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옥천 자연속학교 [4. 27 - 5. 2]
자연에서 일과 놀이로 자란다.
2026년 봄 자연속학교는 충북 옥천에서 열렸다. 지난해부터 10년 넘게 다니던 전남 화순을 떠나 더 가까운 옥천으로 자리를 옮겼다. 옥천은 오래전 대안교육연대 교사한마당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고, 꽃피는학교가 문을 닫은 뒤 남겨진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다시 아이들이 뛰고, 노래하고, 밥을 먹고, 꽃을 심고, 빨래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특별한 뜻이 있었다.
이번 봄 자연속학교의 큰 줄기는 자연속학교 철학처럼 ‘자연에서 일과 놀이로 자란다’였다. 제철 미나리를 실컷 먹고, 족대질로 물고기를 잡고, 장령산과 영국사로 지역 탐방을 갔다. 압화 공책을 만들고, 꽃을 심고, 빨래를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다른 학교 어린이들과 몸놀이를 하고 보물찾기를 하며 어울려 놀았다.
모든 활동은 따로따로 흩어진 체험이 아닌, 자연을 만나고, 몸을 쓰고, 함께 살고, 글로 되돌아보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미나리를 뜯어 먹고, 미나리를 그리고, 미나리 노래를 부르는 일은 자연 공부이자 몸 공부이고, 생활 공부이며 예술 공부였다. 족대질로 물고기를 잡고, 물고기를 관찰하고, 시를 쓰고, 불을 피워 튀겨 먹는 일은 생태 공부이자 노작이고, 놀이이자 글쓰기였다. 자연속학교의 힘은 바로 연결에 있다. 놀이는 일과 이어지고, 일은 공부와 이어지며, 공부는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
자연속학교를 여는 까닭
맑은샘학교 어린이들과 선생들은 철마다 집을 떠나 자연 속으로 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남쪽으로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있는 하동, 남해, 해남과 청산도, 진도, 부안, 고창, 동쪽으로는 주문진, 북쪽으로는 원주와 인제, 서쪽으로는 춘장대와 덕적도, 그리고 나라 가운데 괴산과 옥천까지 다녔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열흘 가까이 함께 자고, 먹고, 놀고, 일하며 살아가는 자연 속 기숙학교를 열어왔다.
자연속학교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잠깐 보고 지나가는 체험학습도 아니다. 맑은샘학교가 오랫동안 붙들어 온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들살림, 산살림, 갯살림을 배우고, 계절에 따른 자연과 삶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는다. 그 고장의 문화와 역사, 마을과 사람을 만나며 배운다. 무엇보다 집을 떠난 불편함 속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꾸리는 힘을 배운다.
집에서는 부모가 해주던 일을 자연속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이 직접 한다.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더러워진 옷은 빨래를 하고, 잠자리는 스스로 정리한다. 함께 쓰는 공간은 함께 치우고, 함께 먹을 음식은 서로 힘을 모아 만든다. 자연속학교에서 어린이들은 공부만 하는 학생이 아니라 생활하는 사람이다. 자기 앞가림을 하고, 친구를 살피고, 모둠 안에서 제 몫을 해내며 조금씩 자란다.
도시 속 대안학교는 어린이 삶을 가꾸는 소중한 터전이다. 그러나 도시에는 경쟁과 소비의 유혹이 많다. 아이들이 자연의 흐름과 몸의 감각을 잃기 쉽다. 맑은샘학교가 자연속학교를 줄곧 이어온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몸, 살아 있는 감성, 스스로 움직이는 버릇을 길러준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놀고 일하는 시간은 아이들 삶을 깊고 넓게 만든다.
자연속학교는 아이들에게 “삶은 함께 사는 것”임을 알려준다.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께 씻고, 함께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은 말로만 배우기 어려운 공동체의 감각을 익힌다. 불편함을 견디는 마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 친구를 도와주는 손길, 선생과 부모와 마을 어른을 향한 고마움이 그 안에서 자란다.
부모 노릇과 선생 노릇을 함께 하는 교사들
자연속학교에서 교사들은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산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아이들이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누는 것까지 살핀다. 아픈 아이가 있으면 병원에 가고, 열이 나면 곁에서 살피고, 부모가 보고 싶은 밤에는 안아준다. 잠자리에 들 때 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로는 죽을 쑤어 먹이고, 물수건을 얹어준다.
어린이들과 함께 여는 기숙학교에서 교사는 선생이면서 부모가 된다. 먹고 자고 누는 것까지 살피며 살아야 한다. 실수로 오줌이나 똥을 눈 어린이의 속옷과 이불을 빨고 씻기는 일도 있다. 행여 다칠까, 아플까,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까 살피는 긴장은 무척 크다.
그럼에도 자연속학교를 여는 까닭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그만큼 자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주인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사도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자연속학교에서 교사들의 몸놀림과 호흡은 언제나 자랑스럽다. 누군가 먼저 나서서 하면 다른 선생이 조금 쉴 수 있다는 마음,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선생이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로 몸을 움직인다. 부지런한 몸놀림과 서로를 살피는 호흡이 자연속학교를 가능하게 한다.
자연속학교는 아이들만의 학교가 아니다. 교사들에게도 깊은 연수의 시간이다.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살아야 하니 교사는 자기 교육관과 생활 태도를 숨길 수 없다.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려운 순간에 어떻게 말하는지, 지친 몸으로도 어떻게 협력하는지 모두 드러난다. 그래서 자연속학교는 교사 집중 연수이기도 하다. 새내기 교사들과 경력교사들의 호흡과 부지런한 몸놀림, 저마다 애씀이 가득했다.
자원교사와 부모가 함께 만드는 교육과정
자연속학교는 교사들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부모들의 믿음과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이들 먹을 반찬을 만들고, 차를 빌려주고, 자원교사로 들어와 부엌살림을 맡아주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마을 어른들도 있다. 자연속학교는 이 모든 힘이 모여 이루어진다.
이번에도 자원교사들의 도움이 컸다. 부모님들이 자원교사로 들어와준 덕분에 선생들은 더 아이들 속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다. 자연속학교 때마다 자원교사로 오는 역사를 쓰며 부엌살림을 맡아준 양성현님과 오갈때 차량운전을 해준 서민호님, 많은 부모님들의 손길 덕분에 아이들의 자기 앞가림과 함께 살기는 더 풍성하고 알찼다.
자연속학교는 맑은샘 식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다. 부모가 잠깐 와서 보는 것과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보는 것은 다르다. 하루를 함께한 사람, 며칠을 함께한 사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산 사람은 자연속학교를 다르게 느낀다. 모든 어린이가 보이고, 어린이들과 어울려 사는 힘이 보이고, 선생들의 애씀이 보인다. 그리고 자기 자식뿐 아니라 공동체의 아이들이 함께 자라는 장면을 보게 된다. 믿음은 말로만 생기지 않는다. 함께 살아봐야 진짜 믿음이 생긴다. 자연속학교는 부모와 교사, 아이들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기 앞가림과 함께 살기의 힘
맑은샘 어린이들은 자연속학교 때 자기 앞가림과 함께 살기의 힘이 더 살아난다. 학교에서도 늘 실천하지만, 닷새를 함께 자는 기숙학교에서는 그것이 더 눈에 띈다.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함께 쓰는 공간을 치우는 일들이 하루의 중요한 공부가 된다.
자기 앞가림은 단순히 생활 버릇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공부다. 내가 입은 옷을 내가 빨고, 내가 먹은 그릇을 내가 씻고, 내가 머문 자리를 내가 정리하는 일은 삶의 기본이다. 함께 살기는 자기 앞가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친구가 힘들어하면 도와주고, 동생을 챙기고, 모둠 안에서 내 몫을 해내고, 공동의 공간을 살피는 일이다. 자연속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말이 아니라 몸으로 익혀진다. 아이들은 함께 놀며 배운다. 서로 도우며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함께 짜고, 동생을 챙기고, 친구를 기다리고,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교과서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깊고 오래 남는 배움이다.
위험과 도전
자연속학교 때마다 날마다 아이들과 크게 외치는 말이 있다. “사고는 순간이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내 몸은 내가 지키고, 서로 안전을 살피자.”
자연속학교의 모든 활동은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 밖에서 이루어진다. 운동장에서 놀고, 산에 오르고, 개천에서 족대질을 하고, 텃밭 일을 하고, 불을 피우고, 씻고, 층계를 오르내린다. 그러니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활동마다 구체 안전 규칙이 있다. 산에 갈 때, 물가에 갈 때, 불을 사용할 때, 놀이 구조물에서 놀 때, 씻을 때, 밥을 할 때마다 선생들은 살피고 또 살핀다. 그러나 아무리 눈길이 많아도 사고는 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도 자기 몸을 지키는 힘을 길러야 한다.
위험과 도전은 아이를 자라게 한다. 그러나 교육활동에서 위험과 도전은 반드시 안전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 자연속학교는 아이들을 위험에서 완전히 떼어놓는 학교가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만나는 위험을 알고, 조심하고, 서로 살피는 힘을 기르는 학교다. 아이들은 자연속학교에서 배운다. 내 몸은 내가 지켜고. 친구의 안전도 함께 살피고. 자유롭게 놀기 위해서는 책임이 필요함을, 도전은 조심과 함께 있을 때 배움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배운다,
옥천 자연속학교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2026년 봄 옥천 자연속학교는 많은 것을 남겼다. 아이들은 제철 미나리를 실컷 먹었다. 족대질로 물고기를 잡았다. 장령산과 영국사로 지역을 탐방했다. 천 년 은행나무를 만났다. 차를 쓰는 날은 하루 뿐이었고 줄곧 한 곳에 머무르며 마을과 잠집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압화 공책을 만들고 꽃을 심었다. 날마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다른 학교와 몸놀이와 보물찾기로 어울려 놀았다. 일과 놀이 노래에 맞춰 춤을 만들었다. 자연속학교를 글로 되돌아보았다.
겉으로 보면 많은 활동을 한 엿새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더 깊은 흐름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일과 놀이가 나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일은 놀이가 되고, 놀이는 공부가 되고, 공부는 다시 생활이 되었다. 선생들은 부모 노릇과 선생 노릇을 함께 하며 아이들과 살았다. 부모와 자원교사는 자연속학교를 뒤받침했다. 아이들은 집을 떠난 불편함 속에서 자기 마음을 키웠다. 자연속학교는 언제나 부족함이 보이는 자리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더 세밀하게 안전을 살펴야 하고, 교사들의 체력도 돌봐야 하며, 아이들이 더 주도로 준비하고 이끌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자연속학교는 해마다 성찰을 남긴다. 그러나 부족함이 있어도 자연속학교를 줄곧 여는 까닭은 분명하다. 자연이 부족함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힘이 부족함을 넘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 안에서 분명히 자라기 때문이다.
자연속학교는 맑은샘의 역사다
자연속학교에서 아이들과 선생들이 함께 보낸 순간순간은 맑은샘학교의 역사가 된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 미나리를 씻던 손, 빨래를 함께 짜던 몸짓, 물고기를 잡고 환호하던 소리, 밤에 이야기를 듣고 잠들던 얼굴, 깔깔콘서트에서 웃던 마음이 모두 학교의 역사다. 학교의 역사는 건물이나 문서에만 남지 않는다. 함께 살아낸 시간 속에 남는다.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자연속학교에서 이런 시간을 보냈다”고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교육은 오래 살아 있을 것이다.
자연속학교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자연속학교는 삶이다. 맑은샘학교가 믿어온 교육의 방식이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일과 놀이로 자란다. 불편함 속에서 마음이 자라고, 함께 살며 관계가 자라고, 자연을 만나며 감각이 자라고, 자기 앞가림을 하며 삶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교사들도 함께 자란다. 부모들도 함께 배운다. 공동체 전체가 자연속학교를 통해 조금씩 깊어진다. 2026년 봄, 옥천 자연속학교는 그렇게 또 하나의 들살이 추억으로 남았다. 그 추억은 아이들 몸과 마음속에 오래 살아, 언젠가 도시와 경쟁과 소비의 유혹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고 더불어 살아가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숨어 있는 교육과정, 맑은샘교육공동체 들살이의 기억
자연속학교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교육과정이 있다. 장령산 산행, 영국사 지역 탐방, 압화 공책 만들기, 꽃 심기, 미나리 요리, 빨래, 몸놀이, 보물찾기, 족대질, 글쓰기, 노래와 춤이 그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숨어 있는 교육과정이다. 함께 자고 함께 먹는 일, 불편함을 견디는 일,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는 일, 부모가 보내준 반찬을 나누어 먹는 일, 마을 어른의 따뜻한 말을 듣는 일, 밤에 집이 그리워지는 마음을 안고 잠드는 일, 부모와 교사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들이 그 보기다.
아이들은 자연속학교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배운다. 몸으로 기억하고, 마음으로 간직한다. 함께 살았던 냄새, 밥맛, 흙의 감촉, 물살의 차가움, 밤의 어둠, 친구의 웃음소리, 선생의 손길이 아이들 안에 남는다. 들살이의 추억 또한 맑은샘학교가 오래 붙들어 온 숨은 교육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