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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하우스덴 지음/ 김미옥, 윤영삼 옮김, 2009, 21세기북스 orienta
Ten Poems to Open Your Heart
언제나 내 앞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
- 시로 옮기고 싶은 순간을 놓치다 -
Roger Housden
< 죽음이 다가오면 >
가을철 굶주린 곰처럼
죽음이 다가오면,
죽음이 다가와 내 목숨 값으로 제 지갑에서 빛나는 금화를 모조리 꺼내 보이고는
지갑을 탁 닫아버리면,
홍역처럼
죽음이 다가오면,
견갑골 사이에서 자라나는 빙산처럼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문을 걸어 나가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그 어두운 오두막은?
그런 까닭에 나는 형제자매로서
세상 만물을 본다.
시간은 관념에 불과한 것,
영원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각각의 생명은
한 송이 들꽃처럼 흔하면서 고유하며,
편안한 음악처럼 입가에서 맴돌다가
모든 음악이 그렇듯 조용히 사라지는 이름이며,
용감한 사자의 육체이며,
세상의 소중한 어떤 것이다.
마칠 때가 되면 말하고 싶다, 평생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으며
온 세상을 품 안에 끌어안은 신랑이었다.
생을 마칠 때 나는
특별한 삶을 살았는지,
진정한 삶을 살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중언부언 변명을 늘어놓으며
한숨짓고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보고싶지 않다.
나는 이 세상을 다녀갔다는 것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 Mary Oliver(메리 올리버, 1935~, 미국)
New and Selected Poems(1992)
< 서풍 West Wind 2 >
그대는 젊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없죠.
작은 배에 뛰어 올라 힘껏 노를 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좀 들어보세요.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의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대 영혼의 귀에 대고 이야기합니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물 속에서 노를 들어 보세요.
팔을 멈추고 심장을 가라앉히고
가슴의 작은 지혜를 쉬게 하고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사랑 없는 삶이 있어요.
그런 삶은 구부러진 동전 한 닢,
닳아빠진 신발 한 짝만큼도 가치가 없답니다.
그런 삶은 아흐레동안 묻지 않고
내버려둔 죽은 개만큼도 가치가 없답니다.
아직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멀리서 소용돌이치며 휘돌기 시작하는
물결소리가 들려올 때,
날카로운 바위와 세차게 부딪치는 물소리가
또렷이 들려올 때,
커다란 폭포가 쏟아져 내리며 내뿜는
뿌연 안개로 입안에 촉촉하게 느껴질 때,
한바탕 전투가 다가온다는 것이 느껴질 때,
노를 저으세요.
온 몸을 던져 노를 저으세요.
목표를 향해
- Mary Oliver
New and Seleted Poems(1992)
Kindness -- Naomi Shihab Ny
Before you know what kindness really is
you must lose things,
feel the future dissolve in a moment
like salt in a weakened broth.
What you held in your hand,
what you counted and carefully saved,
all this must go so you know
how desolate the landscape can be
between the regions of kindness.
How you ride and ride
thinking the bus will never stop,
the passengers eating maize and chicken
will stare out the window forever.
Before you learn the tender gravity of kindness,
you must travel where the Indian in a white poncho
lies dead by the side of the road.
You must see how this could be you,
how he too was someone
who journeyed through the night with plans
and the simple breath that kept him alive.
Before you know kindness as the deepest thing inside,
you must know sorrow as the other deepest thing.
You must wake up with sorrow.
You must speak to it till your voice
catches the thread of all sorrows
and you see the size of the cloth.
Then it is only kindness that makes sense anymore,
only kindness that ties your shoes
and sends you out into the day to mail letters and
purchase bread,
only kindness that raises its head
from the crowd of the world to say
it is I you have been looking for,
and then goes with you every where
like a shadow or a friend.
< 정 情 >
세상을 잃은 뒤에야,
묽은 고깃국에 소금 녹듯
미래가 한순간 녹아버리는 것을 느껴본 뒤에야
정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손에 쥐고 있는 것,
소중히 여기고 조심조심 지켜온 것,
이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정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얼마나 황량한지 알 수 있다.
달리고 또 달리는 버스 안
승객들이 옥수수와 치킨을 뜯으며
영원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면,
너는 얼마나 오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겠니.
하얀 판초를 입은 인디언이
죽은 채로 길가에 누워 있다.
그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뒤에야
정의 포근한 중력을 알 수 있다.
그 모습이 너의 것일 수도 있었다는 걸,
그 사람 역시 무수한 계획을 꿈꾸며
어두운 밤을 여행했고, 살아 있을 땐
평범한 숨을 쉬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슬픔이 마음 중에서 가장 안쪽의 것임을
알고 난 뒤에야
정 또한 가장 안쪽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슬픔 속에서 깨어나봐야 한다.
네 목소리에 지극한 슬픔의 실타래가 느껴질 때까지
슬픔으로 짠 천의 크기가 보일 때까지
슬픔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정만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신발 끈을 묶고 밖에 나가게 하고,
편지를 부치고 빵을 사게 하는 것도 정뿐이며,
세상의 군중 사이에서 고개 들어
그대가 찾던 것이 바로 나라고
말하는 것도 정뿐이며,
그림자처럼 친구처럼
네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것도 정뿐이다.
- Naomi Shihab Nye(나오미 시하브 나이, 1952~,
아랍계 미국인)
Words under the Words(1995)
< 같은 내면 The Same Inside >
사랑의 축제를 위해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길가에서
한 늙은 거지 여인을 보았네.
그녀의 손을 잡고
섬세한 뺨에 키스를 했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녀는 나와 똑같은 내면
개가 냄새만으로
다른 개를 알아보듯이
우리가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알아챘네.
그녀에게 돈을 주고 나서도
나는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네.
어떻든 사람은 친밀감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지.
그러자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갈 이유를
알지 못했네.
- Anna Swir(안나 스위르, 폴란드 시인)
Talking to My Body(1996)
< 첫눈에 반한 사랑 >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맺어주었다고
두 남녀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도 아름답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확실은 더 아름답다.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기에
자신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떠들며 지나가던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수백 번 스쳐 지났던 것은 아닐까?
그 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지
두 사람에게 묻고 싶다.
언젠가 회전문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지 않았나?
붐비는 인파 속에서 "죄송합니다"라고
중얼거린 적은?
전화기에 대고 "잘못 거셨다"라고
퉁명하게 내뱉은 적은?
하지만 나는 그들이 뭐라 대답할지를 안다.
아뇨, 그런 적 없는데요.
이미 오래전부터
우연을 가장하여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런 운명이
단박에 이루어진 건 아니니,
우연이 그들을 가까이 끌어당기기도,
멀리 떼어놓기도 하고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서로 엇갈려놓기도 했다.
두 사람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으나
무수한 신호가 있었다.
아마도 삼년 전,
아니 지난 화요일
자신의 어깨를 스친 나뭇잎 하나가
다른 한 사람의 어깨에 닿았을지
자신이 떨어뜨린 걸 그가 주웠을지
누가 알겠는가? 어린 시절 덤불 속에서
잃어버린 공을 그가 주웠을지.
자신의 손길이 지나간
문고리와 초인종을
바로 그가 와서 만졌을지
비행기 수하물 칸에 트렁크가
나란히 놓여 있었을지.
아침에는 희미해져 버렸지만
간밤에 비슷한 꿈을 꾸었을지.
모든 시작은 결국
끝없는 이어짐일 뿐이며,
삶이라는 두꺼운 책은
언제나 중간쯤 펼쳐져 있다.
- Wislawa Szymborska(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23~, 폴란드 노벨문학상 수상)
View with a Grain of Sand(1993)
< 내인생 >
때로 나는 인생이
둥그런 지구를 관통하여
연필과 자를 가지고 똑바로 그은 선인 줄 알았지.
때로는 무심히 흩날리는 담배 연기 고리를
손가락으로 찔러보는 장난인 줄 알았어.
그러나 때마침 해가 솟아오르거나
전화벨이 울리면
이런저런 생각도 그만두게 될 걸.
한마디로 내 인생은
공기와 기억으로 가득 찬 커다란 공이다.
무엇인들 어떠랴, 내 인생은
한 줄로 늘어선 아담한 농촌 마을이거나
마을 사이로 꼬불꼬불하게 난 어두운 골목이다.
그냥 내 인생을 들판이라 할까
날마다 나는 괭이질을 했지
괭이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 밭에서는 잠이 들기도 했지.
이제는 반 넘어 지나왔으니
반쯤 열린 문이거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 같은 것.
그대의 인생도 그러하듯이
내 인생을 무어라 불러도 좋다.
알 하나만 품고 있는 둥우리거나,
천 개의 방으로 통하는 복도이거나,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무엇이든지
아니면 잠시, 조금 더 오래
창 밖을 내다보라
언젠가는 반드시 소중한 내 인생이
동시에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걸.
그러나 오늘 아침 침대에 앉아
검정 스웨트를 입고 안경을 쓰고
커튼을 드리우고 창문을 올린다.
나는 호수요, 나의 시는 빈 배다.
내 인생은 이 모든 풍경을 지나
불어오는 산들바람이다.
스치는 모든 것을 뒤흔들면서
바람이 지나간다.
잔잔한 바다의 수면과 후줄근한 돛과
해안을 따라 들어선 잎이 무성한 육중한 나무들도
바람에 흔들린다.
- Billy Collinsq(빌리 콜린스, 1941~, 미국의 계관시인)
Picnic, Lightning(1998)
< 작가의 말 >
나는 독자 여러분이 언제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삶을 변화시키기를 바란다. 가슴을 열고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고달픈 일상의 짐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나아가 일생동안 마르지 않는 샘솟는 영감을 시에서 얻기를 바란다.
혼자서 가만히 시를 음미하거나 친구에게 소리내어 읽어줘도 좋다. 아무튼 가능한 한 자주 좋은 시를 접하면서, 거기서 새로운 감동을 얻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시를 기억하고, 몇 구절이라도 직접 시를 옮겨 적어보았으면 좋겠다. 시를 지어보는 것도 괜찮은 것이다. 시는 태곳적부터 있었고, 옛사람들이 마음의 눈으로 보았던 풍경과 절실한 사랑과 슬픔을 소박하게 노래했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해왔다.
(…) 시는 우리를 삶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수많은 문 가운데 하나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나 구불구불 얽혀 있는 나무뿌리, 갑작스러운 바람에 펄럭거리며 날아가는 종이 봉지를 보면서 사색에 빠져보라. 그림은 삶을 더 크게 보는 또 하나의 창구다. 조각과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도구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기운을 북돋우고, 우리를 일깨우고, 나날의 삶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가, 아니면 그것이 우리의 기를 꺾어 우리를 자기자신과 눈 앞의 세상에서 단절시키는가.
시를 비롯해서 모든 예술은 궤변과 비난, 냉소보다는 영혼과 정신을 살찌우는 가장 유익한 것이다. 확실히 최고의 시는 인간의 영혼을 기리는 노래, 말하자면 송가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에 실린 시들이 노래하고자 하는 바다.
< 옮긴 이의 말 >
니체의 말처럼 사람은 자기 체험만큼만 읽을 수 있다. 누구든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책에서 자기에게 적합한 말을 찾아 즐길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시들이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알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저 한 편의 시를 만나보자. 난해한 부분들에 조금씩 도전해보자. 거듭 읽을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시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면, 시가 우리 안에서 놀라운 빛을 발할 것이다.
시를 쓰고 읽는 행위가 닫힌 마음을 열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로저 하우스덴이 엮은 시들은 모두 치유와 깨달음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나날의 삶에서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은 세상 모든 존재와의 연결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동떨어진 섬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병을 앓고 있다.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깨달음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헤이든 커루스가 말하는 "세상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지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한 순간"이야말로 세상 모든 존재와 '하나 됨'을 깨닫는 순간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우리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는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노래하고 있다.
치유를 넘어 깨달음과 경이로움으로 이어지는 이 책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한결같이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삶의 상황'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 자체'에 집중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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