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796)... Yuh-Jung Youn, Minari!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오스카의 여인’ 윤여정(尹汝貞)
“THE OSCAR GOES TO YUH-JUNG YOUN, MINARI, ACTRESS IN A SUPPORTING ROLE" 여우조연상(女優助演賞) 사회자인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윤여정(Yuh-Jung Youn)을 호명하고 ‘오스카(Oscar)’라는 애칭의 높이 34.5cm, 무게 3.4kg의 24K금(金)으로 도금한 인간입상(人間立像) 트로피를 수여했다.
오스카像은 5개의 필름 릴(reel) 모양의 지름 13.3cm 받침대 위에 장검(長劍, sword)을 짚고 선 중세기사(騎士, knight)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제작비는 약 400달러(약 44만원)이다. 오스카 수상자는 상금(賞金)은 없지만, 사은품 가방인 오스카 스웨그백(Oscar Swagbag)을 받는다. LA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업체가 마련한 스웨그백 구성은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데 올해는 약 21만5천달러(약 2억3천만원) 상당이며, 미국 연방세(聯邦稅)와 캘리포니아 주세(州稅) 등 5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윤여정(尹汝貞, 74)은 4월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The Oscars 2021)에서 여우조연상(女優助演賞)을 수상했다. 한국인 배우가 아카데미 연기상(演技賞)을 받은 건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에서 아카데미 4관왕(작품ㆍ감독ㆍ각본ㆍ국제장편영화)에 이어 올해는 미나리(Minari)에서 할머니 ‘순자’ 역할을 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2년 연속 겹경사(慶事)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Lee Isaac Chung, 정이삭) 감독이 1980년대 미국 아칸소(Arkansas)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 감독은 왜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그의 부모가 ‘미나리’ 속 가족과 같은 이민자의 삶을 겪었고, 정 감독은 그 아래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전적(自傳的)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딸 모니카(한예리)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윤여정이 ‘미나리’의 시나리오를 읽은 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냐”고 묻고 “그렇다”는 답변을 들은 후 곧바로 출연을 결심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의 한국계로서 그의 진정성을 본 셈이다. 정 감독은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에서 출발해 ‘미나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나리’는 지난해 미국 파크시티에서 열린 제36회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공개된 이후 크고 작은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100여개의 상을 휩쓸었고 그중 40여개를 윤여정이 차지했다.
정이삭(1978년生)이 과거 인천 송도에서 생활할 때 “사무실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면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할머니들이 보였다”며 “할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정 감독의 기억이 ‘미나리’ 속 할머니 캐릭터(character)를 구축하는 씨앗이 됐다. 또한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성질을 가진 ‘미나리’를 이 영화의 주요 모티브(motive)로 삼은 것도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자신의 가족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정 감독이 설명했다.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은 연기에 이어서 수상소감으로 세계를 사로잡았다. 지난 4월 1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The Orange British Academy Film Award)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수상소감에서 먼저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군 필립공(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99세) 서거(逝去)에 깊은 애도를 표한 후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인들이 저를 좋은 배우라 인정해주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매체들은 ‘21세기 최고의 수상소감’이라고 극찬했다.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직후 3분여의 수상소감에서 윤여정은 통역 없이 자연스러운 영어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먼저 여우조연상을 시상한 인기 배우 브래드 피트(Brad Pitt, '미나리‘를 제작한 영화사 설립자)에게 농담으로 ‘미나리’ 촬영 시에는 만나지 못하고 오늘 만나서 반갑다고 말했다. ‘미나리’ 정이삭 감독과 출연진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첫 작품 ‘화녀’의 故김기영 감독께도 깊은 감사를 표했다. 또한 함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여배우들에게 “우리는 각자 다른 역할을 연기했고, 서로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며 “내가 운이 더 좋아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아들에게도 엄마를 도와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윤여정의 빛나는 유머 감각과 촌철살인의 명구로 위트와 품격을 갖춘 수상 소감에 영화감독ㆍ배우ㆍ작가 등 후보자와 영화 관계자들이 모인 시상식장에서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또한 시상식이 끝나자 윤여정의 수상 소감 장면을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해외 언론과 영화계 스타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윤여정은 시상식에 이어 미국 현지 언론들과의 무대 뒤(backstage) 인터뷰, 그리고 LA 총영사관에서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 등을 소화했다.
윤여정의 화법은 에둘러 말하는 법 없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직설화법(直說話法)이다. 시상식 직후 인터뷰에서 외신 기자의 여우조연상을 시상한 인기 배우 브래드 피트에게서 ‘어떤 냄새가 났느냐’라는 다소 무례한 돌발 질문에 윤여정은 “나는 그의 냄새를 맡지 않았어요. 나는 개가 아니니까(I didn't smell him, I'm not a dog)”라는 답변으로 응수했다. 인터뷰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질문이며, 좋은 질문이란 때로는 무례함도 감수해야 한다.
LA 총영사관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반세기 넘는 연기 인생의 원동력’에 대해 윤여정은 ‘열등의식(劣等意識)’이라고 답하면서 “정말 먹고살려고 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영화 대본(臺本, movie script)이 성경(聖經, Bible) 같았다”고 말했다. 오스카 수상 직전의 심적 부담에 대해서는 “태어나서 처음 받는 스트레스(stress)였다”고 고백했다. 너무 힘들어서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고 말했다.
윤여정에게 연기(演技)란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요.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 주지, 그러면 안 되지요. 배우가 편하면 보는 사람은 기분 나쁜 연기가 되므로, 한 신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요.”
“오스카상을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이 되는 것 아니잖아요”라고 솔직 담백하게 말했다. 윤여정은 스타(Star)이기보다 배우(俳優)이고자 했으며, 스타 아닌 배우로 살던 대로 살고 싶다고 했다. 최근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의미인 ‘윤며들다’라는 신조어(新造語)까지 유행할 정도로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솔직 담백한 윤여정의 모습에 열광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보여준 그의 모습을 보면, 전 세계로 ‘윤며들다’ 현상이 퍼져나갈 것 같다.
패션계는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윤여정이 어떤 드레스와 액세서리를 착용할지 관심이 뜨거웠다. 홍콩 출신의 패션 전문가 앨빈 고(Alvin Goh)가 윤여정의 시상식 스타일링을 맡았으며 250벌이 넘는 의상을 준비했다. 윤여정은 “난 눈에 뜨지 않아도 돼, 큰 보석도 필요 없고 이렇게 엄청난 옷도 싫어. 난 공주가 아니야, 나답고 싶어.”라고 말했다. 앨빈 고는 “어떤 스타도 이렇게 말했던 적이 없다. 그의 화려함 속에 부풀려져 보이는 걸 원하지 않았다. 매우 절제된 여배우였다”고 밝혔다.
윤여정이 “내 스타일”이라며 평소 입었던 스타일의 의상을 선택했기 때문에 무게가 가볍고, 앉거나 서는 등 움직임에도 구김 없는 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윤여정은 해외 명품 브랜드 대신 이집트 출신 맞춤복 전문 디자이너 마마르 할림(Marmar Halim)의 짙은 네이비블루 컬러의 긴 드레스를 택하여 절제된 스타일로 풍성한 치마폭과 벨벳 허리띠가 포인트가 됐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우아한 실루엣의 디올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 경기도 개성부(開城府, 현 개성시)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창신국민학교,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배우 생활을 위하여 중퇴했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윤여정은 데뷔 55년차인 원로배우로, 주연/조연, 상업영화/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파격적일 만큼 독특한 캐릭터(character)를 여럿 맡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1971년 영화 ‘화녀(火女)’는 24살의 배우 윤여정의 첫 영화이며, 악녀(惡女) 역할을 맡아서 강렬하게 데뷔했다. 김기영(1919-1998) 감독의 ‘화녀’는 영화 ‘기생충’의 모티브가 됐던 영화이다. 윤여정은 이 작품으로 제1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상, 제8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 제4회 스페인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50년만인 5월 1일부터 다시 상영된다고 한다.
윤여정의 화려한 연기 인생은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하면서 잠정 중단됐다. 당시 윤여정은 27세, 조영남은 29세였으며, 결혼 후 미국에서 13년을 살았다. 결혼 생활동안 조영남은 바람기가 다분했으며 수입이 없어 윤여정이 모아둔 돈을 탕진했다고 한다. 윤여정의 표현에 의하면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고 한다. 결혼 생활 동안 윤여정은 가정에 헌신적이었으며, 두부를 좋아하는 조영남을 위해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1987년 이혼을 전후로 두 아들과 자신을 지키려고 온갖 작품에 뛰어들었다. 윤여정이 주연한 박철수 감독의 <어미>(1985년작)에서 인신매매범들을 하나씩 처단하는 엄마로 나와 살기어린 연기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후 1987년에는 김수현 작가의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1991년 <사랑이 뭐길래>와 1995년 <목욕탕 남자들>로 대중 연예인의 입지를 굳혔다.
윤여정이 본격적으로 복귀하여 스크린의 거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였으며, 영화 <바람난 가족>에 출연하여 조연으로 극의 장력을 뒤흔드는 그녀의 포지션이 가장 잘 살아난 작품 중 하나로 비평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2007년의 <황진이>, 2008년의 <가루지기>에서도 ‘할멈’이라는 공통된 이름의 역할을 연이어 맡으며 작품을 준수하게 뒷받침했다. 2010년 <하녀>에 출연하여 모든 여우조연상을 싹쓸이하여 10관왕에 달했다.
2016년 <계춘할망>에서 노인 계춘을 뛰어나게 소화해내며 감동을 전했으며,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공원에서 성매매를 하는 할머니 소영 역으로 출연했다. 2017년 나영석 PD가 tvN에서 만든 예능 <윤식당>에 캐스팅되어 식당의 사장을 맡아 요리를 담당했으며, 최고 시청률 14%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2020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치매에 걸린 노인 ‘순자’역을 맡으며 영화의 집중도를 살려냈다. 그리고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로 출연하여 호평과 흥행적 성공을 거두었다. 2021년에는 예능 <윤스테이>에 출연했다.
KBS-1TV는 지난 4월 29일 저녁 10시 ‘다큐인사트(Docu Insight)’ 프로에 배우 윤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50분 동안 방송했다. 윤여정은 ‘미나리’처럼 버틴 50년(1971년-2021년) 여정(旅程)에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국민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을 전한 윤여정 배우에게 각계각층에서 축하를 보냈다. Minari is wonderful! 受賞을 祝賀합니다.
<사진> 윤여정의 1971년 화녀와 2021년 미나리(조선일보)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AsiaNㆍ시사주간 논설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건강칼럼(796) 20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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