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이랄 것도 없이 그저 평온하게 지나가나 했다.
하지만 시댁에 다녀온 딸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시크한 응급실 의사왈 노로바이스도 아닌 것이 특별히 장염이랄 것도 없는 스트레스성 과민반응 이라고.
하지만 시댁이 경남 해안가이다 보니 굴떡국이 늘상이라 굴에 의한 탈이 아닐까 싶다고 환자가 말해도
"그렇게 까지는 아닌 듯하다"...."그러면 코로나 검사나 감기 검사라도 해주세요" 라는 딸의 말에
"뭐 그렇게 까지요..그냥 검사비용으로 맛있는 것이나 드시지요" 라고 했더란다.
그래도 딸은 못내 미덥지 못해 감기랑 코로나 검사까지 마쳤으나 이상 없음이어서 수액만 맞고 돌아왔다면서
그 응급실 의사가 완전 쿨하다 못해 시크한 젊은 의사라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란다.
어쨋거나 딸은 그후로도 이틀간을 시들시들거렸고 딸내미가 겨우 제정신을 찾아갈 무렵
이번에는 쥔장이 바로 아웃, 탈진상태가 되어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기진맥진 음식거부 사태가 벌어지고
밤새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기운은 바닥을 치고 이틀을 시름시름.
그렇게 끝나갈 무렵에 이번엔 서방에게로 옮겨갔다.
역시나 노로바이러스 인가 싶어도 증세는 셋 다 다른 모양새라 정말 웃기는 며칠이 되어버렸고 서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하여도 병원 갈 엄두를 내지 않는 우리는 그저 약으로 연명하며 버티고만 있다.
와중에 오늘 데리러온 사위가 건네준 죽을 먹고 좀 나아지는 듯한 몸을 부여잡은 채
다시 남겨진 지루한 시간을 OTT로 달래기 위해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를 돌려보다가
웨이브에서 "스페인어게인"이라는 영화가 눈에 들어와 시청하기 시작했다.
처음 선택할 때는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까닭에 다시한번 여행하였던 스페인을 상기하기 위해 보려고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용은 여행이 중요한 것이 아닌 갱년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가정사, 우정과 그 우정의 약속과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의 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한 과거를 향한 동행이 요점이며
중년 여성의 시점과 청춘의 시각은 얼마나 다른지를 지켜보는 것도 관건이겠다.
하지만 과거의 빛났던 청춘도 언젠가는 나이듦을 인정하면서 인지하여야 하고 익숙해져야 하며
그 과거로 인해 빛날 갱년기 여성의 화려함은 없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그저 묵묵히 현실을 살아내야만 살아남는다는 역설적인 논리도 존재하는.
빛나는 청춘을 지나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지만 그 자리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가정생활도 완벽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직업이 안정권도 아니며 누군가 경제적 상황은 지극히 나빠져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바쁜 세상살이 속에서 문득 잊고 살던 친구의 죽음 소식에 절친들이 장례식장에서 만난다.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마련해준 네명의 비행기 티켓을 보며 죽은 친구 "애나"의 딸과 함께
과거 빛나던 청춘 시절을 향유하며 함께 여행하였던 스페인을 향해 30년 만에 길을 나선다.
물론 좌중우돌은 보지 않아도 뻔하게 상상이 된다....다늙은 여자들의 여행은 만만치 않다는 것쯤은 쉽게 이해가 되니까.
제일 먼저 프랑스에 도착해 그 프랑스인 특유의 고집과 잘난척에 잠시 당황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프랑스인의 쓸데 없는 자부심은 그야말로 폭소를 일으킬 지경이었고
청춘이었을 시절에는 그들도 행복하게 혹은 기고만장하게 누렸을 일이고
그뒤에 외면당하고 내처지는 모습으로 비칠 중년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터.
그리고 현재로 되돌아보는 과거의 청춘은 비록 목록에는 없었을 일이었어도 마주해야만 하는 일.
그 청춘시절의 여유가 없었던 관계로 묵었던 숙박시설의 비루한 모습에 질색을 하지만
그 또한 과거를 위한 여정일 뿐 감내할 상황이 되겠다.
기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곳에서의 거부 속에는 애나의 딸 메기가 엄마의 유골이 담긴 목걸이가 화근이었으나
그 장면은 울컥이는 마음을 저 밑에서 부터 끓어올리고 기차여행하는 동안 폐경기 증상 32가지에 대해
의사가 아닌 갱년기 여성으로서의 자기 증상을 말해주는 장면에서는 어찌 그리도 짠하던지....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여전히 혼돈의 와중을 견디는 갱년기 여자들의 좌충우돌 몫인지라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다.
잠시 일탈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스페인이 아닌 이탈리아로 향한 시간 속에서 사랑에 눈을 뜨거나
현재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자비하게 간신히 유지되고 있으며 그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외면해야 했는지...
진실은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지 등등 눈부신 지난 날의 우정을 떠올리며 출발하였던 여행은
다사다난 하게 마주치는 사건의 연속성에 의해 행복했던 순간을 떠울릴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듯이 여행의 마무리는 그들이 원하던 스페인의 팔마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창이
햇살의 조력으로 신의 선물 "신의 미러볼"을 만나는 경이로움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닌 현실감같은 흥분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 장면 하나 만으로도 지나온 영화의 장면장면이 이입되기도 한다.
결국 친구 "애나"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찾게되는 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의 딸을 챙기는 마음의 여유도 있다.
또한 현재의 삶이 아무리 버겁고 지난하며 곤혹스런 삶을 유도할지라도 함께 갈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돈도 명예도 지위도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함이니 과연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친구의 이름을 몇명이나 부를 수 있을라나?
그녀들의 5일동안 추억여행은 그래서 값져 보인다.
그리고 친구가 곁을 떠나 회상하게 되는 시점에 친구를 그리워 하지 말고
이 시점, 지금 우리가 되는 것이 울컥이지 않을 미래를 쥐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짠할, 퇴색해버린 세월 끝자락에 존재한다는 것이
살아가면서 제 자신의 정체성과 확고한 삶자락과 인생길이 없다거나 부족하다면
혹은 제 삶이 이도저도 어쩌지 못할 자괴감이 들 정도 심각하다면 참 슬플 일이겠다 싶다.
또한 그 옛날 자주 들었던 "블론디"의 음악은 배경을 흥겹게 하고 딱히 코믹스런 부분이 없어도
뭔가 즐겁고 행복하며 잘 돌아갈 미래를 보여 줄 것 처럼 재미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어쨋거나 고단한 몸의 반란을 감내하며 순삭의, 울컥의 갱년기 여성들과 함께 하면서 잠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첫댓글 모든 식구들 모두 쾌유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넵....고맙습니다.
죽은 먹게 되었습니다.
고생들 많이 하시네~! 토닥토닥 ~!
그 젊은 의사 정직한 명의네요.
별일 아닌 병도 병원에 가면 환자의 불안을 이용해 이검사 저검사 하라고 해서 의료수가만 올리던데... 어서들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맞아요....그런 의사들이 많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