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폭동(萬瀑洞)
································································ 한포재 이건명 선생
봉우리들 깎아지른 듯 솟아 비단 병풍 펼치고 群峯削立錦屛開
두 물줄기 다투듯 흘러내려 만개의 옥 쌓이네 兩水爭流萬玉堆
골짜기 속 신선바람은 하얀 거품 불어 날리고 谷裏仙風吹沫雪
아침 해 뜬 계곡 안엔 상쾌한 우렛소리 울리네 洞中朝日響晴雷
용은 옛 구렁에 숨어 천년의 비밀 간직하고 龍藏古壑千年秘
청학대(靑鶴臺) 떠난 학은 몇 해 지나 돌아오려 나鶴去雲臺幾歲廻
돌 위에 양공이 큰 글씨 남겼으니 石上楊公留大字
봉래와 풍악 네 글자가 호쾌하구나 淋漓楓嶽又蓬萊
* 만폭동(萬瀑洞) : 표훈사에서 만천(萬川)을 따라 동북쪽으로 오르면 금강문(金剛門)이 있는데, 금강문에서부터 화룡담(火龍潭)까지의 구간을 만폭동이라고 부른다. 금강대(金剛臺) 아래에 펼쳐진 200미터 가량의 반석(盤石)과 만폭팔담(萬瀑八潭) 등의 절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옥류동(玉流洞)․만물상(萬物相)과 더불어 금강산 3대 절승의 하나로 꼽힌다.
* 용은……간직하고 : 만폭팔담 중 제 1담이 흑룡담(黑龍潭)인데, 검이 빛이 돌아 마치 흑룡이 밑에 숨어 있는 듯한 풍경을 자아내기 때문에 이와 같이 표현하였다.
* 운대……돌아오려나 : 금강대를 일명 청학대(靑鶴臺)라고도 하는데, 푸른 학이 그 위에 둥지를 틀었다는 전설이 있다. 서하 이민서(李敏叙)가 학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골짝 어귀에 이는 서늘한 바람 얼굴을 스치는데, 상서로운 노을 향기로운 안개가 선대에 감도네. 대 곁의 늙은 나무는 가을빛 짙어 가건만, 천 년 전에 떠난 선학(仙鶴)은 돌아오지 않네.[谷口涼風拂面來, 瑞霞香霧擁仙臺. 臺邊樹老秋光暮, 笙鶴千年去不廻.]”《西河集 卷3 金剛十二絶, 韓國文集叢刊 144輯》
* 돌 위에……호쾌하구나 : 양공(楊公)은 양사언(楊士彦, 1517∼1584)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이니,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한호(韓濠)와 함께 조선의 4대 서예가로 일컬어졌으며, 특히 큰 글씨를 잘 썼다. 양사언이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만폭동의 반석 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여덟 자를 크게 새긴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