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올해(2013년)는 카이로 선언 70주년이 되는해이다. 카이로 선언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답
1943년은 연합국들이 전쟁을 종결하고 전후(戰後) 구상을 위하여 강대국간의 협조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 영국, 소련은 국제적인 평화와 안전보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제조직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외상회의를 개최하고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또한 당시는 국제연맹 대신 새로운 세계적인 국제조직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시기였다. 특히 미국의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국제조직 설립에 찬성하면서,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하여 강대국 간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43년 11월부터 루즈벨트, 처칠(Winston Churchill), 스탈린(Joseph Stalin) 세 지도자는 이란의 테헤란에서 처음으로 연합국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이과정에서 루즈벨트와 처칠은 테헤란에 가기 전, 카이로에 들러 중화민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과 회담하고, 대일전쟁에 대한 협력을 협의하고 11월 27일 ‘카이로 선언(Cairo Declaration)’을 발표하였다.
카이로 선언은 역사적인 선언으로 한반도의 미래와 깊은 관련성을 가졌다. 먼저,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탈취하였거나 점령한 태평양의 모든 섬들을 반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영토를 모두 반환할 것, 그리고 조선에 대해서는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고, 적당한 시기와 절차를 거쳐 자유로운 독립국이 되어야한다는 것이 선언되었다. 당시 루즈벨트는 장제스와 중국 국민의 사기를 높여, 대일 전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그는 전후 아시아에서 중국이 안정 세력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중국과 미국이 우호관계를 구축하여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카이로 선언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강제로 폭력과 탐욕에 의해 탈취한 모든 영토를 반환하여야 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리고 일본이 대한제국으로부터 강제 편입한 독도는 반환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그 이후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의 제8조에 계승되었으며, 일본은 연합군의 원폭투하로 포츠담 선언을 무조건 수락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본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을 법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선언에 따라 일본의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마지막으로, 포츠담 선언 8조에서, 카이로 선언의 각항은 실행되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및 시코쿠 그리고 연합국이 결정할 작은 섬 등에 국한될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면 독도는 포츠담선언이 규정한 연합국이 결정할 작은 섬들에 포함되는가?
포츠담 선언은 4개 연합국의 공동선언에 불과하며 법적구속력을 갖지는 못하는 선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본은 카이로 선언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전쟁 뒤 일본점령지의 반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이러한 의미는 한국의 독립과 만주, 대만의 중국 귀속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즉 폭력과 강요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처럼,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통해 카이로 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한다고 선언하였으므로 폭력과 강요에 의해 빼앗았던 독도를 일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독도는 1905년 2월 일본이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탈한 섬이기 때문에 일본영토에서 제외되어야 하였으며, 한국의 영토로 반환되어야 할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