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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6070 낭만길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미션
스스로 문명인을 자처하며 인근 지역을 야만으로 규정한다. 당시의 지도 그림을 보면 다르다넬스 해협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 일부 아시아 일부 아프리카 일부만 담고 있다 이는 그리스인들의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 너머 아시아 대륙 전체 아메리카 대륙 등은 알 수 없던 시절이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우월감을 바탕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아시아 원정 시기에 추진된 토착 문화와 그리스 문화의 융합이라는 헬레니즘도 그리스 문화의 우월감에 기초한다. 그리스 문화가 아시아 문화(*)에서 기초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여기서 유럽 Europe 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살펴본다
유럽이라는 지역 명칭은 기원전 8세기 경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 Hesiodos 의 작품에 처음 등장한다.
유럽이라는 단어는 에우로페의 전설에서 유래된 걸로 추정한다.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는 제우스에 의해 크레타로 납치되어 크레타의 미노스 왕을 낳고 미노스 문명을 탄생시킨다. 미노스 문명은 그리스로 이동하여 미케네 문명으로 융합된다. 미케네 문명이 유럽 문명의 원류라고 한다면 페니키아 공주 에우로페가 그 원조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추정은 페니키아 단어인 'ereb' (해가 지는 땅)에서 유래하며, 유럽은 페니키아인들이 이주하여 개발한 지역이라는 주장도 있다. 둘 다 아시아 문화(*)인 페니키아에서 유래한다.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뿌리로 이해되고, 그리스인들의 자기중심적인 자부심이 유럽 중심주의로 계승된다. 기원전 5세기 경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페르시아의 공격을 우여곡절 끝에 막아낸 그리스의 역사를 보면서 유럽의 후손들은 독재 전체주의 아시아를 막아내면서 자유 민주주의 유럽이 승리하였다고 확대 해석한다.
로마제국
그리스 문명을 이어서 로마 문명은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로마 제국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전 지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한다. 물론 도나우 강 이북 지역이 제외 된 지중해 세계에 국한되었지만, 훗날 유럽인들이 발전시킨 세계시민 사상의 토대가 된다.
로마에 기독교 사상이 유입되고 결국 동쪽과 서쪽으로 분열된다. 동쪽은 동방정교회 Eastern Orthodoxy 서쪽은 가톨릭 Catholic 이 중심 역할을 한다.
5세기 경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이 로마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도나우 강 이북까지 확대되고 비로소 유럽 문명이 시작된다. 9세기 경 노르만족이 진출하면서 북서부 지역까지 확장되고, 11세기 이후 동쪽으로 확대되면서 독일,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지역이 유럽 세계에 포함된다.
중세 유럽인들은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인식하면서, 주변의 이슬람교와 동방정교와 거리를 둔다.
이슬람 문명과의 충돌
8세기 초 이슬람 교도들이 지중해를 건너와 남서부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다. 이 사건이 유럽인들의 기독교 정체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특히 732년 프랑크족인 카를 마르텔 Karl Martell 이 에스파냐에서 넘어온 이슬람 세력을 피레네 산맥 너머로 물리치면서, 유럽은 기독교라는 정체성 확립에 큰 기여를 한다.
이처럼 유럽의 정체성이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립된 것은 이슬람 문명과의 대립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향후 두 문명 간의 대립과 갈등의 메카니즘으로 작용한다.
서유럽은 이슬람 세력을 격퇴한 승리자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이는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는 발단이 된다. 십자군 전쟁의 명분은 기독교 성지의 회복이다. 그러나 실상은 영토 확장을 위한 서유럽 기사들의 침략 전쟁이다. 200년이 넘도록 이어진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가톨릭과 동방 정교 사이에 많은 혼란과 상처를 남긴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함락시키고 유럽의 발칸과 남슬라브 지역을 점령한다. 신성로마 제국의 수도 빈까지 위협하는 이슬람 세력에 큰 공포에 빠진 유럽은 기독교 공동체 같은 공동 방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세속적인 정치적 통합은 매우 미흡했지만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공화국이라는 종교적 이념은 더욱 강화된다.
한편 이슬람 세력은 전쟁과 교역을 통하여 유럽에 많은 학문과 과학을 전해준다.
이슬람의 건축, 미술, 문학, 요리 뿐만 아니라, 이미 번역한 그리스의 철학 사상을 유럽에 전해주고, 화약, 나침반, 종이 등의 중국 발명품과, 인도의 수학, 과학 등을 유럽에 전해준다. 유럽의 금속 활자, 대항해시대에 따른 교역의 증가는 이러한 문명의 흐름을 더욱 가속시킨다. 상공인들의 지위가 올라가고 산업 자본주의 시대가 열린다.
이슬람 문명권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있던 중세 유럽 세계는 이후 르네상스, 대항해시대, 종교개혁 등의 시절을 거치면서 서서히 우위를 잡는다.
계몽주의
기독교의 지나침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30년 종교 전쟁이 끝난다. 최초의 국제 조약인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면서 주권국가 중심의 국제사회로 들어서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기 시작한다. 계몽주의와 함께 합리성이 강조되고, 근대적인 교육이 발전한다. 시민사회의 단초가 쌓이고, 상공업이 발달하며, 과학과 법치가 활성화된다. 이에 반해 이슬람 사회는 여전히 정치와 종교가 고착되어 상대적으로 낙후된다.
외교와 협상, 경제와 군사력의 운용을 통하여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이 자리 잡는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진출하면서 유럽인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진다. 18세기에는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가 본격화된다.
충돌과 전쟁의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평화와 인권을 추구하는 유럽통합 사상이 나타난다. 30년전쟁 시기인 1625년 그로티우스 Hugo Grotius 는 자연법에 입각한 통치 원리를 설파하고 평화와 공영의 목표를 제시한다. 이러한 주장들이 이어 나온다.
프랑스혁명
18세기 말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불합리한 신분제도에 폭발한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최고조에 달한다. 절대군주 제도에 기초한 기존의 세력균형이 흔들린다. 혁명을 종식시킨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에 오르고 프랑스 중심의 유럽통합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는 각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나폴레옹의 패배로 이어진다.
빈 체제 Wiener System 는 유럽 협력 체제를 통하여 자유와 권리를 향한 시민의 움직임을 차단하고 유럽의 원래 제도로 되돌리려고 한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프로이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세계대전
국가 간의 대결 상황을 보면, 식민지를 더 차지하려는 긴장과 충돌이 심해진다. 자유와 권리를 찾고자 하는 시민들의 저항은 잠시 주춤해진다.
드디어 세계대전이 터진다.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재앙을 겪으면서 유럽인들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그 원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끔직한 살륙전의 대상이던 국경선의 존재에 대해서도 큰 의문을 가진다. 게다가 군주제도를 부정하는 러시아 혁명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생기자 유럽 통합 방어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파시즘의 창궐과 경제난 그리고 배타적인 인종주의로 또 다시 세계대전이 터진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른 유럽은 유럽 연방 체제의 통합을 통해 전쟁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공동체 의식이 높아진다. 역사 속의 유럽 이념에 현대적인 가치를 더하여,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 평화를 기초한 유럽 이념을 구체적으로 정립하기 시작한다.
두번째 세계대전이 끝나자 마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세계패권을 다투는 냉전 Cold War 이 시작된다.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는 수단으로 우선 서유럽 중심의 유럽통합이 이루어진다. 서유럽 16개국은 미국의 경제원조계획인 마샬 플랜 Marshall Plan - 소련도 포함되었으나 소련이 이를 거부하였다 - 을 집행하기 위한 유럽협력경제기구 OEEC 조약에 서명한다. 전후 유럽 경제 재건과 전쟁국 독일에 대한 감시목적을 우선한 것이다.
이후 유럽 경제 협력과 통합을 확장하는 실행조치는 꾸준하게 진행된다.
예기치 못한 장애도 발생한다. 소련 체제에서 벗어나는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 열망을 어떻게 수용할지, 베를린 장벽의 갑작스런 붕괴로 감시 대상인 독일이 다시 힘을 키우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 등이다. 그러나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서독의 범국가적 의지를 스스로 재확인하고 프랑스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
EU 탄생
1993년 유럽의 정치 경제 화폐 통합을 전제한 유럽연합 EU이 탄생한다. 뒤이어 통합화폐인 유로화도 발행된다. 지구상 가장 큰 경제적 공동체이다.
도전과 숙제도 있다. 오랜 후보인 이슬람 국가 터키를 수용할 건지도 관건이고, 가입 국가들의 다양성을 수용할 새로운 정체성도 필요하다. 세계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일부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 영국의 탈퇴, 코비드 사태로 인한 자유로운 통행 문제와 통합지원 문제, 급증하는 이슬람 난민 수용문제, 극우파와 불법이민자 간의 갈등 등 어려운 숙제가 많다.
향후 발전된 모습의 유럽연합체제로 계속 나아갈지, 아니면 여기서 그냥 주춤주춤 멈출지 큰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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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기록한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투스 Herodotus 이후 수천년의 역사 기록을 가진 유럽인들은
30년 종교전쟁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지나친 민족주의는 모두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 방안으로 유럽을 하나로 통합하여 평화와 공동 번영을 가지자는 생각을 확인한다.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 ECC 창설 - 6개국에서 시작
1985년 솅겐 조약
1993년 유럽연합 EU 출범
현재 EU는 GDP 세계2위 27개 회원국 24개 공용언어 4.5만여 명 인구를 가지고
경제 공동체와 사법권과 일부 외교 안보권을 공유하고
공동화폐 '유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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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십자군 전쟁 시대의 유럽인들이 가진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인식 수준을 살펴보기로 한다.
참고: '유럽 바로 알기' (이혜령 공저, 2021)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