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신비성은 인간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상품) 자체의 물적 성격(물건들의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속성)으로 보이게 한다.
종교를 예로 들으면, 몽롱한 종교 사회에서는 인간 두뇌로부터 나온 산물들이 스스로 생명을 가진 자립적인 인물(神)로 등장해 그들 자신의 사이,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품사회(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 노동의 산물(상품)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노동생산물로서의 속성, 즉, 인간 노동의 회적 성격이 인간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지배하기 시작한다.
원시 종교에서의 신들은 소박한 형태를 취하며, 인간사회와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인간의 사회활동(생산,소비)을 규정하기 시작했지만, 현대의 발달된 종교예서의 신들은 인간사회를 지배하며 절대자로서 군림하였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의 신비한 특성(物神崇拜:fetishism)이 자본주의가 발달된 현재에 와서는 인간사회 속에서 인간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규정짓고, 인간을 억누르고, 인간사회를 배반한다.
드디어, 소비는 최고의 권력이 되고 말았다.
자본가가 아무리 자본사회에서의 권력이 있다고 해도, 소비 권력에 미치지 못한다. 소비 권력은 무한하다. 그것은 무한한 권력에 평등하기까지 하다. 그 권력의 힘에 누구라도 찬사를 보낸다.
그것은 자본의 사회에서 모든 선을 대신할 수 있는 절대자가 되었다. 모든 것이 그것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한다.
그것에 대한 찬사는 국가주의도 종교도 도덕적 가치 계 조차도 무시되어 게거품을 문다.
모든 가치가, 소비의 권력 아래 무릎을 꿇었다.
그는, 사바나 최후의 포식자 사자 처럼, 자본의 사회에서 마지막 포식자 되었다.
자본의 사회를 대신 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가, 그 해답이 소비에 있음을 알았다.
소비라는 무한한 권력에 이제 철퇴를 가해야 한다고. 자본주의 주기적으로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들은 소비를 해법으로 찾았다. 그렇다면, 반자본주의는 소비라는 권력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심지어, 자본가에게 평등한 분배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노동자 조차도, 소비의 추잡한 권력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이 소비는 성장경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