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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이 능엄경대불정능엄신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14년 전 쯤, 강원도 인제 내린천 변,
남쪽 저 앞으로 내린천이 비스듬히 내려다 보이는, 북향의 부롴크 집 수행처에서 였습니다.
그 수행처의 이름은 “개심정사 ”였는데, 물론 그 이름은 제 마음 속에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승은, 묘엄 스님의 일대기를 기록한, “회색고무신”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묘엄 스님이 구술한 것을, 작가 윤 청광 님이 기록하여 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묘엄 스님은 청담 스님의 따님입니다. 청담스님은 결혼을 한 후,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은 채,
출가하였는데, 세상에 씨앗이라도 남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노모의 간청을 들어주기 위해
하룻 밤의 파계를 행하여 낳은 자식이 바로 묘엄 스님입니다. 일제치하에서 청담스님의 딸,
묘엄은 정신대에 가지 않기 위해, 아버지 청담스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큰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친구요 도반인 청담 스님의 딸에게 불교, 역사,
교양 등을 손수 가르쳐 주고, “묘엄”이라는 법명을 내려 준 스승이 바로 성철 스님입니다. 묘엄은
청담스님, 성철 스님뿐만 아니라 경봉스님, 운허스님 등 내로라 하는 큰 스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사가 됩니다. 그 후 묘엄은 동학사 운문사에서 비구니 강원을 이끌었으며
2002년 당시 봉녕사 승가대학장, 지금 현재도 봉녕사에 계십니다. 따라서 묘엄스님은 우리나라
비구니계의 큰 뿌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 후 언젠가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어느 날, 아버지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은,
묘엄을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지 의론한 끝에,
하루는, 성철스님이 묘엄을 불러 앉혔습니다.
“이봐라, 묘엄아,”
“예, 스님.”
“이기 ‘능엄주(능嚴呪)’라는 긴데, 오늘부터 이걸 외우도록 해라.”
성철스님이 해인사 장경판에서 찍은 “능엄주 ”를 묘엄에게 주었습니다.
“이게 뭔데요, 스님?”
“이게 바로 여래의 정수리라고도 말하는 주문인데, 이 주문을 외우면 그 공덕이 한량없는기라.”
“공덕이 한량없다니요?”
“이 주문을 외우거나, 간직하기만해도, 나쁜 일이 범접을 못하는기라. 그리고 이 주문을 외우거나
남을 시켜 외우게 하면, 그 사람은 불에 타는 일도 없고, 물에 빠지는 일도 없고, 어떤 독도 해치지
못하며, 용이나 하늘 사람이나 귀신이나 마귀의 나쁜 주문들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 주문이 그래 신통하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 주문을 열심히 외우면, 윤회를 벗어나는 도를 얻게 될 기고, 마음에 마가 없게 될 기다.
그라니 마 이 주문을 무조건 열심히 외우도록 해라.”
“예, 스님, 알겠습니다.”
성철스님이 써 준 “능엄주”는 생전 처음 보는 주문인데다가, 소리내기도 힘든 주문이요, 게다가
또 길기도 긴 주문이라 이 주문을 과연 외울 수 있을 지 아득하기만 했다.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아파라지탐프라튱기람 다라니
나맣 사르바붇다보디샤트베뱧나모샾타남 삼먁삼붇다 코티남
사스라바카삼가남 나모로케아르한타남 나모스로타 판나남
나모스크르타가미남 나모아나가미남 나모로케삼먁가타남
삼먁프라티판나남 나모라트나트라야야 나모바가바테 드루다
수라세나 프라하야나라자야 타타가타야아르하테 삼먁샴붇다야
나모바가바테 아미타바야 타타가타야아르하테 ..........
비밀스러운 주문이요, 미묘한 주문이요, 위 없는 삼보리를 이루는 주문이며, 모든 마를 항복받고
외도를 물리치는 주문이요, 외우는 공덕이 한량없다는 이 “능엄주 ”는, 그러나 외우기는 참으로
어렵고도 긴 주문이었다.
“빨리 외와 갖고 얼마나 잘 외왔는 지, 나한테 강(講)을 바쳐야 한다. 알았제?”
“예, 스님.”
묘엄은 이 주문을 외운다는 게, 아득한 일이었으나 큰 스님의 엄명이고보니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묘엄은 앉으나 서나, 공양간에서 채공을 살면서 죽자 사자 매달려 “능엄주 ”를 외워 나갔다.
불을 지피면서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심지어 정랑에 가서도, 묘엄은 오직 이 “능엄주 ”를 외우는 일에
매달렸다. 묘엄은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오직 “능엄주 ”만 외웠다. 채소를 다듬으면서도, 걸으면서도, 앉아서도, 세수하면서도, 심지어 잠을 자면서 꿈 속에서도 “능엄주 ”를 외울 정도였다.
이렇게 이레 동안을 계속 외우고 나니,
이제는 종이를 보지 않고도, 그 길고 긴 능엄주를 외울 수 있었다,
“스님요, ‘능엄주 ’ 다 외왔습니다.”
“뭐라? 묘엄이 니가 그 ‘능엄주 ’를 벌써 외왔단 말이고?”
“이 가시나 이거 신통한 가시나네. 그럼 니 나한테 강 바칠래?”
“예, 스님, 강 바치겠습니다.”
묘엄은 그 길고 긴 능엄주를 끊을 데서 끊고, 이을 데서는 이어가며, 더듬거리지도 않은 채, 술술술
잘도 외워 나갔다. 성철스님도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흡족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반다니반다니 바이라바즈라파니 파트 훔 부룸 파트 스바하
나모스타타가타야 수가타야르하테 삼먁샴붇다야 시담투반트라바다사바하.”
그 길고 긴 능엄주의 맨 마지막 구절을 묘엄이 잘 외워 마치자 성철스님이 크게 웃었다. 어느새
곁에와서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 청담스님도, 딸 묘엄이 대견스러운 듯 흡족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하하, 이 가시나 이거 보통 가시나가 아니라카이!
묘엄이 니 전생에 중 노릇 했는갑다. 어이? 하하하.”
“그래, 용케도 잘 외웠구나,
무슨 일이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하면, 안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자 봐라, 묘엄아, 니 인자 그 ‘능엄주’를 잘 외왔으니,
내친 김에 ‘능엄주 ’기도를 올리거라이.”
“능엄주 기도는 어떻게 올리는데요?”
“마 매일, 하루에 백여덟 번씩 ‘능엄주 ’를 외와서 백팔 능엄기도를 올리란 말이다.”
“매일 백팔 능엄기도를 올리면, 묘엄이 니는 마 만사형통인기라. 알았제? 매일 백팔 번이다.”
“예 알겠습니다. 스님.”
묘엄은 한동안 아무탈 없이 잘 지내왔는데, 다시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위궤양이 다시 도진 모양인지
음식만 먹으면 생목이 올라왔다. 뱃속은 쓰리고 아프지, 마음은 허전하기 그지 없지, 묘엄은 오직
능엄주력에만 매달려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묘엄의 위장병 증세는 갈 수록 나빠져서 걸핏하면 먹은 것이 얹히고, 토사곽란이 일어나고, 손으로
만지면, 가슴 및 뱃속에 딱딱한 덩어리가 잡히는 지경이 되었다.
“이봐라 묘엄아, 너 이러다 큰 일 나겠다. 병원에 한 번 가 보그라.”
그러나 묘엄은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뎠다. 그러면서도 묘엄은 단 하루도
능엄주력을 빼먹는 일이 없었다.
그날도 묘엄은 큰 방에 누워서 지극정성으로 능엄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제는 능엄기도 올리는 게 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판티 조한티 우자하라 가르바하라 루디라하라 맘사하라 메다하라
마자하라 바사하라 자타하라 지비타하라 마랴하라 바랴하라 간다하라
푸스파하라 파라하라 사샤하라 파파칱타 두스타칱타........”
묘엄은 큰 방에 누운 채, 비몽사몽 간에 능엄기도를 계속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얀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묘엄 앞에 나타났다. 그 할아버지는 분명 나막신을 신고 있었는데, 묘엄
앞으로 바싹 다가오더니만, 느닷 없이 품 속에서 큰 칼을 쑥 뽑아 들고, 묘엄의 배를 사정 없이 가르더니
명태만큼 큰 썩은 살덩이를 도려냈다. 그리고는 그 썩은 시커먼 살덩이를 손으로 주물러 버렸다. 묘엄은
그만 기겁을 해서 ‘으악’ 소리를 질렀다.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은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하얀 옷,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 얼굴도, 나막신도, 그리고 그 큰 칼로 썩은 살을 도려내던 것도, 그 썩은
살덩이를 손으로 주물러 버리던 모습도 생시처럼 또렷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묘엄은 손으로 가슴을 쓸어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 몸이 허공에 뜬 것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그토록 쓰리고 아프던 뱃속이 이상하리만큼 아주 편안했다. 묘엄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능엄주력을 하면 만사형통하리라던 성철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몸은 여전히 새털처럼 가벼웠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고, 그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니, 아프던 뱃속이 거짓말처럼 편안해졌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뱃속의 통증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 몸에 말할 수 없는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지만, 묘엄은 그 후로는 아픈 일이 없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 능엄주력으로 신력(神力)을 입은 덕분이라고 했다.
위의 이야기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아, 소승도 능엄신주를 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묘엄스님이 능엄신주를 외운 때는 10대 후반의 나이었지만, 소승이 능엄신주를 외우기로 작정한 것은 지금부터 13년 전이니까, 소승의 나이 62세 되었을 때입니다.
오랜 세월 전이라 기억은 명확치 않지만, 능엄신주를 모두 외우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묘엄스님은 능엄신주를 외운 후, 곧바로 능엄주력 수행(하루에 능엄주를 108번 암송)에
들어갔지만, 소승은 능엄주력을 하지 않고, 그저 아무때나 매일 능엄신주를 큰 소리로 외웠습니다.
소승이 양평 금강사라는 절에 잠시 머물 때입니다. 그 절에서 저는 새벽 도량석을 했는데, 새벽 예불이
끝나면, 소승은 홀로 캄캄한 새벽의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능엄신주를 아주 큰 소리로 외웠습니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은 소승과 거의 동년배 쯤 되는, 당시의 법랍 50년이 넘는 스님으로, 모 종단의 감찰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 스님은 평상시에 소승의 수행에 관하여,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는 분인데,
어느 날 아침, 그 스님이 문득 저에게 말하기를,
“능엄신주 위력이 대단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승은 그 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소승이 당시 남한강변의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아가며, 허름한 옷차림으로 장갑도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매섭도록 차가운 겨울의 새벽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능엄신주를 외울 때, 따뜻한 방 이불 속에 편안히누워있던 그 스님은, 소승이 매일 새벽 암송하는 능엄신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의 파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초보의 수행자가 자신이 하는 수행의 법력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수행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수행에 임할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수행의 향기와 위신력이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소승은 오랜 나날이 흐른 후에야 알았습니다. 따라서 수행자의 법력의 깊이는 그 수행자의 수행의지와 수행자세의 강도에 있는 것이지, 결코 수행자의 법랍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래된 법랍의 소유자라 해도, 제대로 수행의 길을 가고 있지 않다면, 그는 결코 진정한 수행자가 아님을 명심하십시요. 진정한 수행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수행자로 거짓 행세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혹세무민하는 사악한 인간, 종교를 빙자해서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한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주 신출내기로, 제대로 된 승려가 아니었기에, 능엄신주의 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로부터 얼마 후, 소승이 양평을 떠나 다시 인제로 온 후에 비로서 능엄신주의 위력을 직접
체험하는 계기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었을 당시에, 소승이 만약 능엄신주를 외우고 있지
않았었다면, 소승은 아마도 그때에 생을 마감했를 지도 모릅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간략하게나마 소승의 과거를 언급하여야겠습니다. 그래야
불자님들께서 소승의 글을 이해하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소승은 아주 어릴 적에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소승은 체구는 왜소하지만, 상당히 강한 체질이라고 생각되는데, 한 번 앓으면 아주 심하게 앓습니다. 그리고 감기에 한 번 걸리면, 기침을 굉장히 심하게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젊었을 때의 별명이 “유독 감기에만 약한 사나이 ”였습니다.
50대 중반에 심한 기침으로 동네 병원에 갔었는데, 그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지만 , 전혀
차도가 없자, 그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법
큰 종합병원으로 가서 약 50여분에 걸쳐 의사의 신중한 진찰을 받았는데, 폐암일 가능성이 아주 높으니
즉시 입원하라는 것이 의사의 진찰소견이었습니다. 그 병원에 입원을 할까 망설이다가, 가족들의
의견을 쫓아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기침은 여전히 심했습니다. 서울대 병원 외과의사들
여러 명이 약 1주일 이상 저의 병을 진찰하였는데, 그들의 모두가 폐암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의사들은 마지막으로 조직검사를 했는데, 그땐 아직 폐암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의사들 모두가 폐암이라고 진단한 이유는, 저에게 온갖 종류의 항생제를 투여했어도
심한 기침이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겉으로 나타난 징후가 틀림 없는 폐암의 증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입원한 후, 약 15일 무렵부터 항생제의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기침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저는 의사들이 폐암이라고 하였을 때에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직은 폐암으로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인간의 일은 그 인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여 소승은 서울대 병원 외과병동에서 약 1개월의 입원치료를
끝내고 퇴원하였습니다. 소승의 병명은 급성 폐렴이었습니다. 소승이 병원을 나올 때, 담당의사나 간호
원은 한결같이,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면역력이 떨어져 위험하니까, 가능한 한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퇴원 후, 소승은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느라고 지친 몸을 추스리기 위해 꽤 많이 노력했습니다. 몸을 보하는 데는 보신탕이 좋다고 하여, 그것도 두 번 먹어보았지만, 맛도 없을 뿐더러 자꾸 설사가 나서 그 후로는 먹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할 당시 소승의 나이는, 벌써 5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저는 불교가 무언지도 모르는 무종교인이었습니다. 40대 초반 목사가 되려고, 신학
대학원 원서를 써서, 수유리에 있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정문 앞까지 가기도 했었지만, 끝내
원서접수를 하지 않고 말았습니다. 그때 제가 목사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물론 기독교 교리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없었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한 몸을 진리의 제단 위에 기꺼히
올려 놓을 각오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제가 목사가 된다면, 타락한 종교의
세계에 쓰레기 하나 더 보태는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 제가 목사가 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좌우간 인생이 이미 기울기 시작한 나이까지 제 잘난맛에 살아 온, 이 부족한 범부중생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소승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불교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108배가 좋다고 하기에, 저도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어 하루 12배를 넷으로
나누어 한 번에 3배나 4배씩 하며, 의기양양했었고, 천수경을 외우고, 반야심경을 외우고, 화엄경
약찬게를 외우고, 금강경을 외우는 등, 무작정 불교를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아직 소승은, 제 삶의 노년을 승려로서 보낸다는 확고부동한 결의도 없이, 그저 한발 한발 불교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또한 제 주위에는 소승에게 불교에 관해서 조언해 줄 그 어떤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하면서 불교의 세계로 향했을 뿐이었지요.
그러면서도 제 마음 속에는 언제나 결코 독단이나 편견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마음을 한 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스승없이 혼자 공부하는 자가 최대한 경계하여야 할 것이 독선이나 아집, 편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굳게 지키고 있는 신념입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저는 저의 마지막 삶을 승려로서 살리라 결정하고, 그런 가운데 묘엄스님에 관
한 책을 읽던 중, 능엄신주를 알게 된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능엄신주를 다 외운 소승은 행여 애써
외운 능엄신주를 잊어버릴가봐 틈만 나면 외우고 또 반복했습니다. 소승이 처음 인제로 내려 갔을 때
그곳에서 제 삶을 끝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 서울에 와서 머물러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여관에서 잘 수도 없는 일이고, 서울 속가나 친척 집에서 며칠간 머물 수는 있었
지만, 명색이 승려란 자가 계속 그럴 수도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서울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끝날 때
까지, 서울에 있는 대학가 근처에 얼마 동안 사용할 셈으로 삭월세방을 얻었습니다. 소위 원룸이라는
곳입니다. 이런 불규칙한 생활을 하다보니, 먹는 것도 시원찮고 여러모로 생활이 불편해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열이나고 간헐적인 기침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병원에서 퇴원한지는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병의 증상은 그 당시와 같은 증세였습니다.
초저녁부터 심한 열이 펄펄 나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거의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열이 심했습니다. 이 상태로는 병원에 간다고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
병원에 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은 채, 방에 누워서 병(病)과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마침 제 옆 방에 기거하는 학생은 외출하고 없었기에, 소승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
습니다. 계속되는 심한 고열로 인사불성 상태에서 소승은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자정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소승은 언뜻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온통 새카만 옷을 입은
세 명의 건장한 사나이가 소리없이 방으로 들어와
소승을 둘러싸더니,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소승은 직감적으로 이들이 저승사자라고 판단하고, 이들을 따라 나서면 곧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 당시 저는 능엄신주를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었는데, 능엄신주를 외우려고 아무리 애써도, 통 첫 머리가 떠오르질 않습니다.
그 때 세 명의 저승사자 중의 한 명이 저에게 가까히 다가 와서, 저의 오른 쪽 팔을 잡으려고 하는 찰나!
필사의 노력으로 능엄신주의 첫 말을 찾고자 안간힘을 쓰던 저의 입에서, 능엄신주가 세찬 봇물처럼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불정능엄신주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나맣 사르바붇다보디사트베뱧 나모샆타남 삼먁삼붇다 코티남 사스라바카삼가남
나모로케아르한타남 나모스로타판나남 나모스크르타가미남 나모아나가미남.....
그렇게도 심한 고열로 빈사의 상태에서 허덕이던 저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마저 망각한 상태에서
다만, 저를 죽음의 골짜기로 데려가려는 3인의 건장한 저승사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오직 그 일념으로
한 순간의 틈도, 한 찰나의 끊임도 없이 계속하여 줄기차게 능엄신주를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생각하기에도, 어디에서 그런 강한 힘과 지구력이 쉬임없이 나오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승은 능엄신주를 계속하여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소승의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세 명의 저승사자를 쫓아낼 때까지 능엄신주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의 각오로 사투를 벌리던 시간이
어떻게, 얼마나 지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소승이 마음 속으로
“이젠 됐다!... 이젠 살았다!...” 하고 판단한 후,
휴...하고 긴 숨을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새 그 세명의 시커먼 저승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고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니 날이 이미 밝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방문을 크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여니,
문 밖에 옆 방 학생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서서 말했습니다.
“스님, 제가 새벽녘에 들어 와 보니, 스님 방에서 계속 신음소리가
들리고, 또 이상한 소리도 들렸는데, 어디 많이 아프신 것 같아요.
빨리 병원에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많이 방해가 되었겠네. 밤에 좀 많이 아팠네.
자네 미안하지만, 택시 좀 불러주겠나?”
이렇게 해서 소승은 그 학생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가까운 곳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꼬박 열두 시간 이상을 생사의 갈림길에서 저승사자들과 사투를 벌였든 터라, 몸은 완전히 탈진
상태였습니다. 소승은 병원 응급실 침대에서 영양주사 링겔을 꽂은 채,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벌써 저녁이었습니다. 이젠 높은 열도 사라졌고 기침도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몸이 너무 허했는지, 일어나려니 휘청거렸습니다. 그날 밤은 병원 입원실로 옮겨가서
이틀간 휴식을 취한 후, 퇴원하여 곧바로 인제로 내려갔습니다.
사랑하는 까페 불자님 여러분!
아마 여러분 가운데는 능엄신주를 암송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불자의 여러 수행 중에 다라니수행(주력수행, 진언수행)이 있습니다. 어떤 다라니이던
지극한 정성으로 주력수행을 하면, 그 공덕이 아주 크다는 것은 불자들이라면,
대부분 다 알고는 있지만, 계속하여 정진수행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더욱이 능엄신주는 상당히 긴 편이고, 글자 하나 하나를 발음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소승은 처음 능엄신주를 대하였을 때, 전체를 한 번 읽는데도 30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겠습니까? 소승이 까페에 올린 이 글을 계기로 하여
까페 불자님 상당수가 능엄신주를 암송하여, 무량한 공덕의 세계로 들어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소승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능엄신주를 권하였지만, 소승의 말을 듣고 능엄신주를
끝까지 암송하신 분은 단 한 사람, 자비화 보살님 뿐입니다.
물론 그 후 몇 분이 더 능엄신주를 소승의 권유로 암송한 분이 계시지만, 아주 극소수입니다.
아무쪼록 능엄신주 암송을 인연으로 하여, 이 험난한 고해의 사바세계에 부처님의
자비광명, 지혜광명 또 한 줄기가 힘차게 뻗어가기를 축원드립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가야산 대덕사 기산지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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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두 능엄주로 100일 기도 했었어요.
처음에는 발음하기 어려워서 독송하는대
2시간이 걸렸어요. 차츰 독송하는 속도가 빨라 지더라구요.
스님 법체 건안 하셨어요.^^
산사는 빨리 겨울이 찾아 오지요.
법체 건안하십시요.
관세음보살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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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관세음보살
나무
대불정능엄신주
스님 장문의 글
있다가 또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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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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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일본작가가 쓴 석가모니란 책에서 처음으로
능엄주란 말을 들어 봤습니다
주술사의 딸이 아난에게 첫눈에 반하여
딸의 부탁으로 주술사가 아난에게 주술을
걸어 파계직전 까지 갈 상황이었는데
부처님이 이를 아시고 능엄주를 주문하시자
주술사의 마법에서 벗어날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능엄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 들어본 능엄주라서 완전 낯설지는 않지만
읽는것도 무척 어려운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능엄주의 위력을 경험하셨으니
믿음은 가지만 어찌 외울수 있을까 쉽습니다
관세음보살♥♥♥
감사 합니다. 관세음보살()()()
스님의 능엄신주의 인연 법문 감사합니다.
좋은인연*^^*덕분입니다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
스님의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관세음보살()()()
감사히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