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소풍 장소 ‘소나무숲’ 싱그러운 솔향 코에 가득 담고 모섬 꼭대기서 일몰 풍경에 취해
광천읍 전통시장 속 낡은 건물서 정겹고 투박한 매력 느껴
살랑살랑 봄바람이 분다. 가슴이 설렌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목적지는 충남 홍성이다. 따스한 봄날에 어울리는 영화 <피끓는 청춘(2014년 개봉)>의 배경이 된 곳이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차로 두시간을 달려 도착한 홍성군 서부면의 속동전망대. 주차장에 들어섰을 뿐인데 소금기 머금은 갯내음과 싱그러운 솔향이 코끝에 스쳤다. 갯벌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을 한눈에 담고 싶은 욕심에 속동전망대보다 높은 ‘모섬’에 오르기로 했다. 전망대 인근에 있는 이 섬은 본래 마을과 연결된 육지였는데, 오랜 시간 파도에 깎여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모섬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익숙한 소나무숲이 눈에 들어왔다. <피끓는 청춘> 속 홍성농업고등학교에 다니는 주인공들이 봄 소풍을 즐겼던 장소다. 소풍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장기자랑 시간. 소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자랑을 하는 주인공들은 제각각 흑심을 품었더랬다.
서울에서 전학 온 깍쟁이 소희(이세영 분)는 그동안 가꿔온 이미지에 맞는 잔잔한 팝송을 불렀다. 그녀를 바라보는 남학생들의 눈은 하트로 변했는데, 특히 남주인공 중길(이종석 분)은 소희의 노래에 추임새까지 넣으며 바람잡이를 자처했다. 이를 지켜보는 여주인공 영숙(박보영 분)의 눈에서 질투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도 모른 채. 영숙은 자신도 매력을 발산하겠노라며 학생들 앞에 섰다. 그녀가 선택한 곡은 들고양이가 불렀던 ‘마음 약해서’. 중길을 바라보며 수줍게 노래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 욕설을 입에 달고 살던 것과 사뭇 달랐다. 중길에 대한 영숙의 진심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비록 중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영숙을 외면했지만.
사랑의 화살이 엇갈리던 소나무숲을 지나 턱끝에 숨이 차오르는 것도 모른 채 모섬 꼭대기에 올랐다. 기대 이상의 풍경이 펼쳐졌다. 해무로 희미한 바다와 거친 질감의 갯벌이 한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영화 <타이타닉>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배 모양의 포토존이 있었다. 포토존 군데군데 묻은 손때는 얼마나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추억을 쌓았는지 짐작하게 했다.
비경에 취해 있다보니 갯벌은 어느새 바다로 변해 노을을 품었다. 속동전망대가 자랑하는 해넘이가 시작된 것이다. 이윽고 하루종일 천수만을 노닐던 태양은 안면도 뒤로 넘어갔다. 그 모습에서 웅장하다 못해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찬란한 일몰의 순간을 감상한 뒤 광천읍에 있는 전통시장으로 갔다. 영화의 여운을 좀더 느끼고 싶어서였다. 시장 곳곳에서 영화의 흔적이 묻어났다. 주인공들이 빵집에서 데이트를 하던 장면, 무리 지어 시장 골목을 휘젓던 모습 등 영화 속 장면들이 낡은 건물에서, 오래된 가게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투박해서 정겨움이 가득한 홍성. 이곳을 꼭 닮은 청춘들과 하루를 보냈더니 봄바람에 두근대던 마음은 더욱 힘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영화 ‘피끓는 청춘’
여고생 깡패·카사노바 내세운 청춘남녀의 ‘농촌 로맨스’
1980년대 충남 홍성을 배경으로 농촌에서 일어나는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충청도를 접수한 여고생 깡패 영숙(박보영 분), 홍성농고 전설의 카사노바 중길(이종석 분), 홍성공고 싸움짱 광식(김영광 분), 서울에서 전학 온 소희(이세영 분) 등 개성이 강한 4인방이 등장한다. 특히 그동안 귀여운 외모로 큰 사랑을 받았던 배우 박보영은 욕설 연기를,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이종석은 바람둥이 연기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