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혼상제의 허례허식을 버려야 한다는 계몽이 수십 년 결실을 맺고 있다 생각했는데, 다시 혼수 문제로 갈라지고, 치고 박고, 피를 보는 민생이 속출한다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몇 해 전만해도 혼수에 들어갈 돈을 고스란히 재테크 하여 살림을 불린다거나, 기관에 기부하거나, 건강검진으로 혼수를 대신하거나, 혼수비용을 모아 집 장만에 투자하는 등의 야무진 젊은이들이 기사에 오르내리곤 했는데 말이다. 물론 여전히 바람직한 혼수 문화를 이끌고 있는 젊은이들은 늘어나고 있다. 어느 쪽이 표면에 떠오르느냐였지만, 요즘 혼수 전쟁 이슈는 지겹도록 연애하고, 욕심껏 일하다 보니 늦어지는 결혼이 많아서 일 듯 하다. 그러니 늦은 만큼 갖출 것 갖추어 결혼해야 한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늦은 나이에 결혼하면서 제대로 부족한 것 없이, 혹은 손해 보는 것 없이 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다. 그것이 아니면 힘들여 돈 들여 키운 자식 혼수로 보상 받겠다는 몰지각하신 부모님들 탓일 테니까. 수저 두벌에 냄비 하나 밥공기 두벌 들고 옥탑방 월세라도 좋으니 같이 살자 했던 그 남자, 그 여자가 결혼 한 달을 남겨두고 두 얼굴을 보이더라도 절망하지 말자. 누구나 혼수 앞에서는 사랑을 뒷전이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감정에 상처를 입는다. 미리 알고 그러려니 넘어가거나 참고 이해하겠다는 대비를 하라는 말이다.
알뜰, 현명한 혼수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
>> 결혼의사 알리기 전에 당사자가 의논하라
덜컥 부모님들에게 결혼 의사를 알리고 나면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거사에서 쑥 빠지고 양가 부모님들이 주인공이 되어 결혼을 순식간에 진행시키게 된다. 그러니 부모님께 알리기 전에 미리 당사자 두 사람이 결혼준비에 대한 사전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예식에 필요한 절차(식장예약, 예복, 촬영, 신혼여행, 지방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한 교통, 간식비, 폐백음식, 이바지음식, 각 예식 절차 별 팁 비용, 피로연) 예단이나 예물, 혼수 등등 치러야 할 항목과 생략하고 지나칠 항목을 잘 의논해야 한다. 전국의 재혼 희망자 4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혼수갈등의 원인을 남자의 74.7%가 “여자 쪽의 경제적 한계”라고 답했고, 여자의 36.2%가 “그 정도면 무난하다고 판단해서” 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당사자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온 결과라고 본다. 물론 대화가 미리 되었다면 남자가 원하는 만큼 모두 충족 시켜 주었을 거라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의 서로에 대한 무모한 기대나 오해는 지양하자는 것이다.
>> 부모님의 의사를 존중하되 확고한 의지를 보여라.
결혼 준비 중에는 당사자의 갈등뿐 아니라, 내 부모와의 갈등도 미리 예상해야 한다. 딸을 시집 보내는 부모나 아들을 장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내 자식을 아끼는 마음 때문인지, 무리한 보상심리 인지 냉정하게 판단하여 내 부모님과 사전에 많은 대화를 나누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혼수에 대한 불만은 어느 쪽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남자의 경우는 “아내쪽”이라는 답변이 33.7% 이었고, 여자의 경우는 “시어머니”가 37.5%로 높았다. 혼수에 대한 부모의 의사 개입은 단연 시부모 쪽이 높다는 이야기다. 요즘 세상에 리스트를 적어 예비며느리에게 주어 수천에 달하는 혼수를 요구한다니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결혼을 왜 하느냐는 한숨만 나오겠지만, 혼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는 없다는 의지도 있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시부모의 무리한 요구는 응당 남편 쪽에서 확고한 의지로 적정선을 합의해야 한다. 시부모뿐 아니라 남편까지 같이 펄펄 뛴다면 이 결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결혼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
>> 혼수 준비에 모두가 함께 참여하라
‘알아서 해오겠지, 알아서 잘하겠지’ 라는 생각이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원래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할 자신은 없으면서 정작 관망하는 사람이 말이 많은 법이다. 남자는 집을, 여자는 그 안에 채워 넣을 세간을 사 넣어야 하는 것이 혼수의 기본이라지만, 이것을 당사자에게만 맡기고 ‘알아서 잘 하겠지’ 했다가 나중에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같이 움직이고, 모든 일을 같이 끌어 나가자. 물론 피곤하고 시간낭비라고 생각되겠지만, 결혼 준비기간을 좀더 여유롭게 잡고 천천히 준비해 나가보자.
재혼희망자들이 설문에서 밝힌 조언에 의하면 “결혼 준비와 관련된 문제를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남자의 61.8%, 그리고 여자의 62.5%가 “당사자가 협의 결정할 것”을 제언했다. 부모님은 자녀가 장성할 때까지 무한의 노력과 희생으로 일관해 오셨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중대사 앞에서 한 순간의 판단 착오로 그 자녀의 일생의 절반 이상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자식 앞에 부모는 가장 큰 절망과 배신을 느낀다지만 결혼 앞에서는 결혼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은 진리중의 진리이다.
필자도 서른이 넘어 늦은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살던 월세 집으로 부모님이 세간을 사라고 주신 단돈 500만원을 들고 들어왔다. 세간은 남편이 가지고 살던 것을 그냥 쓰기로 했고, 수저며 냄비며 한 두 개 씩 사서 쓰다가 필요하면 하나씩 마련하고, 낡으면 가구도 늘려가며 살림을 마련했다.
물론 양가 부모님들이 원하시고 아쉬워하셨던 부분이 많으셨으리라 생각했지만, 남편이나 나도 집안에서 한 성격(?) 했던 것이 결혼이라는 사태의 소음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당연히 있으셨던 부모님의 불만은 당시 서로에게 철저하게 전달하지 않았고, 우리 두 사람이 정한 기준 이상은 드리지도 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남편은 결혼 비용으로 시부모님께 500만원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수로 섭섭하신 부모님 마음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모습으로 보답해 드리면 눈 녹듯이 녹는다. 결혼 전에 반드시 확인할 것이 있다. 혹시나 내 안에 혼수로 팔자 고쳐 보겠다는 심사가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