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적인 숲을 쉽게 접한다는 것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거기가면 오리나무가 빼곡이 들어서 있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마치 화단가 해바라기처럼 잡목 뒤에 웅크리고 모여서 평화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비무장 지대의 산이다. 비무장지대라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금강산에서 치다르다가 우뚝 멈춘 곳이라, 초목들도 명당자리를 아는지 마음껏 비집고 터를 잡고 있었다.
터가 좋으니 산짐승들도 새벽이면 하산해 동물들 루트라고 농부들은 전한다. 언젠가 해거름 녘이었다. 저녁 산책이 좋다고 해 산을 돌아 하산할 때였다. 난데없이 등뒤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산을 쩡쩡 울리는 게 아닌가! 장년이 되어 모처럼 오랜만에 전신에 소름이 쪽 돋는 순간이었다. 발정기 때면 연못으로 달려와 목을 추기는 산짐승들-. 앞 뒤가 준령으로 길게 뻗은 골짜기로 작은 연못 둘이 말없이 물을 불러 모았다가 조금씩 따르고 있었다.
오늘 새벽! 연못가를 산책 하다가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청미래 농장 아랫 논에 물을 가두는 중늙은이를 발견하고 몇 마디 물었다.
-요즘 이 논임자는 잘 계시나요?
-네? 어떤 임자를?
-청미래 농장 주인이요.
-네 그 사람 입춘이 지나 큰 눈 왔을 때 갔어요.
-언제 오시죠?
이곳 다락 논들은 가뭄이 들어도 마음 족하다. 작은 연못이 그들의 탯줄이기 때문이다. 더부살이로 지낸다. 골짜기 비탈로 진달래가 활짝 피어 봄을 알린다. 푸실푸실한 논둑에 이름 모를 난장이 들풀이 제법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앞에 그리 굵지 않은 팻말 하나가 비스듬히 서 있다. 직경 10센티 좀 넘는 통나무가 한 쪽 면을 낫으로 대충 다듬어 몇 자 써 달고 있다.
-청미래 농장
작년부터 이곳을 산책 코스 중 하나로 정해 자주 찾는 농장이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농장이라고 할 번듯한 그 아무것도 없다. 농장이라면 여기저기 트랙터가 있고 유리온실이나 대형 비닐 하우스가 시설되고, 물을 퍼 올리는 스프링 쿨러는 물론, 고무 호수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깔려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여름에 처음 발자욱을 찍고 돌아설 때도 받은 인상이었다.
조립식으로 비나 피할 정도로 지어놓은 움막이 연못 아래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 조립식마저도 초록색 페인트로 흰색을 가리게 마구 성글게 칠해 볼품이 없었다. 그리고 세발 구루마 한 개가 그 움막에 기우뚱 기대어 서 있다.
농장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봄이 흐드러지게 무르익어 가는데 주인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전기도 없는 외진 산골이다. 그런데도 지난 여름에 농장 주인은 이 움막에서 몇 달씩 지내 나를 깜짝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논에 있는 물을 돌리고 밭으로 용도를 변경해서 고추며 들깨를 심고 가꾸었다. 오이, 상추, 배추, 양상추도 몇 고랑 심어 가꾸었다. 적수단신으로 집을 떠나 휴양을 하던 나그네였다. 나그네는 아무 두려움도 없는 편안한 얼굴로 새벽이면 나를 맞아 주었다. 어둠이 퇴각하지 않은 이른 새벽에도 몇 번을 농장주인과 상면했다. 혼자 전기도 없는 산 속에서 초저녁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취침을 한단다. 깨어나면 역시 혼자 끓여먹고 청미래 농장으로 나와 일을 한다.
세상과 그야말로 단절된 은둔생활이었다. 오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나그네였다. 춘천이 집인데 종중 땅이 있어 가끔씩 다녀가다가 최근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자 이곳에 몸을 던져 투병생활이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나그네는 당뇨로 고생하다 최근에는 신부전증으로 크레아틴 수치가 쉽사리 내려가지 않아 만사를 뒤로하고 식이요법에 목숨을 건 사내였다. 병색이 완연했다. 얼굴이 부석부석하게 부어있는 나그네였다. 염분 섭취를 제한하고 인산염과 칼륨 성분을 많이 함유한 음식을 멀리하고, 또한 육류를 멀리하고 신선한 것을 많이 섭취하려고 작정을 하고 온 것이다.
그러니까 작년에 보면 두어 달 있다가 집에 다니러 갔다 이내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농사철이면 이것저것 척박한 땅에 심어 가꾼다. 전기가 없으니 전자제품은 일체 올스톱이 아닌가! 그러니까 원시시대의 자급자족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산의 정기를 마시고 초목의 풋풋한 내음을 마신다. 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아침저녁으로 퍼 마시고, 손수 심은 무공해를 섭생한다. 한 줄로 심은 배추와 넝쿨로 올라간 오이를 따서 그냥 먹어버린다.
집도 절도 없는 외진 산 속에서 만나면 늘 나그네는 반색을 하지만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럴 때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내곤 했다. 환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처음에는 인사 정도만 나누었지만, 이젠 내가 먼저 너스레를 떨며 농작물 얘기며 건강이야기와 산 이야기들을 마구 그에게 미끼 끼워 던진다.
지난 초겨울 잎새에 만났을 때였다. 들깨를 베어 움막 안에 세워놓으면서 겨울 한 철 뵙지 못하겠다고 못내 안스러워 하더니, 말미에서 갑자기 말문이 막히며 우물우물해 깜짝 놀랐다. 어쩜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폭탄선언을 모기소리 만치 하는 게 아닌가! 생명의 유한성을 나그네는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날 어둠이 숲을 완전히 살라먹고 별들이 연못에 내려와 한참을 노닐 때, 우리 내외는 그의 가슴에 얼어서 공중에 뜬 보리싹 밟듯 희망을 꼭꼭 이식하고 돌아왔다. 야심차게 붙여논 청미래의 심오한 뜻을 계속 강조하면서 -.
-언제 오시냐고요?
-예? 허-허 . 글쎄요. 항상 영혼이야 머무르겠지요.
-영혼? 아니 그러면-.
-장례식장에 갔다가 눈이 워낙 많이 와 인제 처가에서 하루 묵고 왔죠.
근데 뉘시죠?
청천벽력이었다.
만성 신부전증이라 자주 의식하는 협심증과 심근경색증 그리고 폐부종에 바위만한
부담을 안고 살아가더니 그옇고 나그네는 이기지 못하였다. 갑자기 발걸음이 천근이었다. 올 봄에는 산에 가서 마도 캐놓겠다고 하시더니 -. 밤중에 꿀꿀대며 산돼지들이 조립식 문에 몸을 비빌 때 이야기를 어찌나 진지하게 하던지 동화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던 나그네였다.
많이 좋아졌다고 처자를 멀리 두고 덜컹대며 달려온 나그네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철저히 문명을 외면하고 생식을 해가며 풀을 뜯던 나그네의 청미래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지난번 내린 빗물을 가둔 작은 연못을 내게 달라고 할 때 흔쾌히 가져가라고 하시며 미소짓던 얼굴은 너무나 잊을 수가 없다.
최근 헌 신짝처럼 목숨을 아무 생각없이 내동댕이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최대한의 노력으로 끝까지 생을 수호하다 역부족으로 떠나가야 했던 어쩔수 없었던 나그네의 몸짓은 위대하다.
오는 봄에 다시 온다고 하다가 영영 못 올 줄도 모른다는 했던 그 말이 가슴을 친다.! 나그네는 벌써 죽음을 인지하고 있었단 말인가! 진달래도 개나리도 다시 피고 마시던 샘물도 더욱 맑게 퐁퐁 샘솟는데, 청미래 농장은 주인을 잃고 쓸쓸히 새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끝)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문예/동영상 란에 가보세요 독도 찾기 세계 캠페인 ...영작 시인 김연덕 /대구 펜클럽 ???
청미래농장에 머물며 병마와 싸우는 나그네와의 짧은 만남을 그리신... 잔잔한 감동의 글 잘 읽고 갑니다...오후에 많은 비 온다는 예보 꾸무럭한 날이지만 화사한 맘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