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 스포츠신문에서 유승안 감독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올 시즌 이글스의 클린업은 <이영우-김태균-송지만>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보도했던 기억이 나네요.
데이비스의 공백으로 인한 중심타선 파괴력 약화에 따른 대안이 <3번타자 이영우>라면, 이글스의 라인업은 필연적으로 <톱타자 부재>라는 새로운 고민을 떠않게 됩니다. 가뜩이나 2번타순과 하위타순이 부실하여 효율적인 득점루트를 개척하지 못했었는데, 톱타자 자리까지 무주공산이 되어버림에 따라 코칭스태프들은 정말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네요.
일단 톱타자로 기용될 일말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선수들은 꽤 많습니다. 김수연, 고지행, 이범호, 신민기 등이 바로 그들이겠지요. 네 선수 모두 발이 빠르고 나이가 젊다는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손쉽게 톱타자 자리를 꿰찰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네 선수 모두 치명적인 약점, 또는 불안 요소들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김수연 선수에게 있어 가장 문제되는 점은 바로 출루율 입니다. 지난 시즌이 실질적으로는 2년차였고, 이는 곧 동계훈련과 경험축적을 통해 어느 정도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만, 어쨎든 현재로서는 별다른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1루에 나가야 한다>는 가치만을 두고 본다면 말이죠. 중견수 수비와 베이스런닝 면에서는 분명 경쟁자들과 비교우위에 있지만, 출루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톱으로 중용되기 힘듭니다.
고지행 선수는 현재 유격수와 중견수 수업을 번갈아 가면서 받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만큼 선수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아직 팀내에서 입지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저로서도 그의 플레이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기에 현재로선 어떠한 믿음도 실어줄 수가 없네요. 물론 믿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아직은> 믿지 않겠다는 뜻일 뿐이지요.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스포츠신문에 온갖 칭찬이 오르내리며 팬들로 하여금 많은 기대를 갖게 했던 선수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조용히 사라지곤 하지요.
이범호 선수는 작년 시즌말미 분명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후반기에 이글스가 잠시나마 힘을 낼 수 있었던 시기에 그가 팀 전력의 정점에 서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이 선수에게 있어 부족한 점이라면 바로 작년 시즌의 김수연처럼 실질적으로는 2년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작년 시즌 이범호의 활약상을 보고도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느냐?> 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재작년 김수연의 활약은 결코 작년 시즌 이범호의 그것에 비해 뒤지지 않았습니다. 김종석, 김태균선수의 경우도 그렇구요.
많은 팬들로부터 기대를 받고 있는 신민기 선수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말 할 필요 없이 그가 <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충분히 설명이 되지요. 작년시즌 이현곤과 김민우는 입단 당시 현재 신민기 선수보다 더 큰 기대와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신민기의 경우 일단 주장인 임수민 선수와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제 아무리 그의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프로의 벽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겠지요.
이렇듯 누구 하나 속시원하게 <야~ 저놈이다~!> 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숨만 내쉬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주어진 전력, 현재 갖추어진 상황 하에서 최선의 성적을 내는 것이 바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선수들로 상위타순을 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조합은 김수연-신민기 라인입니다. 두 선수의 스타일이 비슷한데다 모두 다 좌타자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3번 이영우 선수가 좌타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라인은 결코 최상의 조합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기동력 면에서는 최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가정을 해놓고 넘어가보죠. <2번타자 이범호>라는 가정 말입니다. 물론 이범호 자신은 개인적으로 6번타순에 배치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대륙간컵 대회를 통해 분명히 "타점"에 눈을 뜬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타점을 생산해 낼 수 있는 6번타자는 이범호 선수 말고도 또 찾아낼 수 있습니다. (지명타자로서의) 이도형이나, 조현수, 김종석, 장종훈 같은 선수들이 바로 그들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범호 선수가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순, 또는 꼭 들어가야 할 타순으로 2번을 추천하겠습니다. 단 고지행이나 김수연, 신민기 중 누가 되던 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출루율을 보장해 주면서 톱타자 자리에 고정된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2번타자에게 있어 필요한 능력은 비단 <보내기 번트 성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파워 넘치는 중심타선 앞에 어떻게든 먹기 좋은 밥상을 차려주면 되는 것이죠. 어차피 1번타자가 발이 빠르다는 가정하에, 일정 수준 이상의 정확도와 쓸만한 중거리포 생산능력을 갖춘 이범호가 2번에 투입된다면 상당히 훌륭한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작년시즌 이광환 감독이 임수민 선수에게 이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실패한 바 있지요.
만일 신민기 선수가 주전경쟁에서 패퇴하고 임수민 선수가 중용된다면 임수민의 타순이 다소 애매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99년 우승당시 임수민 선수의 타순이 2번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고정관념일 수 있습니다. 만일 올 시즌 이범호의 방망이질이 임수민 보다 한 수 위라고 판명난다면, 분명 임수민 보다 기동력 면에서 우위를 보이는 이범호 선수가 2번자리로 꿰차고 들어와야 합니다. 물론 선행주자를 보내건, 자신이 진루하건 간에 어떻게든 공격을 이어가는 능력 면에서 임수민 선수보다 우위를 보이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 들어갈 수는 없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신민기 선수가 임수민과의 주전경쟁에서 만일 승리한다면 일단 공격부담이 적은 9번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고지행과 김수연 중 스타팅 라인업에 들어가는 선수가 톱에 들어오면 되겠구요. 만일 유격수 고지행 - 중견수 김수연 - 2루수 신민기 라인이 형성되면서 세명의 선수들이 모두 라인업에 들어오거나, 또는 세 선수 모두 라인업에 들어오지 못했을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네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식견이 높으신 다른 분들께서 한번 의견을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