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2826
잠시 쉬어 가기
동봉
화담숲 지현 오경덕 거사가 지난 10월 9일 우리절 제27돌 개산제에서 봉사하는 틈틈이 몸소 느낀 바를 아름다운 문체로 보내왔기에 싣습니다. 아울러 글쓴이 프로필에 관해서는 본인이 정중히 사양하기에 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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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개산제 27주년 소회
지현 오경덕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시어골에 위치한 청정도량 우리절의 27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개산제는 절이 처음 세워진 날을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왜 세워졌고 왜 남겨졌는지에 대한 의문보다 우리절이 열렸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 더 가까이 청할 수 있었고 살아가기에 진리의 답을 탐구하는 수행의 기회가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2022년 10월 9일 저녁 6시 주지 동봉 스님의 인사 말씀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만남이 아름다운 이유는 생활에서 분리된 공간 속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들을 하나된 목적으로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고 날은 어두웠지만 우리절은 밝았습니다.
부처님도, 주지스님도, 신도들도, 가르침도, 수행함도, 청함도 다 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없는 것도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국적과 세대를 어우르는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공연행사가 백미였습니다. 체코에서 건너온 카로마토 극단의 인형서커스가 시작을 알렸습니다.
마리오네트 인형의 섬세한 움직임은 무대만큼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사자는 무대를 포효하고 중국 왕서방은 곰처럼 재주를 부리고 동네 할아버지는 광대처럼 웃겼습니다.
체코에서 온 진행자가 서툰 발음으로 하나, 두울, 셋이라고 하니 관객은 즐거워 함께 몰입합니다.
체코 인형극 얘기만 하기에는 뭔가 아쉽습니다.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문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릿결, 마음결 자매의 경고무와 소리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아리따운 몸짓과 가장 잘 어울리는 분홍빛 의상과 화장을 하고, 아직 앳된 얼굴에서 미소가 끊이질 않는데 경고를 들고 춤추는 모습이 시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비록 고깔은 없었지만)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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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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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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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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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승무 中)
시가 현실이고, 현실이 시일까 여인들의 아름다움만큼 귀또리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밤 도반들 환호를 자아내는 흥과 멋이 있었으니
하유何有 스님의 멋진 춤사위가 동네에서 노래라면 한 수 접기 힘든 사람들의 사랑의 트위스트라는 가요까지 접목된 현장입니다.
수행은 고요해야 한다는 고집에 철퇴를 가하듯 박자와 감정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어르신들의 흥을 무대 위로 올렸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선 흥은 어르신들의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역동의 시절 누구나 잘살아 보자는 시대적 표지 뒤로 사람들의 아름다운 서정을 노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광석입니다.
보이스 코리아에서 준우승까지 거머쥔 실력파 윤성기 님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라는 김광석의 노래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바람이 불면 음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바람이 불면 음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김광석,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中)
세상에 남겨져 살아지다 보니, 진리를 궁구하는 것을 잊은 우리들에게 환기를 시켜주는 가사입니다.
그리고 그 가사는 윤성기 님 목소리로 더욱 빛이 납니다. 김광석은 세상에 없지만, 그의 음악은 앞으로 또 27년이 지난 뒤에도 다른 이들을 만날 것입니다.
다행히, 또 다른 서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밤에 떠난 여인'
'바람에 실려'를 불러 1970년대를 주름잡은 하남석 님입니다.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대답게 우리절 시간에 실린 관객들 귀에 1970년대 그 멋을 2022년에도 유감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 푸른 저 하늘 위에서
구름 따라 바람 따라 날아서 희망을 찾아 가네
바람 따라 떠나리 저 먼곳에 고향 떠난 철새 처럼 그리워 못잊어 떠나면 사랑하는 내님 날 반기리
(하남석, 바람에 실려 中)
무대가 끝나고, 짧은 만남은 헤어짐으로 이어졌지만 우리절은 다음 개산제에도 세상에 남겨진 것들을 반길 것입니다. 생활을 반길 것입니다.
문화를 반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랑을 반길 것입니다.
짧은 글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글에 미처 담지 못한
감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풍부한 성량만큼 위트가 있었던 이름은 들풀이지만, 노래는 바람이었던 카로마토 극단 단주 최들풀 성악가님.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윤활유가 되어주신 이지현 배우님.
이러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섭외와 기획을 선뜻 맡아 주신 설곡 거사님.
음향팀, PD
모든 보살님,
공양주님들
다음번 개산제도
세상의 문화를 함께 즐기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고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어리석은 질문에도
명쾌한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님
동봉 스님께 합장으로 감사와
축원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2년 10월13일 지현 손모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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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2022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