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기의 평화 F10 2006 11 김신자 *작품해설(22세기의 평화) 평화라는 말은 인간이 꿈꾸는 최대의 화두(話頭)이기도 하다. 전쟁과 평화라는 말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아서 영원한 평화도 없고 영원한 전쟁도 없다는 것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마치 그것은 행복과 불행과 같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할때의 즐거움이 오래도록 지속될 것을 바라나 그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할뿐이란 것은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이 이를 입증한다. 전쟁 시대에 태어난 우리 또래에게는 전쟁이란 일상적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늘 있는 일로 알고 자랐다.그래서 평화시대란 말은 마치 무릉도원이나 유토피 아에서 나오는 매우 휘귀한 단어로 알고 있었다.남북이 총자루를 잡고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나 되는듯이 노려보면서 개인간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죽여야하는지도 모르는, 오직 정치 지도자들의 이념에 파리채에 눌린 파리처럼 목숨이 사라지는 이 광폭한 전쟁,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고 전쟁은 영웅을 필요로 하고 영웅의 훈장이 찬란할 수록 병사의 피는 냇물처럼 흘러 마침내 온 천하가 통곡의 곡성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그런 전쟁, 그 전쟁을 막기 위해 많은 평화주의자들이 목청을 돋구어서 이웃ㅅ간의 사랑을 외치지만 그것은 허공중에 흩어지는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이년과 이념의 전쟁이 막을 내리고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지역에서는 여전히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성경과 코란을 들고 싸운다.그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해결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이런 전쟁을 글과 음악과 그림으 로서 막아보고 평화의 씨앗을 심으려고 부단하게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늘 헛 구호에 그치고 만다. 일찍이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의 북쪽 게르니카 마을에 독일군 폭격기가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투하해서 수많은 생명이 죽는 것을 목격하고 게르니카란 비구상화를 그려서 전쟁에 대한 비판과 경적을 올렸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면, 말을 탄 사람의 한눈은 정면을 바라 보고 있지만 다른 한눈은 옆을 보고 있다. 피카소는 이중적인 인물화를 통해 게르 니카 공습이 처음에는 공습을 주도한 히틀러 정권만을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스페인 군부의 사주에 의한 것임을 웅변했던 것이다. 이처럼 피카소는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줄 때 숨겨진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여러 각도에서 본 사물을 모두 모아 그림으로 표현했다.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게르니카’는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으로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으며,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대비효과로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비극성이 표출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림도 실생활과 같다. 지체 없이 행동해야 한다”라고 한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통해 이 시대에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사색하고 그려봄은 어떨까? 김신자 화백의 "22세기 평화"란 화제(畵題)를 단 이 작품에서는 우리가 생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후손들이 활동할 22세기에 피카소가 말했듯이 그림을 실생활에 바로 투입 시키고 그림처럼 행동하는 역동성을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만이 갖는 삶의 무한한 희구와 가능성을 김신자 화백은 십분 활용했다는 생각이다. 그의 그림에는 평화를 추구하고 안정된 평화를 찾았다는 안도감을 갖게 한다.물론 리가 살지 않는 22세기의 일이니까 그것은 오직 희망사항일 수 있지만 때로는 희망이 현실이 되고 예술가는 현실이 오기까지의 무한한 희망을 심는 작업을 계속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란 것을 작가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영혼과 예술 원문보기 글쓴이: 일송정
첫댓글 22세기의 평화라... 문득 섬찟해집니다.
그러시겟죠 그때 제가 전화드릴께요.22세기에
첫댓글 22세기의 평화라... 문득 섬찟해집니다.
그러시겟죠 그때 제가 전화드릴께요.22세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