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0PGzf2PkkQ
* 찬송 220장
<베드로전서 5:5-6>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5절 말씀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지난 1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은 장로, 즉 교회의 지도자급에 있는 자들을 위해 권면했다면 오늘 말씀은 젊은 자들, 여기에서 젊은 자들은 나이가 젊은 자들보다는 교회지도자들의 지도와 인도함을 받는 일반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요. 성도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 당시였기 때문에 순종이라는 말을 썼겠고, 오늘날에 베드로전서를 쓴다면 순종이라는 권위적인 말보다는 협력하라는 동등한 의미의 말을 사용했겠지요. 지도자들에게 일단 순종하려는 의지와 자세를 가지는 것은 좋은 모습입니다. 박수도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지도자와 일반성도들도 순종이라는 또는 협력이라는 것을 통해 하나가 될 때에 의미있는 일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에게나 순종해야 하는 일반 성도들에게나 공통적으로 반드시 가져야 할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5절 중반에 보면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서로 겸손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도자들도 겸손하게 이끌어가고 겸손하게 섬겨야 하고, 성도들도 겸손하게 순종하고 협력하고 겸손하게 모두 하나가 되기를 힘써야 하는 거죠. 왜 겸손해야 할까요? 5절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교만의 죄라고 누군가 말했었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교만이라는 것은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때문입니다. 어제 말씀에서처럼 교회의 성도들은 목사의 양도 아니고 항존직분자들의 양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양들인데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성도들을 내 맘대로 명령하고 현혹시키고 갈라놓고 내 이득을 취하려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교만한 행동입니까? 반대로 민주주의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교회 지도자들이 인도하고 지도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감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발목을 잡으면서 우리들 뜻대로만 이끌어가라고 강요한다면 이 또한 민주주의를 빙자한 교만한 행동인 거죠. 혹시 성공해서 부자가 되었고,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습니까? 그게 전적으로 내 능력만으로 되었나요? 그런데 내 능력만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교만하다면 그 역시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버린 것 아닙니까? 대풍년을 만났다면 내 농사실력이나 노력보다도 하늘의 은총이 더 절대적이지요. 내가 공부를 잘해 1등했다면 내 노력만의 수고이기보다도 내 공부의 지능과 재능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드리는 말씀 중에 겸손의 도리만 깨달아도 기독교 신앙의 70%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믿음과 신앙이라는 자체가 겸손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겸손 없이 내가 죄인이라는 게 깨달아지겠습니까? 겸손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이 인식이 되겠습니까? 겸손 없이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겸손 없이는 하나님께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교회생활 자체는 겸손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그런데 교회생활이 곧 믿음생활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믿음생활 중에는 바른 교회생활이 반드시 포함되지만 교회생활이 곧 믿음생활을 포함하지는 않지요. 그래서 교회생활은 믿음 없이도, 겸손 없이도 가능할 수 있지만 예수님과 동행하고 참된 구원과 생명의 길을 가는 믿음생활에는 겸손함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합니다.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경험하게 되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교만한 자는 아직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사실 믿음이 없는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우리가 교회에 나와 있는 것은 본문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 있는 순간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적어도 교회에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훈련된 겸손으로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도 그 겸손함이 확대되어 가야 하는 것이지요.
겸손한 자를 6절 마지막에서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높여주십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다,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질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말씀들을 가볍게 듣지 마시고 진지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첫댓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며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항상 마음 깊이 간직하며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서로 겸손하게 순종하고 협력하고 모두 하나가 되기를 힘쓰게 하시고 주님의 참된 겸손을 본받아 일상생활에서도 실천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드리는 말씀 중에 겸손의 도리만 깨달아도 기독교 신앙의 70%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믿음과 신앙이라는 자체가 겸손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겸손 없이 내가 죄인이라는 게 깨달아지겠습니까? 겸손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이 인식이 되겠습니까? 겸손 없이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겸손 없이는 하나님께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교회생활 자체는 겸손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그런데 교회생활이 곧 믿음생활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믿음생활 중에는 바른 교회생활이 반드시 포함되지만 교회생활이 곧 믿음생활을 포함하지는 않지요. 그래서 교회생활은 믿음 없이도, 겸손 없이도 가능할 수 있지만 예수님과 동행하고 참된 구원과 생명의 길을 가는 믿음생활에는 겸손함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합니다.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경험하게 되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교만한 자는 아직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사실 믿음이 없는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우리가 교회에 나와 있는 것은 본문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 있는 순간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적어도 교회에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훈련된 겸손으로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도 그 겸손함이 확대되어 가야 하는 것이지요.
겸손한 자를 6절 마지막에서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높여주십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다,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질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말씀들을 가볍게 듣지 마시고 진지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해야 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