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이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 가고 있다.
중국군 포병부대가 3.8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군이 거림천에서 포병의 엄호를 받으며 진공하고 있다.
1950년12월 중국군과 북한군의 연합사령부가 성립된다.
김일성(왼쪽에서 3번째)과 팽덕회(오른쪽에서 3번째)
중국군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 가고 있다.
1951년1월4일 중국군이 서울을 점령한다.
중국군 제50군단 병사들 독립문을 지나고 있다.
퇴각하는 미군. 지게가 참 잘 어울린다.
1951년1월말, 미군은 중국군이 한강이남으로 내려오지 않는것을보고 보급이 딸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반격을 시도한다. 하여 중국군의 제4차전역이 시작된다. 4차전역은 바로 방어전을 하다가 반공격하는 것이다.
유엔군은 미 제10군단이 홍천을 포위공격한다. 홍천은 중부지역의 중심지로 양평,횡성,인제,춘천 등지를 연결하는 교통요지이기 때문이다.
2월 11일, 중국군의 반격이 시작된다. 중국군은 9개사단으로 남한군의 제8사단과 제3사단이 있는 횡성북쪽에 있는 삼마치고개를 덮쳐 8사단을 격파한다. 한국군 제8사단은 중국군이 공격한지 4시간만에 즉 12일 새벽1시경에 완전히 붕괴된다.
1951년2월11일 밤, 중국군이 남한군 제8사단을 향해 접근하고 있다.
2월11일 밤, 횡성전투에서 중국군이 한국군 제8사단을 향해 공격을 시작한다.
12일 호후, 남한군 제8군과 미군 제10군단이 다시 원주에 방어선을 치면서 지평리는 유엔군의 방어선의 중심이 되였다.
지평리는 서울, 양평, 홍천, 횡성, 여주 등지를 잇는 교통요지이므로 중국군은 많은 병력을 투입하여 공격한다.
지평리전투에서 고지를 지키고 있는 중국군
고지로 돌격하는 중국군
중국군 여간호원이 부상자를 처치해주고 있다.
또 다른 여 간호원
전쟁터의 여군들(중국군)
횡성전투에서 노획한 미군 자동차
동부전선에서 포로된 미군병사들
중국군의 후방에선 전선의 공급품 운송을 위해 미군폭격에 파괴된 압록강대교를 보수한다.
보수와 파괴가 반복되면서 그냥 일상이 되여버렸다.
다리 근처에 있는 고사포진지.
중국군 탱크부대가 전선으로 들어 가고 있다.
중국군 수송부대의 자동차대대
1951년3월7일 한강, 미군을 환영하는 어린이들.
양측이 서로 뺏었다 빼았겼다를 반복하니까 백성들은 양측의 깃발을 모두 준비하고 어느 쪽이 오면 어느 쪽의 깃발을 들고 달려 나갔다고 한다.
1951년3월14일 중국군과 북한군이 서울에서 퇴각.
1951년3월15일 남한군과 유엔군 서울 탈환.
1951년3월16일 남한군이 홍천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1951년4월28일 미군 병사들이 담배로 노인을 달래며 적군의 행방을 묻고 있다.
1951년 6월24일 미군의 사망자를 애도하는 표시
51년9월15일 24사단을 따르는 남한 탱크병들
1952년3월26일 미국이 연출한 사진.
북측에서 내려온 피난민을 미군병사와 남한직원이 직접 목욕시켜 주는 장면.
4월11일 맥아더가 유엔군 총사령관에서 해임되고 리지웨이가 위임된다.
4월22일 - 6월10일, 중국군은 제5차공세를 시작한다.
6월23일 소련외상이 정전담판 할 것을 제안 남,미와 북,중은 받아 들인다.
7월 10일 개성에서 1차 정전담판이 시작된다.
1951년7월17일, 개성의 모습:
조이장군을 선두로 유엔군 대표들이 회의장으로 오고 있다.
유엔군측 수석대표 해군중장 조이
북한군측 대표들이 회의장에 도착한다.
북한군과 중국군의 수석대표 남일장군의 모습이다.
유엔군 대표들 조이(가운데), 백선엽(왼쪽으로 두번째)
왼쪽에서부터 쎄팡(解方), 떵화(鄧華), 남일, 리상조, 장평산
1951년6월30일 유엔총사령관 리지웨이가 미국정부명으로 휴 전담판을 진행하는데 동의하면서 장소를 원산항 밖에 정박한 덴마크 함정에서 진행하자고 북,중측에 제의한다.
사진은 중국측에 보낸 리지웨이의 서한(번역본)의 내용이다.
7월1일 김일성,팽덕회는 연명으로 리지웨이에게 답신을 보낸다. 내용은 회담에 동의하며 회담장소는 3.8선상에 있는 개성으로 할것을 제의 한다.
사진은 김일성,팽덕회가 리지웨이에게 보낸 서한(중문본)의 내용이이다.
각국 기자들이 회담장에 모여 있다.
중국군 기자들
북한군 기자의 모습
미 "타임"지를 보며 환하게 웃는 북한군 장교. 서로가 친해 보인다.
회담도 해야되지만 밥도 먹어야 되니까.
회담기간 미 무장군인들이 개성중립구역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북,중 군사경찰을 살상하였다. 사진은 북,중측 대표단이 부상자 중국군병사 왕런왠(王仁元)을 위로하고 있다.
8월18일-9월18일,중국군이 하계공세를 발동한다.
8月22日,회담이 중단된다.
9月29日-10月22日,중국군이 추계공세를 발동한다.
10월15일 유엔군이 미국군인들이 "상심령"이라 부르는 고지를 재진공한다.
10月25日,정전회담이 회복된다.
이렇게 싸우다 회담하다 또 싸우다 또 회담하다를 수차례 반복한다. 그 목적은 회담에서 서로가 자신에게 유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란 항상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으로 밀당을 해왔다. 왜냐하면 수천수만의 생명보다 자기들의 이익이 더 위에 있으니까! 자기들을 위해 이슬처럼 사라진 생명들은 이름자 앞에 "애국자", "유공자" 이런 한정어를 달아 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북한군 희생자도 "애국자"이고 남한군 희생자도 "애국자"이다.
그렇다면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수천수만의 무고한 백성들은? ... ...!!!
1951년11월27일, 양측이 군사분계선지도에 사인한다.
...계속 이어집니다.
첫댓글 북한군과 중국군이 한국군을 배제하고 연합국군과 정전협정을 맺었으니 38선은 연합국군이 지켜야 합니다.
제때에 지적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람보2 이 개종자새끼 주둥아리를 찢어 버려라.
잘 보고 갑니다.
취선님 항상 건안 하시길...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