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는 다른 오누이가 전부 각 직업을 마타하고 특성을 개발해서 자리를 잡은 후에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둥이로 태어났다. 한터에서 놀자니 아이템 수명이 소모되는 것을 아까워서 지음을 받았으니 기대받는 탄생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게 벌써 4년 전. 한동안은 존재조차 잊혀졌다가, 최근에야 다시 한터에 놀러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반쯤 장난으로 한터에 오는 사람들에게 1 철정씩 주었다. 그러다 난수를 다루는 법을 깨우쳐, 컨셉을 잡고 자신 설명을 써서 한터에 앉아 소액을 뿌리게 되었다. 무료하게 철정을 던지던 어느 날, 거액의 후원자가 나타나 그녀의 운명이 바뀌었다. 후원자는 억단위의 철정을 안겨주곤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녀는 던지던 철정의 크기를 주먹에서 포대로 바꾸고, 복권 기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확한 개념을 잡지 못해 개발은 지지부진했고, 그녀는 쓸데없이 종이에 일련번호를 써서 배포한 후 그 종이의 번호가 자신이 배포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코드부터 만들었다. 이후 한번 사용되어 노출된 코드를 누군가가 또 사용하려 할 때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기량이 출중한 동료를 만나 어려움을 토로했다. 며칠이 지나고 해결방안을 찾았으나 여전히 복권의 개념은 모호했다. 이 때는 복권을 한터에서 무료로 배포한 후 일정 시간마다 당첨결과를 소문으로 공지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건 서비스건 물건이건 손이 많이 가는 것은 피곤하다. 그녀는 자신이 하게 될지도 모를 복권서비스의 미래를 그렇게 규정하여 접고, 한터의 방문자들에게 보다 더 직관적으로 [재미]를 안겨줄 방법을 연구했다. 그 때 그녀의 후원자가 '가위바위보'를 추천했고, 그녀는 심심풀이 삼아 가위바위보 기능을 만들었다. 이번엔 기능이 간단해서 구상이 쉬웠다. 승패는 하늘(=서버)에 달렸고, 승무패에 반응하면 되니까. 간단하게 돈을 받는 것으로 게임을 시작해서, 이기면 두 배를, 비기면 그 금액을, 지면 돌려주지 않는 시스템으로. 이러면 자신이 손해지만 그녀는 후원가도 그걸 원했을 거라 생각했다.
얼기설기 만든 가위바위봇을 한터에 가져가자 의외로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시화는 기뻤고 봇을 좀 더 다듬을 의욕이 생겼다. 승무패와 전적을 보고하고, 액수의 제한을 걸고. 이를 구경하던 이중 누군가가 현재 오류가 있는 것 같다는 경고를 했다. 그야 당연히 오류가 없진 않겠지. 시화는 그녀가 생각하던 부분인, '짧은 시간 내에 돈을 여러번 받으면 먹어버리는' 부분을 손을 푸는 시간을 넣는 방법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덤으로 쿡쿡 찔려서 어딘가에 버려질까봐 쿡쿡에 반응하는 코드도 추가했다. 뭔가 잊어버린 것 같았지만 그날은 그렇게 잤다.
다음 날 억대의 철정이 사라져 있었다. 털린 화면을 보고서야 자신이 나타내기문 검증을 잊었다는걸 발견했다. 공격자는 나타내기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철정을 주려 했고, 시화는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성실하게 받아서 게임을 하거나 그 금액을 돌려줬던 것이다. 다행히 공격자는 철정을 돌려주었고 호의적이었다. 시화는 애꿎은 단땅 시스템을 탓했다. 많은 머드에 나타내기문과 비슷한 기능이 있어도, 단땅처럼 구분할 수 없게 나오는 곳은 드물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단땅은 자반에 굉-장히 불친절하다. 문장이 떨어져 나오다가 가끔 붙어 나오기도 하고, 후딜레이가 들어가면 반응도 못하고. 아무튼 시화는 자신이 가진 금액을 프롬프트에 띄우고, 실시간으로 가진 금액과 가져야 할 금액(=실제로 돈을 받았으면 소지금이 증가해야 하니까)을 대조하는 구문을 추가해서 나타내기문을 막았다.
후원자의 제안으로 하드모드를 만들고. 이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싶어서 잭팟 시스템을 추가했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마다 임의의 난수를 발생시켜서 사전에 정해진 당첨숫자와 대조하는. 하지만 만든 난수가 거칠어 균등하게 분산되지 않았고, 특정 구간에 몰려서 실제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시화는 고민하다가 각 자리의 수를 따로 만들어서 합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가위바위봇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복권에 대한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래서 아이템복권의 개발을 시작했다. 이쪽은 잭팟의 경험이 있기에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상품이 문제였다. 가위바위보의 상품이 이미 철정인데, '아이템'복권의 상품이 철정이면 이름값도 못하거니와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후원가가 해결해 주었다. 구할 방법이 없는 귀걸이와 윤회구슬로. 다만 시화는 좀 더 아이템의 폭을 넓혀,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회용 소모템(노봉석전의 영약이나 흰두루마리같은)이나 천상존의 아이템 한 개 등을 상품으로 걸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커 포기해야만 했다. 구하는 것도 문제인데, 아이템을 갖고 있다가 상품으로 줘야 하는 구조상 수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자신이 신선이 아닌 한 해결할 수 없었다.
과분하게도, 아이템복권 봇도 첫날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회당 오백만 철정이라는 고가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주었다. 다만 첫날에 구슬권이 3장이나 터진 것은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놀란 마음에 여러 번 자신의 논리구조를 확인했으나, 다시 봐도 눈에 띄는 문제도 없고 현재 자신의 능력으론 이 이상 개선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후원가는 완성도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하진 않았으나 시화는 스스로 눈치가 보였고, 이후 상품을 철정으로 대체한 후 아이템을 부상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다만 이게 과연 재미있을까, 란 생각을 멈출 순 없었다.
그녀가 잡기(雜技)를 연마해 한터에 자리를 잡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재미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그 잡기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 행위 자체의 재미를 추구하기엔 기량이 부족하고, 목표를 습득하는 쾌감을 빌려오는 정도나 가능하다. 그마저도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가위바위봇의 철정을 해결했다. 아이템복권은 어떨까. 어떻게 해야 재미를 줄 수 있을까. 타인의 후원이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한 현 구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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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없습니다. 아마도.
첫댓글 글을 읽고 몇백번 고쳐 읽어봐도 후원자가 잘 못 했네요.
후원자 아니고 투자자로 읽으면 잘한거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