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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린포체, 애슐리 네벨시크
지음/ 유향란 옮김,
깨달음으로 가는 뒷문
<프롤로그>
지금 이 순간의 깨달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을 얻도록 하라“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라.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바로 당신 안에 있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만일 당신이 깨달음을 얻는다면
당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모든 기도가 전부 다 응답을 받을까?
당신이 늘 원하던 것을 다 갖게 될까?
완벽하게 행복해질까?
우주의 신비를 이해하고 삶의 비밀을 풀 수 있을까?
만일 당신이 깨달음을 얻는다면
전쟁과 괴로움을 종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생각해보라.
무엇이 이토록 심오한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는가?
만일 당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당신의 꿈을 실현하게 하며
당신의 삶을 기쁨과 행복으로 이끄는
비밀스러운 뒷문을 찿아낸다면,
당신은 과연 그것을 이용할 용기를 낼 것인가?
지금 당신은 손에 그 뒷문 열쇠를 쥐고 있다.
모든 종교와 철학이 어떻게 하면 바라밀과 내적 평화를 이룰 수
있는지, 누가 그에 적합한 사람인지,
또 왜 그런지에 대해 나름대로 이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깨달음이 이번 생이 끝난 다음에 오든,
고행으로 점철된 무수한 윤회 끝에 얻어지든 간에
우리는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고 좀 더 뛰어난 분별력을 가지며
좀 더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만일 깨달음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것이 미래나 과거의 어느 시기에 존재한다는 점에는 우리 모두 합의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깨달음을 현재에서는 철저하게 배제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지혜를 찾아내는 데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찾아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실존이 하도 광대한 나머지 그것을 너무 깊이 응시하다가는 우리 자신을 잃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아마도 겸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우리는 깨달음을 근본적으로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점도 지니고 있고 잘못도 저지른다. 그러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영적 지도자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그들의 업적과 예지를 우리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어쩐 일인지 그들이’누구나 따를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말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학자들이 《바라밀경》을 분석하면서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을 다양하게 제안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고달픈 생애를 무수히 견뎌낸 끝에 행복하게
살리라는 희망을 갖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인내심이 무척 강한 사람에게조차 그것은 행복해지기 위해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인내심이 없거나 자기 앞에 몇 번의 생애가 주어질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비록 죽고 난 다음에 천국에 좀 더 행복한 삶이 있다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것이 더 바람직하게 보인다. 붓다가 바란 것 역시 '지금 이 순간' 평화롭게 살면서 과로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학자들은 늘 간과하는 것 같다.
육바라밀은 붓다가 채택하거나 애써 개발해낸 특질이 아니라
본래부터 그의 안에 들어 있던 것이다.
‘우리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특질’이기도 하다.
붓다가 깨달은 것은 그 특질과 자신의 깨달음에 있어 그 특질이
지니는 중요한 역할을 인식한 것이다. 티베트어로 ‘바라밀’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피안으로 건너가기’,’초월하기’, 혹은 ‘조화’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붓다가 깨달음의 길을 완전히 지각했을 때는
이와 같은 특질이 바로 그의 실존 안에 충만한 상태였으며,
또 정신적으로 괴로움의 세상으로부터 깨달음의 세상으로 건너간 상태였다. 즉 물질세계의 한계 및 선과 악의 개념을 ‘초월해서’
완벽한 균형과 오롯한 평정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1. 삶이 어려운 이유
깨달음은 행동이 아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괴로움을 초월하도록 해 주는 지혜이다. 뒷문은 순식간에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게 해주는 방법이긴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장애물 너머를 바라보기 전에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정직한 명세서를 가져야 한다. 또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괴로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깨달음을 얻은 진정한 삶이 펼쳐질 것이다.
사람들이 겪는 첫번째 유형의 괴로움은 '신체적 고통'이다. (…) 괴로움의 두번째 유형은 '욕구 불만'이다. 충분한 것을 충분하다고 깨닫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 괴로움의 세번째 유형은 '구조물로 인한 괴로움'이다.
(…) 집, 다리, 도로 등 사람들이 으례 구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물론 운동, 언어, 음악 그리고 낭만적인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 사람들은 개념을 수립한다. 규칙도 만들고 문화도 만든다.
또 정부도 세운다. 그러면서 우리가 만든 구조물이 영원하고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믿고 싶어하지만 어차피 그것들은 모두 누군가가 생각해서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 괴로움의 네번째 유형은 '널리 파급되는 행동'이다. 어떤 존재를 막론하고 행동을 하게 마련이며, 그 가운데서 서로에게 뜻하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와 같은 체제에 빠져들 경우 사람들은 무력감과 통제 불능을 경험하게 되고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마치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오토바이를 탄 채 엄청난 속도로 복잡한 도로를 질주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삶에 고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그러고 나면 세상에 대한 오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을 줄이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에 착수할 수 있다. 이것이 뒷문으로 접근하는 첫번째 관문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첫번째 관문 : 괴로움의 실체를 밝혀내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으라,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는 숨을 깊이 들이 마신 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도록 하라.
그런 다음 햇살이 반짝이고 푸른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숲 속을
거닐고 있다고 상상하라.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시원하게 불어왔다가 잔잔하게 자취를 감추는 바람을 느끼면서 삶 속에 존재하는 온갖 골치아픈 문제를 떠올려보라.
때로는 산들바람이 살결을 스치고, 때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릿결을 흐트러뜨리듯 괴로움의 원인도, 그 강도도 각기 다름을 받아 들이라. 이제 괴로움을 불러 일으키는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 숲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 실어 보내라. 바람이 잦아듦과 동시에 괴로움이 저 멀리 떠나가는 것을 응시하라. 괴로움은 한줄기
바람이 당신을 스쳐가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라."
2. 기쁨도 슬픔도 결국은 지나간다.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은 영원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그들은 집착과 욕구 불만이라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피한다.
(…) 우리 주변에서 지각할 수 있는 세상의 본질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덧없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움켜쥐거나
영원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오로지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쓸데없는 괴로움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든 영원하다는 신념은 버려라.
실제로 당신이 무상 바라밀을 완전히 깨닫게 되면 주변 세상이
변하는 것 만큼이나 당신의 견해도 그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정기적으로 당신의 주변 상황을 점검하고 그 변화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라. 세상이 매 분, 매 시간마다 바뀌는 것에 유의하라. 이와 같은 끊임없는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라. 유일하게 영원한 것이 있다면 바로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두번째 관문 : 변화를 향해 자신을 활짝 열어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으라.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플도록 하라.
그런 다음 하얀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진 해변에 서 있다고 상상하라. 짭조름한 바다 냄새를 맡고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맨발을
모래 속에 묻은 채 태양과 바람을 얼굴에 느껴보라.
해안선을 향해 부드럽게 흘러들어왔다 흘러나가는가 하면 가까운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면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응시하라.
흘러가는 구름을 관찰하면서 구름의 변화와 움직임을 똑똑히 쳐다보라. 마음을 활짝 열고 변화에 대한 어떤 저항도 다 버려라.
이처럼 감상한다는 느낌만 솟아나도록 하면서 당신 둘레에 있는
모든 것들의 무상한 본질을 즐기도록 하라."
3. 스스로 행복한 사람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동을 통제하는 데 - 자신의 행동이든 다른 누구의 행동이든 간에 - 집중하는 것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별로 소용이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당신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데도 당신이 그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으로 당신의 삶에 깨달음의 본질을 가져오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순종시키는 데 집중하는 대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완벽한 자유를 실현하도록 돕는데 열중해야 한다.
자유에는 사람들을 유능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변화에 압도 당하기보다 그것에 매력을 느낀다.
자유로운 사람은 활기가 넘칠 뿐만 아니라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자신이 버둥거리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버둥거리게 만들지도 않는다. 아울러 노예 상태를 거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노예로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마음 속에
희망과 모험 정신을 불러 넣으려고 애쓴다. 호기심을 지닌 사람이 용납할 수 있는 유일한 체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주인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은 우리의 자식들을 배움과 삶에 흥미를 지닌 자유로운 인간으로 키울 때 만들어낼 수 있다.
깨달음으로 가는 세번째 관문 : 모든 생각의 틀을 깨부수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으라.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도록 하라.
그런 다음 당신이 일요일 오후에 공원에 서 있다고 상상하라.
어린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뛰놀고 소풍 나온 가족들은 돗자리 위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다. 회전 목마 소리가 들리고 노점상에서 팔고 있는 팝콘 냄새도 풍겨온다.
산들바람이 가볍게 불기 시작할 대 당신의 손에 반짝이는 리본이 가득 들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위를 올려다보면 그것들이 한다발의 알록달록한 풍선에 묶여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풍선은 당신이 떨쳐버리고 싶은 삶의 구조물을 의미한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확인한 다음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펴 풍선들이 멀리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라."
4.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인과관계란 어떤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관계이다.
그것은 변화를 운영하는 체계로, 존재를 휘저어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일련의 도미노처럼 직선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바닷물이 솟아오르고 뒤섞이는 것처럼 매우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 인과관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깨닫고 당신의 행동이 야기하는 영향의 범위를 이해하고 나면 분노와 좌절의 감정도 사라질 것이다.
(…) 분노와 좌절은 불가능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무능력하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기억하라. 어떤 일이 당신을 좌절시킨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을 당신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과바라밀을 깨닫게 되면 불가능한 일과 어려운 일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고 따라서 분노와 좌절도 몰아낼 수 있다.
(…) 이미 저질러진 일에 얽매지 말고 분노와 원한을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 당신의 삶과 더불어 계속 전진하라.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 점을 잊지 않도록 하라.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한 깨달은 존재로 살아갈 수 없다.
깨달음으로 가는 네번째 관문 : 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원인을 만들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으라.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폴도록 하라.
그런 다음 당신이 미소를 띤 채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있다고
상상하라. 맨발에 와 닿는 부드러운 풀밭과 싱그러운 향기가 느껴질 것이다. 이제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와 풀과 꽃들의 싱싱하고
화려한 색깔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라. 따스한 태양 아래 서늘한
산들바람이 피부를 스친다. 나비가 떼 지어 날고 있는 활짝 핀 꽃송이들을 보라. 당신이 아름다운 정원을 즐기는 동안 당신의 몸과
마음도 이 안전하고 아름다운 환경 속으로 휩쓸려 들어오게 하라.
마음 속에 그와 같은 장면을 품은 채 당신이 삶에서 창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라. 그런 다음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정원을 상상하던 것만큼이나 생생하게 마음 속에 그려보라.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는 가정 하에 그것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질지 상상하라. 당신의 목표에서 연상되는 냄새와 맛을 느껴보라.
각각의 소망은 모두 다 어떤 창조의 시작이다. 당신의 소망으로 하여금 당신의 행동이 당신의 삶에 영향을 가하도록 이끌게 하라. 이제 부드럽게 눈을 뜨고 창조적인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삶을
껴 안으라."
5. 단 하나를 향한 결심
인간의 의도란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보는 상상력과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용기의 혼합체이다. 이것이 우리를 세상으로 끌고 가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을 안내하고 우리의 행동을
이루면서 결국 세상을 형성해 나간다.
의도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의 도구인데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한다. 상상력과 용기를 이용할 경우
얼마나 엄청난 잠재력을 얻을 수 있는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 누군가가 말하기를 '마음 속에 품을 수 있는 생각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라고 했는데 그 사람 말이 맞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곤 우리의 상상력을 뒷받침해줄 용기뿐이다.
용기란 침착함, 자신감, 확고한 결의와 용감한 태도를 지니고
위험과 두려움에 맞설 수 있게 해주는 인간의 특성이다.
그것은 노력하겠다는 다짐과도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다. 용기는 모든 사람이 원래부터 타고난 힘이며 또 그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삶은 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다 통과하기 위해서는 굳건한 결의를 다져야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용기를 내고 있는가? 또 얼마나 자주 전혀 새로운 삶을 상상하면서 그러한 가능성을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목표와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이끌어야 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만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
깨달음으로 가는 다섯번째 관문 : 자신만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으라.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도록 해라.
그런 다음 미소를 머금고 아름다운 나무와 거대한 옥석으로 가득 찬 멋진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상상하라. 저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계곡의 경치를 즐기면서 신선한 초목과 기름진 땅의 냄새를 맡으라. 얼굴에 와 닿는 상쾌하고 서늘한 산의 공기를 느껴라. 가까운 산꼭대기의 커다란 바위와 함께 구름 속으로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보인다. 그 순간 당신은 힘과 용기가 불끈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 봉우리에 오르겠다는 용기를 낼 것이다.
장애물을 차례차례 극복하면서 단 한번도 낙심하거나 힘을 잃지 않은 채 당신은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드디어 뾰족한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당신은 당신이 디디고 선 바위의 깨끗한 석판에 망치와 끌이 놓여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순간 당신의 의도를
떠올리라. 망치와 끌을 쥐고 그 바위에 당신의 의도를 깊숙이
새기도록 하라. 새기고 남은 돌 부스러기를 한 쪽으로 쓸어낸 다음 밝은 태양 아래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당신 자신에게 그것을 읽어주라. 그것은 그 자리에 영원토록 변함없이 남아 있을 것이다."
6. 오직 지금뿐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를 구할 용기를 지닌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시간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세상의 모든 시간을 다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끝없이 이어지는 지금 이 순간이 있다. 존재바라밀이란 우리가 매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이런 생각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정도 이상으로 너무 과하게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하여 생각에 의해 윤색된 과거를 회상하거나 철저하게 마음 속으로 꾸며낸 미래를 설계하느라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 오히려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유일한 시간인 현재는 잃어버리고
있다.
목 마른 사람은 첫번째 기회를 만났을 때 물을 마실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갈증이 상상에 불과하다거나 샘물이 신기루일 거라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샘물에 와서는 물을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결심하지도 않는다.
만일 당신이 지혜를 깨닫게 된다면 그것을 깨달을 유일한 장소가 지금 이 순간 안에 있음을 명심하라.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깨달음 또한 언제나 '지금' 일어난다.
깨달음으로 가는 여섯째 관문 : 지금 이 순간 속에 존재하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으라,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도록 하라.
그런 다음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에 맞추어 마음 속으로 당신의 의도를 되풀이해서 말하라. 잡념이 튀어나오겠지만 의도를 되풀이해서 읊으면서 그냥 그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되풀이하는 의도의 리듬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일단 주변에 있는 것들과 일치된 리듬을 타게 되면 한 때는 거칠게만 보였던 바다가 고저를 예측할 수
있는 물결로 바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야망을 분석해보라. 차례차례 당신의 목표가 어떻게 펼쳐질지 생각해보라. 상황이 점점 더 분명해지면서 전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양상이 드러날 것이다. 당신의 목표가 어떻게 펼쳐질지, 난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에 대해 찾아낸 통찰을 적어보라. 이와 같은 수련은 목표를 분명하고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생각하도록 마음을 훈련시켜 준다. 어느새
당신은 평화로워진 가운데 능률적으로 일에 착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당신의 목표도 강화될 것이다."
7. 당신이 곧 사막이요, 샘물이다.
우리는 과연 영구 불변한 존재일까?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자라고 늙고 배 속에 매번 다른 음식을 담고 있는 등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무수히 변하는데도 왜 우리는 스스로를 이 순간이나 다음 순간이나 여전히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걸까?
우리는 대체로 자신이 명백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란 모든 독립적인 요소들의 '빈 집'이다. 그것이 오토와 한나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깨달은 것이다. 존재하고 있는 생명의 모든 부분은 전부 다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다. 일단 우리가 높이 평가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이와 같은 공허한 속성을 깨달을 수 있다면 오토와 한나처럼 우리도 세상 속에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합일바라밀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신성한 샘물이 있는 사막에서 당신이 곧 사막이요, 또 샘물임을 깨닫는 것이다.
당신이 신성한 샘물인데 군중들이 몰려와 그 앞에서 절을 한다면 당신 또한 그 경배자가 된다. 그 경배자들이 스스로 샘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세운다면 당신이 바로 그 장애물이다.
어디 그 뿐이랴, 방랑자가 오랜만에 돌아와 샘물을 마음껏 마시기 위해 그 장애물을 넘어 간다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일곱째 관문 : 이 하나 속에 우리는 모두 함께 있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으라.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도록 하라.
그런 다음 다시 한번 잠시 동안 당신 자신의 공(空)을 살펴보라.
당신의 호흡과 끊임없는 신체의 움직임과 생각의 변화를 의식하라. 공기와 당신 피부를 감싸고 있는 옷과 당신이 앉아있는 의자와의 물리적 접촉을 느껴보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당신의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인지하라. 이제 당신이 당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이와 같은 정체성이 단지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라. 이제 당신의 목표를 점검해 보라.
당신과 당신 목표가 상호 의존하는 방식을 전부 다 그려보라.
당신 목표에 조금이라도 물질적인 특질이 있다면 당신이 함께 연결된 방식을 모두 상상하라. 그것을 만들어냈거나 그것에 작용하거나 그것을 유지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또 사용된 재료와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물, 땅, 공기와 같은 자원을 상상하라. 만일 목표가 비물질적인 측질에 의존한다면 그러한 특질들이 어떻게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당신의 모습이 되고 있는지 보라.
다음으로 당신의 생각이 어떻게 당신을 당신 목표로부터 분리시키는지 알도록 하라. 당신과 당신 목표가 하나로 섞일 때까지
이러한 생각을 서서히 사라지게 하라."
8.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
합일바라밀을 완벽하게 깨달을 경우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쓸데없는 괴로움은 배제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고투는 여전히 피하지 못할 것이다. 고통이나 삶의 변화와 관련된 괴로움을 배제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당신은 늙을 것이고 허기지고 병도 들다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예상되는 경험의 범주가 있다. 당신이 그 범주를 다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어쩔 도리가 없다. 당신도, 붓다도 그저 유감스러울 뿐이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 괴로움을 겪고 투쟁을 벌이지만, 궁극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고난이란 환영(幻影)과 같은 것이다. 당신은 그 중 어느 한 관점을 취해도 되고 혹은 둘 다 취해도 괜찮다. 선택은 항상 당신의 몫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여덟째 관문 : 깨달음을 실현하는 삶을 살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으라.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도록 하라.
그런 다음 당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가장 좋아하는 곳에 있다고 상상하라. 당신은 실내에 있는가, 아니면 야외에 있는가? 날씨나 기온은 어떤가? 눈 앞에 무엇이 보이는가? 무슨 목소리가 들리는가? 또 어떤 냄새가 나는가?
이제 당신이 달성하려고 하는 목표를 생각하라.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항 하나 하나를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그려보라.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 주변 상황은 어떨지, 그 자리에 누가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며 당신은 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를….
최종 목표를 달성한 기분이 어떤가? 꿈을 이룸으로써 얻게 된
기쁨과 흥분과 만족감이 느껴지는가? 얼굴 가득 번져 나가는 미소를 느껴라. 미소를 짓느라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로 기쁨을 누리도록 하라. 이제 몸과 마음의 긴장을 조금 풀도록 하라.. 자, 이제 눈을 뜨라."
<에필로그> 깨달은 삶을 산다는 것
깨달은 삶을 살기 위해서 규칙을 따르거나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신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깨달음의 세계란 당신의 눈으로 보고 당신의 마음으로 해석하도록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설령 당신이 깨달음의 바라밀을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물을 마실 수는 있다. 하지만 깨달은 후에 물을 마신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훨씬 더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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