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위 상임위화가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저렇게들 기를 쓰고 싸우나.” 많은 이들이 예결위 상임위화 문제를 둘러싸고 이 같은 생각을 한 두 번쯤을 해봤을 법하다. 실제로 여야는 예결위 상임위화 문제로 국회 원 구성을 한 달 가량 미루다 이 문제를 두고 표 대결까지 가려다 다시 유보했다. 표면적으로는 잠시 잠잠해진 듯한 이 문제는 9월 정기국회 등 향후 정국의 주요 ‘뇌관’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21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여야 영수회담을 거부하면서 “열린우리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거론한 사례도 예결위 상임위화 문제였다.
한나라당이 예결위 상임위화 문제에 목을 매다 보니 “한나라당이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 이 문제를 밀어붙인다”는 열린우리당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어느 정도 정치적 목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가 있는 방안은 무조건 피해야 할까. 또 예결위 상임위화를 극구 거부하는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의도가 없나.
대다수 예산 전문가들은 예산심사의 부실화를 막고 예산 심사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결위 상임위화는 필수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지난 해 국회 예결위 용역을 받아 작성된 ‘국회 예결산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나 올해 동아시아연구원이 펴낸 ‘국회의 성공조건 : 윤리와 책임’에서도 지적하는 바다. 경실련과 참여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예산 문제를 잘 아는 시민단체들도 모두 예결위 상임위화에 찬성하고 있다. 심지어 전혀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른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자민련까지도 한나라당의 예결위 상임위화 방안에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결국 이미 예결위 상임위화가 ‘정답’이라는 결론이 나온 셈인데도 열린우리당이 오히려 억지 고집을 부리는 형국이다. ‘개혁 정당’을 자처한 당이 오히려 개혁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야당으로부터 발목 잡히는 것을 피해가려 하기 때문이다.” 경실련 예산감시집행위원장으로 8일 열린 예결위 상임위 전환 관련 국회 공청회에도 참석했던 한경대 이원희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19일 기자와 만나 한 시간동안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교수는 “의원들이 다른 상임위에 소속돼 있으면서 예결특위를 겸직하다 보니 의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지역구 사업이나 챙기는 구조가 돼 버렸다”며 “예결위에서 정부 예산안의 편성 및 집행 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결위 상임위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예산안에 미리 반영할 수 있는데 굳이 야당에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대범하게 가야지 열린우리당이 지금처럼 하면 맨 처음 말한 개혁 의지에 비해 너무 후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여야가 바뀌었다면 그때는 열린우리당이 예결위 상임위화를 강력히 부르짖었을 것”이라며 “전략적 게임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를 만들겠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예결위 상임위화가 ‘옳은 길’이기 때문에 오는 정기국회에서 꼭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자세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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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예결특위 구조는 예외가 일상화된 것...이제 정상화해야"
-8일 열린 예결위 상임위 전환 관련 공청회에 참석했는데 느낌이 어땠나. 그동안 예외가 일상화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너무 왜곡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결위가 특위로 돼 있었던 것인데 여기에 익숙해 있다 보니 일부 정치권이 개혁 의지를 잃어버렸다. 새롭게 출발하는 17대 국회가 개혁의 추진체가 되기를 바랐는데 예결위 상임위화 문제를 협상과 타협의 게임으로 몰고 가는 게 아쉽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예결위 상임위화 방안이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개혁방안과 상당히 비슷하다. 경실련 예산감시위원장으로서 그동안 예산심사 과정을 자세히 지켜본 것으로 아는데 기존 예결위의 문제점은 뭐고 왜 예결위를 상임위화 해야 하나. 기존 예결특위 구조의 문제점은 의원들이 다른 상임위에 소속돼 있으면서 예결특위를 겸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결특위 정원을 50명까지 늘리고 임기를 1년으로 해 의원들이곁다리로 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이런 구조는 예결특위 위원들을 소속 상임위를 대변하는 사람처럼 만들고 돌아가면서 지역구 사업을 챙겨가는 구도로 만들었다. 예결위에서 정부 예산안의 편성 및 집행 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예결위를 상임위화해야 하는 또 다른 현실적 이유도 있다. 정부 예산 편성과정에서 큰 변화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가 탑다운(Top Down) 방식으로 예산 편성 방침을 바꾸었다. 올해부터는 기획예산처는 각 정부부처별 총액을 할당하고 거기에 맞춰 각 부처가 구체적인 세부 예산안을 짜게 된다. 이런 과정에 맞춰 국회에서도 거시재정정책에 관심을 갖고 총괄 조정하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
예산의 생애주기관리(Life Cycle Management)가 필요하다. 실제 사업이 심의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예산 집행의 성과를 측정하고 예산의 계획과 성과 등 예산의 생애주기 전체를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구조로는 매년 정기국회 때 예산안이 넘어오면 예산을 나눠먹는 데만 관심이 있지 중기재정 계획 등을 고려해 예산안을 전체적으로 심의하는 기능이 없다. 예산 편성과 집행이 행정부의 과정이긴 하지만 이러한 틀이 결정되고 나면 이후 예산 심의 과정까지 지배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정부의 결정과정에 대해 국회가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예결위가 연중 가동돼야 할 이유가 예산 수반 법안 때문이다. 기존에는 해당 상임위에서 법안을 통과시킨 뒤 예산을 달라고 하면 됐는데 이제는 예산이 수반되는 법안에 대해서는 거시재정적 입장에서 검토를 거친 다음 입법하도록 돼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예결위가 강화돼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예결위가 상임위화되면 예산 심의와 관련해 상임위가 할 일이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열린우리당이 뭔가 오해하는 것 같다. 예결위가 상임위로 되더라도 기존 상임위의 예비심사권은 계속 인정하고 예결위에서 상임위 예비심사를 종합정리하자는 것이다. 지금도 예결위가 상임위에서 삭감한 예산안을 증액하려 하면 해당 상임위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는 계속사업비나 국책사업비 등은 재정의 한계를 충분히 검토하고 심의해야 한다. 상임위화된 예결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당정협의를 통해 자기들 사업을 반영할 수 있다. 따라서 여당은 예결위가 강화되면 항상 부담스럽다. 정부가 신행정수도 사업 등 대형 국책사업을 하면 예결위에서 야당이 발목 잡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범하게 가야지 열린우리당이 지금처럼 하면 맨 처음 당을 출범시키면서 말한 개혁 의지에 비해 너무 후퇴하는 것이다. 또 의원 개개인이 지금까지 해왔듯 ‘예결위 활동하면서 지역구 사업 하나 따가야 하지 않느냐’는 차원에서 기존 방식을 고수한다면 실망스럽다.
"열린우리, 여당 기득권 누리고 있어서 현 예결위 체제 안 바꾸려 해"
-열린우리당에서는 한나라당이 예결위 상임위화를 주장하는 데는 정치적 의도 있다고 하면서 반대하는데. 한나라당 의도는 두 가지인데...야당 입장에서는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협상카드로 활용하고 예산 심의과정에서 여당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정책적 선점 효과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이 개혁성을 포장하는데 이 문제를 활용했다고 한다는 건 무책임하다. 이게 정말 개혁적인 사안이라고 본다면 열린우리당이 먼저 선점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면 실망감만 줄 뿐이다.
-한나라당이 정치적 의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제도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면 열린우리당이 반대할 명분이 되나. 열린우리당은 예결위에 모든 사업의 결정권이 쏠리게 된다고 보는 것 같은데 분명히 상임위에 예비심사권이 있다. 예결위는 종합심사권을 가질 뿐이다. 예결위를 상임위화하면 예산 문제와 관련해서 각 부처 장관이 늘 불려 다닌다고 하는데 그것도 지나치게 과대포장한 것 아닌가 싶다. 현재는 예결위가 특위이다 보니 기획예산처 소관은 운영위로, 감사원은 법사위로 돼 있어 사실 제대로 국정감사가 이뤄지지 못한다. 열린우리당이 핑계를 대려고 너무 과대포장하는 것 같다.
-학계에서도 예결위 상임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고 시민단체들도 예결위 상임위화를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를 완강히 거부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신행정수도 등 국책사업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법이 마련되고 계획이 나와도 사업 예산을 안 주면 사업이 안 되는 것 아닌가. 결국 야당으로부터 발목 잡히는 것을 피해가려는 것 아닌가 싶다. 당정협의를 통해 항상 여당 입장은 충분히 반영하는데 굳이 야당에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야당은 국회 권한을 확대하려 하는 반면 여당은 야당이 거수기가 되기를 바란다. 열린우리당이 여당이다 보니 현재 기득권을 누리고 있어서 그걸 안 바꾸려 한다. 하지만 그 같은 기득권을 나중에 잃었을 때를 대비해 국회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장치를 지금 마련해야 한다.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자민련까지 동조하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어떤 정략적인 목적이 있는 건가. 내가 정치적 분석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민련이나 민주당이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 다른 속셈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이게 옳은 방향이다. 야 3당뿐만 아니라 경실련과 참여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예산 문제를 잘 아는 시민단체들이 모두 예결위 상임위화에 찬성하고 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예결위, 상임위 활동하다 잠시 들르는 '전셋집'으로 만들어선 안돼"
-열린우리당에서는 예결위를 상임위로 만들면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하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미국은 국회가 예산 편성권을 원래 갖고 있어서 스스로 편성하다가 어느 때부터 힘에 부치니까 정부에 위임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는 예산 심의권만 규정돼 있지만 정부의 예산 편성 과정에 일체 관여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대형 국책사업이나 각종 R&D 예산이 연초부터 중장기 거시재정정책에 맞춰 수립된다. 국회는 이런 과정에서는 전혀 손을 못 대고 있다가 현행처럼 다음 회기연도 90일전에 예산안이 들어오면 정기국회 끝난 뒤에나 손을 대는데 그 짧은 기간에 어떻게 제대로 심의하겠나. 결국 사전 조정과정이 없다면 지금처럼 막판에 예결위 위원들이 지역구 사업 하나씩 나눠먹는 식으로 밖에 안 된다. 정부의 예산 편성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은 형식 논리일 뿐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예결위 상임위화에 대해 비판하며 현행 방식을 고수하자는 의원들이 있지 않는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상임위화를 찬성하는 분들이 있고 한나라당에도 반대자가 있다. 중진급이면 돌아가면서 한 번씩은 예결위원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기존 방식으로 자기 지역구 사업 하나씩 챙기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지역구 이해 관계를 떠나 재정민주주의 차원에서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열린우리당도 현행 예결특위의 문제점을 알다 보니 편법을 쓴다. 예를 들면, 예결위가 특위이다 보니 기획예산처 소관 상임위가 국회 의사일정과 운영규칙 등을 정하는 운영위로 돼 있고 감사원은 법사위로 돼 있다. 이걸 고치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편법은 편법을 낳는다. 편법의 에스컬레이터만 될 뿐이다. 원칙을 피해 문제점을 고치려고 우회하는 모습은 좋지 않다. 지금처럼 예결위를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잠시 들르는 ‘전셋집’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의원들이 잠시 들어오는 거니 한, 두 개 지역구사업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돼 있고, 이러다 보니 예산심사가 파행으로 흐른다.
-열린우리당이 여당이라는 기득권 때문에 예결위 상임위화에 반대한다고 했는데, 만약 야당 입장이라면 찬성했겠나. 그랬을 것이다. 여야가 바뀌었다고 생각해보라. 그때는 열린우리당이 예결위 상임위화를 강력히 부르짖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여야가 정책 방향을 옳고 그름에 따라 추진하는 게 아니라 전략적 게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를 만들겠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정략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도 여당일 때 이런 제도를 만들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힘들겠나.
"장관 출신 의원들이 예결위 상임위화 바라겠나"
-민주노동당은 당초 예결위 상임위화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초기에는 방관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처럼 비쳤는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개원을 전제로 예결위 상임위화 협상을 벌이다 보니 민노당이 소외된 것 같다. 예결위 상임위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부나 청와대는 이 문제에 어떤 자세인가. 청와대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정부 정책이 견제를 받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행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예결위 상임위화 문제도 그렇지만 최근 여러 가지 면에서 열린우리당이 오히려 개혁을 후퇴시킨다는 비판이 많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하다. 극우적인 사람부터 좌파 성향 사람까지 다 있는데 정반대 성향의 의원들을 어떻게 다 조율하나. 그러다 보니 조그만 계기에 의해서도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번 공청회를 가보고도 무척 놀랐다. 한나라당에서는 박재완, 이혜훈 의원 등 초선이면서 학계 출신이 많았다. 반면 열린우리당에서는 김진표, 정덕구 의원 등 전직 장관 출신들로 구성됐다. 흔히 생각하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이미지와 정반대였다. 정부 부처를 이끌었던 장관 출신들이 예결위의 상임위화를 바라겠는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인사들이 이번 사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면 예결위 상임위화에 반대하는 쪽으로 당 입장이 확 쏠리지 않겠는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도 당내 다양한 인사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당론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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