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단평
시의 여백에 기대어 서다
황선영
시의 여백에 기대어 서면, 무엇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은 사라지고 느린 시간 속에서 비로소 시가 말을 걸어온다. 책 한 권, 한 편의 시, 누군가의 문장이 내게 다가올 때면 그 문장 속에 있는 누군가의 살아온 시간과 세계관, 그리고 말로 다 형용하기 어려운 삶의 결이 고스란히 내게 스며 온다.
나는 늘 시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라는 강박 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 마음을 조용히 풀어준 그것이 바로 이번 계간 『시와산문』이었다.
먼저 황정산 평론가의 글에서 “시인은 우리가 보지 못한 삶의 깊은 곳을 드러내 보여주고, 지금 여기에 갇힌 존재를 넘어, 또 다른 존재로 확대되기를 촉구한다”라는 구절을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시 앞에 선 나의 오래된 자세를 돌아보게 되었다. 시란 완성된 의미를 찾는 퍼즐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떨림으로 완성해 가는 열린 세계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번 호에 실린 김종만 시인의 글 「이해보다 떨림으로」에서 만난 문장은 더욱 깊은 울림을 남겼다.
“시는 일부러 하나의 조각을 남겨두고, 모호한 틈을 만들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그 미완의 틈에서 오히려 시는 빛난다.” 나는 이 구절을 여러 번 되뇌며, 시의 여백이야말로 마음이 드나드는 문턱임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 이후로, 나는 시를 느림의 호흡으로 읽기 시작했다. 해석보다 감각으로, 의미보다 떨림으로. 그러자 시는 더 이상 어렵고 낯선 대상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의 잔 결을 일으키는 조용한 파동이 되었다.
문학은 때로 나를 멀리 데려가는 듯 느껴지지만, 결국은 나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한다. 특히 시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삶을 조금 더 깊게 바라보게 하고, 마음을 한층 더 단단하게 한다는 사실을 계간 『시와산문』은 잊지 않게 해주었다.
겨울의 문턱에 선 지금, 나는 시가 남겨둔 그 작은 여백에 기대어 다시 한번 천천히 페이지를 넘긴다. 그리고 다음 계절의 문학이, 어떤 떨림으로 나를 찾아올지 조용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