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무 염주 소고
나무 불 나무 법 나무 승
설 전에 어느 스님으로부터
택배가 하나 도착하였습니다.
열어 보니 포도를 가공한 음료 두병과
율무를 재료로 만든 염주 여덟벌입니다.
포도는 스님 건강을 위해 드시고
율무염주는 인연이 닿는 불자들에게
선물로 주시라 하는군요.
두가지 다 손수 정성을 들여 만들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귀히 여기고 사용하려 합니다.
특별히 율무염주를 보면
생각나는 노스님이 계십니다.
오래 전 송광사 수선사에서 한철 지낼 때
육이오에 참상이 스치고 지나간 송광사를
중창 재건하시느라 애를 쓰셨다는
노스님께서 한분 계셨습니다.
사시공양 시간이 되면
대중이 모여 법공양을 하는데
노스님께서 가사 장삼 수하시고
큰 방 어간으로 시간 맞춰 오셔서
단아한 모습으로 공양을 마치시는 모습에
부처님도 저와 같으셨으리라 생각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포행 시간에 과일을 몇개 챙겨서
노스님 방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주지 소임을 보셨던 어른스님이지만
크지 않은 방에 들여 놓으신 세간도 없이
단촐하게 머무시면서 염불하시고 참선하시며
새벽 예불시에 뵈면
전각을 일일이 다니시면서 예배하시고
묵묵히 도량의 수호자 역할을 하시는
존경할만한 어른 스님이십니다.
수선사에 들기 전에 송광사를 주제로
티브이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다가
노스님께서는 정진하는 여가를 활용하여
율무 염주를 만들어 두셨다가
인연이 닿는 불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하는 화면이 나왔던 적이 있기에
삼배의 예를 올리고 앉았습니다.
방에는 그 흔한 다기 한벌 갖추지 않으시고
가사 장삼에 석문의범 한권이 전부였습니다.
스님께 영상에서 본
율무염주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마침 한벌이 남아 있는데
수좌가 모시고 갈 인연인가 보네
하고 내밀어 주시기에
감사히 받아 모신 적이 있습니다.
율무 농사를 짓는 시간 하며
율무를 거두어 말리고 구멍을 뚫는 작업에
튼실한 실을 꿰어 일일이 백팔개를 만드는 일은
지극한 신심과 정성 그리고 정진력이 아니면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이실텐데
노스님은 그런 불사를 오래 해 오신 것입니다.
종종 회광 일각 방장스님과
도량을 포행하시는 모습만 뵈어도
훈훈한 존경의 마음이 우러 나왔던
초발심 때의 만남입니다.
이미 30여년이 지난 시간임에도
얼마나 잘 만드셨는지 아직도 짱짱하고
회색빛 율무알이 똑 고르게 갖추어져서
노스님을 생각하면서 오래 간직하고픈 염주입니다.
요즘은 염주 하면 귀하고 값진 염주가 많습니다.
보석류로도 만들고 침향이나 전단향
혹은 보리수 열매로 만들기도 하는데
종류별로 가격차이도 상당히 나갑니다.
그렇다 보니 율무 염주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지만
이 율무 염주는 내가 듣기로 예전부터
스님들에게 효자 노릇을 한다 하였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스님들이 탁발승이 되거나 만행을 하면서
수행을 이어가다가 깊은 산 골짜기
인적없는 곳에서 홀로 입적하시는 경우가
없지 않았던가 봅니다.
아무도 거두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스님이 목이나 손에 걸고 계셨던 율무 염주가
땅기운을 맡으면서 싹이 나고 뿌리를 내려
그것이 여러해 지나면서 쌓이고 쌓여
마치 스님을 위한 봉분 형태가 되었기에
제자나 불자들이 미처 시신을 거두지 못하였어도
염주가 그 제자의 역할을 하였다고 전합니다.
외딴 곳에 율무가 무성하게 자랐으면
그곳은 이름도 알 수 없는 노승 한분이
해탈 열반에 드신 자리로구나 하고
간략하게라도 예 올리고 송경하고 지나는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겠지요.
그만큼 율무는 수십년이 지나더라도
땅기운을 접하게 되면 다시 생명력을 발휘하니
우리 전통의학에서도 의이인薏苡仁이라는
좋은 약재로 귀하게 사용해 오기도 합니다.
누구라도 뜻이 있으면
텃밭에 율무농사를 잘 지어
부처님을 생각하는 염주로 탈바꿈 시켜서
이웃에 나누어 드리는 공덕을 지어 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적어 봅니다.
율무/권태응
율무를 텁니다.
오돌돌돌.
동네 아기 모입니다.
마당 '그뜩/그득'.
'율무/율믜'가 튑니다.
오돌돌돌.
아기들은 줍습니다.
서로 먼점.
율무를 주서다가
무엇 하나?
실에 꾀여 매달어
'염주' 놀지.
[출처: ≪감자꽃≫, 1948년]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