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글을 올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워낙 까마득한 오랜 세월이
흘렀고 또 함께 군대생활하던 친구들도 이젠 모두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테니...
군대생활 말년 한신병이 들어왔는데 군대생활 하는게 참으로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눈여겨 보게되고 속된 군대말로 상황파악
하고 눈알돌리는게 웬만한 고참보다도 낳다
은근하게 접근 서로 친밀해지다보니 어느날 자기 속사정을
털어 놓는다
자기는 시골깡촌 출신인데 먹고살기위해서 군대에 자원입대
할려고해도 나이가 어려서 안되드라고 그래서 자기형 이름으로
해병대에 자원입대 청룡부대로 월남에 다녀왔다고 한다
만기 제대후 또 자기앞으로 영장이 나와 다시 육군에 들어오게
된거라고... 다시 월남파병을 위하여 지원신청서를 냈는데 당시
엔 파병이 아니라 한참 철군하던 시기라 이신병이 많이 실망을
한다...
한번하기도 힘든 군대생활을 두번씩이나 하다니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존경심이... 사정을 알고나서부터 난 전역할때까지
항상 그신병을 고참으로 대우했다 전역후 그뒤의 일은 모르
겠고...
지금쯤 어디선가 나처럼 늙어갈 그신병 생각이 가끔난다
월남파병 정치적으로야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항상 남의 도움을 받던 우리나라가 이젠 남의나라를 도울수있게
됐다는 국민적 자부심이 대단히 컸다 가서 그만큼 열씸히 싸웠고...
우리가 목숨걸고 도왔던 자유월남 이젠 흔적도없이 이지구상
에서 사라졌으니... 나라를 잘지키고 우리나라처럼 경제발전을
일으켰다면 당시 참전용사들의 자부심도 참 컸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첫댓글 그시절엔 출생신고 오류로 누나가 남성으로 돼있고 남동생이 누나 이름으로 복무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엇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참으로 대단 하군요
병장으로 재 입대라면
또 몰라도.,.ㅋ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는
좋은 추억 이십니다
70년대 전후 월남파병
그 선배님들의 노고에
지금의 우리나라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
(71년도 M16 창원에서 첫 생산,
그 이전엔 미제 M16 국내 최초로
수경사 지급하여 1.21김신조 사건때 사용) 그리고
월급을 달러로 받아
경제개발에 기초 재원이 되었음
(파독광부.간호원 포함)
하긴 우리동기들중에 17세에 입대한이들이 여럿이 있었으니 동감해요
충성
나는 월넘 파병 마지막 부대로 72년 10월초에 부산항 3부두 떠나
월남에 도착하니 곧 휴전 될거라 하더니 73년 1월27자로 휴전되어
3월5일 나트랑 공항에서 뱅기타고 대구 공항으로 돌아와서
바로 제대하였습니다 제대 말년에 월남가서 다섯달만에 돌아와서
그래도 그걸로 귝가유공자라고 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