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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법화경유통회 경전회상 원문보기 글쓴이: 보운법사
-법화경유통회-
묘법연화경 일일법문:이렇게 생각을 마치자!
이렇게 생각을 마치자! 사유(思惟)한 것과 같이 모든 자식(子息)에게 모두 이르길, “너희들은 빨리 탈출(脫出)하라!”3-77
작시염이 여소사유 구고제자 여등속출
作是念已 如所思惟 具告諸子 汝等速出
1-작시염이(作是念已)는! 장자(長者)가 대화(大火)의 불길이 사면(四面)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세 번에 걸쳐 생각을 하였으니, 첫째 “長者 見是大火 從四面起 卽大驚怖 而作是念 我雖能於此所燒之門 安隱得出 而諸子等 於火宅內 樂著嬉戱 不覺不知 不驚不怖 火來逼身 苦痛切己 心不厭患 無求出意”
둘째 “舍利弗 是長者 作是思惟 我身手有力 當以衣祴 若以机案 從舍出之”
셋째 “復更思惟 是舍唯有一門 而復狹小 諸子幼稚 未有所識 戀著戱處 或當墮落 爲火所燒 我當爲說 怖畏之事 此舍已燒 宜時疾出 無令爲火 之所燒害”
2-작시염이(作是念已)에 있어, 만약 원교여래에 입각하면 삼승인을 어떻게 하면 원교여래의 계위에 올려놓는가 하는 것이고, 원교보살에 입각하면 삼승의 근성을 지닌 중생을 어떻게 하면 해탈지에 삼승의 계위에 올려놓는가 하는 것이나, 법신여래에 입각하면 시방의 원교여래와 지용보살과 여래종족을 어떻게 하면 빨리 법신여래의 계위에 올려놓는가 하는 것이다.
3-법신여래의 계위에 들지 못한 부분에서는 시방의 모든 중생과 원교여래와 지용보살과 여래종족까지 불길에 휩싸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4-중생(衆生)은 생사지(生死地)의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이고, 성현(聖賢)은 해탈지(解脫地)의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5-중생이 부처님을 만나게 되면 곧바로 해탈지(解脫地)에 들 수가 있는데, 성현이 부처님을 만나도 여래지(如來地)에 드는 일에 있어, 중생이 부처님을 만나 해탈지(解脫地)에 드는 일보다 더욱 멀다고 보아야 한다.
6-중생을 생사지(生死地)라 하고, 성현 즉 삼승인을 해탈지(解脫地)라 하고, 원교여래를 여래지(如來地)라 하고, 법신여래를 법신지(法身地)라 말한다.
7-작시염이(作是念已)에 사념(四念)이 있으니, 공즉생사(空卽生死)이기 때문에 생사즉공(生死卽空)인 것은 중생지(衆生地)이고, 공즉해탈(空卽解脫)이기 때문에 해탈즉공(解脫卽空)인 것은 해탈지(解脫地)이고, 공즉여래(空卽如來)이기 때문에 여래즉공(如來卽空)인 것은 여래지(如來地)이고, 공즉법신(空卽法身)이기 때문에 법신즉공(法身卽空)인 것은 법신지(法身地)를 가리킨다.
8-첫째 공즉생사(空卽生死)가 바로 생사즉공(生死卽空)이니, 생사지(生死地)의 공(空)을 가리켜 중생공(衆生空)이라 한다.
둘째 공즉해탈(空卽解脫)이 바로 해탈즉공(解脫卽空)이니 해탈지(解脫地)의 공(空)을 가리켜 해탈공(解脫空)이라 한다.
셋째 공즉여래(空卽如來)가 바로 여래즉공(如來卽空)이니 여래지(如來地)의 공(空)을 가리켜 여래공(如來空)이라 한다.
넷째 공즉법신(空卽法身)이 바로 법신즉공(法身卽空)이니 법신지(法身地)의 공(空)을 가리켜 법신공(法身空)이라 한다.
9-어떤 중생이든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부처님이 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다시 말해 한 분의 부처님 교화의 영역에 들게 되면, 그 부처님이 반드시 불도를 성취하도록 해주시는 것이니, 결국에 중생 중에 제 스스로 부처님이 되는 중생은 시방세계 안에 단 한 명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10-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역시 이와 같아서, 이 모든 부처님들도 중생일 때에 제 스스로 불도를 얻은 부처님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반드시 중생일 때에 부처님의 교화의 영역 안에서 불도를 성취하여 부처님이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11-불도에 드는 일에 있어 교화의 영역에 셋이 있으니, 첫째 삼승(三乘-성문.연각)의 영역이고, 둘째 이승(二乘-사교보살)의 영역이고, 셋째 일승(一乘-영산여래.경전여래)의 영역이다.
12-보살의 입장에서 삼승인을 구분하면, 성문이 삼승인이고 연각이 이승인이고 보살이 일승인이 된다. 하지만 우리들 여래종족에 입각해 삼승인을 구분하면, 성문과 연각이 삼승인이 되고, 사교의 보살이 이승인이 되고, 우리들 여래종족이 일승인이 된다.
13-영산여래는 소승이든 대승이든 방편의 가르침을 거친 다음에 영산회상에서 원교여래의 계위에 오르고, 경전여래는 오로지 일승의 경전만을 가지고 경전회상에서 원교여래의 계위에 오르게 된다.
14-소승의 성문과 연각을 함부로 중생의 경계를 침범하지 못하고, 대승의 보살은 함부로 성문과 연각의 경계를 침범하지 못하고, 일승의 여래는 함부로 보살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다.
15-중생의 경전 안에 성문과 연각의 이름이 없듯이.. 성문과 연각의 경전 안에 보살의 이름이 나열이 되어있지 않듯이... 보살의 경전 안에 여래종족의 이름이 나열이 되어있지 않는 것과 같다.
16-하지만 법신여래의 법화경에는 성문과 연각과 보살과 여래의 이름이 모두 나열이 되어있으나, 원교여래의 법화경에는 삼승인의 이름은 나열이 되어 있으나 일승인인 우리들 여래의 이름은 나열이 되어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17-일월등명불 시절의 경우를 관찰하면, 일월등명불의 영산회상에 참석을 한 사람에 한 하여, 일월등명불이 열반에 드시면 유통보살이 태어나 일월등명불의 시절에 법화경의 회상에 참석을 하고도, 원교여래의 계위에 오르지 못한 제자를 교화한다.
18-다시 말해 시방의 제불(諸佛)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나오시는 일에 있어, 반드시 삼승인의 경우는 과거세상 무량한 겁을 걸쳐 교화를 받은 제자에 한하여 일대사인연이라 말하는 것이고, 그냥 과거세상에 무량한 겁을 걸쳐 교화를 받지 않은 중생까지 일대사인연에 속하지 않음을 방편품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시었다.
19-법화경의 역사를 관찰함에 있어 둘이 있다. 첫째 원교여래의 법화경 역사이고, 둘째 법신여래의 법화경 역사이다.
20-첫째 원교여래의 법화경 역사를 관찰하면, 원교여래가 중생일 때에 부처님을 만나 방편의 교화를 받은 다음에 원교여래의 계위에 올라 하나의 불국토에서 부처님이 되어 교화의 영역 안에 든 모든 제자들을 원교여래의 계위에 올려놓는 일을 가지고 한 분의 원교여래의 법화경의 역사라 말한다.
21-둘째 법신여래의 법화경 역사를 관찰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이 과거 무량한 겁 전 중생일 때에 맨 처음 부처님이 되어 시방의 모든 불국토를 거친 다음에 법신여래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22-따라서 법신여래의 법화경의 역사를 가지고 원교여래의 법화경의 역사를 비교하는 일 자체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 마치 적문을 가지고 원교여래의 계위라 말하고, 본문을 가지고 법신여래의 계위라 말하는 것과 같다.
23-우리들이 지금 경전회상에 읽고 있는 법화경의 역사는, 시방세계 안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법화경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24-법화경의 역사가 무량하다는 것은 그 공덕과 지혜가 무량하다는 것이고, 법신여래의 법화경은 반드시 법신종족만이 유통을 하는 것이니, 원교여래조차 법신여래의 법화경을 유통할 법기(法器)가 못 됨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25-보운지용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우리들 여래종족은 비록 중생의 몸을 하였으나, 시방의 원교여래를 도반으로 삼는다.”함에 있어, 법신여래의 법화경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유통하는 힘 때문에, 시방의 원교여래와 비교해도 그 공덕에 있어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26-8만의 명의 대보살은 이미 보처보살로써 원교여래의 계위에 오른 지 이미 무량한 겁 전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불사(佛事)를 돕기 위해 불신(佛身)의 몸을 숨긴 채 사교(四敎)의 보살이 불도에 드는 일을 돕기 위해 출현을 하시었다.
27-하지만 법신여래의 법화경을 유통하는 일을 부촉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법신여래의 법화경을 부촉받기 위해서는 법신종족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법신종족인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모여서 불도를 성취하는 근기이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이 원교여래에게 조차 법신여래의 법화경을 유통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28-우리들의 수행과의 이름은 여래과(如來果)이나, 종족에 있어 법신여래종족에 속함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보운지용이 간혹 여래종족만을 가지고 법신종족이라 말하는 것이고, 보살과(菩薩果)를 가리켜 여래종족 내지는 법신종족이라 말하지 않고, 원교종족 내지는 원교여래종족이라 말하는 것이다.
29-정리하면, 우리들은 여래과(如來果)에서부터 곧바로 불도(佛道)를 닦는 법신여래종족이고, 삼승인은 소승과(小乘果)와 보살과(菩薩果)에서부터 방편도(方便道)를 닦는 원교여래종족이라는 것이다.
30-왜 우리들이 비록 중생이면서도 원교여래의 도반이라 말하는가!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가리켜 보살도라 말하고, 시방의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가리켜 여래도라 말한다.
31-보살도는 중생을 교화해 보살의 계위에 올려놓는 일을 하는 것이고, 여래도는 중생을 교화해 구경에 여래의 계위에 올려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
32-따라서 우리들이 비록 중생이나 원교여래와 도반인 것은, 바로 우리들이 시방의 원교여래가 중생을 교화해 불도에 들게 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 역시 법화경을 널리 유통해 중생을 불도에 들게 하기 때문에, 우리들을 가리켜 비록 중생이나 시방의 원교여래와 그 공덕에 있어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33-아직도 법신여래의 법화경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보살보다 하열한 중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작시염이(作是念已)의 깊은 도리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일이라 말하는 것이다.
34-여소사유(如所思惟)는! 앞에 작시염이(作是念已)를 가리키는 말이다.
35-구고제자(具告諸子)는! 제자에 있어 둘이 있다. 첫째 삼승의 근성이 지닌 중생이고, 둘째 삼승의 계위에 올랐으나 아직 불도를 성취하지 못한 성문과 연각과 보살을 가리킨다.
36-삼승의 근성과 일승의 근성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첫째 삼승의 근성은 반드시 해탈지에서 교화를 받는 것이고, 일승의 근성은 중생지에서 교화를 받는다는 것이다.
둘째 삼승의 근성은 부처님이 뵙지 못하면 믿음이 하열하다는 것이고, 일승의 근성은 부처님을 뵙건 뵙지 않았건 법화경을 만나기만 하면 강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셋째 삼승의 근성은 신통력에 의지하지 않으면 불도를 이룸에 있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만, 일승의 근성은 신통력이 없지만 불도를 이룬다는 것이다.
넷째 삼승의 근성은 방편의 가르침에서 진실의 가르침에 들어가 불도를 성취하지만, 일승의 근성은 진실의 가르침에서 방편의 가르침에 들어가 불도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삼승의 근성은 보살의 도움을 받아야 불도를 성취하지만, 우리들 일승의 근성은 원교여래의 도움도 받지 않는데 하물며 보살의 도움을 받으랴!!
여섯째 삼승의 근성은 선처(善處)에서 법화경을 지니고 유통을 하지만, 우리들은 일승의 근성은 반드시 법신여래가 오탁의 악세에 출현하신 것과 같이.. 우리들 역시 오탁의 악세만을 골라서 법화경의 유통을 한다.
일곱째 삼승의 근성은 매우 긴 수명을 지닌 채 법화경을 유통하지만, 일승의 근성은 매우 짧은 수명에도 법화경을 유통하는 일에 있어 목숨을 바치는 일을 아까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덟째 삼승의 근성은 질병이 없지만, 우리들은 질병을 몸에 달고 살고 생사가 고달파도 법화경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유통하는 일을 그만 두는 일이 없다.
아홉째 삼승인은 해탈지에 오르지 않으면 불도에 들 수가 없으나, 우리들은 법신여래를 추구하기 때문에 원교여래의 계위에도 집착을 하지 않는데, 하물며 보살 따위의 해탈지에 마음을 두랴!!
열째 삼승인은 원교여래의 계위를 구경(究竟-최후)의 목표로 삼지만, 우리들은 법신여래의 계위를 구경의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법화경 일일법문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보살 따위하고 우리들을 비교하면 법신여래의 법화경을 지닌 제자로써 참으로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37-여등속출(汝等速出)은! 삼승인에게 여등속출(汝等速出)이라 말하지만 불가능한 일이고, 여등속출(汝等速出)의 능력은 우리들 일승인에게 해당이 됨을 알아야 한다.
-偈頌-
삼승인에 입각하면
원교여래가 진실이고
성문과 연각과
보살이 방편이 되지만,-1
일승인에 입각하면
법신여래가 진실이고
원교여래가
방편에 속하게 된다.-2
따라서 원교여래조차 방편인데
하물며 원교여래의
삼승의 제자에 있었으랴!!-3
우리들이 비록 보살의 계위와
원교여래의
계위조차 오르지 않았으나,
진실인(眞實人)인 것은
태생적인 법신종족이기 때문이다.-4
따라서 우리들의 몸 안에는
법신여래의 혈통이
흐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5
부처님이 보살들에게
우리들의 곁에 오지 않게 하신 것은,
이미 혈통에 있어
존비(尊卑)가 정해져있기 때문이니,-6
마치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도리어
후퇴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7
따라서 아직도 보살의
이름을 쳐 부르는 것은
참으로 법신여래의
법화경의 깊고 넓은
자비에 대해 조금도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니,-8
보운지용이
이런 사람을 보면
가엾기기 한량이 없어...
“어찌하면 이 모든 여래인들을
교화해 부처님이 되게 할까” 하고
작시염이(作是念已) 하는 것이다.-9
-寶雲地湧 速出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