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의 선배 다윗의 고백과 선포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 있어 목자와도 같은 분이십니다..
대게 목자는 그 양을 잘 돌보고 먹고 마실 것을 공급하며, 혹 양들이 아프거나 병들 때면 최선을 다해 치료의 방법을 찾고, 심지어는 이리나 늑대 등의 공격으로부터 마치 목숨을 걸 듯 방어하고 대신 싸워 주곤 하는데..
하나님께서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그 백성들에 있어서 그와 유사하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양을 치는 목자와 진정 그 목자 같으신 하나님과의 차이가 없을 수는 없는 것으로 실제로 양을 치는 목자는 돌보고 먹을 것을 공급하며 치료하고 대신 싸워 줌 등에 있어 크고 작은 한계들이 가득하고, 특히 그 자신부터 심히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이 많으며, 게다가 상황과 환경들에도 영향을 많이 받고, 무엇보다 원하는 대로 안 되는 면들이 많거나 그 자신부터 굶주리고 병들며 다칠 수도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음에 반해..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그 스스로 완전하시며 완벽하시고 초월적이시며, 실제로 모든 상황과 환경들, 시간과 공간들, 문제와 위기들도, 절망과 불가능들까지도 뛰어 넘으시고, 더 나아가 모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인이시며, 필요하면 기적 이상도 행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차고 넘치게 채우실 수 있는 분인 것이고, 말 그대로 모든 부분들에 있어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분인 것이며, 순간순간 책임져 주시고 하나하나 응답하시며, 앞서 가시어 싸워 주시고 예비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영원에 이르기까지 풍성케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에 있어서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성령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크고 작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중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듯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에 있어서도 구주 예수님과 전적으로 직결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듯이 아래 본문에서와 같은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도 결코 구주 예수님과 별개일 수 없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강조하면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 은총이든지 간에 어쨌든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에 있어서,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되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하나하나 모두 다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크고 작은 모든 생생하고 강력하며 온전하고 복된 역사들에 있어 하나님께서는 아래 본문과 같이 고백하고 찬미했던 다윗부터도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이었을 때는 순간순간이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어 친히 싸워 주셨고 이기게 하셨으며, 특히 그 전에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도 물맷돌 하나로 이기게 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과 섭리 가운데 시련들이 있었더라도 그 이상의,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역사와 복과 열매들을 위한 훈련과 연단과 준비들이 되게 하셨던 것이며, 심지어는 목자에서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될 정도로 형통케 하셨지만..
그러나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증거된 것에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실제로 다윗 그 자신부터도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했을 때는 그의 가정과 자녀들 뿐 아니라 온 나라와 백성들 전체에 있어 곤고와 비참들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사무엘하 12장부터 해서 그 이후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아주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죄악이 아닌 말씀의 신앙이 모든 관건과 기준, 방법과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이라도 어렵거나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바로 그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이신 분인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백성들이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될 때는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 등을 온전하고 풍성하게 누리게 하시기보다는 반대로 오히려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을 막으시곤 하는 것이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까지 않으시곤 하는 것이며, 때로는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헤매게도 하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 가장 좋은 것은, 특히 승리하는 신앙,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와 같은 순간순간들을 위해, 더 나아가 의로운 시련과 고난들이 있다고 해도 더욱 더 크고 놀라운 은혜와 예비들, 영광과 열매들 등이 기다리는 온전하고 충만하며 풍성한 신앙에 있어서는 더 이상의 나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 등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날마다 순간마다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것, 더 나아가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복과 열매들 등으로 강렬하고 풍성케 됨으로 인해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우고, 더더욱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됨과 함께 가면 갈수록 더 하늘의 힘과 은혜들, 역사와 복들로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23:1~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월 31일(수)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