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일본의 원자폭탄 피폭 생존자 단체 니혼 히단쿄가 선정됐다. 이 단체의 미마키 도시유키가 지난해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앞에서 감격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영국 BBC 사진을 보는 한국인들은 복잡미묘한 상념에 사로잡힐 것이다.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 막대한 전쟁 피해를 입히고 그 대가로 원자폭탄 응징을 당한 생존자들의 핵무기 폐기 노력을 상찬한 것이어서 피해국 국민들로선 마냥 두 손 들어 축하를 보내기 힘들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1일(현지시간) '히바쿠샤'로 알려진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 생존자들이 핵무기 제거 노력을 펼친 공로를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요에르겐 바트네 프리드네스 노벨위원회 의장은 이 단체가 "핵 터부를 정립하는 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며 현재 핵 터부가 "통제 아래"에 있다고 주장하며 이 단체 회원들이 증언에 나서 핵무기가 다시 사용돼선 안 된다는 사실을 널리 각인시킨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1956년에 창립된 이 단체는 피폭 생존자들을 세계에 보내 핵무기 사용이 일으킨 "잔혹한 피해"와 막대한 피해를 증언하게 했다. 1945년 8월 6일 미군이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한 우라늄 폭탄은 14만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사흘 뒤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돼 일본은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히로히토 일왕이 같은 달 15일 제대로 항복이란 단어를 쓰지도 않는, 이상한 선언을 해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눈물이 글썽한 미마키 공동 의장은 현지 취재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꿈도 꾸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그는 핵무기가 평화를 가져온다는 발상을 비판하며 "핵무기들 때문에 세계 평화가 유지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핵무기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마키 의장은 지난해 BBC 인터뷰를 통해서도 히로시마에서 피폭될 때 자신은 세 살 밖에 안 됐지만 화상을 입은 채 황망하게 자택 앞을 지나쳐 대피하던 이들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털어놓았다.
상패, 금메달과 함께 100만 달러(약 13억 4000만원)의 상금이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 기일인 12월 노르웨이 오슬로 시상식에서 주어진다.
노벨 위원회가 전쟁 가해국인 일본의 피폭 피해자 단체에게 평화상을 시상하기로 결정한 것은 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평화상 지명자들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영국 BBC가 점잖게 꼬집었다. 일본에 침략과 전쟁 피해를 직접 겪은 한국과 한국인들로선 가해국이자 전범 국가의 정부가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고, 되레 '보통 국가'나 '정상 국가'로 돌아가려 애쓰는 것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그 나라 국민들이 당한 고통을 지나치게 미화하려는 모습에 실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BBC의 반응과 평가는 조금 더 포괄적이며 글로벌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방송은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유엔 기구 UNRWA이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 조직은 가자지구 민간인들을 돕는 인도주의 활동을 주로 펼쳐왔으나 적어도 9명의 멤버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사 해고됐다. 이에 따라 1만 2000명 이상이 UNRWA에 평화상을 수상하면 안된다는 청원에 서명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를 수상 후보로 지명한 데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됐다. 역시 유엔 산하 기구인 ICJ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심리하고 있으며 이미 이스라엘 당국이 학살 행위를 자제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니혼 히단쿄를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함으로써 논란을 피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며,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에 드리운 핵 갈등 위협에 대한 글로벌 관심을 환기시키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지도자들은 서구 동맹들이 우크라이나를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지지하는 강도를 높이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다고 거듭해 힌트를 줬다. 이런 위협은 서구의 지지를 통해 전쟁이 에스컬레이트되는 일을 자제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 전략의 많은 것들이 이란이 핵 능력을 추구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빌미로 삼고 있는데 테헤란 당국은 이를 부인한다.
노벨위원회의 결정은 몇몇 나라가 앞다퉈 억지력을 추구하는 이 때, 핵무기 사용을 둘러싼 논란을 새롭게 제기할 수도 있다.
올해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것은 286건인데, 개인으로는 197명이며 단체로는 89곳이다. 국회나 정부, 국제사법기구처럼 공신력 있는 기관의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추천할 수 있다.
지난해 평화상을 수상한 이란 인권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이란에서 압제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위해 일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테헤란의 악명 높은 에빈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그의 활동과 관련해 여러 혐의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벌써 12년을 복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