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초등학교의 교정의모습
2004년 서울시 공직을 은퇴를 하고 나의 서울시 무대를 내려 왔다 . 천년만년 해 먹을 줄 알았던 나의
천직의 공직에서 내려와야 하였다. 남자는 직장하고 결혼을 한다는데, 이거 헤어 진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 진 것 보다도 더 힘이 들었다. 날만 세면 직장으로 나가면 서울시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천직으로 알았던 직장하고 헤어지니 , 이거 도봉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할 일이 없으니
사패산 부근의 벤취에 누어 하늘을 바라보니 한심하기 그지 없다. 적은 돈이지만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자녀들을 교육을 시키고 분당에 아파트도 작만하게 되었다. 그게 서울시 공직이라는게 나에게
주어진 혜택이다. 그 보다도 더욱 더 항상 직장에 나가면 '대한민국법령집'을 공부를 하고 판례를 찾아
업무를 집행을 하고 민원사항에 대하여 답변을 하여야 하는 즐거움이 나는 무엇보다도 크다.
그리고 직장에 나가면 아는분들이 고생을 한다고 식사를 하자는등 때로는 점심 값도 주는 시민들도
간혹 있다 . 그야물론 직원들 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 한 잔씩 하는 비용으로 나간다.
정들었던 서울시 공직을 뒤로하고 젊어서 따 놓았던 초등학교 교사자격증을 장농속에 있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이미 잊어 버린지 오래 되었다. 아내에게 서울시 교육청에 가서 분실신고를 하고 재
발급을 받아 오라니 , 얼른 자격증을 재 발급을 하여 왔다. 그 안에 퇴직후에 초등학교롤 나갈려고 거기에
관계되는 책을 보고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학원에도 나가고 전라도지방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부족하여
임용시험도 보아 1차에 합격하여 2차 전라남도 교사 연수원에 가서 면접을 보고 오기고 하였다.
서울시 공직을 졍년을 하고 전라남도에 1.2차 교사임용고사에 합격을 하고 나니 초등학교교사로써 누구한테
무시를 당하지는 않했다. 서울시를 떠나 처음으로 전라남도 곡성에 있는 고달초등학교에 3개월짜리 산후 자리
로 임시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모든게 서툴기만 하던 초등학교 교정의 생활 , 그러면서도 신기하기만 하는 학교
생활,숙식은 학교안에 있는 교장선생의 관사를 초임 다른 선생하고 둘이 자취를 하며 생활을 하였다.
멀리는 지리산이 장엄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가갑게는 천마산이 자리를 하고 있고 , 앞으로는 섬진강의 물결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으며 넓은 곡성의 농촌생활이 신기하기만 하다. 복잡한 서울시 민들에게 시달리다가 이제는
귀여운 초등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자부심과 선생이라는 그 긍지는 나의 삶의 보람이었다. 반갑게 대하여 주시는
교장선생님 그리고 교감선생님, 또 다른 선생님들,교직에 경험이 없으니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는 젊은 선생님들
모두가 시간은 흘렀어도 감사하기 그지 없다. 하나하나 그 추억의 얼굴들이 그려짐니다. 이미 교장,교감선생님은
저 세상으로 떠나시고 그 얼굴들이 추억속에 그려지기만 한다.
학교에 당도하자마자 가을맞이 초등학교 운동회, 만국기가 펄럭이고 ,면단위 작은학교라 학부모라 얼마 않되는
큰 나무밒에서 자기 자녀들의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고구마 .밤 먹을것을 만들어와서 자녀들하고 같이
나누어 먹는 모습은 서울에서는 볼수 없는 풍경이다. 학생들은 총6명 2학년을 가르쳤다. 2004년 공직에서 퇴직을
하자마자 그학교로 부임을 하였으니 거의 20년이 다 되었다.지금은 거의 3십이 다 된 청년이며 아가씨들이다.
어디서 무엇을 할까?
천마산 학예회를 하는데 나는 2학년의 '동화구연'을 가르쳐서 발표를 하는데, 동화구연이 무언지 전혀 모르는데
부장선생님이 가르쳐 주시고 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년말에 교지에 나의 글이 나가고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농촌의 그 비경을 잊을수가 없다. 거기에 연이어 강진에서 계산초등학교에서 도 하였고 , 나중에는 경기도 이천
그리고 나의 집이 있는 의정부에서 3개의 학교를 다니며 계약제교사로 생활을 하였으며 나의 삶의 또 하나의
서울시 공직에 이어 ,초등학교교사의 경력의 이정표를 갖게 되었으며 ,투병생활하는 아네의 병원비, 미대 딸의
등록금을 상환 할 수있는 가장(家長)으로써 최선을 다한 생활이었다.라고 자부를 해보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져 한다.
첫댓글 동구리님~
배움의 터전에서 늘 개척을 하셨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잘 버티고 견디셨기에
오늘의 행운을 가지셨습니다.
늘 고맘고 감사했습니다.
그때의 추억을 글로 표현하니 그렇지 아내는 암 투병 생활을 하고 직장은 퇴직을하고
정말 그 고통을 다 안고 한푼이라도 벌어야겠다고 곡성까지 내려가서 경험도 없는 초등학교
교정에서 학생들하고 생활을 하였습니다 가장으로써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아오신 선배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무엇이든 하시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지역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그 마음이 참 곱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이
선배 님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때의 심정은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직장은 퇴직을 하고 아내는 암투병을하고 돈은 막들어가고 ....
내 인생에 제일힘이 들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을 해봅니다
공무원에 교직생활도 하시고...
늘 열심히 살아오시고
늘 열심히 탐구하시고
늘 공부하는 자세로 일관하여 세상을 살아오신 동구리님 존경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삽니다
사람이 상황이 그렇게 되니 보니 보이는것이 없더군요
큰누나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력만하였지 더 큰돈은 못벌었습니다
책이많고 책을 많이 보면 그것도 부자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자위를 하여봅니다
동구리님,
뒤늦게 시작한 교직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에피소드, 보람과 고충등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새롭고 재미있을거 같아요.
아이구 매화향기님 반갑습니다
역시 건강은 하시나 봅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건강이 여기저기에서 삐꺽거리는군요
서울시 행정공무원으로 근무를 한 사람이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친다는게 어려움이 많이 있지요
그래도 젊은 교대출신 여자선생님들, 부장선생님들이 많이 가르쳐 주시고 그래도 행정공무원으로 근무를 하였던게
도움을 조금은 준거 같았습니다 가끔 글도 올려 주십시요 왕년의 한 가락한 실력으로 ..ㅎㅎ
선배님 글을 읽다보면
역사의 현장이
현실감 있게 그려집니다
된장국 처럼 구수한 듯
한편으로 가슴 시려옴 마저
자신의 길에 최선을 다하신
그 모습에 감사를 전합니다
참 바르게 살아오신
선배님 존경스럽습니다.
성탄 축하드리면서
늘 건강하세요.
청담골님 오랫만입니다
항상 남다른 과찬이 더 정감을 느낌니다
삶의야기는 즐거운 삶의 이야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웠던 삶의 이야기도 펼쳐지지요
튼튼한 서울시 공직을 근무를 하다가 임시로 초등학교 교단에 선다는게 어려움이 많이 있지요
거기다가 아네의 암투병의 뒷바라지를 하여야하는 어여움이 가슴시리게 하지요
아네는 그걸 굉장히 좋게 보더군요 .열심히 살려고 하고 가장으로써 최선을 다할려고하는 모습을 ....
감사함을 전합니다
대단한 노력파고 실력파 시군요.
늘 귀감이 되는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뭐 그냥 열심히 살아온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