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 수도회에는 외국 신부님들이 많이 계신다. 스페인에서 온신 모 예수 미카엘 신부님(모모 신부님,모 대감님), 이태리에서 오셔서 한국에서 사시다가 지금 아프리카에서 학교를 짓고 선교 하시는 원 선오 신부님, 어떤 분은 6.25때 들어 오셔서 지금까지 한국에 사시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한국에 뼈를 묻고 계신 분도 있다.미국에서 오신 권 신부님,돌아가신 마 신부님, 우리 아들 놈 유아영세 주례신부이신 왕 신부님, 그리고 노승피 신부님.
노 대감님, 노 할아버지, 그리고 노 신부님.
탁구를 잘하신다.
농구도 잘 하신다.
그리고 영성 지도전문 신부님이시다.
미국에서 오셔서 한 평생을 한국의 청소년 교육을 위해 사셨다.
동료신부들과 농구를 하는 노숭피 신부(맨앞)
82세, 파아란 눈동자의 노숭피 신부는 어릴 적부터 항상 놀고 싶었고, 지금도 신나게 놀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대표 농구선수였다. 주역할은 어떤 상황에서도 득점과 연결해야 하는 골밑 파워포워드. 그의 키는 농구선수로서는 작으나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 가장 우수한 선수, MVP로도 뽑혔다. 그는 인생을 친구들과 공을 가지고 노는 농구를 통해 배워갔다고 말한다.
“팀워크를 해야 이기는 농구. 팀과 맞춰서 하고 양보도 해야 하죠. 둘 중에 한 명이 슛을 하려면 한 사람이 양보합니다. 나도 잘 하지만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 잘하는 그가 팀의 핵심이 되면 그에게 맞춰서 해야 성공하지요. 이기고 난 후의 기쁨은 모두의 것입니다. 시합에 졌을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러나 실패하는 것을 배웁니다.”
미국의 중서부 위스콘신 주(State of Wisconsin)는 겨울이면 엄청난 눈이 쌓였다. 쌓인 눈의 높이가 어린 그의 눈에는 하늘에 닿은 것처럼 보였다. 철도청 간수로 일하는 그의 아버지는 눈길을 헤치며 출근을 하였고, 아이는 엄마를 따라 눈 위에 하얀 발자국을 남기며 성당에 갔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아이는 성당에서 선교사 신부님을 보았다. 그분은 눈처럼 하얀 수단을 입고 얼굴은 흰 수염으로 덮여 있었다. 하얀 신부님은 눈부시게 멋쟁이였다.
그래서 아이는 눈동자를 빛내며 엄마에게 자기 결심을 가만히 말했다.
“엄마, 엄마, 나도 저 신부님처럼 똑같이 될 거야.”
엄마는 아들의 말이 흘려 들리지 않았다. 사제의 길도 어려운데, 평생을 가족과 고국을 떠나서 사는 선교사 신부가 되겠다는 아들의 결심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선교사 꿈은 실현되었다. 살레시오 사제가 된 그는 1956년, 태평양을 건너 그 옛날 조상들이 흰옷을 즐겨 입었던 ‘백의의 나라’ 한국의 선교사로 지금 현존해 계신 것이다.
돈보스코농구대회에서 시구하는 노숭피 신부
“나는 숭늉과 커피를 아-주 좋아해요.”
‘노숭피’라는 그의 한국 이름은 한국의 숭늉과 미국의 커피를 합성시켜 자신의 Rovert 성을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부르기 쉽게 ‘노신부님’이라 부른다. 노신부. 그가 80평생 가장 많이 쓴 말은? 단연 “좋아요, 아-주 좋아요.” 라는 말임을 그를 만난 만인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이름이자 별명은 ‘좋아요, 신부님.’이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그는 살레시오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농구하는 교장이었다. 아이들은 농구공을 만지면서 그와 친해졌다.
올 봄에, 그가 머물고 있는 광주 신안동 수도원에 남미로 이민을 간 살레시오 중학교 졸업생 최찬이가 찾아왔다. 노신부와 찬이는 아주 오래된 농구 친구다. 찬이의 부친은 6.25전쟁 때 전사하고 모친은 당시 중학교 교장인 노신부가 사는 살레시오 수도원 주방에서 일을 했다. 그때부터 노신부와 까까머리 찬이는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며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제는 양 손에 자신을 닮은 두 아들을 데리고 온 찬이는 아직도 농구대가 있는 운동장을 보더니 대뜸 “신부님, 우리 농구하러 나가요. 멋있게 한 판 해요.”
하며 일어났다. 둘은 즉시 밖으로 나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지상으로부터 3.05m에 장치된 바스켓에 공을 던졌다. 노신부는 옛날처럼 찬이를 향한 외쳤다.
“잘 했다. 좋아, 잘 하고 있어. 멋있게 들어갔다.”
찬이가 공을 못 넣으면
“야, 이놈아 더 연습해.”
라고 외쳤다.
돈보스코농구대회에서 농구하는 아이들
현재 전남 광주에는 청소년 아마추어 <돈보스코 농구대회>가 있다. 올해로 제47회를 맞은 이 농구 대회의 소개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돈보스코 농구대회는 -중간생략- 역사 깊은 농구대회로 외국인 선교사 로베르토 포크(노숭피 신부) 신부에 의해 시작 되어 -중간생략- 전국 최대 규모의 아마추어 대회이다. 본 대회는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한 방법 중 하나인, 지적능력과 함께 성장해야 할 신체적 발달과 건전한 사회성 형성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돈보스코 농구대회는 노숭피 신부가 살레시오 중학교 교장직을 맡고 있을 당시 창설한 것이다. 47회라는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이 대회는 큰 상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기업의 홍보를 위해 열리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농구를 사랑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그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생긴 진정한 의미의 농구대회다.
돈보스코 농구대회의 특징은 적은 참가비로 최고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단합을 절실히 요구하는 정식 5:5 농구를 심판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며, 전&후반 15분, 준결승부터는 20분에 루즈 타임까지 적용하여 최대한 정식 농구를 즐기도록 대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무료 체육관 사용. 프로급 심판이나 운영요원들이 모두 자원 봉사이기 때문이다. 참석한 청소년들은 안정감을 누리며 그 순수한 기쁨을 발산하며 깨끗하게 논다. 가끔 오판이라 판단되어도 불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위해 고생하고 있는 고마운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농구하는 아이들
농구를 좋아하는 청소년이 자신의 카페에 안타까운 알림 글을 올렸다.
<저희 농구하는 아이들(JSK)카페 <오리훈제> 팀입니다. 저희 팀은 겨울방학에 광주 돈보스코 농구대회에 나갔습니다만 아쉽게도 2명이 못나가서 4명밖에 뛰지 못했습니다. 저희 오리훈제팀은 그저 농구에 대한 열정, 우정만 가지고 계시면 됩니다. 저희 팀 카페 농구하는 아이들, 많은 가입을 부탁드리고 팀이 없으시다면 저희 팀으로 한번 물어보셔도 됩니다. -중간생략->
대회가 가까워지면 이와 비슷한 사연이 담긴 글들이 인터넷을 달군다.
노신부는 2012년 1월 29일부터 8일간 열린 <돈보스코 농구대회> 개막 시구를 맡았다.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 실내 체육관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청소년 선수들과 가족들, 준비 임원, 자원봉사자 등 800여 명이 꽉 찼다. 82세의 그가 반짝이는 하얀 머릿결에 살인적 미소를 띠고 등장할 때, 모든 관객과 선수들은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먼저 동서남북을 돌며 90도 각도의 한국식 인사를 하고, 자신있게 공을 던져 올린 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유유히 퇴장하려 했으나 아뿔싸, 날렵한 그의 손을 떠난 공은 바스켓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체육관 안에는 우렁찬 함성이 계속되었다.
“한 번 더, 한 번 더, 한 번 더…….”
그는 용기가 났다.
“오케이, 한 번 더 하겠다.”
그의 두 번째 시구는 라인 밖에서 3점 슛, 성공이었다. 모두가 기뻐하는 환호성을 들으며 그는 노장선수답게 다시 한 번 사방을 돌면서 절을 하고, 양손의 검지와 장지로 V자를 만들어 보이며 관객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직도 은퇴가 없는 노신부는 농구의 매력을 이렇게 말한다.
“농구의 생명은 패스입니다. 패스는 서로에 대한 배려이고 슛의 기쁨을 아이에게 주는 것이며 아이는 슛의 기쁨 속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기술을 배워갑니다.”
이 말은 농구뿐만 아니라 공을 가지고 노는 모든 놀이에 해당되는 매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농구만 주창하지 않는다. 그는 골프 선수이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에 골프장에서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프를 배워 지역사회에 참가하여 여러 차례 수상 경력도 있다.
“내 나이 82세지만 지금도 나는 신나게 놀고 싶어요.”
라는 노신부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야구가 청소년을 위한 <돈보스코 농구대회>에 이어 <돈보스코 야구대회>도 개최되길 희망한다. 그의 직무실 문을 열면, 맞은편 옷걸이 밑에 아이들과 노신부의 손때가 묻은 농구공이 놓여 있다. 오늘도 아이들이 부르면 언제라도 들고 나갈 준비 태세다.
노숭피 신부님. 머지않아 그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시 천국동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다. 떠나기 전, 그는 주님께 한 말씀 드릴 것이다. 그 옛날 일곱 살 때 엄마에게 하듯이
“주님, 저 농구공 가지고 갈 거예요.”
농구장에서 노숭피 신부(오른쪽)
돈보스코의 예방교육 영성
청소년에게 놀이를 막는 것은 살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놀이는 청소년에게 있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나 뜻이 없는 장난이 아닙니다. 놀이에서 소년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자기의 본능적인 무서움을 이기고 자기 안에 있는 잠재력을 의식합니다. 그는 놀이를 통하여 그의 공격적인 정신에서 해방되고 자신의 고독감을 극복합니다.
놀지 못하는 소년은 환자입니다. 완전히 자유스럽게 놀지 못하게 제지받는 아이들은 신경질적이거나 콤플렉스가 있는 어른이 되기 쉽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자기들 안에 압축되어 있는 왕성한 힘을 놀이에다 배출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방교육자 돈 보스코는 놀이를 할 때 단순한 자유를 주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넉넉한 자유”를 주고자 하였습니다. 오직 한 가지 제한을 두었는데 학생들의 건강이나 도덕성을 위험스럽게 하는 놀이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이 점에 대해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예방교육자 돈보스코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격려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청소년들아! 뛰어 놀아라. 죄가 되지 않는 한 마음껏 즐겨라.”
그는 교육자들에게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만약 운동장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교육체계는 무너집니다. 무엇보다 교육자는 운동장에서 자기 제자들과 함께 할 시간을 내야 합니다.”
운동은 청소년들의 불덩이 같은 에너지를 가장 건전하게 발산하는 놀이입니다. 발산 되어야 할 에너지를 억압하면 썩거나 다른 길을 찾아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최근 학교 폭력 극복사례 및 대안 모색좌담회에서 한 교사의 말이 지금도 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혈기 넘치는 30-40명의 학생을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하면 싸움이 날 수밖에 없죠.”김인숙 수녀 2012. 07. 09
- 김인숙 수녀
-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천주교살레시오수도회 마자렐로센터에서 봉사 중. 순간의 잘못으로 ‘6호 처분’을 받아 6개월간 소년원을 거쳐가는 소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자다. 사회에서 ‘문제아’라고 내모는 아이들에게서 더 큰 희망을 발견하는 수도자이기도 하다. 저서로 <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가 있다.
- (*사진은 나중에 사료가치가 있어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퍼옮김)
- <인터넷 한겨레 '조현기자'-나눔의 글찬치 한마당- 글에서 퍼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