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12 추억속의 그 소녀
흙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신작로엔 군용트럭이 군인을 가득 싣고는 내달리고 있다
신작로 절벽 아래엔 홍천 강이 시퍼렇게 흐르고 있다
강을 따라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인 논에는 간간히 허수아비가 참새를 쫒기 위하여 낡은 밀짚모자를 쓰고
남루한 옷소매를 바람에 날리며 흔들어보지만
이미 참새들은 움직일 수 없는 허수아비의 실체를 알아차렸는지 두 팔에 앉아서 재잘대고 있다.
두 사내...
철모에 단독군장을 하곤 작전지역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하여 순시중이다.
선임하사와 함께 걷는 사병의 계급장엔 작대기가 가지런히 드러누워 있다
지휘본부에 근무하는 두 사람은 중간간부와 사병이지만 평소 상당히 인간관계가 친밀한 사이이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계급을 초월한 다정함이 있다
온종일 부대를 떠난 야전훈련이라 군화를 벗을 기회가 흔치 않아 피곤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야, 김 상병! 우리 목 좀 축이고 가자”
“제 수통엔 물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 나도 없는데....어쩐다?”
그렇게 가을날의 따가운 뙤약볕을 어깨에 짊어지곤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
말이 작전상 배치된 진지를 순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가한 작전상황이기에 두 사람은
여유 있는 산책길에 나온 것 같은 기분으로 가을을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홍천 강을 끼고 도는 풍광에 평화가 그득하다
얼마동안을 걸었는지 모른다.
눈앞에 동화 속에나 나올만한 작은 학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군무를 이탈하는 감성에 빠지는지 모른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정을 향하여 걷고 있다
오후 3시경의 가을은 해가 넘어가려면 아직도 5시간은 더 있어야 하지만
웬일인지 초등학교엔 학생들이 보이질 않는다.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미루나무에선 매미가 요란스럽게 노래를 하고
미루나무 잎사귀는 노랗게 물이 들어가며 간간히 불어대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고 교문 옆에 심어져 있는 굵직한 산사나무엔 빨갛게 익어가는 산사열매가 탐스럽다
서리가 내리고 산사나무 잎 새가 떨어지고 나면 산사열매의 맛은 최고일 것이다
두 군인은 우선 목을 축이는 것이 바램이다.
그 순간 어디선가 여식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동시에 눈이 돌아간다.
작은 화단 옆...
아직도 채송화가 노랗게 피어있고 과꽃이 빨갛게 피어서 익어가는 가을을 화사하게 한다
교정 이 곳 저곳 흰색 코스모스 꽃과 빨강색 분홍색이 섞여 가을을 흔들어 댄다
우물가엔 수령이 깊은 산사나무가 빨갛게 익어가는 너무나 아름다운 동화속의 학교와 같이
정겨움이 묻어나는 그런 작은 화단을 끼고 두 여자아이가 공기놀이에 열중이다
“얘들아, 공기놀이 하니?”
상병의 군인이 다가서며 말을 건넨다.
“네...”
두 아이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두 장병에게 시선을 돌리며 일어선다.
무서움이나 두려움의 기색이 없이 해맑은 표정의 두 초등학교 여학생이 다소곳이 대답을 하며
군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모습이 예쁘다.
“재밋겠구나? 부탁 좀 들어줄래?”
“뭔데요? 들어 드릴게요.”
“우린 훈련 나온 군인인데, 먹을 물이 떨어졌구나. 우리에게 물 좀 줄 수 없겠니?”
“아...아 그러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 아이가 쪼르르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머지 한 아이도 친구를 따라 뒤를 쫒는다.
5분여 후 먼저 갔던 어린아이가 주전자에 담은 물을 힘겹게 들고 뛰어온다.
사병은 달려가 얼른 주전자를 받아 들고는 선임하사에게로 다가간다.
우선 수통에 주전자 꼭지를 대고는 가득 채운다.
그러고는 사병에게 물주전자를 건넨다.
사병역시 같은 방법으로 수통을 채운 뒤 수통을 입에 대곤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두 소녀의 얼굴에 배시시 미소가 지어진다.
“아저씨, 목이 많이 말랐어요? 여기 나머지 물을 수통에 채우세요.”
그 제서야 갈증을 털어버린 두 군인은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전한다.
“얘들아, 참 고맙다”
“괜찮아요. 나라를 지키시는 아저씨들에게 도움이 되어서 기쁩니다.”
어찌도 그리 또박또박 대답을 잘하는지...
그 중 한아이가 참 예쁘고 똑똑한 이미지의 모습대로 넘치지도 모자람도 없는 말솜씨에
몸가짐이 어른도 갖추기 어려운 모습이라 생각을 하며 사병이 묻는다.
“너희들은 어디에 사니?”
그 옆에 다소곳이 서있던 한 아이가 대답을 한다.
“물을 떠온 얘는 교감선생님 딸 이예요. 그래서 물을 금 새 떠올 수 있었어요.”
아...그랬구나 생각을 하며 사병은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랬구나...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건빵도 없구...”
“괜찮아요. 제가 위문편지를 보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요?”
사병은 선임하사를 바라보며 표정을 살핀다.
선임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대주소를 알려 주라는 무언의 암시를 한다.
“그래? 부대주소를 알려주면 편지를 할래? 제 5216부대 브라보 포대 FDC 김 상병”
하얀 이본이 달린 흰색 브라우스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주름진 치마 끝엔 레이스가 치장이 된
숲속의 공주를 연상케 하는 소녀가 바로 사병의 주소를 묻고 적은 교감선생님의 딸 김 소정...
그렇게 그 날의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속에 풋풋한 동심으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그 옛날의 동화를 간직
하고 있다
일주일의 야외훈련이 끝나고 부대로 복귀를 하여 군장을 해제하고 침상정리와 간물 대
정리를 끝내가는 즈음에 행정병이 다가온다.
“김 상병 님! 편지 왔습니다.”
“편지??? 이리 줘!”
의아한 마음에 편지를 보낸 이의 주소를 확인하는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임과 동시에 쿵쾅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봉투를 연다.
<존경하는 국군아저씨께...
저는 ㅇㅇ초등학교(학교명을 기억할 수 없음) 5학년 김 소정입니다
국군장병 아저씨들의 노고로 저희는 편안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더니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쓰는 것도 허락을 받았답니다.
저 잘했지요 아저씨? ........생략>
<작은 소녀요정 소정 양에게...
나는 소정 이와 친구에게 고마움이 컸단다.
내 옆에 계시던 선임하사께서도 참 많은 고마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단다.
내가 총을 들고 훈련을 받으며 나라를 지키는 것은 소정 이와 같은 예쁜 학생들을 위해서고
내 가족과 내 민족의 안위를 위하여 조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웃으면서 임무수행에 열심이란다.
이렇게 소정양이 보내 준 편지로 인하여 아저씨는 더욱 힘이 솟아 공산주의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단다.
소정 이는 아무런 염려 말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훌륭한 대한민국의 일꾼이 되어 주려마...생략>
그렇게 서너 번의 편지를 주고받은 후 영영 소식을 알 수 없게 된다.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고 공부에 전념을 하거니 하며 갈증을 해소하게 해 준 그 소녀가
평생 해맑은 기억으로 추억하며 할아버지의 이름을 달곤 그 소녀의 나이를 헤아려 본다.
상병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었으니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가 12세였을 것이다.
지금 그 상병계급장을 달고 있던 남자의 나이가 65세이니 아마도 그 소녀도 어느 듯 지천명을 넘어선 나이일 것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초등학교의 가을풍경과 멀리 흐르는 홍천강의 정경이 눈에 선하다
그 소박하고 청순한 소녀의 모습이 12살의 그 나이로만 기억에 생생하다.
소녀여...
긴 세월을 익혀가며 크고 작은 꿈을 키우며
어디선가 행복하게 있겠지?
아저씨는 그 오랜 기억을 잊지 못하며 한 생을 살아왔단다.
내 딸로도 기억을 하고
내 손녀로도 기억을 하고 있단다.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 딸이나 손녀가 아닌
성숙한 여인으로서 한 가정을 행복하게 이끌어 가고 있을 것이라 여기며
소정 양을 뇌리에 얹어놓고 사는 군인의 상병이란다.
어디서 어떻게 살든 이 아저씬 소정이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며
그 갈증을 없애 준 달콤한 꿀물과도 같은 물 한 모금이 천사의 감로수만 여기며 살았단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간간히 초등학교 5학년의 소정소녀를 기억할 것이다
고맙다 아가야...
그때 그 곳 초등학교를 찾아 떠나봤지만
40년이 넘은 그 곳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홍천 강 자락에서
흐르는 물에 손만 적시고 왔단다.
소녀야...
너는 아마도 까맣게 잊은 어린 시절이겠지....
첫댓글 감사합니다
건강, 사랑, 행복
행운.가득한 즐거운
한해 되시기 바랍니다^^*.....
매운고추 님 ^^
반갑습니다
설 명절은 잘 보내셨지요?
님께서도 금년 한해가 행운이 가득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님의 향기가 향기롭습니다
묵향님
안녕하세요 처음인사드리네요
반갑습니다
묵향님의 글을 보니
문득 어린시절이 떠오르네요
저도 어릴때 홍천에 간적이 있었는데 산절벽같은길에 홍천강이 있고 아슬아슬하죠
구부정 한것도 같고 9살때 가봤어요 그학교 홍천분교하고 너무비슷하네요 홍천초라시니까 제가갔었던 곳은 좀더작은 동네였겠네요
잠시 어린시절에 머물다 가네요 감사합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향기로운 꽃잎 님^^
저 역시 처음 인사를 드립니다
고운 향기를 뿌리고 가신 님 ^^
홍천을 가보셨네요?ㅎㅎ
산천이 깊은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물맑고 공기가 좋은 곳이지요
그 곳에서의 군시절에 있었던
잊을 수 없는 고운이야기입니다
저~위의 사진은
제가 다닌 시골중학교의 전경이랍니다
지난 가을에 있었던 동문회에 참석해서 찍었지요
코스모스꽃,길,강풍경 등이
모교의 주변에 있는 풍경들이랍니다
함께 공감해 주신 즐거움이 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운이 가득 하소서
고맙습니다^^
@묵 향 님 정말그러시겠어요
저는고향이 포천시골마을이에요
그래서 군인아저씨를 많이
봤지요 우리됫동산에도 오셔서 포장치고 그러섰거든요 건빵 화랑담배 생각나요 현리 5군단 맹호부대 호랑이 마크다신분들이 많이보였지요 ㅎㅎ
설연휴 잘보내시고
행복하세요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오래된추억을 소중하게 담으시고 쓰신글이
마치영화줄거리 같습니다
위문편지 저도 많이 썼는데요
그때는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고 쓰라고 했답니다
답장도 받아보앗구요
저도 그때는 단발머리 소녀였거든요
추억
새롭네요
부르시는노래는 조용필 님보다 더 맛갈납니다
구수합니다
명절을 잘보내셨겠지요
웃으면서 다녀갑니다
샘 물 님^^
설명절은 즐겁게 보내셨지요?
늦은 인사에 죄송함이 가득합니다
남자들의 군생활 이야기는 지울 수가 없잖아요 ㅎㅎ
묵향의 그 시절 이야기들은 산더미 같지만
누구나 다 그렇지요?ㅎㅎㅎ
고맙습니다^^
그저 우울 하거나
즐거우면 노래를 부르며 녹음을 해요
잘 불러서가 아니라
그냥 즐기며 자아도취 한답니다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촉촉히 내리는 비오날...
마음에도 단비를 촉촉히 내리소서
고맙습니다 ^^
풋풋했던 절은 시절의 아름다운 소녀에 대한 추억이네요 목마르던 갈증을 풀어준 고마움이 오랜 세월 잊혀지지 않고 있네요 동화속에 나오는 예쁜 이야기에 미소가 번지네요 잘 보고갑니다
살살이 님 ^^
반갑습니다
처음뵙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잊을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있지요
그 풋풋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평생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샘물같은 추억입니다
다녀가신 고마움이 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