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다는 기사는 별로 신빙성이 없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거란의 주 상대는 송나라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거란이 고려를 신경쓴 것은 송나라와의 전쟁 시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함이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사서의 기록대로 정말로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을까요?
80만 대군. 이 정도의 병력은 상대국을 멸망시킬 목적하에서만 동원할 수 있는 병력입니다.
(예:수 양제와 당 태종의 고구려 침입 시 동원한 병력 그리고 한 고조 유방이 항우를 칠 목적으로 각 제후들로부터 동원한 100여만 대군, 그리고 전진 왕 부견이 동원한 병력 등)
후방 안전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목적(상대적인 의미입니다)하에서라면 이런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80만 대군이면 거란의 전 병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그렇다면 만약 이 때 송나라가 침입했으면 어떡했을까요?
거란이 이런 위협 요소(송나라의 침입) 등을 무시하고 80만을 동원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서의 기록, 즉 중국 사서와 우리 나라 사서에 기록된 "80만 대군"은 어떻게 된 것일까? 저는 그렇게 기록 된 이유가 거란과 고려 양국의 이해타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거란의 경우를 봅시다.
거란의 경우 얼른 송나라를 쳐야하는데 후방의 수십만 대군을 보유한 고려가 떡 하니 버팀으로서 거란은 쉽사리 송을 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이 수차례에 걸친 거란의 고려 침입이죠.
"서희의 외교(강동 6주 획득)"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란인들은 고려와 전면전을 벌이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고려가 송나라를 돕는 것을 막는 것이 주 목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십만이 넘는 병력을 동원해 고려를 치긴했지만 그들과 전면전을 벌이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송나라를 더이상 돕지 않겠다"라는 약속만 받아내면 그들로선 만족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고 얼른 고려 정부의 항복을 받아낼 목적으로 "80만 대군"이라고 훨씬 부풀려 말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려의 경우는 이미 그들은 거란인들에 의해 부풀려진 80만 대군을 물리친 상황이었으니 그들의 자신감 또는 승전에 대한 그런 감정이 컸겠죠.
따라서 이미 거란의 80만 적군을 물리쳤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실제 병력은 이에 훨씬 못미쳤다고 사실대로 말하기 보다는 "80만"이라고 그대로 말함으로서 고려정부의 위상을 대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서에도 굳이 80만이라고 적었을 것이구요.
따라서 저는 당시 거란이 동원한 병력이 사실은 후에 거란군이 동원한 병력을 살펴봤을 때 30만에서 40만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30만을 최소 병력으로 삼은 것은 당시의 고려 정부가 거란군의 침입에 항복하자고(심지어는 땅을 떼어주자고도 했었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면 거란이 동원한 병력은 고려 정부가 봤을 때 어느 정도 부담되는 병력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고려국의 국력을 봤을 때 침략군의 병력이 30만 정도는 되어야 '항복'하자는 논의가 가능할 듯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정 40만의 경우 그 후에 거란이 고려를 침입할 때 동원한 병력이 40만 이었기 때문입니다.(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오해없으시길)
알다시피 거란의 2차 침입은 강동 6주를 고려에게 줬음에도 자신들과 외교를 하지 않을 뿐더러 송과 단교를 하지 않음에 있었죠. 따라서 그들은 이런 고려를 따끔하게 혼을 내주긴 해야하는데 1차 침입 때 실패했으니 그 때 보다 더 많은 병력을 동원했으리라 봅니다. 따라서 2차 침입 시 동원한 40만 보다 많치 않았을 것이고 또한, 주 전쟁 상대였던 송나라도 생각해야하니 이 이상의 병력은 무리였겠죠
이상 허접 답글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80만 대군이 아니었을 것이다"라는 추측하에서 쓴 글이니 그냥 읽고 넘어가 주시길......]
지도들 보니 강성시 요나라(거란) 국 영토가 송나라 못지 않게 크던데 그건 여러 민족이 통합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목민의 특성상 평상시 각자의 일을 하다 전생시 아주 신속하게 참여할수 있기때문에 그많은 군대의 출저인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게 유목민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농경민족은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오히려 없는 만 못하는데 (오합지졸) 유목민은 말 그대로 무기를 쥐면 정예병 못지 않게 전투에 임할수 있기때문에 80만 대병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전 국민이 여성 및 아이들, 그리고 노약자를 제외한 장년층은 언제든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됩니다.
전 율력천둥지기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송나라와 전쟁하는 판에 후방에 80만이라니, 그건 과장이라고 생각될 여지가 농후합니다. 게다가 요나라가 고려보다 훨씬 우세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비록 나중에 요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화의가 맺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송나라가 항복해서 머리를 조아릴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배후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남만을 정벌할때 동원한 군대는 50만의 군대였음. 50만이라는 숫자는 과장되었지만, 그 의미를 보면..그만큼 배후세력 안정에 신경을 많이 썻다는 소리겠지요. 거란역시, 배후의 고려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80만대군"으로 표현된거겟죠?
근데 이해가 안되는것은 요나라1차침략군의 총 지휘자가 동경유수(맞나?)란 직책의 일개 장수였다는 건데 일개장수가 어떻게 80만이라는 병력을 지휘할수가 있었을까요???2차침략때 요의 성종(맞나?)이 이끈 병력도 그 절반인40만정도였잖아요...유목국가에서 일개 장수에게 그런 엄청난 병력을 준다는건 스스로 자기목을
고려는 3대 정종임금때 30만이 넘는 광군사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80만 대군이란 것은 전투가능한 부대 이외에 딸린 식구들이나 조직들이 모두 포함된 숫자가 아닐까요? 소손녕이 안융진 전투에서 대도수에게 패헸을 때 대도수가 지휘한 고려군은 수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첫댓글 10만이면 어떻고 100만이면 어떻습니까? 당시 최강국 거란을 물리쳤고 끝내 강동 6주를 지켰습니다...... 그러면 된거 아닙니까?
지도들 보니 강성시 요나라(거란) 국 영토가 송나라 못지 않게 크던데 그건 여러 민족이 통합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목민의 특성상 평상시 각자의 일을 하다 전생시 아주 신속하게 참여할수 있기때문에 그많은 군대의 출저인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게 유목민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농경민족은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오히려 없는 만 못하는데 (오합지졸) 유목민은 말 그대로 무기를 쥐면 정예병 못지 않게 전투에 임할수 있기때문에 80만 대병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전 국민이 여성 및 아이들, 그리고 노약자를 제외한 장년층은 언제든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됩니다.
고려군도제가알기론40만대군을가지고있었 때문에적어도2배이상되야고려조정을압박할수있었다고생각됩니다. 특히평야가아닌험한지형을가지고있는고려이고수성에 워낙강하기때문에제생각에엔가능하다봅니다. 무인시대를보면금나라사신이 와서고려를 압박할때(의종폐위시) 80민대병운운하는걸보면가능도하지않을까생각됩니다.
전 율력천둥지기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송나라와 전쟁하는 판에 후방에 80만이라니, 그건 과장이라고 생각될 여지가 농후합니다. 게다가 요나라가 고려보다 훨씬 우세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비록 나중에 요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화의가 맺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송나라가 항복해서 머리를 조아릴
때 고려는 그렇지 않았지요.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맣은 군대를 거느린 요나라와 대적한 고려가 대단합니다. 강동6주 획득 뿐 아니라 자존심을 지켰으니까요. 송나라는 결국 요나라와 형제국 즉 아우국이 되면서 엄청난 조공에 경제가 휠정도로 고생한 걸로 압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배후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남만을 정벌할때 동원한 군대는 50만의 군대였음. 50만이라는 숫자는 과장되었지만, 그 의미를 보면..그만큼 배후세력 안정에 신경을 많이 썻다는 소리겠지요. 거란역시, 배후의 고려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80만대군"으로 표현된거겟죠?
저도 율력천둥지기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유목민이라고 해도 군대 동원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줄 것이 있어야 가능하죠. 즉, 용병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줄 것도 없는 전쟁에서 80만을 동원하면 그 대가는 요가 져야하죠.
역사스페셜에보니까병력에대해서는과장이나허장성세에대한내용이없더군요단저도윗글에대해동의하지만 출발하는데만한달정도소요가됐으니엄청난대군임에는틀림이없는것 같습니다지도를보면요나라는서역까지영토를확장오히려송나라보다더큰대국(영토만)을건설함으로써 실로위세가 대단했던것습니.결국고려가승리한전쟁입니다
근데 이해가 안되는것은 요나라1차침략군의 총 지휘자가 동경유수(맞나?)란 직책의 일개 장수였다는 건데 일개장수가 어떻게 80만이라는 병력을 지휘할수가 있었을까요???2차침략때 요의 성종(맞나?)이 이끈 병력도 그 절반인40만정도였잖아요...유목국가에서 일개 장수에게 그런 엄청난 병력을 준다는건 스스로 자기목을
내놓는 행위일겁니다... 제생각은 80만은 아니라고봅니다... 부풀려진거죠... 제 생각입니다만...
고려는 3대 정종임금때 30만이 넘는 광군사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80만 대군이란 것은 전투가능한 부대 이외에 딸린 식구들이나 조직들이 모두 포함된 숫자가 아닐까요? 소손녕이 안융진 전투에서 대도수에게 패헸을 때 대도수가 지휘한 고려군은 수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