이득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러운 이득입니다.
그래서 더러운 이득이 아니라 기꺼이 하라고 말씀하지요. 기꺼이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기꺼이 손해보고, 기꺼이 양보하고, 기꺼이 남을 앞세우고, 기꺼이 내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지요. 맡은 자들 즉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 무리들에게 주장하는 자세 즉 제멋대로 지배하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가능한 큰 소리가 없어야 합니다. 내 큰소리를 들어야할만한 종과 아랫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내가 어떤 어린아이에게 큰소리치면 그 아이의 부모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교회에 큰소리치고 성도들에게 큰소리친다면 그 양무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많은 교회들이 회의 할 때 큰소리치고, 성도들 간에도 분열되어 서로 큰소리치기도 하지요. 적어도 교회안에서만큼은 본문의 말씀처럼 큰소리치며 주장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대신 3절 마지막에서처럼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하는 거죠. 지도자는 양무리들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게 첫째 역할입니다. 일 잘하고 헌금 많이하고 봉사 많이 하는 것은 다 둘째 셋째 역할이지요.
4절 말씀에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정직하고 진실하고 겸손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종에게 내리시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첫댓글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교회 지도자들, 직분자들, 먼저 믿은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게 됩니다.
지도자들, 직분자들이 말만 앞세우면서 자기주장을 고집하고 큰소리치며 주장하는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도들의 본이 되며 봉사하며 믿음이 약한 자들이 행여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들로 굳건히 서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지요. 맡은 자들 즉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 무리들에게 주장하는 자세 즉 제멋대로 지배하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가능한 큰 소리가 없어야 합니다. 내 큰소리를 들어야할만한 종과 아랫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내가 어떤 어린아이에게 큰소리치면 그 아이의 부모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교회에 큰소리치고 성도들에게 큰소리친다면 그 양무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많은 교회들이 회의 할 때 큰소리치고, 성도들 간에도 분열되어 서로 큰소리치기도 하지요. 적어도 교회안에서만큼은 본문의 말씀처럼 큰소리치며 주장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대신 3절 마지막에서처럼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하는 거죠. 지도자는 양무리들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게 첫째 역할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