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봄에 무늬를 더하다
금
손 미
사주에 금이 세 개나 있어서 자꾸만 금을 긋는다.
죽었으면서 산 척 했다.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왔다 금을 긋고 나가는 나를 아무도 보지 않았다. 금속처럼 차가워진 휴대폰에는 잘못 온 우편물 찾아가세요 전 집주인의 문자가 찍힌다.
아래층 현관을 발로 차는 소리가 올라온다. 비눗방울 같다.
나는 매일 바닥에 수프를 흘렸다 천장에서 뭐가 새나 봐 아랫집에 누워있는 사람이 나를 볼 것 같아서. 나는 바닥에 귀를 대고 누웠다. 바닥에 부드럽게 번지는 원을 보았다. 금을 넘어 다른 곳으로 가려는 입자를 보았다.
씨팔. 언젠가 파티션을 넘어오던 목소리처럼.
밤새도록 아이는 운다.
아이의 울음은 금을 넘어간다.
나는 등을 돌리면서 귀를 틀어막았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생각하면서
손을 뻗어 우는 아이의 등을 두드린다.
어디까지 나일까.
나는 이제 파티션이 없고
수프를 휘저으면서 금을 긋는다.
한 방울 씩 수프를 떨어뜨리면서
하루를 보냈다.
다른 물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잠깐씩 입구처럼 금이 벌어진다
그리고는
곧 닫힌다.
금
내 사주엔 금이 세 개가 있다.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다고 한다. 칼 같다고 한다. 나는 되레 무르게 당하는 쪽인 것 같은데 간혹 사람들은 나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중학교에 입학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절교를 당한 적도 있다. 나에게 금을 긋고 달아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슬금슬금 금을 긋고 달아나던 나의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꼭 맞는 옷처럼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관계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꼭 맞지 않는다면, 맞는 척 연기를 하다가 멀어지는 수밖에. 가뜩이나 소박한 인간관계가 나의 임신과 출산으로 대체로 끊겼다. 단순했던 내 삶은 더 단순해졌다.
요즘 나의 유일한 인간관계는 네 살 난 딸아이, 그리고 남편뿐이다. 어린이집에 가고부터 아이는 거의 매일 아팠다. 아이를 보내고 시를 쓰겠다는 나의 다짐은 무색해졌다. 콧물을 달고 사는 아이를 매일 소아과에 데려가는 것이 하루 일과의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있다가 우당탕탕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에게 걸려 와르르 바닥에 쏟은 날도 있다. 물티슈를 꺼내 바닥의 얼음을 주워 담을 때 세 살이었던 아이는 얌전히 구석에 서 있었다. 그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짐을 챙겨오겠다면서 아기띠를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 주차장에서 25층 집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 운행이 멈춰 있었다. 경비실에 전화를 걸어 울부짖었다. 아이가 입원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운행이 멈춰 있어요. 엉엉 우는 나에게 경비실 직원은 10분 뒤 운행하니 기다리세요 라고 말했다. 울지 마세요 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시상식이 있었고,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LA에 갔을 때도 아이는 독감에 걸려 열이 올랐다. 콧물만 흘리고 있어서 독감인 것을 몰랐고, 그저 비행기를 오래 타서 컨디션이 안 좋겠거니 생각했다. 도착한 날 밤,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데, 침대에 뜨끈한 것이 번졌다. 불을 켜고 들춰보니 아이가 오줌을 싼 것이다. 기저귀를 뗀 지 꽤 지난 참이라 놀라서 보니 아이는 경련을 하고 있었다. 눈을 치켜뜨고 규칙적으로 진동을 하는 그 작은 몸을 흔들면서 나는 밀려오는 자책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열이 오르면 경련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에 또 조심을 했는데, 또, 이렇게 돼 버렸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한국인 에어비엔비 사장님의 도움으로 달려간 응급실에서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면서 의사는 아이의 식도에 튜브를 꽂았다. 발끝으로 피가 빠져나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 알았다. 나는 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나는 왜 엄마가 되었나. 왜 아이를 낳았나. 이렇게 자격이 없는데, 어쩌자고 한 생명을 낳았을까. 병원에 있는 5일 동안 나는 쪼그라들다 못해 점처럼 작아져 병실에 붙박였다. 액체 외엔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백 가지 반성을 하고, 의식이 없는 아이에게 백 번의 사과를 하고, 기도하고, 좌절하고, 또 기도하면서 살았는데 죽었다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병원비가 2억이 나왔다. 미국은 원래 그렇다고 했다. 여행자 보험으로도 커버가 안 됐다. 남편은 보험사, 대사관, 한인협회, 한국인이라는 하원의원 사무실까지 전화했지만 어디서도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사악한 병원비와 머무는 내내 비가 내리던 LA의 우중충한 하늘과 아이를 괜히 데려갔다는 자책감이 혼종되어 LA는 내게 흑백이 됐다.
금을 긋고 달아나던 나는 금을 그을 수 없는 관계에 붙들렸다. 수프에 수저를 젓는 것처럼 다시, 또다시, 끈끈해지는 이런 관계도 있다. 아이를 낳고 4년. 지금도 날마다 휘청인다. 육체와 정신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아니 만나지 못한다. 아침에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하루를 보낸다. 읽거나 쓸 에너지도 없어서 그냥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아래층 위층 초인종 소리, 출차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낮에 고요히 앉아 있으면 윗집에 혹은 아랫집에 사람이 들고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아이와 남편 외에 유일하게 맺는 관계이다. 간단히 밥을 차려 먹고 햇빛을 향해 앉아 있다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쌀을 씻어 안치고 분리수거를 할 쓰레기를 들고 나가 아이를 찾아온다. 한동안은 시를 쓸 수 없었다. 그만 쓸까 생각하는 순간 눈물이 차올라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프 방울 같은 문장들을 모으고 모아 시를 완성한다. 수프에 숟가락으로 금을 긋는다. 금세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