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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알아가기 시리즈4
세시고 달아보시는 하나님
참고말씀: 창17:1; 삼상2:3,4,7; 왕상3:9; 욥31:4; 시37:5; 146:3,4; 147:4,5; 잠3:5,7; 16:3; 23:4,5; 사40:31; 단5:5,17,24,25,30,31; 슥4:6; 마5:48; 7:21; 눅12:7; 롬3:10; 고전10:12; 고후5:14; 갈5:16; 엡2:1,5; 5:15-17; 약1:5; 3:2
읽을말씀: 단5:25-28; 시90:12
주제말씀: 단5:26,27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세어보시고 달아보십니다.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단5:26,27)
오늘 우리가 배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세어보시고 또 달아보시는 하나님입니다. 무엇을 세어보시고 달아보십니까? 한 개인에서 시작해서 나라들까지 그리하십니다.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단5:27) /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단5:26)
본문은 어떤 내용입니까?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그 교만과 폭정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그에게 경고하셨습니까? 사람의 손가락 같은 것들을 보내서 왕궁의 석회벽에 글자를 쓰게 하심입니다.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단5:5)
누가 이 글자들을 해석해 주었습니까?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단5:17) /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글을 해석하건대...”(단5:24,25)
참고로, 여기서 ‘메네’와 ‘데겔’은 각각 무슨 뜻입니까? ‘세다’와 ‘무게를 달다’ 입니다. 여기서는 무슨 의미로 사용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의 시대를 세어보시고 또 달아보았다는 의미입니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단5:26 중) /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단5:27 상)
그랬더니 하나님 앞에 부족함이 보였으므로,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단:27 하)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끝나게 하시고,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단5:26 하) 나누어지게 하시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단5:28)
이 같은 예언은 언제 성취되었습니까? 바로 그날 밤입니다. 즉 바벨론 수도를 포위하고 있던 메대와 바사 연합군이 그 날밤에 바벨론을 정복하고 벨사살 왕을 죽임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그 날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단5:30,31)
이처럼 세어보시고 달아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구절이 성경에 또 있습니까? 믿음의 여인 한나는 하나님을 ‘지식의 하나님’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동을 달아보시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삼상2:3 하)
참고로, 여기서 ‘지식의 하나님’이란 하나님의 전지성을 표현한 말로서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신 그분만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달아보시느니라’(히, 니트케누)의 원동사 ‘타칸’은 ‘무게를 달다’, ‘시험하다’의 뜻으로 공정하게 생각하고 균등히 측정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왜 한 개인을 세어보시고 달아보십니까? 교만하고 오만한 자들을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기 위함입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삼상2:3 상) /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삼상2:4) /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7)
왜 또 한 나라를 세어보시고 달아보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아서 부족한 나라는 끝내시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존속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의 문을 닫으시고 바사 제국의 문을 새롭게 여신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날들을 친히 계수하시는 분으로써,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우리의 말과 생각을 세어보시며 또한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시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둘째, 세시고 달아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남은 날들을 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누구만이 유일하게 세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시90:12 상)
무슨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의 별들도 능히 세실 수 있으시고, 우리의 걸음도 다 세시며, 우리의 머리카락도 일일이 다 세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시147:4) /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욥31:4) /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눅12:7 상)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날들을 능히 세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세시고도 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147:5)
그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까?
① 우리 날 계수함을 배우겠다는 자세.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시90:12 상) 물론 우리가 우리의 날을 계수하고 싶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지는 않으십니다. 대신 무엇을 주십니까?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하) 지혜로운 마음만 있으면 우리의 남은 날을 다 셀 수 없어도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왜 지혜로운 마음만 있으면 우리의 남은 날을 세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날들이 얼마나 남았느냐를 아는 것보다, 오히려 (그날이 얼마나 되었든 간에) 그 남은 날들을 얼마나 지혜롭게 잘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얼마나 남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비록 천년을 산다고 해도, 지혜롭게 살지 못하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삶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단 하루를 살더라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인생이 복 받는 인생인 줄 깨닫고, 지혜가 부족할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참고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쳐달라’(시90:12 상)는 말은 실제로 우리에게 남은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를 가르쳐달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짧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도록 지혜로운 마음을 부어달라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하)
그렇다면 어떤 마음이 곧 지혜로운 마음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5-17)
어째서입니까? 성경에서 ‘지혜로운’(히, 쉐메아)은 ‘듣는’, ‘귀 기울이다’는 뜻으로써, 이는 참된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깨닫는 데서 비롯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9)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날 계수함을 배우겠다는 자세가 곧 지혜로운 마음을 구하는 자세로써, 이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깨닫고, 모든 일에 항상 그리하고 있습니까?
② 모자람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려는 자세.
우리를 세어보시고 달아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또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까? 모자람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려는 자세입니다. 왜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남은 날들을 일일이 다 세고 계시므로, 혹 모자람이나 부족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징계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벨사살 왕과 그의 제국 바벨론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드러나, 결국 패망하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단5:26)
그러나 우리는 원칙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이 불가능합니까? 완전하거나 완벽한 삶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는 모두 죄인이므로,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예외 없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으며,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부족하여서 언제든지 넘어지고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허물과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이라)”(엡2:5)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3:2 상)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며 온전해져야 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하)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슥4:6 중)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하) 예수님이 그 사랑으로 우리를 강권해 주시며, 성령님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 상)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대신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우리의 최선입니다. 우리는 완벽할 수는 없어도 최선은 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최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맡기기보다는 자기 뜻대로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사람이나 물질에 더 의지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자신의 힘이나 지혜를 과신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경고합니까? 말로만 주님을 찾지 말고 오히려 삶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대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람들이나 물질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만을 자신의 도우심으로 삼고 살아갈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7) /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146:3,4) /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 사람이나 물질에 더 의지하며, 자신의 힘이나 지혜를 과신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머지않아 무엇이 시작됩니까? 하나님의 카운트 다운(countdown)입니다. 10 ‧ 9 ‧ 8 ‧ 7 ‧ 6 ‧ 5 ‧ 4 ‧ 3 ‧ 2 ‧ 1 ‧ 0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단5:26)
이런 사람에게는 또 무엇이 선언됩니까? ‘함량 미달’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서 그 부족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단5:27)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세어보시고 달아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하나님만을 자신의 도우심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만이 하나님의 카운트다운을 멈출 수 있고, 하나님의 ‘함량 미달’ 선언을 막을 수 있음을 깨닫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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