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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류불연(大謬不然)
처음 의도와 달리 일이 크게 잘못되다는 뜻으로, 일이 실제와 크게 다르거나 잘못되어 버림을 일컫는 말이다.
大 : 큰 대(大/0)
謬 : 그릇될 류(言/11)
不 : 아닐 불(一/3)
然 : 그러할 연(灬/8)
출전 :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이 성어는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 나오는 말이다. 한(漢)나라의 유명한 역사가이자 문학가였던 사마천(司馬遷)이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가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이다.
임안(任安)의 자(字)는 소경(少卿)이고, 형양(滎陽) 사람으로 불우한 청년시절을 보냈으나 후에 대장군 위청(衛靑)이 그를 자신의 시종(侍從; 오늘날의 비서)으로 발탁했다. 나중에 위청(衛靑)의 추천으로 낭중(郎中)이 되었고, 그 후 익주자사(益州刺使)까지 역임했던 인물이다.
기원전 91년 여태자(戾太子)의 반란, 즉 무고(巫蠱)의 난이 발생했다. 당시 임안은 경성(京城) 금위군(禁衛軍; 황궁을 지키는 군대) 북군(北軍)을 관리하는 군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여태자의 출동 명령을 받았으나 이 일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북군의 말단 관리의 모함으로 이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돼 처형될 상황이 됐다.
임안은 처형되기 전에 태사령(太史令)으로 있던 사마천에게 구원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사마천은 장군 이릉(李陵)이 흉노를 정벌하러 갔다가 중과부족으로 인해 투항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한무제(漢武帝)에게 “그 누구라도 이러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으며, 만일 이릉을 처벌한다면 이후 그 누구라도 나라를 위해 싸울 장수는 없을 것입니다”라는 말로 이릉을 변호했다가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부형(腐刑; 남자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형벌)에 처해진 상태로 태사령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사마천은 자신의 이러한 처지 때문에 답장마저도 제 때에 하지 못했다.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이 일단 처형되고 나면 영원히 답장할 기회를 잃고, 이것이 또 다른 평생의 한(恨)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하여 뒤 늦게 임안에게 답장을 썼다. 이 글이 바로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다.
모욕(侮辱)과 고통 속에 있던 사마천이 임안에게 보낸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또한 일의 처음과 끝(本末)도 결코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려서는 무엇에도 얽매지 않는 재능을 지녔다고 자부했으나, 자라서는 촌구석에서 칭찬받은 일이 없었는데, 주상(主上)께서 다행히 돌아가신 아버님과의 인연으로 태사(太史)의 일을 이어 받게 되어 궁궐의 안을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이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어떻게 하늘을 바라 보겠는가'라고 생각하였고 그런 까닭에 손님들과의 사귐도 끊고 집안(一家) 일도 잃어 버렸으며, 밤낮으로 부족하나마 능력을 다하고 한마음으로 직분에 힘써, 주군을 즐겁게 해드려 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크게 잘못되어 그렇지 못했습니다"라고 적었다.
且事本末未易明也. 僕少負不羈之才, 長無鄉曲之譽,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奉薄技, 出入周衛之中. 僕以為戴盆何以望天, 故絕賓客之知, 忘室家之業, 日夜思竭其不肖之材力, 務壹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
사마천이 임안에게 편지를 보낸 뒤 얼마 후에 임안은 요참형(腰斬刑; 허리를 자르는 잔혹한 형벌)에 처해지고 말았다. 사마천과 임안은 모두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허나 군주의 그릇된 판단에 의해 사마천은 부형(腐刑)을 당했고, 임안은 요참형(腰斬刑)을 당했다.
봉건시대의 암울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오늘날 상황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대류불연(大謬不然)
처음 의도와 달리 일이 크게 잘못되다. 좋은 일을 하려다 원래 의도와 크게 어긋나(大謬) 다르게 일이 틀어진(不然)경우다.
기전체(紀傳體) 사서의 효시 사기(史記)를 남긴 사마천(司馬遷)은 중국 최고의 역사가를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불행 속에서 대작을 집필하여 불굴의 의지가 더 빛났다. 48세 때인 서기전 99년 생식기를 잘리는 궁형(宮刑)을 받고서도 수치를 이겨내고 대작을 완성했다.
전한(前漢)의 국력을 떨친 7대 무제(武帝)에게 장군 이릉(李陵)이 흉노(匈奴)에 항복한 것을 변호하다 미움을 받아 치욕을 당한 것이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투항을 벌주면 나라를 위해 싸울 장수가 없을 것이라고 바른 말을 하다 눈 밖에 났다.
좋은 일을 하려다 원래 의도와 크게 어긋나(大謬) 다르게 일이 이루어졌다(不然)는 이 성어는 사마천이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왔다.
임안이 황궁을 지키는 군관으로 있을 때인 서기전 91년 무고(巫蠱)의 난에 휩쓸렸다. 무제가 병으로 눕게 된 것이 무당의 주법 때문이라며 많은 사람을 옥사시킬 때 황태자인 여태자(戾太子)가 반란을 일으켰고, 임안이 동원령을 거부했다가 모함을 받았다.
억울하게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사마천에게 억울한 옥살이를 호소하며 선처해 주도록 손길을 내밀었다. 치욕스런 형벌에서 벗어나 중서령(中書令)이란 관직에 있었던 사마천은 환관으로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는 처지라 선뜻 답장을 못했다. 그러다 친구가 처형되면 한이 될 것 같아 쓴 것이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다. 소경(少卿)은 임안의 자이다. 부분을 보자.
자신은 부친의 덕으로 사관인 태사(太史)가 되어 궁을 드나들게 되었는데 물동이를 이고 하늘을 볼 수 없어(戴盆望天), 손님과 사귐도 끊고 집안일도 잃어 버렸다면서 이어진다.
밤낮으로 부족하나마 재주를 다하고 한마음으로 맡은 일에 힘써 주군을 즐겁게 하려 했지만, 일이 크게 잘못 되어 그렇지 못했습니다(日夜思竭其不肖之才力, 務一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
사마천이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심정을 피력하며 좋은 의미의 일도 때로는 화를 가져 온다고 했다. 임안은 그 얼마 뒤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을 당했다. 사마천과 같이 좋은 세상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일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절망스럽다.
건설적인 의견을 냈는데도 윗사람이 안목이 좁아 내쳤을 수도 있고 반대파들에 휘둘려 좌절됐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조직을 위해 옳은 것인지 구성원 전체가 잘 살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대체적으로 반대 의견이 많은데도 자기 갈 방향으로 따라 오라며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정책으로 실적이 뒷걸음질 치는데 고집스럽게 나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류불연(大謬不然)
일이 크게 잘못되어 본질에서 벗어났다. 좋은 일을 하려다 원래 의도와 크게 어긋나(大謬) 다르게 일이 틀어진(不然)경우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일이 원래 계획했거나 의도한 대로 되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흘러 크게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정의당은 다당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자기 당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 대표제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연동형 비례 대표제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대대적으로 주장하고 홍보하였다.
그때 나는 한 토론의 장에서 연동형 비례 대표제를 주장하는 정의당에 속한 분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결국 정의당의 발등을 찍는 꼴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유는 자유한국당이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무슨 묘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 했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끝까지 의리를 지키지 않을 것이며 선거에서 다수의석 확보를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국민은 정치가 혼란할수록 세력이 있는 진보와 보수 두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의당은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나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연동형 비례 대표제에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 힘 전신)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정의당과 연대의 필요를 느꼈던 더불어민주당은 그 안을 수용하면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과정에서 정당 간의 몸싸움이 이는 등 부작용도 많았다. 하지만 법은 통과되고 그 법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위기를 느낀 자유한국당은 위성 정당을 만들었고 나중엔 더불어민주당도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승과 자유한국당의 약진이 있었지만 정작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던 정의당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되어 버린 것이다. 민심의 향방을 제대로 잃지 못한 이론에만 기반을 둔 결과였다.
세상에는 이처럼 개인적인 일이건, 사회적인 일이건, 국가적인 일이건 당초의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여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이 중요할수록 사전에 시뮬레이션을 해 가면서 다방면의 예측과 검토를 거친 후에 신중하게 하여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이처럼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본질에서 어긋나 크게 잘못되는 것을 일컬어 대류불연(大謬不然; 일이 크게 잘못되어 본질에서 벗어났다)이라고 한다. 大謬不然의 대(大)는 ‘크다’이며 류(謬)는 ‘그릇되다’ ‘어긋나다’의 뜻을 지닌다. 불(不)은 ‘아니다’이며, 연(然)은 ‘그러하다’로 본연을 의미한다.
대류불연(大謬不然)은 사마천의 사기 서문에 있는 보임소경서(補任少卿書)에 나오는 말이다, 사마천은 이 보임소경서(補任少卿書; 임안任安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좋은 뜻에서 황제(한무제)에게 이릉(李陵) 장군을 변론한 의도한 것이 황제에게 엉뚱하게 받아들여져 궁형을 받고 궁색한 삶을 살아가게 된 사연을 설명하는 과정에 나온 말이다.
그러면서 옥에 갇힌 임안이 자신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 달라는 부탁에 대해 “아! 나 같은 자가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하면서 자기 신세 한탄으로 답하고 있다. 사마천은 편지에서 임안에게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변론한다.
세상에는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저는 어려서 뚜렷한 재주도 없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의 칭찬 한마디 듣지 못한 몸이지만, 아버님 덕분에 폐하의 부름을 받고 궁중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동이를 머리에 얹게 되면 하늘을 바라볼 수 없기에, 빈객들과 교유를 사절하고, 집안일도 잊고, 밤낮으로 미약한 재주를 닦으며, 마음을 다해 직무에 힘써서 주상(主上)의 환심을 사려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있어 예상 밖의 잘못은 생기는 법입니다. 이릉(李陵)의 사건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저는 이릉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술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나눌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모에게 효도하였고, 친구에게는 신의를 지켰으며, 금전 관계는 깨끗하였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를 신념과 기품이 있는 큰 선비로 확신했습니다.
만 번 죽어도 자기의 생명보다 먼저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신하의 당연한 도리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했던 일 중 하나가 나쁜 결과로 나타나자 자신의 몸만 사리고 처자식 보호에만 급급했던 신하들이 앞을 다투어 그의 잘못을 비방하고 조작하였기에 저는 그 분함을 참지 못하고 이릉을 변론하였습니다.
이릉 장군은 끝내 패전하였지만,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5천 명도 안 되는 병사를 이끌고 흉노의 본진 깊숙이 쳐들어가 수만의 적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 결과 10여 일에 걸쳐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흉노족은 총동원하여 포위하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에 이릉의 군대는 본국에 지원군을 요청하고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지원군은 오지 않고 화살이 끊어지고 보급품도 끊겨 사상자는 산더미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릉은 군사들을 독려하며 전장을 누볐으며 용기를 얻은 병사들은 피를 뒤집어쓰고 눈물을 삼키며 맨주먹으로 적의 칼날에 맞서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이토록 이릉이 패배하지 않고 분투한다는 전령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조정 백관들이 축배를 들고 폐하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패전의 소식이 들리자 황제가 입맛을 잃어 음식을 들지 않고 정사를 돌보지 않자 백관들은 어쩔 줄 몰라 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한 나의 지위도 잊은 채, 폐하의 괴로운 심정을 헤아려 위로해 드리고자 하는 뜻에서 폐하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습니다. “이릉은 늘 부하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여 두터운 신뢰 관계를 맺었습니다. 옛 명장을 보아도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가 포로의 몸이 된 것은 향후 한 나라에 충성하려는 다른 뜻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비록 일시적이라 해도 흉노의 대군을 격파한 공적은 천하에 알려 표창할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저의 충정을 오해하시어 제가 이릉 장군을 두둔하고 총사령관이었던 이광리 장군을 폄하(貶下)하는 것이라 여기고 저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저의 집안은 가난했기에 벌금을 낼 수도 없었고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어 궁형에 처해졌습니다. 이릉은 적에게 항복함으로써 목숨은 건졌으나 가문을 더럽혔고, 저는 잠실(蠶室; 궁형에 처한 사람이 상처가 아물고 회복될 때까지 수용하였던 밀실)에 던져진 채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서럽고 서러운 일이라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 편지의 내용을 보면 사마천이 얼마나 억울하게 궁형에 처했는지 알 수 있다. 백관들은 이릉의 전승 소식에는 폐하 만세를 외치며 술잔을 기울였으나 이릉의 패전 소식을 들었을 때는 황체를 위로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가 오히려 이릉을 역적으로 몰아갔다. 황제를 진심으로 생각했던 사마천은 황제에게 위로차 이릉을 변호한 것이 크게 잘못되어 자신이 큰 형벌을 받게 된 처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사마천은 ‘모든 일에 있어 예상 밖의 잘못이 생기는 법’이라고 말한다. 사마천에게 ‘이릉의 사건’이 바로 대류불연(大謬不然)이었다.
그런데 이 대류불연(大謬不然)은 개인적인 일, 사회적인 일, 국가적인 일, 국제관계 등 일이 있고 사람 관계가 있는 모든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 원인은 자신의 역량과 일(시세, 상황, 상대의 역량, 성격 등)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여기선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대류불연(大謬不然)이 나타나는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권위의 문제 때문이다. 이 경우는 대체로 군신 관계, 상하 관계, 권력과 비권력의 관계 등에서 나타난다. 군신 관계에서 군주가 대단한 권위주의에 빠져 있고 그 권위에 바탕을 둔 철권 정치를 감행할 때 신하가 좋은 의도로 한 상소나 간언도 때로는 노여움을 사서 엄청난 화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사마천이 화를 당한 경우도 바로 그런 경우이다.
한무제는 매우 강력한 전제군주로 고대 중국의 대제국을 이룬 업적만큼이나 호탕하였으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성격도 불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이릉이 패전하고 흉노의 포로가 되었다고 했을 때 백관들은 황제의 불똥이 무서워 눈치만 살피다가 황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릉을 역적으로 몰았다. 그러나 사마천은 황제의 그런 불같이 급한 성미를 먼저 헤아리지 않고 위로한다고 간언을 올린 것이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은 기분에 거슬리는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를 능멸하는 자’라 하여 처단하였으며, 중종 때 개혁정치가 조광조 역시 초기에는 강력한 개혁정치를 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중종은 피로감에 쌓이고 결국은 중종마저 조광조를 버림으로 처형된다.
이러한 사례는 오늘날에도 진행형이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자가 매우 권위적일 때 심기를 건드리는 간언이나 직언은 아무리 좋은 뜻에서 하더라도 때로는 화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권위주의는 이성이 아닌 감정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권위 의식이 강한 권력자 주변에는 직언하는 사람보다 눈치만 보거나 아첨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러한 경우는 회사나 직장에서의 상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상사가 지나치게 권위적일 때 부하직원은 직언이나 자기 소신을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소신을 말하다 보면 미움을 사서 손해를 본다. 권력과 비권력의 관계는 이를테면 국회의원이나 고위직들의 잘못된 행태 이를테면 권력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가하는 갑질과 같은 것이다.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법무부 차관이 된 사람이 만취한 상태에서 택시 운전기사를 폭행한 사건도 이에 해당한다. 흔히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는 말속에는 그런 권위 의식에 기반을 둔 갑질 행위가 담겨 있다. 그런 잘못된 권위 의식에 빠진 사람들은 권력적 권위를 획득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행위를 다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심은 매우 약하다.
그런 사람들의 최후는 대체로 좋지 못하다. 올바른 권위 의식은 합리적 이성(理性)에 거처하기 때문에 법률과 상식의 범위 안에서 행해진다. 그러나 잘못된 권위 의식은 감정(感情)에 거처하기 때문에 법률과 상식의 범위를 탈피하여 사람들을 괴롭힌다.
둘째, 선입견의 문제이다. 여기서 선입견이란 그가 가진 가치관이나 이론 등 사전 지식을 말한다. 선입견이 확증편견에 빠져 있을 때 문제를 발생시킨다. 동등한 지위의 두 사람이 대화하거나 토론을 할 때도 두 사람의 선입견이 상반될 경우 합일점을 찾기 어렵고 결국 논쟁이나 다툼으로 발전하기 쉽다.
정치의 경우 확증편견에 빠지기 쉬운데 지나친 보수 성향인 사람과 지나친 진보 성향의 사람이 대화 중 다툼으로 발전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이다. 그래서 친구 사이라도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군신 관계, 상하 관계 등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조언하거나 주장을 펼 때, 윗사람이 가진 선입견은 매우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아랫사람의 조언이나 주장이 윗사람이 가진 선입견과 전혀 다른 방향과 내용일 때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려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사마천이 한무제를 위로한다고 이릉을 변호할 때 사마천은 한무제가 가진 선입견을 간파하지 못한 결과이다. 한무제는 이릉보다 친척인 이광리 장군의 공적일 높이고 싶었으며, 이릉이 명장이기는 했으나 포로가 되어 골치 아픈 흉노의 앞잡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데 사마천이 이릉을 명장이라고 변호하며 공로를 인정해주라고 변호를 하니 심기가 매우 불편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관계나 대화와 협상, 나아가 국제외교와 협상에서도 선입견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우린 서로 간의 입장이라고 한다. 입장(선입견)의 차이가 크면 대화(협상)의 결과는 초라해진다. 중요한 것은 입장을 좁히는 일인데 그것을 좁히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설득력이 필요하고 설득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선입견)을 간파해야 한다.
셋째, 신중성의 문제이다. 신중성은 인간관계와 대화에서 쌍방에게 모두 필요한 것이다. 감정적인 사람은 대화할 때 옳은 소리나 자신을 위한 조언도 자신의 선입견이나 권위에 위배 된다고 여길 때, 혹은 자신과 전혀 다르다고 여길 때 화를 내면서 그 말을 듣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있다. 또 그것을 넘어서 그 옳은 말을 하는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배척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그 사람이 매우 권위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을 늘어놓기 쉽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과신하거나 상대방보다 잘 알고 있으며 권위적인 위치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신중한 듯하나 결코 신중하지 못하고 오만하다.
조선 임진왜란 때 명장이라고 하던 신립은 매우 형편없는 오만한 장수였다. 그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단칼에 물리치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2만 병사를 이끌고 상주(尙州) 전투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선산이 무너지고 왜군이 야습해 온다는 민간인의 전갈을 무시했으며, 새벽도 되기 전에 왜군이 상주에 밀어닥치자 후퇴하였으며, 조령 방어를 주장하던 김여물 등 여러 부하 장수의 주장을 무시하고 또 후퇴하여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전멸했다. 그는 용감하게 싸워 전사했지만, 신중하지 못한 오만함은 전멸을 초래했다.
탄금대는 평야라 왜군이 조총을 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으며, 때는 우기라 땅이 질어 말을 달릴 수 없었고 병사들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용맹 하나만 믿고 지형과 병장기의 상태와 아군의 조직 상태를 전혀 살피지 않았다. 당시 조선군은 왜군에 비해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으며 칼과 활은 녹슬어 있었고, 병사들은 패잔병들이 대다수라 조직적으로도 문제가 컸다. 그러나 왜군은 대군이었으며, 조총 등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잘 훈련되고 조직화 된 병력이었다.
신립이 패전한 가장 큰 원인은 부하 장수들의 조언까지 무시하는 오만함이었다. 그 오만함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게 했다. 오만은 이성과 책임이 아니라 감정과 분노에 기반을 둔다. 용맹을 자랑하던 원균도 신중하지 못함과 오만함 때문에 칠천량 해전(1597)에서 대패하였다. 그러나 매사에 신중하고 겸허하였던 이순신은 13전 13승의 대승을 거두었다.
어쩌면 사마천이 사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좋은 뜻에서 황제에게 간언한 것이 크게 잘못되어 오히려 화를 입게 된 것은 매우 권위적인 황제의 기분과 분노와 선입견을 살피지 못한 결과이다. 그리고 한무제 또한 권위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에 신중하지 못한 판결을 내리게 된 것이다. 뒷날 한무제는 사마천을 불러 술잔을 나누며 위로한 것을 보면 지난날 신중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이 지나치게 권위적일 때 그에게 조언이나 충고하는 일은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좋은 뜻에서 한 말이 엉뚱하게 받아들여져 관계가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생각(선입견)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섣부른 주장이나 조언은 문제를 더 꼬이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신중하지 못하고 즉흥적인 사람에게 역시 주의하여야 한다.
잘못된 권위 의식과 왜곡된 선입견(확증 편견), 신중하지 못한 태도는 모두 합리적 이성이 아닌 성급하고 권위적인 감정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또 거기에는 분노와 오만이 숨어 있어 엉뚱하게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언급한 대류불연(大謬不然)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점을 일깨워 준다.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사업이나 직장, 나아가 정치적인 일, 국가적인 일에까지 대류불연(大謬不然)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겪지 않는 일이다.
거기에는 사업이나 일에서는 그 정황을 잘 살펴야 하며,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권위적인지 아닌지, 선입견은 어떤지, 그가 신중한지 신중하지 못한지, 겸허한지 오만한지 등을 살펴야 한다. 사소한 일에도 잘 흥분 하거나 분노하는 사람, 대수롭지 않은 일에 열정적으로 열광하는 사람 등은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선입견이 왜곡되어 있으며 오만하여 신중하지 못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국가적이든, 국제적이든, 대류불연(大謬不然)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 길은 한마디로 지피지기(知彼知己)하는 일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기 위해서는 권위 의식을 버리고 세상과 현상,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편견에 빠지지 않는 합리적 선입견을 가지려 노력하고 때로는 자기의 선입견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상황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대류불연(大謬不然) 없는 삶, 대류불연(大謬不然) 없는 정치, 대류불연(大謬不然) 없는 국제관계를 기대해 본다.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古文觀止 卷5/文選 卷第41
報任少卿書/司馬遷
임안(任安)에게 보내는 답서(答書)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또는 보임안서(報任安書)는 한(漢)나라의 사학가인 사마천(司馬遷)이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이다.
임안(任安)은 한 무제(漢 武帝) 때 익주자사(益州刺史)와 북군사자호군(北軍使者護軍)을 역임하였으며, 여태자(戾太子) 유거(劉據)의 무고(巫蠱) 사건으로 하옥되었었다.
한무제(漢武帝) 천한(天漢) 2년, 이광의 손자인 이릉(李陵)이 흉노를 토벌하러 나갔다가 흉노에게 항복하였다. 사마천은 이릉(李陵)이 항복할 당시 무제(武帝)에게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에 처해졌다.
궁형의 치욕스런 형벌을 받고 다시 태사령이 되어 사기를 완성시킬 무렵 옛 친구 임안이 황제와 태자간의 무고(巫蠱)의 난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게 되자, 사마천이 친구인 임안에게 답장으로 보낸 개인적인 편지로 임안에 대한 걱정과 자신이 궁형을 받게 된 과정을 한탄하며 쓴 편지이다.
1.
太史公牛馬走司馬遷再拜言.
태사공(太史公)인 비천한 사마천(司馬遷)이 재배하며 말씀드립니다.
少卿足下.
曩者辱賜書, 教以慎於接物, 推賢進士爲務.
소경(少卿) 족하.
지난번에 치욕을 당하시고도 저에게 서신을 보내서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신중히 하고 현명한 인사를 추천하는데 힘쓰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意氣懃懃懇懇, 若望僕不相師, 而用流俗人之言.
말씀하시는 뜻이 간곡하고 진지하셔서 제가 그대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다고 원망하시는 듯 했으나 이는 세속 사람들의 의견을 따른 것입니다.
僕非敢如是也.
僕雖罷駑, 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
제가 감히 그와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비록 재능은 없으나 덕망이 있는 분의 유풍을 곁으로나마 들은 바가 있습니다.
○ 顧自以爲身殘處穢, 動而見尤, 欲益反損, 是以獨鬱悒而無誰語.
그러나 돌아보면 궁형을 당한 이래로 천한 직책과 어울려 있어 움직이면 더욱 질책을 당하고, 나아지려 하면 도리어 손해를 입으니, 홀로 고민하고 있을 뿐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諺曰: 誰爲爲之? 孰令聽之?
속담에 이르기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누구를 위해 일하겠는가? 누구에게 귀를 기울이겠는가?'라고 했습니다.
蓋鍾子期死, 伯牙終身不復鼓琴. 何則?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백아(伯牙)는 죽을 때까지 다시 거문고를 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士爲知己者用, 女爲説己者容.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쓰임을 당하고, 여자는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이를 위해 단장을 합니다.
若僕大質已虧缺矣, 雖才懷隨和, 行若由夷, 終不可以爲榮, 適足以發笑而自點耳.
저와 같이 몸이 이미 불구가 된 사람은 재능이 비록 수후(隨侯)나 변화(卞和)와 같고, 품행이 허유(許由)나 백이(伯夷)처럼 고결하더라도 끝내 영예롭지 못할 것이며, 바로 남의 비웃음을 당해 스스로 더럽혀질 뿐입니다.
○ 書辭宜答, 會東從上來, 又迫賤事, 相見日淺, 卒卒無須臾之間, 得竭指意.
마땅히 서신에 대해 답해 드려야 했으나 마침 동쪽으로 황제 폐하를 수행한데다가 또 잡다한 일이 닥쳐와 서로 만난 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장황 중에 저의 마음을 털어놓을 틈도 없었습니다.
今少卿抱不測之罪, 涉旬月, 迫季冬.
지금 소경께서는 뜻밖의 죄를 안으신지 한 달이 지나 사형을 집행하는 섣달이 닥쳐 왔습니다.
僕又薄從上上雍, 恐卒然不可諱.
저는 또 천자를 모시고 옹(雍)으로 가야 하는데 그동안 그대가 불행한 일을 당하시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是僕終已不得舒憤懣以曉左右, 則長逝者魂魄私恨無窮.
이로 인해 저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고민을 좌우에게 알리지 못한 채, 그대의 혼백이 멀리 가버리면 저의 여한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請略陳固陋, 闕然久不報, 幸勿過.
저의 고루한 생각을 대략 말씀드리오니 오랫동안 답신 드리지 못한 것을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 僕聞之, 修身者, 智之符也.
愛施者, 仁之端也. 取與者, 義之表也.
恥辱者, 勇之決也. 立名者, 行之極也.
제가 듣기로는 몸을 수양하는 것은 지혜로움의 증거이며, 사랑을 베푸는 것은 인(仁)의 실마리이며, 주고받는 것은 도의(道義)의 표시이며, 치욕을 당하면 용감함을 결단하게 하며, 명성을 날리는 것은 품행의 극치입니다.
士有此五者, 然後可以託於世, 列於君子之林矣.
선비는 이 다섯 가지가 있은 후에야 세상에 발붙일 수 있고 군자의 무리에 낄 수 있습니다.
故禍莫憯於欲利, 悲莫痛於傷心, 行莫醜於辱先, 而詬莫大於宮刑.
그러므로 이(利)를 탐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재앙은 없으며, 상심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슬픔은 없고,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위는 없으며, 궁형(宮刑)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刑餘之人, 無所比數, 非一世也, 所從來遠矣.
궁형을 받은 사람이 보통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은 한 세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 왔습니다.
○ 昔衞靈公與雍渠同載, 孔子適陳.
옛날 위 영공(衛 靈公)과 환관인 옹거(雍渠)가 수레를 함께 타자 공자는 그곳을 떠나 진(陳) 나라로 갔습니다.
商鞅因景監見, 趙良寒心, 同子參乘, 爰絲變色.
상앙(商鞅)이 경감(境監)의 주선으로 군주를 알현하자 조량(趙良)이 한심하게 여겼고, 조담(趙談)이 한 문제의 수레를 함께 타자 원사(袁絲)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自古而恥之, 夫以中才之人, 事有關於宦豎, 莫不傷氣, 而況於忼慨之士乎.
이처럼 예로부터 사람들은 환관 따위와 관계를 가지는 것을 수치로 여겼으니, 평범한 사람들도 환관과 관련되면 기가 상하지 않음이 없다고 여기는데, 강개한 선비야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如今朝雖乏人, 柰何令刀鋸之餘薦天下豪雋哉.
지금 조정에 아무리 인재가 모자란다고 한들 어찌 저같이 환관(宦官)의 형을 받은 사람이 호걸을 천거할 수 있겠습니까!
○ 僕賴先人緒業, 得待罪輦轂下, 二十餘年矣.
저는 선친의 유업에 힘입어 조정의 관직을 수행한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所以自惟, 上之, 不能納忠效信, 有奇策才力之譽, 自結明主.
그래서 스스로 생각건대 위로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신의를 다할 수 없었고, 훌륭한 계책을 세워 재능이 있다는 명예를 얻어도 황제에게 신임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次之, 又不能拾遺補闕, 招賢進能, 顯巖穴之士.
다음으로 또 타인의 과실을 바로잡고 결점을 보완하며,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천거하거나 초야에 숨어있는 선비를 조정에 드러나게 할 수도 없습니다.
外之, 不能備行伍, 攻城野戰, 有斬將搴旗之功.
밖으로는 군대를 거느리고 성을 공격하며 들에서 싸워 적장의 목을 베고 기를 빼앗는 공로도 세울 수 없습니다.
下之, 不能累日積勞, 取尊官厚祿, 以爲宗族交遊光寵.
아래로는 오랫동안 공을 쌓아서 높은 관직이나 두터운 봉록을 얻어 친척이나 벗들에게 영광과 은총을 입게 할 수도 없습니다.
四者無一遂, 苟合取容, 無所短長之效, 可見於此矣.
저는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도 성취하지 못하고 구차하게 영합했으나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한 바가 이와 같습니다.
○ 鄉者, 僕亦嘗廁下大夫之列, 陪外廷末議. 不以此時引維綱, 盡思慮.
이전에 저도 일찍이 하대부(下大夫)의 대열에 끼여 외정(外廷)에서 하찮은 논의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올바른 법령을 이끌어 내지도 사려(思慮)를 다하지도 못했습니다.
今以虧形爲埽除之隸, 在闒茸之中, 乃欲卯首信眉, 論列是非, 不亦輕朝廷, 羞當世之士邪.
지금 불구가 된 몸으로 청소나 하는 노예처럼 비천한 사람에 속하게 되었는데, 머리를 쳐들고 눈썹을 치켜뜨면서 시비를 논하는 것은, 조정을 가벼이 여기고 당대의 선비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嗟乎. 嗟乎. 如僕, 尚何言哉. 尚何言哉.
아아! 아아! 저와 같은 인간이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2.
○ 且事本末未易明也.
게다가 일의 본말도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僕少負不羈之才, 長無鄉曲之譽,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奉薄技, 出入周衞之中.
제가 젊었을 때에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을만한 재능이 있다고 자부했으나 장성하고 난 후로는 시골에서도 칭찬을 받은 일이 없었으나, 주상께서 다행하게도 저의 선친의 연고로써 저의 얕은 재주나마 받들 수 있게 해주셔서 궁중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忘室家之業.
저는 머리에 동이를 이고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다고 여겨 손님과의 왕래도 끊고 집안일도 잊어 버렸습니다.
日夜思竭其不肖之材力, 務壹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
밤낮으로 불초한 능력을 다하고 한마음으로 직무에 힘써 주상의 신임과 총애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크게 잘못되어 그렇지 못했습니다.
○ 夫僕與李陵俱居門下, 素非相善也.
저와 이릉(李陵)은 함께 시중(侍中)으로 있었지만 평소에 서로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趣舍異路, 未嘗銜盃酒接殷勤之懽.
취향이 서로 달라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없고 은근한 교제의 즐거움을 나눈 적도 없습니다.
然僕觀其爲人, 自奇士, 事親孝, 與士信, 臨財廉, 取予義, 分別有讓,
그러나 제가 그의 사람됨을 보니 비범한 선비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며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며 선비들과의 사귐에 신의가 있고 재물에 청렴하며 주고받는 데는 의롭고 분별함에 겸양이 있고
恭儉下人, 常思奮不顧身以徇國家之急, 其素所畜積也, 僕以爲有國士之風.
아랫 사람에게 공손 검약 하였으며,
항상 분발해 일을 하고 나라가 위급할 때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목숨을 바침은
그것이 평소에 쌓은 바였으므로 저는 국사(國士)의 위풍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 夫人臣出萬死不顧一生之計, 赴公家之難, 斯已奇矣.
무릇 신하된 자는 만 번의 죽음을 돌보지 않고 일생의 계략을 내는 것은 조정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이미 찾아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今舉事壹不當, 而全軀保妻子之臣隨而媒孽其短, 僕誠私心痛之.
지금 일을 하다가 하나만 부당하다고 해도 자신과 처자식만 보전하기에 급급한 신하들이 서로를 따르며 그 잘못을 과장하니 저는 진실로 마음속으로 통분했습니다.
且李陵提步卒不滿五千, 深踐戎馬之地, 足歴王庭, 垂餌虎口, 橫挑彊胡, 卯億萬之師, 與單于連戰十餘日, 所殺過當.
게다가 이릉은 5천명도 채 되지 않는 보병을 거느리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 선우의 왕정(王庭)까지 밟았으니 이는 호랑이 입에 먹이를 늘어뜨린 것과 같았으니 막강한 흉노를 사방에서 공격하여, 수억의 군사를 마주하며 선우(單于)와 더불어 싸우기를 10여 일에 죽인 적군의 수가 죽은 아군의 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虜救死扶傷不給, 旃裘之君長咸震怖, 乃悉徵其左右賢王, 舉引弓之民, 一國共攻而圍之.
흉노는 사상자를 구조하러 오지도 못하자 털가죽 옷을 입은 흉노의 군장(君長)들이 모두 두려워 떨며 좌우의 현왕(賢王)을 모두 소집하고 궁수들을 불러내어 온 나라가 함께 이릉의 군대를 공격하여 포위했습니다.
○ 轉鬭千里, 矢盡道窮, 救兵不至, 士卒死傷如積.
이릉은 천리 길을 옮겨 다니며 싸우다 화살이 다 떨어지고 퇴로가 끊어졌으나 구원병은 오지 않고 군사들의 사상자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然陵一呼勞軍, 士無不起, 躬自流涕, 沬血飲泣, 張空弮, 冒白刃, 北嚮爭死敵者.
그러나 이릉이 한 번 외쳐 군사들을 위로하자 분기하지 않는 군사가 없었으며 저절로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피투성이가 되어 울음을 삼키며 빈 쇠뇌를 불끈 쥐고 칼날을 무릅쓰며 북쪽을 향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웠던 것입니다.
陵未沒時, 使有來報, 漢公卿王侯皆奉觴上壽.
이릉이 아직 적에게 패배하지 않았을 때 사신이 조정에 보고하자 한나라 공경(公卿)과 왕후(王侯)들은 모두 축배를 들며 황제를 축수했습니다.
後數日, 陵敗書聞, 主上爲之食不甘味, 聽朝不怡. 大臣憂懼, 不知所出.
그 후 며칠 뒤에 이릉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황제는 식사해도 맛을 잊으시고 조회에 참석해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들도 걱정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 僕竊不自料其卑賤, 見主上慘悽怛悼, 誠欲效其款款之愚.
저는 자신이 비천하다는 것도 잊고 천자께서 몹시 슬퍼하시는 것을 뵙자, 저의 맹목적인 충성이나마 다하려 했습니다.
以爲李陵素與士大夫絶甘分少, 能得人之死力, 雖古之名將, 不能過也.
이릉은 평소에 장수와 병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고 적은 것도 함께 나누며, 그들의 사력을 다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으니 비록 옛날의 명장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더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身雖陷敗, 彼觀其意, 且欲得其當而報漢.
몸은 비록 패했으나 그의 뜻을 살펴보면 기회를 얻어 한나라에 보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 事已無可柰何, 其所摧敗, 功亦足以暴於天下矣.
일은 이미 어찌할 수 없이 되었지만 그가 적을 무찌른 공로는 역시 천하에 드러내기에 충분합니다.
僕懷欲陳之, 而未有路, 適會召問, 即以此指推言陵之功, 欲以廣主上之意, 塞睚眥之辭.
저는 내심 이러한 생각을 아뢰고자 했으나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천자께서 부르셔서 물으시므로, 이러한 취지에서 이릉의 공적을 말씀드려 주상의 뜻을 넓혀 드리고 다른 신하들의 원망의 말을 막아보려 했습니다.
未能盡明, 明主不深曉, 以爲僕沮貳師, 而爲李陵遊説, 遂下於理. 拳拳之忠, 終不能自列.
그러나 제 생각을 다 밝히지 못해 천자께서 이해하지 못하시고 제가 이사장군(貳師將軍)을 모함하고 이릉을 위해 유세한다고 여기셔서 마침내 저를 옥리에게 넘기셨습니다. 간절한 저의 충성심을 끝내 밝힐 수 없었습니다.
○ 因爲誣上, 卒從吏議.
그리하여 천자를 속였다는 죄로 천자는 마침내 형리의 판결을 따랐습니다.
家貧, 財賂不足以自贖, 交遊莫救, 左右親近不爲壹言.
집이 가난하여 속죄금도 낼 수가 없었으며 친구들도 도와주지 않았고, 주변의 친척들도 저를 위해 한 마디의 변호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身非木石, 獨與法吏爲伍, 深幽囹圄之中, 誰可告愬者.
몸은 감정이 없는 돌이나 나무가 아닌데도 홀로 옥리와 함께 감옥에 깊이 갇히고 말았는데, 누가 이 비통한 심정을 고하여 하소연해 주겠습니까!
此正少卿所親見, 僕行事豈不然邪.
이것은 진실로 소경께서도 직접 겪어보신 바와 같은 것으로, 저의 처지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李陵既生降, 隤其家聲;而僕又茸以蠶室, 重爲天下觀笑.
이릉이 투항한 후에는 그 가문의 명성을 무너뜨렸고, 저는 또한 잠실(蠶室)에 던져져서 거듭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悲夫. 悲夫.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슬프도다! 슬프도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정을 일일이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僕之先人, 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暦近乎卜祝之間, 固主上所戲弄, 倡優畜之, 流俗之所輕也.
저의 선친께서는 부부(剖符)나 단서(丹書)를 받을 만한 공로도 없었으며, 역사와 천문과 역법과 같은 일을 담당했는데 이러한 일은 점쟁이나 무당에 가까워, 본디 주상께서 희롱하는 바로 가수나 배우를 기르는 것에 불과하여 세상 사람들이 가벼이 여기는 것이기에,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螻螘何異.
가령 제가 법의 심판을 받아 처형된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를 잃어버린 것과 같고, 땅강아지와 개미가 죽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而世又不與能死節者比, 特以爲智窮罪極, 不能自免, 卒就死耳.
그리고 세상에서는 또 절의로 인한 죽음과 달리 지혜가 궁하고 죄가 극히 중해 스스로 모면할 수 없자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뿐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何也. 素所自樹立使然也.
왜일까요? 평소에 이루어 놓은 바가 그렇게 여기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人固有一死, 死有重於泰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사람은 본래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고, 혹은 기러기 털처럼 가벼우니 이는 그 죽는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太上不辱先, 其次不辱身,
가장 좋은 것은 선조를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다음은 자신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其次不辱理色, 其次不辱辭令,
그 다음은 이치와 얼굴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자신의 언사(言辭)와 교령(敎令)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其次詘體受辱, 其次易服受辱,
그 다음은 몸이 결박당하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죄수복을 입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며,
其次關木索被箠楚受辱,
其次剔鬄毛髮嬰金鐵受辱,
그 다음은 형틀을 쓰고 밧줄로 묶여서 매질을 당하는 치욕을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삭발당하고 쇠고랑을 차는 치욕을 받는 것이며,
其次毀肌膚斷支體受辱,
最下腐刑, 極矣.
그 다음은 살갗이 찢기고 몸뚱이와 손발이 잘리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요,
가장 나쁜 것은 궁형(宮刑)을 당하는 것으로 치욕의 극치입니다.
○ 傳曰: 刑不上大夫. 此言士節不可不厲也.
옛 책에 이르기를, '형벌은 대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선비의 절개는 강제로 어찌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猛虎處深山, 百獸震恐, 及其在阱檻之中, 搖尾而求食, 積威約之漸也.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산중에 있을 때는 온갖 짐승들이 두려워서 떨지만, 함정에 빠지게 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구걸하는 것이니, 이는 점차 위세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故士有畫地爲牢勢不入, 削木爲吏議不對, 定計於鮮也.
그러므로 선비는 땅 위에 금을 긋고 감옥으로 삼는다 해도 위세는 들어갈 수 없게 되고, 나무를 깎아 형리(刑吏)라 해도 그를 대해 논의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이미 계획된 것이 정해져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今交手足, 受木索, 暴肌膚, 受榜箠, 幽於圜牆之中.
지금 손발이 묶이고 머리에는 형구를 쓰고 살은 드러내어, 채찍을 맞으며 옥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當此之時, 見獄吏則頭槍地, 視徒隸則正惕息. 何者. 積威約之勢也.
이러한 때를 당해 옥리를 보면 머리를 조아리고 옥졸(獄卒)을 보면 두려워서 한숨을 쉽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자신의 위세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及已至此, 言不辱者, 所謂彊顏耳, 曷足貴乎.
이러한 지경에 이르고도 치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소위 뻔뻔스러운 사람일 뿐이니 이를 어찌 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且西伯, 伯也, 拘於牖里; 李斯, 相也, 具於五刑.
게다가 주 문왕(周 文王)은 제후의 우두머리였으나 유리(羑里)에 갇혔었고, 이사(李斯)는 재상이었으나 오형(五刑)을 받았습니다.
淮陰, 王也, 受械於陳; 彭越張敖, 南鄉稱孤, 繫獄具罪.
회음후(淮陰候) 한신(韓信)은 왕이었으나 진현(陳縣)에서 형틀에 매이고, 팽월(彭越)과 장오(張敖)는 남면(南面)하여 왕을 칭했으나 감옥에 갇혀 죄를 받았습니다.
絳侯誅諸呂, 權傾五伯, 囚於請室; 魏其, 大將也, 衣赭衣, 關三木.
강후(絳侯)는 여씨(呂氏)들을 주살하여 권력이 오패(五覇)를 능가했으나 청실(請室)에 갇혔고, 위기후(魏其侯)는 대장(大將)이었으나 죄수복을 입고 목에 칼을 쓰고 수족에 형구가 채워졌습니다.
季布爲朱家鉗奴, 灌夫受辱居室.
계포(季布)는 주가(朱家)에 의탁해 목에 칼을 쓴 노예가 되었고, 관부(灌夫)는 거실(居室)에서 치욕을 당했습니다.
○ 此人皆身至王侯將相, 聲聞鄰國, 及罪至罔加, 不能引決自財, 在塵埃之中, 古今一體, 安在其不辱也.
이 사람들은 모두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지위에 올라 명성을 이웃 나라에까지 떨쳤으나, 죄를 지어 법망에 저촉 되었는데도 자살하지 못하고 세속에서 구차하게 살았으니,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로 어찌 그것이 욕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由此言之, 勇怯, 勢也; 彊弱, 形也. 審矣. 曷足怪乎.
이로써 말하건대 용감함과 비겁함은 처해진 형세에 좌우되는 것이고, 강함과 약함은 형세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겠습니까?
且夫人不能蚤自財繩墨之外, 以稍陵夷至於鞭箠之間, 乃欲引節, 斯不亦遠乎.
대저 사람이 처벌되기 전에 일찌감치 자살하지 못하고, 채찍질을 당하여 학대를 받고 나서 절개를 지키려고 한다 해도, 이는 역시 때 늦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古人所以重施刑於大夫者, 殆爲此也.
옛 사람들이 대부(大夫)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에 신중을 기했던 까닭은 대개 이 때문인 듯합니다.
3.
○ 夫人情莫不貪生惡死, 念親戚, 顧妻子, 至激於義理者不然, 乃有所不得已也.
무릇 인간의 감정이란 모두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싫어하며, 부모를 생각하고 처자를 돌보려 하나, 의리에 격분한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이는 부득이한 정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今僕不幸, 蚤失二親, 無兄弟之親, 獨身孤立, 少卿視僕於妻子何如哉.
지금 저는 불행하게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가까운 형제도 없이 홀로 외롭게 있으니, 소경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를 대하는 것이 어떻다고 여기십니까?
且勇者不必死節, 怯夫慕義, 何處不勉焉.
또 용기 있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절개를 지켜 죽는 것도 아니며, 비겁한 사내라도 의(義)를 사모하면 어디서라도 자신을 격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僕雖怯懦耎欲苟活, 亦頗識去就之分矣, 何至自湛溺累紲之辱哉.
제가 비록 겁이 많고 나약하여 구차하게 살고자 하나 또한 생사의 한계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 어찌 감옥 안에 갇힌 채 치욕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且夫臧獲婢妾猶能引決, 況若僕之不得已乎.
또한 저 천한 노비나 하녀조차도 능히 자결할 수 있는데 하물며 저와 같은 사람이 어째서 자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所以隱忍苟活, 函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沒世而文采不表於後也.
고통을 감내하고 구차하게 살면서도 더러운 감옥 속에서 사양하지 않는 까닭은,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지 못한 채 비루하게 세상을 떠나면 후대에 문채(文彩)가 드러나지 않을 것을 한스럽게 여겨서입니다.
○ 古者富貴而名摩滅, 不可勝記, 唯俶儻非常之人稱焉.
예전에 부귀하면서도 이름이 소멸된 인물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이 많았지만, 오로지 뜻이 크고 기개 있는 비상한 인물만이 칭송을 받았습니다.
蓋西伯拘而演周易, 仲尼厄而作春秋.
주 문왕(周 文王)은 구금된 뒤에 주역(周易)을 풀이하셨고, 공자(孔子)는 곤경에 빠지셨을 때 춘추(春秋)를 지었습니다.
屈原放逐, 乃賦離騷.
左丘失明, 厥有國語.
굴원(屈原)은 쫓겨나서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명(左丘明)은 실명하고 나서 국어(國語)를 저술했습니다.
孫子髕腳, 兵法修列.
不韋遷蜀, 世傳呂覽.
손빈(孫臏)은 무릎 뼈를 도려내는 형벌을 당하고도 병법을 논했으며, 여불위(呂不韋)는 촉으로 쫓겨났지만 세상에 여람(呂覽)을 전했습니다.
韓非囚秦, 説難孤憤.
한비(韓非)는 진(秦)나라의 옥에 갇혀서 세난(說難)과 고분(孤憤)을 지었습니다.
○ 詩三百篇, 大氐聖賢發憤之所爲作也.
시경(詩經) 300편의 시들도 대체로 성현의 발분하여 지은 것입니다.
此人皆意有鬱結, 不得通其道, 故述往事, 思來者.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 맺힌 바가 있었으나 그 뜻을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줄 것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及如左丘明無目, 孫子斷足, 終不可用, 退論書策以舒其憤, 思垂空文以自見.
좌구명과 같이 눈이 멀고 손빈과 같이 무릎 뼈가 잘린 사람은, 끝내 세상에서 쓰이지 않자 물러나 책을 써서 꾀하는 바를 논하여 울분을 토로하면서, 저작에 종사하여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 僕竊不遜, 近自託於無能之辭, 網羅天下放失舊聞, 考之行事, 綜其終始, 稽其成敗興壞之理,
저는 몰래 불손하게도 쓸 줄 모르는 문장에 스스로를 기탁하려고, 예부터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없어진 이야기를 망라하여 행해진 일을 대략 고증하고, 시작과 결말을 종합하여 성공과 실패, 흥성함과 쇠망함의 이치를 살펴보고자 하여,
上計軒轅, 下至于茲, 爲十表, 本紀十二, 書八章, 世家三十, 列傳七十, 凡百三十篇,
위로는 헌원(軒轅)에서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표 10편, 본기 12편, 서 8장,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을 지어,
亦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一家)의 학설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 草創未就, 適會此禍, 惜其不成, 是以就極刑而無慍色.
그러나 초고가 아직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런 재난을 당했는데 애석하게도 이 일을 다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비록 극형을 당했으나 화를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僕誠已著此書, 藏諸名山, 傳之其人通邑大都, 則僕償前辱之責, 雖萬被戮, 豈有悔哉.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여러 명산(名山)에 보관했다가, 내 뜻을 알아줄 사람들에게 전해 고을과 도시에 알리고자 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제가 이전에 받았던 모욕에 대한 질책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몇 만 번 모욕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함이 있겠습니까!
然此可爲智者道, 難爲俗人言也.
그러나 이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지만 일반 사람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 且負下未易居, 下流多謗議, 僕以口語遇遭此禍, 重爲鄉黨戮笑, 汙辱先人, 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
또한 죄를 지은 자는 처신하기가 쉽지 않고 하류층들은 비방의 말이 많은 것이니, 제가 말을 삼가지 못하여 이러한 화를 입고 거듭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되어, 선조를 욕되게 했으니 또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의 산소 앞을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雖累百世, 垢彌甚耳.
비록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저의 수치만 더욱 심해질 뿐입니다.
是以腸一日而九回, 居則忽忽若有所亡, 出則不知所如往.
이로 인해 하루에도 수없이 애간장이 타고,집에 있으면 망연자실하여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하며 문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 每念斯恥, 汗未嘗不發背霑衣也, 身直爲閨閤之臣, 寧得自引深臧於巖穴邪.
매번 이러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려내려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으며, 몸이 환관과 같이 되었으니 어찌 스스로 깊은 바위굴 속에 숨어 은거할 수 있겠습니까?
故且從俗浮湛, 與時俯仰, 以通其狂惑.
그래서 잠시 세상의 부침에 따르고 시대와 더불어 행동함으로써 미치고 미혹된 사람들과 교유하고 있습니다.
今少卿乃教以推賢進士, 無乃與僕之私指剌謬乎.
지금 비록 소경께서 저에게 현인을 추천해 달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는 저의 개인적인 속뜻과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今雖欲自彫瑑, 曼辭以自解, 無益, 於俗不信, 祗取辱耳.
지금 비록 제가 스스로를 치장하여 미사여구로 제 자신을 꾸미려 한다고 해도 아무런 유익함이 없고 사람들도 믿지 않을 것이니 오직 모욕을 받을 뿐일 것입니다.
要之, 死日然後是非乃定.
요컨대 죽을 날을 기다린 연후에야 옳고 그름이 판명될 것입니다.
書不能盡意, 故略陳固陋, 謹再拜.
글로써는 능히 진심을 다 쓸 수 없어 저의 고루한 생각을 간략하게 적는 바이며, 삼가 재배합니다.
(終)
▶️ 大(클 대/큰 대, 클 대, 클 다)는 상형문자로 亣(대)는 동자(同字)이다. 大(대)는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으로, 처음에는 옆에서 본 모양인 人(인)과 匕(비) 따위와 같이, 다만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나 나중에 구분하여 훌륭한 사람, 훌륭하다, 크다의 뜻으로 쓰였다. 그래서 大(대)는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 큰, 으뜸가는, 뛰어난, 위대한, 광대한, 대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존경(尊敬) 또는 찬미(讚美)의 뜻도 나타냄 (3)큼. 큰 것 (4)큰 달. 양력으로 31일, 음력으로 30일인 달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대) ②높다, 존귀하다(대) ③훌륭하다, 뛰어나다(대) ④자랑하다, 뽐내다, 교만하다(대) ⑤많다, 수효(數爻)가 많다(대) ⑥중(重)히 여기다, 중요시하다(대) ⑦지나다, 일정한 정도를 넘다(대) ⑧거칠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대) ⑨낫다(대) ⑩늙다, 나이를 먹다(대) ⑪대강(大綱), 대략(大略)(대) ⑫크게, 성(盛)하게(대) ⑬하늘(대) ⑭존경하거나 찬미(讚美)할 때 쓰는 말(대) 그리고 클 태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태) ⓑ지나치게(태) 그리고 클 다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다) ㉡극치(極致), 극도(極度)(다) ㉢지나치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위(偉), 클 굉(宏), 클 거(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소(小), 가늘 세(細)이다. 용례로는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큰 일을 대사(大事), 크게 구분함을 대구분(大區分), 일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형세를 대세(大勢), 크게 길함을 대길(大吉),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큰 규격이나 규모를 대형(大型),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사물의 큼과 작음을 대소(大小), 크게 이루어짐을 대성(大成), 크게 웃음을 대소(大笑), 넓고 큰 땅을 대지(大地), 넓혀서 크게 함을 확대(廓大), 가장 큼을 최대(最大),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뛰어나고 훌륭함을 위대(偉大),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관대(寬大), 엄청나게 큼을 거대(巨大), 형상이나 부피가 엄청나게 많고도 큼을 방대(厖大), 더 보태어 크게 함을 증대(增大),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 거의 같고 조금 다르다는 대동소이(大同小異),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대실소망(大失所望), 큰 글자로 뚜렷이 드러나게 쓰다라는 대자특서(大字特書), 매우 밝은 세상이라는 대명천지(大明天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 등에 쓰인다.
▶️ 謬(그르칠 류/유)는 형성문자로 谬(류)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翏(료, 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謬(류/유)는 ①그르치다 ②잘못하다 ③속이다 ④착오(錯誤)를 저지르다 ⑤틀리다 ⑥사리에 맞지 않다 ⑦어긋나다 ⑧잘못 ⑨착오(錯誤) ⑩미친 소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그릇될 와(訛), 그르칠 오(誤)이다. 용례로는 잘못을 일컫는 말을 유오(謬誤), 못된 버릇 또는 그릇된 습관을 유습(謬習), 잘못된 견해를 유견(謬見), 잘못 헤아리는 일 또는 잘못된 계획을 유계(謬計), 이치에 맞지 않은 사례나 잘못된 사례를 유례(謬例), 틀린 생각 또는 잘못된 사상을 유상(謬想), 그릇되게 아룀을 유계(謬啓), 그릇된 규정이나 법규를 유규(謬規), 그르고 잘못됨을 유와(謬訛), 그릇되고 어설픔을 유우(謬迂), 그르쳐서 잘못되게 함을 유점(謬玷), 잘못 청촉함 또는 잘못 청촉을 받음을 유촉(謬囑), 그릇된 폐단을 유폐(謬弊), 틀린 논설을 유론(謬論), 그르거나 잘못된 말 또는 학설을 유설(謬說),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글을 유지(謬旨), 그릇되어 이치에 어긋남 또는 이치에 틀린 인식을 오류(誤謬), 실수나 부주의 등으로 인한 잘못을 과류(過謬), 오류를 달리 이르는 말을 와류(僞謬), 착오를 달리 이르는 말을 착류(錯謬), 사리에 어긋나 일을 그르침이나 도리에 벗어나 오류를 저지름을 패류(悖謬), 일을 그르치어 망치게 함을 패류(敗謬), 사람 됨이 데면데면하고 그름을 소류(疏謬), 그릇된 것을 그대로 이어 받음을 습류(襲謬), 옳지 않게 그릇된 잘못을 사류(邪謬), 궐실과 오류를 궐류(闕謬), 오류가 없음을 무류(無謬), 처음 의도와 달리 일이 크게 잘못되다는 뜻으로 일이 실제와 크게 다르거나 잘못되어 버림을 일컫는 말을 대류불연(大謬不然), 노魯와 어魚는 글자 모양이 비슷해 틀리기 쉽다는 뜻으로 글자를 잘못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노어지류(魯魚之謬)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然(그럴 연/불탈 연)은 ❶회의문자로 燃(연)은 통자(通字), 肰(연)은 동자(同字)이다. 개(犬) 고기(月=肉)를 불(火)에 구워 먹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然자는 ‘그러하다’나 ‘틀림이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然자는 犬(개 견)자와 肉(고기 육)자, 火(불 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글자의 조합으로만 본다면 이것은 개고기를 불에 굽고 있는 모습이다. 然자의 본래 의미는 ‘까맣게 타다’였다. 개는 가죽을 벗기지 않고 껍질째 불에 그슬려 익혀 먹는다. 그러면 껍질이 새까맣게 타게 되기 때문에 然자는 ‘까맣게 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그러하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火자를 더한 燃(그을릴 연)자가 ‘그을리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然(연)은 ①그러하다, 틀림이 없다 ②그러하게 하다 ③명백하다, 분명하다 ④그러하다고 하다 ⑤~이다 ⑥듯하다 ⑦허락하다, 동의하다 ⑧불타다, 불태우다 ⑨밝다 ⑩그런데, 드디어 ⑪그러하면, 그리하여 ⑫그렇다면, 그러면 ⑬그러고 나서, 연후(然後)에 ⑭그러나, 그렇지만 ⑮그런데도, 그렇기는 하지만 ⑯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⑰원숭이의 일종(一種)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저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을 자연(自然), 도리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당연(當然), 뜻밖에 저절로 되는 일을 우연(偶然), 겉 모양이 장엄하고 엄숙한 모양을 엄연(儼然), 알고 보니 정말이나 정말로를 과연(果然), 아득하여 분명하지 않은 모양을 막연(漠然),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상태를 천연(天然), 마음이 환하게 풀림을 석연(釋然), 침착하고 여유가 있음을 유연(悠然), 어떤 목적이 없이 되는대로 하는 태도가 있음을 만연(漫然), 그윽하고 멀어서 눈에 아물아물 함을 묘연(杳然), 갑작스러움을 돌연(突然), 확실히 단정할 만하게를 단연(斷然), 넓고 텅 빈 모양을 확연(廓然), 아주 정확한 꼴을 확연(確然), 그리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필연(必然), 고요하고 엄숙함을 숙연(肅然), 아직 정하여지지 아니함을 미연(未然), 뜻밖의 일에 얼굴빛이 변할 정도로 크게 놀람을 아연실색(啞然失色), 한숨을 쉬며 크게 탄식함을 위연탄식(喟然歎息),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런 대로 묵인한다는 말을 의수당연(依數當然), 조용하고 적적하여 아무 소문도 없음을 적연무문(寂然無聞), 흥미를 잃어 가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흥미삭연(興味索然)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